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268호 매일의 만나

열한시 268호 매일의 만나

 

1. 준비되지 못한 백성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 7:9)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간 지낼 동안 저희가 당한 어려움들을 모세의 탓으로 돌렸었지만 이제는 그가 교만하고 야심 있고 이기적이라는 의심이 사라졌으므로 그의 말을 신뢰하고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모세는 그들 앞에 그들의 과오와 조상들의 범죄를 낱낱이 열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는 일로 인해 때때로 인내하지 못하고 반역하고 싶은 감정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점령이 이렇게 지체되는 데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즉시 약속된 땅으로 인도해 들이지 못하시는 까닭에 그들보다 더 슬퍼하셨으며 또한 모든 민족들 앞에서 그분의 구원하시는 일로써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교만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순결하고 선하고 자비로운 여호와의 성품을 갖지 못했으므로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임을 전혀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만일 저희 조상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고 그분의 법도를 따르고 율례 대로 행했더라면 그들은 오래전에 가나안에 정착하여 번영하고 거룩하고 행복한 백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기를 지체함으로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인근 민족들 앞에서 그분의 영광을 훼손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성질과 가치를 이해한 모세는 히브리인들에게 주어진 율법과 같은 현명하고 의롭고 자비로운 율법을 가진 다른 민족이 없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모세는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신 4:5, 6)고 말했습니다.

 

2. 공의로우신 하나님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8)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던 동일한 질문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의 백성에게 주셨던 율법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된 나라의 법률보다 더 현명하고 더 낫고 더 인도적이었습니다. 이 세상 나라의 법률은 결함이 많고 거듭나지 않은 감정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신 4:20)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지않아 들어갈 땅,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조건으로 그들의 소유가 될 땅에 대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신 6:10)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땅의 축복들을 묘사한 모세가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의 백성들의 기업 분배에서 제거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름다운 땅을 묘사한 모세의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음에 틀림없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어버려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아무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지 말라”(신 4:23)고 말하였습니다.
모세는 대중 앞에서 율법을 되풀이하여 말한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율법, 규례, 법도와 희생 제도에 관한 모든 규칙을 기록하는 일을 완성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수록된 책은 정식 관리들의 책임 하에 두되 안전히 보존하기 위하여 법궤 곁에 두었습니다. 아직도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가장 장엄하고 엄숙한 연설 가운데서 모세는 그들이 순종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요 범죄하면 저주가 따른다는 것을 백성들 앞에 제시하였습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신 28:15)

성령의 감동을 받아 멀리 각 시대를 내려다본 모세는 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최후의 무서운 전복의 장면과 예루살렘이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유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신 28:49, 50)리라. 또한 수 세기 후 티투스에게 예루살렘이 포위당하고 있는 동안 땅은 완전히 황폐되고 백성들이 무서운 고통을 당하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서 필경은 너를 멸망시키며”(신 28:51),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신 28:52, 53),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신 28:56, 57).
모세는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 30:19, 20)는 감명적인 말을 끝으로 백성을 향한 마지막 당부를 마쳤습니다.

 

4. 믿음에 의한 순종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신 6:25)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선포된 진리들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더 깊이 새기도록 하기 위하여 그는 그것들을 거룩한 시가로 구체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예언적이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기이하신 방법으로 인도하신 것을 자세히 말할 뿐 아니라 또한 장래의 대사건 즉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영광으로 재림하실 때에 충실한 자들의 최후의 승리를 예표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이 시적 역사를 외우고 이것을 자자손손에게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노래는 그들이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을 때 온 회중이 불러야 했고 백성들은 날마다 일터로 나가려 할 때 이 노래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들의 마음에 이 말들을 새겨 주어서 결코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의 수호자요 관리인이었으므로 그 계명의 의미심장함과 순종의 중요성이 특별히 그들에게 감명을 끼쳐서 그들을 통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전달되어야 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고 명령하셨습니다.
후일에 그들의 자손들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신 6:20)이냐고 물을 때에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신 은혜로운 역사를 반복하여 말하고 여호와께서 어떻게 그들을 구원 하사 그들로 그분의 율법을 지키게 하셨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신 6:24).

 

