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 [신앙기사 2부]

제2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충성하여 에덴동산을 잃어버렸고 그 죄 때문에 온 땅은 저주를 받았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교훈을 따라 행했다면 그들의 토지는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으로 회복되었을 것이다. 마치 이 지구가 하나님의 정하신 자연법칙을 따를 때 귀중한 곡식을 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랬다면 이방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백성의 우월성을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웠나니 이것은 너로 하여금 땅 끝까지 이르러 구원을 이루게 하려 함이라”(행13:47, 사49: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온 세계에 풍성한 축복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주님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추는 길을 마련하셨다. 이방 나라들은 패역한 행실을 따름으로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멸망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그들이 주님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셨다. 주님의 백성을 통해 나타내신 원칙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키는 방편이 되게 계획하셨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 내실 때에 또 한 번 하나님의 권능과 긍휼을 나타내셨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광야의 위험에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셔서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택하신 기업, 주님의 포도원으로 세우셨다. 그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해 내신 일과 광야를 지나는 여행길에 그들을 취급하신 일 속에 나타난 놀라운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익만을 위함이 아니라, 그 근방 백성들에게도 유익이 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 이방이 하나님께로 이끌려 오도록 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의 초청을 보내도록 하셨다. 제사 제도의 교훈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만백성 앞에서 높임을 받으시고 그분을 바라보는 자는 다 살게 하셨다. 가나안 사람 라합과 모압 사람 룻처럼 우상숭배에서 돌아서서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연합할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그 백성이 늘어남에 따라 국경을 점점 넓혀서 마침내 온 세계에 이르러야 했다.

 

 

선택된 백성으로 남는 조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딤전 2:4)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 반드시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셨고 이들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진리를 전하도록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그분의 성품과 진리를 알리시려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이스라엘에게 하늘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의 계시를 맡기셨다. 세상 열국들은 타락하였고 하나님을 잊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들에게 여호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진리를 주셨지만 그것은 언제나 조건적이었다. 그 조건이 완수될 때만 이스라엘은 계속 선택된 백성으로 남을 것이었다. 그 조건은 무엇인가?
과거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또한 모세에게 주신 선민적 지위인 유일의 교회관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출 19:5)다고 하신 말씀 때문에 자신들의 역할이나 지위가 절대로 변경되거나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는데 그 언약에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 19:5)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무시한 채 언약의 말씀과 축복만 받아들인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절대로 변함없을 것이라 믿게 되었다.
“[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바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4~7).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었으며 그들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받은 축복을 세상에 나누어 주지 않았고, 그 모든 축복과 특권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 2:21).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 5:3~7).
“유대인들의 헛된 이야기들과 진리에서 돌아선 사람들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딛 1:14).
누구라도 열린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읽으면, 선민의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해야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오래전에 유대인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권리를 잃어버렸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편애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기회와 축복을 등한히 여기고 하나님의 선물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죄,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내리게 한 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 대신에 다른 백성을 부르셨다.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여러 선지자를 보냈다. 그러나 수많은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인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스라엘이지만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심지어 죽이고자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함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여러 가지 도전하는 질문을 했는데, 그런 질문들에 예수님은 친절하게 답변하셨고 그들의 악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다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33]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마 21:33~39).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후에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마 21:40)고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을 때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마 21:41)라고 직접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고 하셨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하셨다. 수많은 선지자를 보냈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오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뿌리쳤고 예수님까지 죽였다. 이 비유를 듣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스스로에게 심판을 선언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서 빼앗기고 열매 맺는 백성이 받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줄 알고 분노하여 결국 예수님을 죽이도록 넘겨준다(마 21:45).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 23:35,37,38).

 

 

뒤바뀐 진리의 수호자

 

이렇게 이스라엘이 진리를 거부하였기에 예수님도 더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실 수 없었다.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이스라엘을 사용하실 수 없었다. 십자가 이후에도 한동안 제자들은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만 일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3년 반 후인 서기 34년, 스데반이 새 언약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경고와 호소의 설교를 할 때, 그를 산헤드린 공회가 돌로 쳐서 죽이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스데반은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행 7:51~60), 곧 이어서 일어난 핍박과 함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고, 그 후로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사명은 육적 이스라엘에게서 열매 맺는 하나님의 백성, 영적 이스라엘 교회로 넘어간다.
아브라함의 실제 후손들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는 진리를 가지고 있었고 이방 나라에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진리를 명백히 거절한 이후 지난 2천 년간 누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했는가?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전파하였다. 지난 2천 년간 누가 진리를 보존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했는가? 유대인이 아니라 새 언약의 백성들이다. 그 과정에서 교회가 배도하고 타락하는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열매 맺는 백성을 통해 진리를 수호하고 보존하여 오늘까지 이르게 하셨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전달하는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가 그것인데, 그 후손들이 더 이상 그 일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시대를 여셨다. 이제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된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의 출현

