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

성경공부 시리즈 1권- 넘치는 은혜

제2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

1. 서론

한 영혼이 그렇게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까? 영원한 내세를 생각해 본다면,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한 영혼이 지구에 존재했던 모든 인구의 전체 수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게될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구원받은 한 사람이 살게 될 영원한 생애는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총 인구수와 각 사람의 나이를 곱한 숫자의 수백만 배보다 훨씬 더 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구원받은 한 영혼은 멸망한 모든 사람의 생명보다 더 긴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평범한 남녀 또는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실 때마다, 이 사실을 인식하셨을 것입니다. 심지어 가장 타락한 사람에게서도, 그분께서는 영원한 세월을 두고 당신의 사랑을 기념할 한 생명을 보셨습니다.

갈보리에서 치러진 엄청난 실제적 대가를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세상을 향한 그분의 사명을 가볍게 평가하겠습니까?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우리 구세주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영원토록 증거할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작은 것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 많은 값이 치러진 적은 일찍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단순히 한 걸음 내디딤으로써, 우리는 첫 아담의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을 버리고, 둘째 아담의 측량할 수 없는 부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굴복시 키고 그분의 공의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분께서만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도 함께 누리기 시작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받아 마땅한 죄과(Guilt)와 정죄와 죽음을 그분께서 기꺼이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이것은 영원한 세월을 두고 우리 연구의 주제가 될것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그분의 대속적 사랑과 희생의 성격을 점점 더 깊이, 점점 더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 2:3). 히브리서의 이 질문에는 답이 없습니다.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제공된 구원을 지금 당장 받아들이십시오. 더는 그것을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유명한 전도자인 무디 선생이 시카고에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약간 술기 운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교회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교회 문을 연 후에,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직 설교단 뒤에 붙어 있는 표어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는 문을 다시 거칠게 닫은 후, 계단을 내려가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나님은 사랑이 아냐. 만일 그가 사랑이라면, 나를 사랑했을 거야. 그러나 그는 나를 미워하고 있어.”

그는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여전히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보았던 그 말씀이 술기운으로 마비되어 가고 있는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어떤 힘이 그를 다시 교회로 이끄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는 그 교회의 교인들과 함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무디는 설교를 계속해서 하고 있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무디는 교인들과 악수를 하기 위해서 입구로 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 다. 모든 교인이 교회를 떠났지만, 그 사람은 떠나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 울고 있었습 니다. 무디는 그의 곁에 앉아서 어깨에 팔을 두른 후, “내가 당신을 위하여 무슨 일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 나의 설교 중에서 어떤 대목이 당신의 마음을 감동시켰습 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오, 무디 선생, 나는 오늘 저녁에 당신이 했던 설교를 한마디도 듣지 못했 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의 머리 위로 보이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글을 읽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무디는 그의 곁에 앉아서 한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 습니다. 얼마 후, 그는 무디가 믿는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시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의 모든 행동과 방법이 사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으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사람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시 8:5). 사랑으로, 그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드 셨습니다(창 1:2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 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늘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정말 영생을 의미합니다. 그분에 대하여 지금보다 좀 더 잘 알기 위하 여, 함께 공부해봅시다. 그분을 앎으로써 그분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도록.

 

2. 외로우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최고로 관심이 있는 대상이 언제나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 다. 만일 내가, 하나님께서는 한때 자신이 사람과 나누었던 교제를 그리워하면 서, 외로워한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을 내가 사람의 감정을 신에게까지 적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창세기 3장은, 인간이 죄에 빠지는 비극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 해가 질 무렵에 사람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아담과 하와의 얼굴을 마주 대하기를 즐거워하셨던 하나님의 습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개 해가 질 무렵에 아담과 하와를 방문하셨을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셨는데, 그날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반가워서 뛰어나오는 대신에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두 사람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채, 슬그머니 나왔습니다. 아담이 말하기를 “내가 주의 음성을 들었으나 두려웠나이다.”

사람의 언어 중에서 최초로 이상한 말이 등장했습니다. “두려웠나이다.” 하나님의 걸작품인 우아하고 고상한 창조물이 두렵다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바로 이것이 죄가 낳은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도 두려 워하게 합니다. 가장 용감한 사람을 가장 겁쟁이로 만들며,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숙이게 합니다. 이제 최초의 부부가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제거하기 위한 가장 놀라운 계획을 펼쳐 놓으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 밖으로 나가야 합니 다. 그러나 추운 바깥세상으로 나갈 때,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오, 그 옷은 분명히 가장 아름다운 옷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옷에는 창조주의 솜씨와 사랑이 담겨 있으며, 그들에 대한 깊은 동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가죽옷을 만들기 위하여, 한 생명이 죽어야만 하였습니다. 적어도 한 마리의 동물이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죽어야 했습니다. 죄의 대가에 대한 말 없는 교훈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나는 마치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듯합니다. “얘 들아, 만일 너희가 또다시 불순종하면 이번에는 너희의 손으로 흠 없는 양을 잡아서 죽여야 한단다. 양이 흘리는 피는 언젠가 너희를 위하여 흘려지게 될 내 아들의 피를 상징한단다. 흠 없는 양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와 죽는 한생명을 의미한단다.” 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3. 하나님이 갖고 계신 인간의 모습