5.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하나님께서 백성을 취급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의 사랑과 자비가 섞여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의 엄격하고 공평한 공의의 뚜렷한 증거가 히브리 백성의 역사에서 예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신 32:11, 12)던 것처럼 축복과 자애로움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한 죄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속하고 엄중한 형벌이 임했던 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잃어버린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독생자를 주심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아버지의 성품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려고 세상에 오셨고 그분의 생애는 거룩한 친절과 동정 어린 행위로 충만하였습니다. 죄인들에게 인내와 사랑의 간청으로 그분께 나아와 용서와 평화를 얻으라고 초청하시던 동일한 음성이 심판 날에 그분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마 25:41)라고 명하실 것입니다. 온 성경 중에 하나님은 인자하신 아버지로뿐 아니라 의로운 재판관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고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출 34:7)시기를 기뻐하시지만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출 34:7) 아니하십니다.
열국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통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회중을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며 그분의 종의 열렬한 탄원이 그분의 선고를 철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죽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순간도 이스라엘을 위한 자신의 염려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 회중을 약속된 기업의 땅으로 들어가도록 준비시키고자 충실히 노력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하심을 신뢰한 모세의 성품을 우리의 거울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6. 모세를 향한 백성들의 마음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신 31:23)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 앞에 운집한 군중들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후계자에게 거룩한 격려사를 전달한 후에 그는 백성의 장로와 관원들을 향하여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그들에게 전달한 교훈들을 충실히 순종하라는 엄숙한 명령을 주었습니다.
백성들은 얼마 후에 그들 중에서 사라질 연로한 모세를 바라볼 때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의 어버이 다운 친절과 현명한 권고와 부단한 노력들을 회상하였습니다. 그들의 죄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을 받을 때 얼마나 자주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겨 그들을 구원하였는지 돌이켜 보며 그들의 슬픔은 후회로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완고함이 모세를 노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범하게 했음을 통절히 기억했습니다. 그들의 사랑하는 지도자 모세의 해임은 그의 생애와 사명이 계속되었다면 그들이 받았을 어떤 견책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훨씬 더 큰 견책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장차 그들의 지도자의 생애를 모세의 생애처럼 시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나 그것들을 감사하지 않을 때에는 그들에게서 그 축복을 거두어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십니다.
모세는 자기가 홀로 죽어야 함을 알고 있었으며 세상의 어떤 친구도 그의 임종 시간에 그를 도와주도록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장 쓰라린 시련은 그가 보호하고 사랑하던 백성-그의 관심과 생명이 그처럼 오랫동안 연합되었던 백성에게서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으므로 의심 없이 믿음으로 자기 자신과 그의 백성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탁하였습니다.

 

7. 모세의 회상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신 34:4)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신 34:1)렀습니다. 모세는 그 외로운 꼭대기에 서서 흐리지 않은 맑은 눈으로 그의 앞에 전개된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홀로 외로이 그가 궁전의 영광과 장차 애굽 왕국을 차지할 지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더불어 자기의 운명을 함께하기로 선택한 이후의 파란곡절과 어려움이 많았던 생애를 회고하였습니다. 그는 이드로의 양 떼와 함께 광야에서 생애 하던 오랜 세월과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던 일과 자기 자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던 일들을 회상하였습니다. 다시 모세는 선민을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의 큰 이적들과 그들의 유랑하고 반역하던 세월 동안의 하나님의 오래 참으셨던 자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또 자신의 기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떠난 대군 가운데 성인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약속된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결과를 회상하여 볼 때 자기의 노력의 결과와 그의 시련과 희생의 생애는 거의 헛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이 진 짐들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사명과 사업이 하나님께서 친히 정해 주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속박 중에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도록 처음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으나 일단 사업을 착수한 후에는 그 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고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겠다고 제의하셨지만 모세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가 겪은 시련은 컸으나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표를 받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체류하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의 출현을 목격하였고 그분의 사랑과 교통하는 값진 경험을 얻었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받기를 선택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느꼈습니다.

 

8. 이스라엘의 미래가 펼쳐짐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0, 11)

모세는 그가 범한 한 번의 그릇된 행위로 생애의 기록에 오점을 남겼지만 회개와 약속하신 희생 제물이신 구세주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이 요구하신 전부임을 확신하고 다시 한번 그의 죄를 자복하고 구세주의 이름으로 용서를 간구하였습니다.
이제 약속된 땅의 전경이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땅의 모든 부분이 먼 거리에서도 분명하고 뚜렷하고 아름답게 그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 장면에는 그 당시의 실제 모습이 나타났을 뿐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점령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심으로 이루어질 미래의 광경까지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제2의 에덴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곳에는 레바논의 백향목이 우거진 산들과 감람나무숲으로 회색빛을 띠고 향긋한 포도 냄새가 풍기는 언덕들이 있었고 넓고 푸른 들판에는 꽃들과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이쪽에는 열대 식물인 종려나무들이, 저쪽에는 밀과 보리가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햇빛에 눈이 부시는 골짜기가 있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는 음악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훌륭한 도시와 예쁜 정원들이 펼쳐져 있고 “바다의 풍요”를 주는 물이 철철 넘치는 호수들이 보이고 산허리에는 양 떼들이 풀을 뜯고, 바위틈에는 야생벌들이 모아 놓은 꿀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선민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고 각 지파가 그들의 기업을 차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정착한 후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길고도 슬픈 배도와 그 형벌에 대한 역사가 그의 앞에 전개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하여 이방인들 중에 흩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떠나 아름다운 도성이 황폐하고 그 백성이 이방의 포로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 저희가 조상의 나라를 회복하지만 마침내 로마의 통치 하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9. 구세주를 바라봄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모세는 시간의 흐름을 내려다볼 허락을 받아 구주의 초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태어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이 하늘의 별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보았으며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민 24:17)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회상할 때 그의 마음은 홍수 같은 큰 빛을 받았습니다. 나사렛에서의 그리스도의 비천한 생애와 사랑과 동정 어린 봉사와 병을 고치시는 일을 보았고 드디어 거만하고 믿지 않는 백성에게 거절당하시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율법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높인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그 율법을 주신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거절하는 것을 보고 모세는 놀랐습니다. 그는 감람산에서 그분의 사랑하는 도성에 눈물로 작별을 고하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그처럼 하늘의 큰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 곧 그 백성을 위하여 그가 그처럼 수고하고 기도하고 희생했으며 그들을 위하여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되는 것까지라도 불사했던 이 백성들의 최후의 거절을 바라보고 아울러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8)는 무서운 선고를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고민으로 찢어지는 듯했고 그의 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슬픔을 동정하는 쓰라린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모세는 겟세마네 동산까지 구세주를 따라가서 고뇌하시는 모습과 배반당하시고 능욕당하시고 채찍을 맞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도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요 3:16)기 위하여 들려져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조상들 앞에서 행하셨던 능력의 천사 곧 그들의 구주께 대하여 유대 민족이 나타낸 위선과 악마와 같은 증오를 바라볼 때 모세의 마음은 슬픔과 의분과 공포로 충만하였습니다.

