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재림 운동 [신앙기사 2부]

제2부 미국의 재림 운동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4)

 

 

미국의 재림 운동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세기 초반의 미국과 유럽의 성경학자들은 다니엘 7장의 1260일은 프랑스 혁명 기간에 이미 성취되었기에, 다니엘 8장의 2300주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에 의해 자극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관심은 먼저 유럽에서 일어났고 이어서 미국에서도 발생했다. 1844년을 재림의 때라고 알려주는 메시지가 영국에서 전파되었고,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재림에 관한 간행물들이 발행되었다(GC 2:257).
2300주야 예언에 대한 결정적 단서가 잡힌 것은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라는 침례교인에 의해서이다. 2년간의 성경 연구 끝에, 예수님의 재림이 복천년 이후가 아니라 그 전에 있으며, 다니엘 8장의 2300주야 예언 기간은 다니엘 9장의 70주일과 마찬가지로 BC 475년에 시작하여 1844년경에 마친다는 것이었다. 다니엘 8장 14절의 “2300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해진다”는 말씀을 예수님 재림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너무나 정확한 이 계산은 아이삭 뉴턴이 해 놓은 것이다. 뉴욕 시립대학 교수들도 이 연대에 대해 정확하다고 지지했고 미국 동부와 캐나다까지 다니며 초교파적인 순회 설교를 하면서 6천 명을 회심시켰다. 그래서 각 교파의 목사님들이 총동원되어 이때 당시 인구가 얼마 되지 않은 미국에 10만 명의 재림 성도들이 생겼다.
그의 설교가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으며, 이로써 초 교파적 재림 운동이 전개되었고, 1840년 2월 재림 운동의 기관지인 사인즈 오브 타임즈(Signs of Times)를 발간했다. 이렇게 시작된 재림 운동의 출판 활동은 4년 안에 밤중소리(The Midnight Cry), 진리의 소리(The Voice of Truth), 서부의 밤중소리(The Western Midnight Cry), 경고의 나팔(Trumpet of Alarm), 엘리야의 소리(Voice of Elijah) 등 수 십여 개 신문으로 간행되었다. 이로써 미국 전역에 재림을 준비하기 위한 영적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재림 운동의 의미

 

“1844년 예수 재림”이라는 시기를 정하긴 했지만, 재림의 시기에 대한 것은 2차적인 문제였고, 1차적인 강조는 백성들로 하여금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하는 신앙부흥 운동이었다. 미국에서만 200여 명의 목사와 10만여 명의 평신도가 가담했는데, 교단 별 분포율을 보면 감리교회가 절반을 차지했고, 침례교회가 4분의 1, 그밖에 회중교회, 그리스도교회, 장로교회, 감독교회, 루터교회, 퀘이커교 등이 섞여 있었다. 이 초 교파적인 재림 운동으로 말미암아 1844년에 감리교회는 4만 명, 침례교회는 4만 5천 명의 새 신자를 얻게 되었다(N.D Everett, William Miller and Advent Crisis 1831~1844(Wisconsin Uni, Doctorate Thesis), p.264). 이들 중 유력했던 목사들을 소개한다면, 감리교회 목사이며 예언 연구로 이름이 높았던 조수아 리치(Josiah Litch), 하버드 출신으로 성공회의 저명한 성직자였던 헨리 와드(Henry Dana Ward), 보스톤 역사학회의 블리스(Sylverster Bliss)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여러 학자가 다니엘의 예언을 해석하며, 1800년대 중반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재림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마틴 루터도 다니엘서를 연구하면서 약 300년 후, 1800년대 중반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성경학자들마다 날짜는 약간씩 차이가 있었지만, 1800년대 중반에 재림이 있다는 사상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신앙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14장에서 1800년대 재림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재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계시록 14장의 말씀을 자신들의 활동에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계시록 14장 6절과 7절 말씀은 마지막 때에 전해져야 하는 말씀인데, 그 말씀을 자신들이 성취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첫째 천사의 메시지,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 하나님을 경배하라.” 재림 운동 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을 했다. 이것은 바로 첫째 천사의 메시지이다.

