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울보 공주에서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울보 공주에서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육아일기]

– 이명옥

 

은서는 참 겁이 많습니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는데 은서가 겁이 많아서 자주 가지고 놀던 장난감만 가지고 놀고 새로운 것을 가지고 놀도록 도와주면 무서워해서 그 놀잇감이랑 익숙해질 때까지 많이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밖에 산책하려고 같이 나가면 저 멀리서 들리는 기차 소리에도 깜짝 놀라 재빨리 저의 한쪽 다리를 꼭 껴안습니다. 친절하게 다가와 은서한테 말을 걸어주시는 많은 분에게 참 죄송합니다. 은서가 무서워해서 대답도 안 해드리거든요.

은서가 겁이 많은 것은 순전히 제 딸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참 겁이 많은 성격이거든요. 유리 멘탈, 울보 공주, 마음이 너무 여리다, 너무 내성적이다 이런 말들 참 많이 듣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은서 덕분에 저는 요새 겁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강한 엄마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은서가 계속 만들어주거든요.

 

작년에는 아파트 창문에 틈이 있어서 말벌이 집에 자주 들어왔습니다. 임신했을 때에는 처음 집에 말벌이 들어왔을 때 기겁을 하고 남편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너무 겁을 먹고 있어서 뱃속 아기한테 안 좋을까 봐 남편이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서 조치를 취해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은서가 태어나고 나서 말벌이 집에 들어왔을 때에는 말벌이 징그럽고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이기 이전에 내 아이를 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괴력으로 말벌을 때려눕혔습니다. 마치 내 안의 삼손이 깨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 저는 그때 제가 은서 때문에 변화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모성 본능이 나의 성격을 새롭게 변화시켜가고 있구나!’

 

요즘은 은서가 제법 걸을 줄 알게 되어서 자주 은서랑 손을 잡고 아파트 주변 산책을 합니다. 그런데 은서는 어른들은 무서워하는데 또래 친구들로 보이는 아이들에서부터 약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관심을 보입니다. 항상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제 손을 잡아끌고 가지요. 뭔가 다가가고 싶고 말 걸고 싶어 하는데 아직 옹알이밖에 못하는 수준이라 그냥 멍하니 쳐다만 봅니다. 저도 같이 은서처럼 멍하니 아이들을 쳐다봅니다. 그럴 때면 참 민망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얘들아, 아기한테 인사 한 번만 해줄래? 아기가 언니 오빠들이랑 놀고 싶은가 봐~’하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용기가 나지를 않았습니다. 간혹 먼저 다가와 ‘아기 몇 살이에요? 남자예요 여자예요?’하고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마치 낯선 남자한테 대시를 받는 여인처럼 부끄러움을 느끼며 겨우겨우 대답만 해주고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면 은서 앞에서 무능한 엄마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성경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 58장 6,7절)

이웃과 소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웃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런 저의 성격이 참 갑갑하고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제 은서가 길에서 한참 동안 바라보며 따라다니던 언니 오빠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도 부끄러웠는지 은서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쫓아다니며 쳐다보았는데도 은서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휑하니 자기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줌마스럽지 않고 소녀스러운 엄마 때문에 은서가 언니 오빠들이랑 친해질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마음에 굳은 결심을 하고 얼굴에 철판을 쓰고 은서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놀이터로 향했습니다. 놀이터에 가서 만나는 아이에게 무조건 말을 걸기로 결심했습니다. 놀이터에는 예쁜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어여쁜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ㅜㅜ 은서랑 놀아주고 있는데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기 몇 살이에요?”
저는 기회를 놓칠세라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했습니다.
“응. 두 살이야~”
그랬더니 물어보지도 않았던 대답이 돌아옵니다.
“저는 두 살 때 베트남에 있었는데…”
저는 그때 직감했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어머 그러니? 혹시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시니?”
“아니오~. 아빠가 사장이세요.”
“아, 그러면 아빠가 사업 때문에 베트남에 가셨었나 보구나~.”

이렇게 저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는 아이 덕분이었습니다.
은서는 제가 낯선 여자아이와 대화를 계속하는 게 신기했는지 아주아주 얌전히 제 무릎에 앉아 살랑살랑 그네만 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너무 신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은서는 제가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면 놀아줄 사람이 없어서 매우 싫어하고 짜증 내고 보채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가 무시하고 계속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하면 하다못해 손가락이라도 빠는 은서인데, 손가락도 안 빨고 가만히 저와 낯선 아이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는 약 20~30분간 계속 그 아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번에 만나면 또 인사를 나누자고 얘기하고 헤어졌습니다.
성당을 다니는 아이인지 은서는 세례명이 뭐예요? 하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은서는 교회 다녀서 세례명이 없어~’하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성당 다니면 재밌어? 하고 물어보니까 ‘아니오. 뻐큐 날리는 사람 있어서 싫어요.’ 그러더라고요. ^^;; 부모님이 원하셔서 억지로 성당을 나가는 모양입니다.

 

아이들과 친밀하셨던 예수님처럼 그렇게 변화되고 싶습니다. 소녀스러운 수줍음쟁이 성격에서 억척스럽고 강철같은 성격의 아줌마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야 이웃들과 소통하고 이웃들의 사정을 알고 그들을 위해 기도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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