 

10. 언약의 후손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사 42:6)

모세는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그리스도의 고뇌의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새 무덤에 누우신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절망의 흑암이 온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눈을 들어 그리스도께서 승리자로서 무덤에서 나오시고 그를 찬미하는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사로잡은 한 무리를 인도하여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자기 자신도 구세주를 수행해서 그를 위하여 영원한 문들을 열 무리 중의 한 사람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볼 때 모세의 얼굴이 거룩한 빛으로 밝게 빛났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생애를 통해 겪은 시련과 희생을 하나님의 아들이 당하는 시련과 희생에 비교할 때에 얼마나 작게 보였는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고후 4:17)과 비교할 때에 얼마나 가벼웠던가! 모세는 그가 비록 적은 분량이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의 동참자가 되도록 허락해 주신 것을 몹시 기뻐했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아가 그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을 보았으며 “육체를 좇아”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빛이 되지 못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멸시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축복을 상실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버리지 아니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의 자녀가 된 자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계수 될 것이었으며, 그들은 언약의 후사였으며 아브라함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율법과 그분의 아들의 복음을 간수하고 그것을 세상에 전하도록 부르신 바 되었습니다. 모세는 복음의 빛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흑암에 앉은 백성”(마 4:16)에게 비치어서 이방 나라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이 밝은 빛으로 모여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바라보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증가되고 번영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11. 최후의 대쟁투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모세는 사탄이 유대인을 유인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한다고 공언하게 하면서 그리스도를 거절하도록 역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후세에도 그리스도 교계가 하나님의 율법을 유린하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고 공언함으로 그와 유사한 기만에 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격분하여 부르짖는 제사장과 장로들의 소리를 들었으나 그 후에는 소위 그리스도교의 교사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율법을 없애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모세는 또한 안식일이 유린당하고 그 대신에 위조의 제도가 세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분의 육성으로 친히 거룩한 산에서 말씀하신 율법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천지 간에 그분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율법을 제쳐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아직도 소수의 충실한 자들이 하나님을 존중하고 높이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세속적 권력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멸하려는 최후의 대쟁투를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일어나시어 세상의 거민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형벌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그분의 분노의 날에 보호하시고 숨겨 주시는 그때를 내다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한 처소에서 친 음성으로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실 때에 온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시고 죽은 의인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하여 다 함께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도성으로 승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일찍이 그가 상상하던 그의 최대의 희망보다 더 영광스러운 구원의 성취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들의 방황은 영원히 끝나고 하나님의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하늘에 있는 아름다운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12. 모세의 죽음이 주는 의미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 34:10)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신 34:5, 6). 그가 장사된 곳을 알았더라면, 모세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는 그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던 많은 사람이, 그의 시체를 우상처럼 숭배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장지는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바 되었습니다.
만일 모세의 생애가 가데스에서 저질러진 죄 곧 바위에서 물을 내게 하는 사건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 그 한 가지 죄로 더럽혀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것이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랫동안 무덤 가운데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세를 장사한 천사들과 함께 잠자는 성도 모세를 불러내시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사탄은 모세를 하나님께 범죄토록 하여 그를 죽음의 권세에 가두어 둔 자신의 성공에 기뻐 날뛰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하나님의 선고가 그를 죽음의 소유가 되게 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무덤의 권세가 결코 깨뜨려져 본 일이 없고 무덤 속에 있는 자는 모두 자기의 포로이므로 그의 어두운 옥사에서 결코 놓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왕과 빛나는 천사들이 그 무덤에 접근할 때에 사탄은 자기의 주권을 빼앗길까 봐 염려하였습니다. 사탄은 악한 천사들과 더불어 그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 영토의 침해에 대하여 항쟁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종이 자기의 포로가 되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모세까지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었으며 모세는 사탄으로 하여금 하늘에서 추방당하게 한 죄 즉 여호와께 속한 영광을 자신이 취한 범죄로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왔다고 선언하였습니다.