어떤 마을에 한 목사님이 살았었습니다. 그에게는 중학교에 다니는 14살 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께서 방문하여 목사 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댁의 아드님이 아픈가요?”
“아니요. 왜요?”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랬어요?”
“오늘뿐만 아니라 어제도 오지 않았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그 전날에도 오지 않았답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저는 그 아이가 매우 아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요, 그 아이는 아프지 않았답니다.”
“아, 제가 좀 더 빨리 부모님을 찾아왔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매우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선생님은 곧 집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조금 있다가 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빨리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는 지난 사흘 동안의 일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경섭아, 잠깐 서재로 따라오너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서재로 따라 들어갔고,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섭아, 학교 선생님께서 오늘 오후에 다녀가셨다. 네가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 다고 알려 주셨다. 오늘뿐만 아니라 어제도 그저께도. 선생님은 네가 아파서 집에 있는 줄 알았고, 나는 네가 학교에 간 줄로 알았다. 내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너는 아니? 나는 너를 신뢰했단다. 나는 나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항상 ‘나는 내 아들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단다. 그러나 너는 지난 사흘 동안 나를 속였지. 내가 얼마나 너를 믿었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나의 이 아픈 마음을 어떻게 너에게 설명할수 있겠니?”

경섭이에게 있어서, 아버지께서 이토록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를 너무나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그에게 거칠게 말했거나, 회초리를 들고서 이야기 하였다면, 그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동안 조용한 정적이 흘러갔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경섭아, 우리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자.”

경섭이는 점점 더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경섭이는 지금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쓰라린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토로하였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마음에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기도하기 위하여 꿇고 있는 아버 지의 무릎에서 자신의 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무릎이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섰습니다. 아버지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경섭이의 눈에도 약간의 눈물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죄가 있는 곳에, 고통이 있다는 것이 온 우주의 법칙이란다. 아무도 그 둘을 분리할 수 없단다.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곳에 죄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란다. 아무도 죄와 고통을 분리할 수 없단다. 너는 죄를 범했지. 하늘 아버지가 우주의 지배자이신 것처럼, 아버지인 나도 우리 가정의 제사장이란다. 자, 이제 우리 이렇게 하도록 하자. 너는 지금 다락방에 올라가거라. 내가 너를 위하여 그곳에 침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나와 어머니는 식사시간에 맞추어서 음식을 공급해 줄 테니 네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던 기간만큼, 너는 거기서 있어야 한다. 3일 낮과 밤을.”

경섭이는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락으로 올라가서 침대를 만들 었고, 아버지는 아들을 말없이 포옹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내려왔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함께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식사를 시작했지만, 아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음식을 씹고 또 씹었지만, 입이 마르고 맛을 느낄 수 없어서 식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 습니다.

그들은 거실로 나가 앉았습니다. 아버지는 신문을 집어 들어서 읽기 시작하였고, 어머니는 전등 밑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였습니다. 시계가 9시를 알리는 종을 울렸습니 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10시를 다시 울렸습니다. 이제 침실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 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여보 주무시지 그러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조금 더 있다가 잘 테니, 당신이 먼저 자구려” 어머니도 조금 있다가 함께 자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시계가 이미 11시를 알렸고, 12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둘은 침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서로가 잠을 자는 척했지 만, 서로가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어머니가 말하였습니 다. “여보, 왜 잠을 못 주무세요.” 아버지가 대답하였습니다. “당신 내가 자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알았소? 당신도 자지 않았구먼.”

“지금 경섭이가 다락방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자겠어요.” “나도 그래서 잠을 잘 수가 없소.”라고 아버지가 대답하였습니다. 시계가 열두 시를 알렸고, 다시 한 시, 두 시, 세 시를 알렸지만, 아직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말하였습니다. “여보,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소. 다락방에 있는 경섭이에게 올라가야겠소.” 아버지는 베개를 들고 살짝 방을 나와서 다락방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하여, 문고리를 살짝 벗기고 문을 밀었 습니다. 다락방의 마루를 가로질러 창문으로 가서 누워있는 아들을 내려다보았습니 다. 아들은 인기척에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침대 속으로 들어갔고, 그 둘은 서로의 목 밑으로 팔을 둘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제일 친한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들은 정말 친구였습니다.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서로의 뺨을 적셨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깊고 편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에도, 아버지는 “여보, 나는 오늘 밤에도 경섭이에게 올라가야 하겠소.” 두 번째 밤에도 그들은 다락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세 번째 밤이 되자, 아버지는 다시 “사 랑하는 여보, 오늘 밤에도 나는 아들에게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 에게 징벌을 주는 장소에서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그 아들이 성장하였을 때, 중국에 들어가 선교사로 봉사했던 사실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 아버지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인간의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없었던 것처럼 치워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없애버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이 세상이 지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감옥인 지상에서 인간과 함께 말하고 손을 잡고 누우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그분께서는 여러분과 내 곁에 머무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미워하게 하고 순결함을 갈망하도록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마다 죄를 증오하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같은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이러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버지, 우리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당신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생애와 봉사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고 싶습니다.”라는 소원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울려 나오지 않습니까? 아직 그분의 사랑의 메시지를 찾지 못하였습니까? 여러분의 눈과 귀를 열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면, 그분의 사랑의 음성과 글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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