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생활 간증]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 유태영

대전 교회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교회 인근 성도님들과 함께 성경 연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그날 참석한 분들과 나눴던 마태복음 11장 27절에서 28절까지의 내용을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이 성경절은 모두 외우고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은혜는 말씀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실제적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방향으로 제 자신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그리스도인은 안타깝게도 소수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그 사람 중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주간 이 말씀을 연구하면서 저는 그동안 잘 눈여겨보지 않았던 마태복음 11장 27절 말씀에 주목하게 되었는데요. 그 말씀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아들 예수님을 정말로 알고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며 하나님 아버지를 정말로 아는 자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왜 그토록 주님께 내려놓지 못한 이유를 27절 말씀에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많은 시간 동안 진리에 관해 연구하고 나름 열심히 성경 말씀도 읽었는데, 그것은 피상적인 지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지식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이 이론에 머물러 있었다는 자각이 일어났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주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고백을 주님께 드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오히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거듭남 책 중에 기도에 관련된 한 부분을 발췌하겠습니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그 심정을 펴 놓은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 아버지라는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지금처럼 편안하게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여겼는데, 실상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내어 놓는 그분의 자녀, 그리고 솔직한 감정을 토로하는 자녀의 기도를 매우 기뻐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미리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모두 알고 있지만 제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용까지도 솔직하게 말씀드릴 때 제 자신이 가벼워지고 그 결과 하나님 아버지가 편안하고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어려운 분이 아니고 가장 가깝게 생각되었습니다.

다른 면으로 예수님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성도들의 모습에서 죄를 짓게 되는 경우 뒤로 물러가는 것을 자주 목도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했으며,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 게라야 쓸데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죄를 짓고 실수할 때 심령이 얼마나 가난합니까?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때 낙담하며 뒤로 물러가는 것은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거듭 반복하여 죄를 짓게 되는 경우 사탄의 고소와 참소가 우리를 공격하는데 그때 큰 낙심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이것 또한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할 수 없으니까 예수님이 그것을 해결해 주시려 이 땅에 오신 것인데 오히려 이럴수록 더욱 주님께 나아가 죄의 씻음을 경험하며 주님을 만나며 주님을 찾는 기회로 삼아야 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분명히 알려 주시는 확실한 사실은 주님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정말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자신이 무력하고 심령의 가난함을 느끼는 그리스도인은 큰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 많고 무력하고 도움이 요구되는 그러한 상태 그대로 당신께 나오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사탄의 고소와 참소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 자신이 예수님께로 이끌려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결론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중에 가장 큰 짐은 죄의 관련된 것일 겁니다.

‘태영아, 제발 너 안에 있는 죄의 짐을 나에게 달라’는 주님의 호소를 느낍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왔다는 사랑의 음성을 듣습니다. 물론 죄에 국한된 것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주님께 맡길 것입니다. 시시콜콜한 것들까지도 모두 주님께 맡길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짐을 져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께 나아가서 쉼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60호 코로나와 다가오는 핍박의 시대]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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