 

13. 모세의 승천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 9)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의 죽음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는 사탄으로 더불어 언쟁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이 하늘에서 무수한 하늘 거민을 기만하여 멸망시킨 잔인한 행위에 대하여 논박하실 수도 있었고, 그가 에덴동산에서 거짓말을 하여 아담을 범죄케 하고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오게 한 것을 지적할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이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그들로 불평과 반역을 일으키게 함으로 오랫동안 참고 인내한 그들의 지도자를 지치게 만들고, 그리하여 그가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죄를 짓게 만들어 그로 하여금 죽음의 세력에 빠져들어 가게 한 사탄 자신의 행위를 사탄에게 상기시킬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을 그분의 아버지께 의탁하셨습니다.
구주께서는 그분의 대적으로 더불어 논쟁하지 않으시고 그때 그곳에서 타락한 원수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의 최상권에 대하여 사탄이 논박할 수 없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부활은 영원히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그의 먹이를 빼앗겼고 죽은 의인은 다시 살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죄의 결과로 사탄의 권세 하에 빠졌습니다. 그 자신의 행위대로라면 그는 당연히 죽음의 포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주의 이름을 의지함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영광스럽게도 무덤에서 나와 그분의 구원자와 함께 하나님의 도성으로 승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예시되기까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그분께서 모세를 다루신 일에서 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 때는 결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 곧 그분께서는 정확한 순종을 요구하시며 사람들은 저희 창조주께 속한 영광을 스스로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교훈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14. 그리스도와 모세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히 3:5, 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유업에 동참하기를 간청하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없었으나 그분의 종을 잊으시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당한 고통을 아셨으며 오랜 세월 동안 투쟁과 시련 중에서 충실히 봉사한 모든 행위를 주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지상 가나안보다 더 영광스럽고 무한한 유업으로 모세를 초청하셨습니다.
모세는 승천한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에게 보내는 빛과 영광의 전달자로서 보내신 바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세기 전에 드린 모세의 기도는 마침내 성취되었습니다. 모세는 그의 백성의 기업에 포함되어 있는 “아름다운 산”에 서서 이스라엘의 모든 약속들이 집중되어 있는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모세는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 18:15)고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대군을 지상 가나안으로 인도할 준비를 갖추기 전에 그가 고난과 빈곤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것이 적합함을 아셨습니다. 하늘 가나안으로 여행하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군대장관 한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분은 거룩한 지도자로서의 그분의 사명을 위해 준비시켜 줄 인간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고난을 통하여 완전하게 되셨고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0, 18). 우리 구세주께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불완전을 나타내지 않으셨으나 우리로 하여금 허락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15. 후계자 여호수아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시 112:6)

비록 모세는 죽었으나 그의 감화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 감화는 살아서 그의 백성의 마음속에 계속 소생되어야 하였습니다. 그의 거룩하고 무아적인 생애의 추억은 그들 중에 오랫동안 간직되어 있어서 고요한 설복력을 가지고, 그가 살아 있을 때 그의 말을 경멸하던 자들의 생애까지 변화시킬 것이었습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후에도 그 빛이 오랫동안 산봉우리를 비추는 것처럼 순결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감화는 그들이 세상을 떠난 오랜 후에도 그 빛을 세상에 비추게 됩니다. 그들의 사역, 그들의 말, 그들의 모본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당한 큰 손실을 보고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그들이 홀로 버려둔 바 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성막을 덮고 있고 밤에는 불기둥이 덮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분의 계명의 길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의 인도자와 도우시는 자가 되시리라는 보증이었습니다.
이제는 여호수아가 공인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주로 무사로서 잘 알려졌으며 그의 천부적 재능과 덕성들은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중 이 기간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용감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인내력이 있고 민첩하고 청렴하였고 자기의 보호 아래 위탁된 자들을 보살피는 일에 자신의 이익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께 대한 산 믿음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여호수아야말로 이스라엘 군대를 약속의 땅에 인도해 들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인물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체류하는 동안 여호수아는 마치 모세를 보좌하는 총리대신처럼 행동하였고 그의 침착성과 겸손한 충성심, 다른 사람들이 동요할 때에라도 흔들리지 않은 견인성, 위험 중에서도 진리를 고수하려는 그의 강직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그 자리에 부르시기 전에도 그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적합한 자라는 증거를 보여 주었습니다.

 

16. 여리고성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여호수아는 자기 앞에 놓인 사역을 바라보았을 때 크게 근심하고 망설이게 되었으나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보증의 말씀을 듣고 그의 공포심은 사라졌습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 1:5, 6).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요단 동편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가나안 정복의 최초의 장벽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보내신 최초의 명령은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 1:2)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느 길로 통행할는지에 대하여 아무런 지시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명하시든지 그분의 백성이 나아갈 길을 만드실 것을 알고 있었으며 용감한 지도자는 이것을 믿고 즉시 진군할 준비를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치고 있는 바로 맞은편 강 건너 몇 마일 떨어진 곳에는 여리고성이 있었는데 그것은 매우 크고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었습니다. 이 여리고 성읍은 사실상 가나안 전국의 관문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성공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두 젊은이를 정탐꾼으로 이 성읍에 보내어 그 인구와 자원과 그 성의 견고함에 대하여 조사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매우 두려워한 이 성읍의 거민들은 항상 경계하고 있었으므로 정탐꾼들의 신변은 몹시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여인 라합이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그의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정탐꾼들은 성이 함락될 때에 그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7.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정탐꾼들은 “진실로 여호와께서는 그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수 2:24)라는 소식을 가지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제 진군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온 백성들은 3일 동안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했으며 군사들은 전투 준비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모두 자원하여 그들의 지도자의 계획에 따르고 그들이 믿고 지지함을 다음과 같이 그에게 보증하였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수 1:16, 17).
이스라엘 온 무리는 아카시아 숲이 우거진 싯딤의 진영을 떠나서 요단강 가로 내려갔습니다. 일 년 중 이 계절은 봄이었기 때문에 산의 눈이 녹아내려서 요단강 물이 불어 둑에 넘쳐흘러서 평상시에 걸어서 건널 수 있던 곳으로도 건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적으로 요단강을 건너도록 뜻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백성들로 스스로 성결케 하고 저희 죄를 버리고 외부의 모든 불결함에서 자신을 정결케 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까닭을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중에 기사를 행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언약궤”가 무리 앞에서 길을 인도할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멘 여호와의 임재의 증거인 법궤가 진 중앙에 있던 그 본래의 자리를 떠나 강을 향해 나아갈 때 그들은 “저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아야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곳의 형편이 미리 상세히 알려진 바 되었으며 여호수아는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수 3:10, 11)라고 말하였습니다.

