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죄와 구원

성경공부 시리즈 2권- 하늘의 전쟁

제3부 죄와 구원

사랑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동기가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에 앞서, 매우 결정적으로 표현된 몇몇 성경절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도 중에서도 사랑의 사도로 불릴 만큼 사랑스러운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 소개하는 이 성경절은 매우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기록하였 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열 두 제자 가운데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도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랑의 사도인 요한 이야 말로 다른 어떤 사도보다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많이 언급했던 사도입니다.

우선, 우리는 죄의 정의에 대해서 기록한 성경절 중에서 가장 분명하고 단순한 성경절을 요한의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부디 이 성경절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계속해서 죄의 본성과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도 요한이 제시한 죄의 정의를 언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절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명백하지만, 여기서“법”이라는 말에 대해서 좀 더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은 여기서 “법”을 무슨 법으로 말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7장 7절에서 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거기서“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답변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바울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십계명의 열째 계명(탐심)을 언급하면서, 죄는 십계 명을 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죄는 법을 범하는 것으로서, 특히 십계명을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을 계속해서 읽어나갈 때, 4절에서 기록된 죄의 정의를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즉, 죄의 정의는 도덕률인 십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5절에 전개되는 요한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 니” 예수님께서 우리로부터 가져가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죄입니다.” 무슨 죄인가 요? 십계명을 범한 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십계명을 범하는 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요한은 놀라운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6절에 나오는 성경절이야말로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한 말씀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굉장한 말씀이 아닙니까? 나는 지금까지 굉장히 강력한 설교를 많이 들어 왔는데, 어떤 목사나 설교자도 이처럼 강력한 설교를 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6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십계명에 대해서 불순종하는 생애를 사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며, 그분께서 베푸신 구원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좀 더 읽어 봅시다. 좀 더 강력한 기록이 나옵 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 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7,8절). 여기서, 요한은 진리를 입으로 공언하는 자들과 진리를 진짜로 믿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죄와 구원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는 경고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주장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앞에 펼쳐져 있는 놀라운 기만과 속임수에 대한 경고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재림에 관한 징조를 질문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4절에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런 다음, 마지막 때에 “휴거”에 대한 가르침에 대하여 놀라운 혼돈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가르침도 이와 유사한 혼돈 속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가 혼돈될 것입니 다. 순종과 법에 관한 진리가 혼동되고 왜곡될 것입니다.

요한은 어떤 사람도 십계명에 의도적으로 불순종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못 박아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러한 사람은 사실상 마귀에게 속한 자이며, 그리스도인이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요한은 신학자들 뿐 아니라 일반 평신도 사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Seed)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성경에서 여자의 자손(The seed of the woman)은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씨(후손)이시며, 하나님의 개심한 참된 자녀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마음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십계명에 대해서 고의적으로 불순종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예수님께서 거하실 수 없는 것입니 다. 여기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께서는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는 죄인의 마음속에 그분께서 거하실 수 있는 보좌를 마련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어거스틴과 요한 칼빈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상한 가르침이 그리스도 교회로 잠입하여 들어왔습니다. 그 이상한 가르침은 고의적인 불순종의 생애를 걸어가면서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 습니다. 그 무서운 가르침을 경계하십시오! 수백만의 사람이 칭의가 우리의 마음 상태를 변화시키는 일없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입장을 변화시킨다는 가르침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마시고 있습니다.

칼빈의 사상은 비록 우리가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덮어주시는 의인 칭의가 하나님 존전에서 우리를 가납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속죄(Atonement)는 우리를 죄의 결과인 형벌로부터 구원하는 것이지, 죄 그 자체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한다는 가르침이 칼빈의 사상 가운데 포함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는 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가 어떠한 것이냐 하는 그 죄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칼빈의 사상입니다.

이러한 칼빈의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기만 하면, 어쨌든 간에 죄는 그것이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치명적인 것이 되지 않게 됩니다. 개심하지 않은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면, 영원한 멸망 가운데로 들어 가게 되지만, “구원 받은”후에 범한 동일한 죄는 그 그리스도인을 지옥으로 보낼 수 없게 됩니다.

죄인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대신에 죄의 성격(본질)을 변화시킨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종교는 장난이 아니지 않습니까? 칭의는 우리가 계속적으로 범하고 있는 죄를 덮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칭의는 새롭고 영적인 삶을 가져다주는 개심(거듭남)을 통하여 전혀 새로운 마음과 생명을 우리에게 공급해 줍니다. 칭의는 죄를 고의적으로 범하는 동안에는 결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칭의는 계속적으로 범해지는 죄를 가려 주는 망토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칭의는 죄책감과 죄의 권세를 벗기어 주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상태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십시오! 진짜 믿음은 항상 순종이라는 선한 행위를 생산해 냅니 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From sins) 구원해 내기 위해서 오신 것이지, 죄 안(In sins)에서 구원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From their sins)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성경은 죄에 대해서 수없이 많이 말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죄를 어떤 좋은 것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는 우리들이 범하는 죄의 양을 줄이라는 식의 표현을 결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어떤 곳에도 불순종의 횟수를 줄이거나 감소시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안목에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알고 있는 죄들을 단호하게 버려야 하며, 거절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서는 간음한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 서는 “가서 그 죄를 줄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노니 죄를 점점 더 줄여가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너희에게 쓰노니 너희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죄에 대하여 그의 편지서를 기록할 때에 전혀 망설이지 않은 태도로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어떤 목사나 설교자도 그가 했던 것처럼 강력하게 죄에 대하여 말하지 못했습니다. 요한의 다음과 같은 선언을 들어보십시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일 3:8).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동안에도 그분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신다고 믿는 어리석음은 전혀 성경에 의해서 뒷받침 할 수 없는 가르침입니다.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인데, 그분의 능력은 우리를 어떤 특정한 죄 뿐만 아니라, 모든 죄로부터 구원해 주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다음, 우리를 계속되는 죄의 세력 아래에 그대로 남겨두기를 원하신다고 믿고 계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죄에 대하여 우리의 공범자로 만드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건져주시며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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