 

성경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이제는 혈연관계를 떠나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 사실을 말하고 있다.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8,29).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한다. 현재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을 건국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안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2천 년 전처럼 여전히 예수님을 모욕하고 있으며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핍박하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롬 2:28,29)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유대인! 혈통적 이스라엘! 그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약속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바울의 신학이다. 성경에서 보다시피 이스라엘은 현재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육적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고, 이제 영적인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참 백성, 교회가 생긴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사도 바울의 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 6:15,16).
여기 나오는 이스라엘이 실제 유대인, 즉 갈라디아에 있는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참으로 파격적인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거슬러 돌아가려고 한다. 물론 유대인일지라도, 육적인 이스라엘일지라도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들여 그 말씀에 따라 살면 그들도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큰 집합 속에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모두가 속했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범주에 유대인이 제외되지 않는다.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지만, 신약시대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하나가 된 초대교회가 믿음으로 따라 난 영적 이스라엘로 불리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받았던 하나님의 백성과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의 축복의 말씀이 동일하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약이 되었다.
[구약]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출 19:6).
[신약]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6).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자들이 영적인 이스라엘이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새로 지음을 받은 자,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믿고 개인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국가적, 민족적으로 전 유대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12지파

 

그들은 또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만 4천이 결국 실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계시록 7장에 그들이 열두 지파에서 나온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록 7장의 열두 지파의 이름들은 원래의 지파들과 조금 다르다.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빠지고 요셉 지파와 레위 지파가 들어가 있다. 원래 고대 이스라엘에서 레위 지파가 열두 지파에서 빠져 있었던 이유는 그들은 제사장의 임무와 성전 봉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록 7장에는 레위 지파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원래의 열두 지파와 계시록 7장의 14만 4천의 열두 지파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야고보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 1:1). 지금 야고보가 실제 유대 지파를 말하는 것일까?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는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으로 구성된 소아시아 지방의 초대교회를 일컫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인가, 온 세상의 구원인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길을 선포한 후에 로마서 9~11장까지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사의 범위가 이스라엘 중심에서 세계 만민에게로 확대되는 것을 설명한다. 그런데 오히려 세대주의자들은 로마서 9~11장을 이스라엘 회복과 전 유대인의 구원으로 해석하는데 그것이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자.
로마서 9장 앞부분은 바울이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가 저희 중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애끓는 심정을 토로하면서(9:1~5),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정의는 종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있음을 밝힌다(9:6~13).
그리고 27절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롬 9:27)라고 말하므로 모든 이스라엘이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만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민족인데, 왜 구원받지 못하는가? 그 이유를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롬 9:32)하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설명한다.
로마서 10장에서도 역시 계속하여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롬 10:2,3) 아니 하였기 때문이다.
로마서 11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반역을 오히려 전 세계의 구원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계획을 밝힌다. 이스라엘이 거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셨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롬 11:11).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에게로 퍼져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의 구원이 이스라엘을 시기하게 하고 분기시켜 그들도 또한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사의 섭리이다(롬 11:12,25).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잘려 나간 곳에 믿음으로 접붙임을 얻어 지금 구원을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믿지 아니하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께서 접붙인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찍어 내버릴 것이다. 그리고 잘려 나간 원가지들도 믿으면 다시 접붙이실 것이다(롬 11:24). 비록 원가지였던 유대인이 잘려 나갔을지라도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새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퍼지고 있는 세대주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이 반역하고 잘려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눈동자처럼 보호하고 인도하고 계신다. 이스라엘에 불리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사상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눈동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눈동자는 그들이 아니라, 참 진리와 참 복음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백성들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조건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

 

로마서 11장에 보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다는 말씀이 있는데(롬 11:25),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그 다음 절의 “온 이스라엘”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 만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모든 이방인”을 가리키고 “온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말한다면, 바울은 여기서 모든 사람이 결국은 다 구원을 받는다는 “만인 구원론”(Universal Salvation)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바울서신 어디에서도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 일이 없다. 바울은 오히려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그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시기하게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11:14)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모두가 구원받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6)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이 모든 유대인이 다 구원받는 말씀일까? 오랜 세월 메시아를 거절하고 지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이 재림 직전 집단적으로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과는 조화되지 않고,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없다. 그렇다면 무슨 말씀일까? 로마서 11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 둘은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로 비교되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을 그리스도를 영접한 유대인과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방인을 합해서 온 이스라엘, 모든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바울의 신학을 가장 잘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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