 

18. 길갈에 세운 열두 돌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시 145:7)

정한 시간에 제사장들이 어깨에 멘 법궤를 선두로 하여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뒤로 물러가 법궤 주위에 약 반 마일 가량의 공간을 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제사장들이 요단강 둑을 내려갈 때에 모든 사람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법궤를 메고 노한 듯이 물결치는 강물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법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닫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돌연히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결이 위로 쏠려 멎고 아래의 물은 흘러내려가 강 밑바닥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사장들은 강 한가운데로 들어가 거기 정지해 서고 이스라엘 전군은 강으로 내려와 저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하여 요단강 물의 흐름을 멈추신 능력은 40년 전에 저희 조상들 앞에서 홍해를 가르신 능력과 동일한 능력이라는 사실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강을 건넌 후에 법궤도 서쪽 강변에 도착하고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자마자”(수 4:18) 꼼짝 못 하던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강물은 다시 자연스럽게 저항할 수 없는 홍수로 흘러내렸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이 큰 기적을 증거할 증거물이 필요했습니다.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아직 요단강 가운데 있을 때에 이미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택하심을 입은 열두 사람이 각각 제사장들이 서 있는 하상(河床)에서 돌을 취하여 서편 강가로 운반하였습니다. 이 돌들은 강을 건너가 처음 진 친 곳에 기념비로 세워져야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수 4:24)고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그들의 자자손손에게 되풀이하여 말해 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19. 승리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

“그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할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수 4:14)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나안에 있던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히브리인들이 요단강을 건넌 놀라운 기적의 영향은 매우 중대한 의미였습니다. 이 기적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계속적인 임재와 보호에 대한 보증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일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통하여 그들을 위하여 일하시리라는 증거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인근 민족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공포심을 증가시켜 이스라엘로 하여금 쉽고 완전하게 승리할 길을 준비해 주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아모리인의 왕과 가나안인의 왕들에게 전달되었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가나안인들과 온 이스라엘과 여호수아 자신에게 천지의 왕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계시고 저희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 하”실 것이라는 의심할 여지없는 증거가 주어진 바 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요단강 가까운 곳에 진을 치고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가데스에서 반역한 이후 할례 의식이 중지된 것은 그 의식이 상징한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졌음을 이스라엘에게 계속적으로 증거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또 그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기념인 유월절을 중지한 것은 종살이하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한 그들의 요구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불쾌히 여기신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그분의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언약의 표를 회복하신다는 증거로 광야에서 탄생한 백성들 모두에게 다 할례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수 5:9)고 선언하셨으므로 그들이 진 친 장소를 이 말씀에 연유하여 “굴러가게 함” 혹은 “말아 올림”이란 뜻으로 길갈이라 불렀습니다.

 

20. 여리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수 5:11, 12)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즉시 가나안을 점령하기에 실패하고 오랫동안 광야에서 방황한 까닭에 의기양양했으며 히브리인의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된 땅으로 인도할 능력이 없다는 말로 조롱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분의 백성들 앞에 요단강을 여심으로 그분의 능력과 은총을 현저히 나타내시고 그들의 원수들로 하여금 더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방황하던 장구한 세월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은 마침내 약속의 땅을 밟고 있었지만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는 이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길고도 어려운 전쟁을 치러야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나안에는 강대한 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영토의 침략에 대항할 준비를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철병거와 지형에 대한 밝은 식견과 전쟁을 위한 훈련 등을 생각할 때 그들은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나라는 견고한 성채로 방어되고 있었는데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아”(신 9:1) 있었습니다. 그들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분의 능력의 보증으로써만 이스라엘은 절박한 전투에서 성공을 바랄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크고 견고한 성 중에 하나인 여리고 성읍은 길갈의 이스라엘 진영과 가까운 비옥한 평원의 변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열대 지방의 윤택한 각종 생산물이 풍부했고, 사치와 죄악의 소굴인 궁전과 신전이 있고, 그 뒤에 육중한 성벽이 둘러 있었습니다. 이 거만한 여리고 성읍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도전하였습니다. 여리고는 우상숭배의 본거지 중 하나인데 특히 달의 여신 아스다롯을 섬기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가나안인들의 종교 중에 가장 비열하고 가장 부패된 모든 것들의 중심지였습니다. 벧브올에서 범한 죄의 무서운 결과가 마음속에 생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이교의 성읍을 증오와 공포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21. 전쟁의 시작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수 6:2)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제일보가 여리고를 함락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보증을 간구하여 그 보증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진영에서 물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앞에 행하시기를 묵상하고 기도할 때에 키가 크고 풍채가 당당하고 “칼을 빼어 손에” 든 한 무장한 군사를 보았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수 5:13)는 여호수아의 도전에 그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수 5:14)고 대답하였습니다.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명하셨던 동일한 명령이 이 신비스러운 낯선 사람의 참 성격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 앞에 서셨던 분은 지존하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위엄에 눌린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분으로부터 그 성읍을 빼앗는 일에 대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정렬시키고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나팔을 불면서 그 성읍 주위를 돌아야 했습니다. 대열의 선두에 무사들이 섰었는데 그들은 선발된 용사의 단체였으나 지금은 그들 자신들의 수완과 용맹으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지시를 순종함으로 승리를 얻어야 했습니다. 그 뒤를 나팔을 가진 일곱 제사장이 따랐습니다. 그다음에는 그들의 신성한 직무를 나타내는 의복을 입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영광의 구름에 둘러싸인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행진하였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군대는 각 지파마다 그 지파의 깃발 아래 행진하였고 이 강대한 군사들의 발걸음 소리와 엄숙한 나팔 소리가 산들에 메아리치고 그 소리가 다시 여리고 시가에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돌기를 마치자 전군은 조용히 각기 장막으로 되돌아가고 법궤는 성막 안에 전에 있던 자리에 안치되었습니다.