19세기 미국의 재림운동은 1831년부터 1844년까지 전개됐으며, 스코틀랜드의 커닝헤임의 말처럼 계시록 14장 6, 7절 첫째 천사의 경고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그들은 다니엘 8장 14절의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는 “성소 정결”과 마태복음 25장 6절의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한 “밤중소리”, 계시록 14장 7절의 “심판하실 시간”을 모두 동일한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적용한 것이다.
재림 운동의 절정기였던 1843년에 미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노예 폐지 운동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찰스 피치(Charles Fitch) 목사가 기독교회를 향해서 둘째 천사의 메시지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계 14:8).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설교를 하게 되고, 그 설교가 광범위하게 출판되면서 교회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커닝헤임이 믿었던 것처럼 둘째 천사의 메시지가 선포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이 설교가 이교나 우상숭배나, 카톨릭에서 나오라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의 후예들, 즉 기독교회를 대상으로 한 설교였다. 당시 로마 카톨릭에 대해서는 바벨론으로 규정하면서도 개신교회에 대해서는 계시록 2장, 3장에 나오는 일곱교회 중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개신교회가 영적 부흥 운동을 핍박하고 재림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자 개신교회도 바벨론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집단이나, 조직, 교단, 교파 속에 있다가 함께 멸망하지 말고 참된 신앙부흥 운동으로 사람들을 깨우는 운동에 동참하라는 강력한 설교였다.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그러나 생업을 포기하고 재림 운동에 올인 했던 수많은 재림 성도들은 1844년 10월 22일 쓰디쓴 실망을 경험하게 되었다. 재림을 믿지 않고 조롱하던 사람들로부터의 모욕도 힘든 것이었지만 그들의 소망과 기쁨이 깨어진 것이 더 슬펐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러나 계산도 맞았고, 날짜도 맞았다.

하나님께서는 대실망을 막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는데 막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보통 때는 걸어 다니셨는데, 스가랴 9장에 예언되어 있듯이 이때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전쟁에 나간 장군이 이기고 돌아올 때 나귀를 타고 귀성하거나, 또는 나귀를 타고 오는 왕은 메시아의 상징이었다(슥 9:9). 예수님이 나귀를 탔을 때 드디어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로 집중되었으며 제자들은 그 인기를 모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구약에 예언된 다윗 왕의 보좌를 차지하고 본인들은 장관이 되는 줄 알았다. “호산나 호산나” 하고 구름 떼 같은 백성이 만세를 부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그런데 1주일이 못돼서 극악무도한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다니… 제자들은 크게 낙심하고 두려움 가운데 모두 도망갔다.
차라리 그냥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면 실망도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승리의 입성을 하셨는가? 예수님은 당신의 최후를 장식할 마지막 사건에 온 세상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셨다. 사람들의 주의를 십자가로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요 12:19)고 탄식했고, “온 성이 소동하며 이는 누구뇨”(마 21:10)라고 물었다.
닷새 전에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승리의 입성을 하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십자가에 처형되자 백성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자연히 예수님의 희생을 주목하게 되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덤을 정복하고 부활하시자 비로소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행 17:3)이라고 예언되어 있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이 재림 운동은 세상의 관심을 예수님의 하늘 성소 봉사와 회복되어야 할 진리로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2000년 전에도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실망해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1844년에도 극소수의 사람만 남았다. 남은 사람을 보니 31명, 자랑할 것이 없고 대단한 사람도 없다. 중학교 선생 하다 사표 낸 사람, 선장 하다 퇴역한 사람, 돈도 없고 주머니 다 털린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 교파에서 쫓겨난 목사들이 남았다. 그들은 울면서 밤을 새우고, 1844년에 대한 모든 계산은 다 맞는데,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기도하며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구약의 성소를 연구해 보니 그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성소 정결을 위한 심판의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대실망 이후 그들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찾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해야 할 복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기쁨은 다시 불타올랐다. “우리가 낙심할 것이 아니구나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담대함을 가지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 10:10,11). 우리는 놀랍게도 요한계시록 10장에서 이 재림 운동이 예언돼 있고, 그것이 대실망으로 마칠 것과 그 후 전개될 마지막 복음 사역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져야 했다!

질병과 싸우던 사람들에게, 무덤 속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을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진 사람들에게 재림의 소식은 너무나 달콤했고 행복했다. 그들은 재림의 소식을 확신하고 믿었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재림 운동에 참여했었다. 곧 하늘에 간다는 소망을 가지고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천국 복음을 전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한다는 이 놀라운 소식을 목숨을 다해 전했다. 그들은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내년에는 하늘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믿고, 바라며, 기다리고, 준비하며, 일했다. 그들의 소망과 행복이 컸던 것처럼 그들의 실망도 쓰디쓴 것이었다. 그러나 쓰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즉 전해야 할 영원한 복음과 진리의 회복이라는 사명이 주어졌다.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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