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교회를 향한 요한 웨슬리의 호소

성경공부 시리즈 2권- 하늘의 전쟁

제2부 교회를 향한 요한 웨슬리의 호소

1. 거룩함과 율법주의

이 기사는 감리 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의 글입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 찰스 웨슬리와 함께 18세기 영국에서 종교 개혁 운동의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이글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반드시 나타나야만 하는 거룩함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회 안에서 크게 곡해되고 있는 거룩함에 대한 문제를 올바로 조명하고, 잘못된 오해들을 바로 잡는데 이 기사가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싣기로 하였습니다. 구원은 하늘의 생명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애 속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까요? 이것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2. 서론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오직 거룩한 자들만이 영광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 하늘 아래 어떤 것도 이것보다 분명한 진리는 없습니다. “비록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없어 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생애 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며 살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죄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코 지옥불의 형벌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 안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늘에 있는 왕국을 보지 못합니다. 하늘 에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마음을 왕처럼 완전히 주관하시는 경험을 해야만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자들만이 그리스도께서 생애 하셨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 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3. 과거의 오해

거룩함, 그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의해서 너무나 곡해되거나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방인들이나 로마제국의 이교도들일까지도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습니 다. “신은 오직 덕성과 거룩한 마음, 그리고 정직을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가르침이 거의 모든 철학과 이방 종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기독 교회가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중요한 진리가 교회 안에서 심하게 왜곡되거나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로마 천주교회의 사람들도 거룩함과 경건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들은 내적 경건함 보다는 종교적 의식과 예식과 같은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여기는 위험에 빠져 있습니 다.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하는 가르침 때문에 로마 천주교회가 종교적,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던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의 사람들은 선과 덕을 쌓으면 현세에서도 복을 받을수 있을 뿐 아니라, 십자군으로 징병 되어 국가를 위하여 싸우다 죽는 선을 쌓으면, 내세에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는 교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외적 경건과 인간적 공로와 의식을 강조하다 보니, 고행이나 험한 순례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4. 오늘날의 오해

거룩함에 대한 오해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로마 천주교회는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함으로써 참된 거룩함에 오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그러한 엉뚱한 가르침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기독교회가 그러한 가르침을 부인한다고 할지라도,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거룩함이 없이도 천국에갈 수 있는 신학적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로마 천주교회에서 만들어 놓은 고해 성사, 성지 순례, 죽은 성자와 천사들에게 드리는 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사제들에 의한 죄의 용서와 같은 교리들은 진리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종교인들의 풍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교리들입니다. 수많은 천주교인이 비록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게 변화되지 않을지라도, 이러한 예식과 의식들을 통하여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신교도들은 구교를 믿는 사람들과 좀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모양만 조금 다를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개신교인들 은, 천주교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의식과 예식들은 사람을 구원하는 면에 있어서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아무리 열성적으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성경으로 확증할 수 없는 잘못된 교리나 의식에 의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합 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인들은 구원과 거룩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나쁜 짓을 안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주일마다 교회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기만 하면,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실제적으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경험을 체험하지 않아도 구원받을수 있다고 믿습니다. 천주교인들이 의식과 예식에 의존하여 내적 거룩함이 없이 구원을 바라보는 것처럼, 개신교인들도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주장하면서 내적 거룩함이 없이도 하늘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신교인이 이와 같은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5. 문제의 핵심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적지 않은 개신교인들이 구원에 대한 이러한 이해보다 더나아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주교인들보다 구원에 대한 진보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비록 자신이 많은 선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실생활에 있어서 악을 저항하고, 모든 시험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지 않는 한, 결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신앙은 피상적인 신앙이며, 참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마음속에 있으며,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림으 로써, 하나님의 왕국이 마음속에 건설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들 임으로써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오직 믿음을 통해 서만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탄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 개신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믿음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2장 8절에 있는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씀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요? 은혜와 믿음을 통한 구원론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개신교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유 1:8). 시몬 마거스 목사가 가르치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은 구원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통하여,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옮겨진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는 전혀 필요 없다. 그분 안에 너무나 풍성은 의와 거룩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어떤 의가 없어도 된다.

그러므로 의를 필요로 하거나, 그것을 소원하거나, 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갖기에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구원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만일 이와 다른 것을 설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율법주의자임에 틀림없으며,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자이다.”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참된 기독교 신앙이 가지고 있는 거룩함의 가르침을 그 뿌리 부터 흔드는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그분을 사랑하며, 존중한다고 말하는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때문에 고통당하고 계십니다(슥 13:6).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가장 큰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기 위함이었는데(요일 3:8),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십자가의 목적과 의미를 송두리째 왜곡시키는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어떤 교단, 어떤 교회에서 가르쳐지던지 간에 이 가르침은 성도의 거룩함에 대한 진리를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리게 되며, 성서적 구원론을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바꾸어 놓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생활을 살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을 상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진 의가 자신의 구원을 이미 보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원을 위한 완전한 의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만 인류 전체에게 주신 구원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의에 대한 잘못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진리에 순종하기 위한 노력과 악에 대하여 저항하는 모든 종류의 투쟁도 율법주의로 돌리게 됩니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거절하지 않기 위하여 십계명에 순종하기를 두려 워하며,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순종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노력하기를 두려워합니 다. 성경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딛 2:14), 진리대로 살기 위하여 애쓰는 노력을 율법주의로 오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점점 더늘어나고 있습니다.



6. 사탄의 거짓과 바울의 진리

사탄은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탄이 고안해낸 기가 막힌 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거짓말 2]

“인간은 단 한 줌의 거룩함이나 자신 안에 없는 상태에서도 거룩하게 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믿음을 통하여 거룩함을 나누어 받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는 실제적인 거룩함이 존재하지 않아도 영광 중에 재림하실 그리 스도를 만날 수 있다. 비록 그대들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다고 할지 라도,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그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비록 그대의 마음 속에 질투, 시기, 돈을 사랑하는 마음, 이기심, 경쟁하는 정신, 정욕과 같은 것들이 있을지라도, 그 상태 그대로 족하다. 왜냐하면 비록 그대들이 의롭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대신하여 그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어리석음을 좋아하기를 언제까지 하겠느냐?”(잠 1:22). 사탄의 거짓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8). 사랑이 마음 속에 있는 자는 사랑이 겉으로 나타나게 되며, 의와 거룩함이 그 속에 있는 자는 그것이 또한 겉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교회 안에 사탄이 퍼트려 놓은 많은 거짓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높이는 것처럼 들릴지라도, 요한일서 3장 7, 8절에 기록된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는 말씀과 어긋나는 것은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바울은 마음이 거룩하게 변화되지 못하여 악을 행하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 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이 말씀에 이어서 바로 연결되는 바울의 말을 주목해 봅시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과거에는 악에 빠졌었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마음과 생활이 악으로부터 돌아서고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서 우리는 의에 대한 분명한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마음과 생애 속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진정한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의롭다 하심”(칭 의)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고 의롭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 님은 거짓말하지 못하는 분입니다. 속에는 더럽고 추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어떻게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겠습 니까?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잠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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