 

22. 무너진 여리고성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히 11:30)

여리고 성읍의 파수꾼들은 경이와 공포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을 세밀히 감시하고 이를 상관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지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강대한 군대가 성스러운 법궤와 수종 드는 제사장들과 함께 그들의 성읍을 매일 한 번씩 도는 것을 볼 때에 이 신비스러운 광경은 이교의 사제들과 백성의 마음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능히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그들의 튼튼한 방어 시설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이 이상한 시위 때문에 저희에게 어떤 해가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조롱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반대로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홍해가 열렸으며 얼마 전에는 요단에 길이 열려 그들이 건너온 것을 기억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대군은 6일 동안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일곱째 날 새벽에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를 소집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제 하나님께서 이 성읍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돈 후에 나팔 소리가 크게 들리거든 큰소리로 외치라고 지시했습니다. 견고한 돌로 된 튼튼한 성벽은 사람들의 포위를 멸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성벽 위에 있는 파수병들은 첫 바퀴를 돌고 나서 뒤따라 두 번째 바퀴를 돌고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바퀴를 도는 모습을 공포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신비스러운 행동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떤 큰 사건이 임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일곱 번 돌기를 마친 후 긴 행렬은 멈추어 서고 한동안 조용하던 나팔들이 일시에 울려 온 땅을 진동시켰습니다. 견고한 돌로 쌓은 성벽이 그 거대한 망대와 활 쏘는 구멍 있는 흉벽과 함께 기초에서부터 흔들려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리고 거민들은 공포에 질려 움직일 수 없었고 이스라엘 대군은 진군하여 들어가 그 성읍을 점령하였습니다.

 

23. 선하신 하나님의 목적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

여리고 정복은 전부 여호와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그 성벽과 거기 포함한 것은 모두 그 땅의 처음 열매로써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또 가나안 정복은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싸운 싸움이 아님과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들이 재물이나 명예를 구할 것이 아니요 그들의 왕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성을 빼앗기 전에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수 6:18)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성읍에 있는 모든 생물은 다 칼로 진멸해야 했지만 충실한 라합과 그 가족은 정탐꾼의 약속대로 죽임을 면했습니다. 여리고 성읍이 전부 불타버렸으나 불로 태울 수 없는 “은금과 동철 기구”는 성막에서 사용하도록 바쳐야 하였습니다. 성읍의 유적도 저주를 받아 온 이스라엘 앞에서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수 6:26)고 엄숙히 선포되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많은 사람에게 성경의 다른 부분에 있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참으로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그들로부터 이 세상에 그분의 나라를 나타낼 수 있는 민족과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종교의 후계자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원칙을 온 세계에 전파하여야 했습니다. 가나안인들은 가장 더럽고 가장 부패한 이교에 빠졌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목적을 성취하는 데 분명히 방해가 될 것이므로 그들을 그 땅에서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24. 여리고가 주는 교훈

“바사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단 10:13)

사실 가나안 거민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이미 허락되었습니다. 40년 전 홍해를 가르시고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을 증명하시고, 가나인 접경 민족들을 정복하심으로 여호와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심을 나타내셨으며, 바알브올에서 발람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형벌을 통해 그분의 품격이 거룩하시고 음란한 행위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셨습니다. 이 모든 사건을 여리고 거민들이 잘 알고 있었지만 가나안인들은 홍수 전 사람들처럼 하늘을 모독하고 땅을 더럽히는 삶을 살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와 인류의 원수들을 신속히 처형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여호수아로 더불어만 교통하시고 자신을 모든 회중에게 나타내시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의 말을 믿든지 의심하든지 하는 것은 오직 이스라엘 회중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하게 나팔을 불면서 날마다 성벽 주위를 행진하는 것을 무의미하고 우스꽝스러운 일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런 의식을 계속하게 한, 이 모든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신앙심을 계발시킬 기회를 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힘은 인간의 지혜나 그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구원의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감명시키려 하심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적으로 그들의 거룩하신 지도자를 의지하도록 숙달되어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보다 큰 능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크게 의지하고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그분에게 기회를 드리지 않는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충실히 순종한다면 그분을 믿는 자녀들을 위급할 때마다 도와주실 것입니다.

