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채가 준 선물 [신앙간증]

가시채가 준 선물 – 이미화

처음으로 혼자 담장 높은 교회를 찾아갔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하겠네요. 발목에 쇳덩이가 매달린 것처럼 무거웠고, 낯선 예배당에 들어서자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동심의 기억인 듯 그때가 아련하네요. 이로부터 시작된 터널 속 삶, 열 네 살 시골 소녀 가장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한 해에 아버지와 동생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슬픔은 거머리처럼 나를 삼키었고 “길 잃은 한 마리 사슴입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세요.” 라는 목멘 기도만이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그 기도가 한 알의 씨가 되어 떨어졌을까요? 어디서인지 모를 빛 내림이 내 심연을 비추고 있다는 생각에 용기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객지 생활을 적응하기에는 너무 앳된 나이였지만, 하루 일을 마치면 책가방을 메고 야학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강물처럼 흐르고 혼기가 찰 무렵이 되었습니다.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정의감이 넘쳐흐르는 눈매를 가진 사람이 내 곁을 맴돌기 시작했고 그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신혼생활에 드리운 난관으로 새댁 집사는 열매가 달리기도 전에 꽃잎이 지듯 교회에서 떨어져 시들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빈주먹으로 맨땅에 탑 쌓기를 희망했으나 난관은 높은 산과 같았습니다. 운수 좋으면 대박이요, 재수 없으면 쪽박을 차게 되는 게 운수업이라 하더니 빚으로 시작한 철강 사업이 배가 부르기도 전에 일이 터졌습니다. 대형사고가 겹치고 남편의 행방도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집이 압류되고, 어린 남매와 나는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며 떠돌았습니다. 한적한 태화 강가 바람과 노을 뒤에 어둑해지는 저녁 하늘의 별들이 하나 둘 차갑게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등에 업힌 아이 포대기가 촉촉이 이슬에 젖는데 지친 몸을 가눌 길이 없어 풀썩 자갈 돌 위에 주저앉았습니다. 복 바쳐 오르는 설움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나를 궁금해하거나, 찾는 사람이 있을까? 강물은 어디를 향해 그리도 바쁘게 흐르는지, 수은등 불빛을 삼키며 흩어지는 강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한발 두발 들어가다 보니 이불 속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여 그대로 물속에 잠들고 싶었습니다. 가슴까지 물이 찰 무렵, 등에서 잠들었던 아이가 소스라쳐 우는 것이 들렸습니다.

“맙소사,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아가, 미안해. 아가, 미안해” 어떻게 빠져나왔을까요?

“하나님,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이렇게 저를 버리실 건가요?” 소리쳐 울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품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훔쳐주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어 보았습니다. 새벽이 오려는지 무거운 물안개가 걷히며 여명의 기미가 보이고 있었습니다. 혼란했던 정신이 맑아지듯 사방이 분별되었습니다.

“아, 하나님은 한순간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계셨구나. 나보다 더 아파하고 계셨구나! 제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네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못난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시채를 깨닫게 하시느라 애 태우셨을 것을 생각하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내 삶은 여전히 거친 세상과 싸우며 살아야 했습니다. 가시채를 지닌 채 고집 센 하나님의 미운 딸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심중에 자리한 조언자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주신 가시채,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해 볼 만한 여행이었습니다.

‘무의식 속에 잉태된 생명! 담장 높았던 교회에서 하늘까지 들어주셨던 기도로 수면 속 내 맥박을 세고 계셨음이라. 보지도 듣지도 만져보지도 않으셨지만 내 가는 방향을 먼저 앎이시더라.”

태화강 일이 있은 지 37년, 등에 업혔던 아이가 서른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이 불의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백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좋은 남편은 못되었지만 말 못 할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가다니… ‘하나님, 불쌍한 그 사람의 여정을 보고 계셨나요?’

IMF 부도라는 된서리를 맞고, 처자식은 살게 해 주어야 된다며 맨주먹으로 중국에 간지 이십육년이 되어 유골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세 아이들 데리고 나 홀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늠도 못하고 타국에서 겪었을 당신의 고난들을 한마디 말없이 가슴에 품은 채 땅속에 묻어야만 합니까? 이젠 먹고 살만 해졌는데 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멈춰진 시간 속에서 먹는 것도, 눈물도, 제시되는 문제들도 내 몸에서는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록 방바닥에 붙은 몸은 떨어질 줄 몰랐고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휴대폰이 내 전부였습니다.

유튜브가 뭔지도 모르고 빨간 삼각형 표식을 터치했습니다. 우연히 손계문 목사님의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닫혀 있던 가슴에 빗장을 열 듯 주님의 말씀이 얼었던 내 마음을 조금씩 데워주었습니다. 한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심장에 새 순이 돋아나는 듯했고,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말문이 열렸습니다. 땅에서 하늘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왜 이렇게 험한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면서 성서의 퍼즐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굽이굽이 뒤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제게 무심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다시 알 것 같습니다. 이젠 가시채를 벗겨 주셔도 엇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울타리 안에 거주하겠습니다. 문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는 하나님 사랑에 가시채를 가슴 깊이 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60호 코로나와 다가오는 핍박의 시대]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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