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엘리야와 십사만 사천 [신앙기사 4부]

제4부 세번째 엘리야와 십사만 사천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짐승의 표 환난에서 승리하고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십사만 사천이 나타날 것이 예언되어 있다. 그들은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계 14:1)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닮은 성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군대에 쫓기다가 홍해를 통과한 후 승리의 노래를 부른 것처럼 그들만이 배울 수 있는 “새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인데 이는 음녀로도 상징되는 바벨론의 교리를 분별하고 진리만 따른다는 뜻이다.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다(계 14:4). 그리고 그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계 14:5)다. 십사만 사천의 특징을 보면 그들은 마지막 때에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세번째 엘리야들임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이어서 그들이 마지막 때에 전하는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다.

 

 

십사만 사천이 전하는 메시지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첫번째 메시지는 영원한 복음이다. 세번째 엘리야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진리이다. 성소 진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어떻게 해결하시는 지 보여주는 복음의 청사진이다. 첫번째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12개의 돌로 제단을 쌓고 제물을 올려놓음으로 무너진 성소제도를 다시 회복했다. 두번째 엘리야인 침례 요한도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성소의 진리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임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때에 성소의 진리는 완전히 회복되어 사람들을 죄에서 자유하게 하는 참된 복음이 증거될 것이다. 영원한 복음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중요한 진리이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계 14:8)

두번째 메시지는 바벨론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다. 첫번째 엘리야는 바알과 바알의 선지자들의 정체를 갈멜산에서 폭로했다. 두번째 엘리야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정체를 드러냈다. 이 시대에도 세번째 엘리야들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바벨론의 정체와 그의 거짓 교리들을 폭로할 것이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9-11)

세번째 메시지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고,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야 함을 경고하고 있다. 이것은 심판의 메시지이다. 첫번째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말했을 때에 심판이 포함되었다. 북방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때에 바알의 선지자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은혜의 시간이 없었다. 두번째 엘리야였던 침례 요한도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결국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끝까지 거절하면서 그들의 민족적인 은혜의 시간은 끝이 났다.
마지막 때에도 세번째 엘리야들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과 짐승 중 누구를 경배할 것인지 모든 사람은 선택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선택하면 은혜의 시간은 끝이 나고 각자의 선택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이다. 그 중에서 특히 넷째 계명이 마지막 때에 이슈가 된다. 세번째 엘리야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계명 중 넷째 계명에 나오는 구절의 일부와 일치한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인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요한계시록에 바벨론과 짐승으로 상징된 세력인 천주교가 변개한 날인 일요일을 지킬 것인지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며 기억하여 지키라고 하신 안식일을 지킬 것인지를 모든 사람이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기 바로 직전인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큰 날에 설 한 백성을 준비시킬 사람들을 부르신다. 침례 요한이 행한 것과 같은 그런 사역이 이 마지막 시대에 수행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분이 택하신 그릇들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에게 메시지를 보내신다. 그리스도의 공생애 바로 직전에 주어진 메시지는 세리들과 죄인들이여, 회개하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여 회개하라 이는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는 것이었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평화와 안전의 메시지가 되어서는 안된다. 주님께서 곧 나타나시리라고 믿는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전해야 할 명백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그 메시지는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 4:12)는 것이다.

 

 

평안과 안전이 아닌 분열을 가져오는 메시지

 

하나님께서 중대한 사역을 위하여 부르신 이들은 언제나 불신과 의심을 받았다. 고대 시대에 엘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갖고 백성에게로 나갔을 때, 그들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불필요하게 가혹하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저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을 발하실 만큼 심한 것으로 저들을 정죄하자 그를 정신나간 사람으로까지 여겼다. 사탄과 그의 군대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죄를 책망하는 이들을 거스려 싸우고자 언제나 진을 치고 있다. 비 헌신적인 의지는 또한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의 사역을 가능한 한 힘들게 하려고 영혼의 대적과 함께 연합할 것이다.
엘리야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은 소수이므로 진리를 따르지 않는 다수로부터 항상 비난과 반대와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엘리야의 메시지는 인기가 없고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반대를 받기 때문에 항상 분열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리야의 메시지가 평화와 안전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땅에 불을 보내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너희는 내가 땅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열이니라.”(눅 12:49, 51)

예수님의 메시지는 우리가 어느 한쪽 편을 선택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마 7:21). 또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은 “양과 염소”의 무리로 구분된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따르는 무리와 진리를 반대하는 무리로 나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1-5)

엘리야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진리는 다수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비록 인기가 없고 소수가 따르며 수많은 반대를 받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선택해야 한다.

이제 세 번째 엘리야들이 나타나기를 피조물들은 고대하고 있다. 이 암흑과 배도의 시기에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충성할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에 취해서 깊은 잠에 빠진 형제들을 깨울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엘리야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반역할 때에 진리와 하나님을 위해 홀로 설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침례 요한처럼 죄를 죄라고 부르며 권력과 지위의 여하를 막론하고 용감하게 진리를 전할 용사들이 어디에 있는가?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세 번째 엘리야들은 이 세상이 영적 암흑으로 덮일 때에, 사탄의 배도하는 세력 앞에 모든 세상이 무릎을 꿇을 때에 홀로 서서 별과 같이 빛날 것이다. 머지않아 가장 극심한 환난과 시험의 때에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마지막 메시지를 세상에 담대하게 외친 사람들의 머리에는 보석으로 꾸민 찬란한 면류관이 씌워질 것이다. 우리 모두 세 번째 엘리야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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