 

25. 아이 성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잠 3:11)

여리고를 함락시킨 지 얼마 후에 여호수아는 요단강 유역 서편 수 마일 떨어진 계곡 중에 있는 작은 성 아이를 공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곳에 보낸 정탐꾼들은 그곳 주민은 적고 그곳을 점령하기에는 적은 군대 밖에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신 대승리에 대하여 자만심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허락하셨으므로 그들은 안심하였고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그들에게 성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또 잊어버렸으며 여호수아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아이 성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쉽게 승리를 얻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곳을 취하는 데는 3천 명의 군사면 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군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리라는 보증도 없이 공격하여 돌진해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는 아이 성문 가까이 진군하였으나 가장 완강한 저항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적의 수효와 철저한 준비를 보고 당황하고 혼란에 빠져 가파른 내리받이 길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때에 36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비록 그 수효는 적었지만 이 패배는 전 회중을 낙담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인과 교전한 최초의 실전이었는데 이 작은 성읍의 방어군에게 이처럼 패배를 당한다면 그들 앞에 있는 큰 전투의 결과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의 표시임을 알고 슬퍼하고 염려하여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수 7:6)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절망과 비탄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요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진영 중에 은밀한 죄가 있었는데 이것을 찾아서 제거하기 전에는 여호와의 임재와 축복이 그분의 백성과 함께 하실 수 없었습니다.

 

26. 아간의 범죄

“가르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저는 마땅히 멸할 물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며”(대상 2:7)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 중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그 범죄자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범죄자를 수색하여 처벌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범인을 찾아내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야 하였습니다. 죄인을 직접 지적하지 아니하고 그 문제를 한동안 의문 중에 두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저희 중에 있는 죄에 대하여 책임을 깨닫게 하여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른 아침 “그 지파대로” 백성을 모아 엄숙하고 인상 깊은 의식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하나 조사하는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무서운 심사는 점점 더 범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최초에는 지파, 그다음에는 종족, 그 후에는 가족, 최후에는 범인을 잡아내게 되었는데 유다 지파, 갈미의 아들, 아간이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로 지목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죄상을 밝혀 그가 부당하게 선고를 받았다는 비난을 남기지 못하도록 아간에게 사실을 승인하도록 엄명하였습니다. 비참한 아간은 그의 죄상을 철저히 고백함에 따라 아간에게 형벌이 선고되었고 즉시 그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수 7:25)고 말하였습니다. 온 백성이 아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결과로 고통을 당하였으므로 그들은 이제 저희 대표자들을 통하여 형벌하는 일에 참여하여야 했으며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쳤”습니다. 그리고 아간의 시체 위에는 돌무더기가 크게 쌓여 그 죄와 형벌에 대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아골(괴로움) 골짜기라 부르더라”(수 7:26).

 

27. 아골 골짜기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수 7:26)

아간의 죄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엄숙한 경고와 가장 강한 하나님의 능력의 출현을 무시하고 범해진 것입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수 6:18)고 온 이스라엘에게 포고되었는데, 이 명령은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온 백성이 할례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인식한 후에 유월절을 지키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인 언약의 천사가 나타난 후에 즉시 주어진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스라엘이 승리를 얻었고 그들이 자기 힘으로 여리고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노획물을 취하지 않도록 금지하신 명령에 엄숙한 비중을 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 성을 함락시키셨으므로 승리는 그분의 것이며 그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그분에게만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그 승리의 순간에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간의 탐욕은 시날산 의복을 볼 때에 자극을 받았으며, 이것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 그 순간까지도 그는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한 가지 죄는 다른 죄를 유도하여 그는 여호와의 보고에 바쳐야 할 금과 은도 훔쳤는데 이는 가나안 땅의 처음 열매를 하나님에게서 도적질한 것입니다.
아간을 파멸시킨 무서운 죄는 모든 죄 중에 가장 흔하고 가장 경히 여겨지고 있는 탐욕에서 기인된 것으로 오늘날에도 다른 죄들에 비해 열째 계명을 유린한 죄는 좀처럼 비난조차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죄가 얼마나 흉악하며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하여는 아간의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탐욕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죄악입니다. 아간이 품은 물욕은 마침내 습관이 되어 거의 깨뜨릴 수 없는 족쇄처럼 그를 속박하였습니다. 그는 이 악을 품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에게 재난이 이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포를 느끼긴 했지만 죄로 인하여 그의 지각은 마비되어 유혹이 닥쳐올 때에 그는 쉽사리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28. 또 다른 아간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엡 5:3)

아간에게 여리고의 노획물을 훔치지 못하게 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그 같은 탐욕에 방종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탐심은 우상숭배”(골 3: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 12:15)는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아간과 유다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무서운 운명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배후에 보다 높은 자리를 탐내다가 하늘의 영광과 복락을 영원히 상실한 “아침의 아들” 루시퍼의 무서운 운명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탐욕은 가정에서 불만과 알력을 조장하고, 가난한 자로 하여금 부자에 대하여 질투와 증오를 일으키게 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포학한 압박을 가하도록 합니다. 이 탐욕이란 악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존재합니다. 교회 안에서까지도 이기심과 허욕과 속이는 일과 자선사업의 태만과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일을 얼마나 쉽게 볼 수 있는지 모릅니다. “선량하고 교회에 잘 다니는” 교인들 중에 슬프게도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불법적인 재산을 감추어 둔 많은 아간들이 있습니다. 많은 군중들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위하여 양심의 호소와 천국의 소망을 희생합니다. 많은 무리가 그들의 성실과 훌륭하게 될 가능성을 돈주머니와 바꾸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은 무시되고, 복음의 빛이 전파되는 일이 방해를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자들의 거짓된 행동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의 조롱이 불타오르고 있으나 여전히 탐욕적인 그리스도인은 재물 모으기를 계속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말 3:8)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9. 거짓 자복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5)

