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하나님의 심판

성경공부 시리즈 2권- 하늘의 전쟁

제4부 하나님의 심판

이제, 심판은 우리의 행함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율법주의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점에 있어서 너무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2,13).

어떻게 우리가 이 말씀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을까요? 행위가 심판의 기초가 된다는 말은 성경적 칭의와 상반되는 말일까 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떻게 해서 행위가 심판 받게 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행위로 심판 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위를 어떻게 시험하시고, 어떻게 측정하실 것을 정확하게 이해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절되거나 가납 받도록 만들까요? 사람들이 행한 행위의 양입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몫을 위해서 충분 하게 옳은 일을 한다면, 우리는 하늘 진주 성문을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행함이 부족한 자들은 성 밖에 남겨짐을 당하게 될까요?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왕국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 일단의 무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이 말씀 중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 자신들이 행했던 행적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 부인하거나 책망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했던 수많은 행위에 대해서 길게 늘어 놓았습니다.
행위의 양에 있어서는 조금의 부족도 없었습니다. 행위의 양은 인정되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행위의 양에 근거하여 심판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늘에 들어가도록 허락 받지 못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들이 행하였던 행위의 종류들을 볼 때에 더욱 혼돈하게 됩니 다. 그들은 많은 행위를 하였을 뿐 아니라 매우 놀라운 행위들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행위의 양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충분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교회를 짓는 데에 수백만 달러를 헌금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도 하늘 문에 들어가도록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 성경절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처럼 보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엄숙한 명령이 그들에게 내려 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절을 읽으면, 모든 수수께끼가 한꺼번에 풀려나가서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 다. 요한계시록 3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기록하시며, 그것에 의해서 최후의 심판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에 계속되는 말씀을 읽어봅시다. “내가 네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하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

여기에 이 문제를 전체적으로 풀어 펼치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최후의 심판 날에 심판 받게 될 것이지만, 우리의 행위의 무게나 높이에 의해서 심판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열에 의해서 받게 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의 모든 순종은 하나님을 향하여 헌신과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 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의해서 모든 동기가 벗겨질 것이며, 검토될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불타는 사랑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 지지 않는 한, 어떤 종류의 행위도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믿음과 행함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행위 전체가 가치 있는 것으로 판명되든지, 아니면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 앞으로 향기로운 향이 되어서 가납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토해 내치실 만큼 혐오스러운 것이 됩니다. 모든 것은 동기에 달렸으며, 누가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힘을 주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러한 행위의 원동력은 하늘로부터 와야 합니다. 육체의 행위는 자신을 구원하려는 인간의 노력이지만, 마음속에 내재하시는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의 행위는 그와 정반대입니 다. 이러한 행위는 진짜 믿음과 사랑의 신임장을 가지고 있는 행위들로 판명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험 기준을 변경시키지 않으셨습니 다. 그분께서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종류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 당시, 우리의 시조인 아담은 타락하지 않은 거룩한 본성에 의해서 순종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 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의 후손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조화되지 못하는 타락한 본성을 유전으로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기적과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를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마음을 가진 거듭난 피조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또한, 한번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개의 성경절 사이에는 서로 상충되는 어떠한 것도 없습니다. 이 두 개의 성경 절은 새로 태어나는 거듭남의 경험 없이 어떤 사람도 구원 받을 수 없으며, 고의적으로 계명을 어기어 불순종의 길을 걷는 어떤 사람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두 개의 성경절은 동일한 구원을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또한 거듭난 그리스 도인은 자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계명을 순종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진리는 개심하여 거듭난 경험이 없는 어떤 사람도 하나 님께 순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고의적으로 순종하기를 거절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행위가 중요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거짓말에 대해서 귀를 막으십시오. 또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율법주의라는 기만을 경계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그리스도인 삶에 열매를 맺게 하는 숨겨져 있는 뿌리인 마음과 동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법에 일치하는 삶을 산다면, 여러분의 마음에는 놀라운 즐거움과 만족함으로 채워질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계속적인 연결이 지속될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율법주의자라고 정죄할 지라도, 마지막 심판 날에는 여러분을 정죄한 그 사람이 스스로의 말에 의해서 정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서 기인한 우리의 행위는 율법주의와는 철저하게 반대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추천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