아간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에게 재난이 온 것처럼 오늘날에도 한 사람의 죄는 그 범행을 조사하여 처리해 버리기까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그분의 교회에게 임할 것입니다. 교회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영향은 공공연한 반대자나, 신앙심 없는 자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의 영향이 아니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공언하는 것으로만 일삼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억제하고 그분의 백성들을 약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아간은 자기의 죄를 시인하기는 하였으나 그 고백이 자신에게 유익을 주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아이에서 패배하여 낙담하여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진하여 죄를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큰 슬픔으로 땅에 부복한 것을 보았습니다. 만일 그때에 자복하였더라면 그는 진심으로 회개한 증거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간은 또 큰 죄가 범하여졌다는 선언을 듣고 그 죄의 성질까지 분명히 진술된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 후에 엄숙한 조사가 시작되면서 그의 마음은 공포에 떨었지만 하나님의 손가락이 그를 지적할 때까지 그는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를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아간은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늘날에도 이와 동일한 자복이 교회 안에서 자주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려진 후에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자기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죄를 자복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아간은 그의 고백으로써 그의 범죄의 결과를 피하고자 하는 희망을 갖지 않았다면 자기의 죄를 끝까지 자복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자복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도, 깊은 뉘우침도, 의도의 변화도, 악에 대한 증오도 없는 거짓 자복에 불과했습니다.

 

30. 보호의 손길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삼상 11:7)

아간에 대한 형을 집행한 후에 여호수아는 모든 군사를 소집하여 다시 아이를 향하여 진격하라는 명을 받았으며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으므로 그들은 곧 아이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이제 군사적 행동을 중지하고 온 이스라엘은 엄숙한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여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하기를 열망했으나 아직 저희 가족들을 위하여 집이나 토지를 소유하지 못했으므로 그것들을 얻기 위하여 가나안인들을 몰아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우선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높은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 중대한 일은 연기되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업의 땅을 소유하기 전에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의 언약을 새롭게 하여야 했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권면에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하나님의 율법을 엄숙히 인식하기 위하여 세겜에 있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에 모이라는 지시가 두 번이나 주어져 있었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은 남자뿐 아니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들”(수 8:30~35)까지도 다 길갈에 있는 그들의 진을 떠나 원수의 나라들을 통과하여 가나안 땅의 중앙부에서 가까운 세겜 골짜기로 행진하였습니다. 비록 아직 정복하지 않은 원수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을지라도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었으므로 안전하였습니다. 야곱의 시대에서처럼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창 35:5) 이제 히브리인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 엄숙한 의식을 위하여 지정된 장소는 그들의 조상들의 역사와 연관시켜 볼 때에 이미 신성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께 첫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모두 이곳에 저희 장막을 쳤었고 그 후에 이스라엘 지파들이 요셉의 시체를 가져와 이곳에 장사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기에는 야곱이 판 우물도 있었고 그 가족들이 그 아래 그들의 신상들을 파묻었던 상수리나무도 있었습니다.

 

31. 축복과 저주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수 8:32)

세겜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로 감람나무숲으로 점철된 푸른 들은 생수의 샘에서 흘러내리는 시내들이 물을 대줌으로 인하여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보석처럼 피어 불모의 산들 사이에 매혹적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골짜기 양편에 있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은 서로 가까이 접근해 있었고 그 산들 아래 있는 절벽들은 자연의 강단처럼 되어 있었고 거기서 하는 말은 사방에서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산 중턱에는 푹 꺼진 곳이 있어서 무수한 군중이 회집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지시를 따라 에발산에 큰 돌로 만든 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전에 석고를 발라서 준비해 두었던 이 돌들 위에 율법을 새겼는데 이 율법에는 십계명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전하시고 그가 책에 기록한 율법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념비 곁에는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여호와께 희생 제물을 드렸습니다. 저주가 선포된 에발산에 제단을 쌓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까닭으로 그분의 분노를 초래했다는 것과 희생 제단이 대표한 바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었다면 당장에 형벌이 내렸을 것임을 나타내는 의미심장한 것이었습니다.
레아와 라헬의 후손인 여섯 지파는 그리심산에 서고, 한편 여종들의 후손은 르우벤과 스불론과 함께 에발산에 자리를 잡았으며 제사장들은 법궤와 함께 그들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 후에 여호수아는 거룩한 법궤 곁에 서서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때에 따를 축복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때에 그리심산에 선 모든 지파가 “아멘”으로 화답하였고, 그가 저주의 말씀을 낭독할 때에는 에발산 위에 선 지파들이 같은 방법으로 동의를 표했습니다. 이 같은 엄숙한 응답에 수천수만의 음성이 합하여 한 사람의 음성과 같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 일 후에 그들이 모세에게서 받은 율례와 법도와 함께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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