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간증] 계명을 지키는 마음의 동기

[신앙 간증]  계명을 지키는 마음의 동기

– 유규담

 

스마트폰이 나오고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혁명이다’라고 할 때도 저는 딱히 필요를 못 느껴 여전히 접는 2G폰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큰누나 아들, 첫 조카가 결혼하는데 상대가 여호와의 증인 교인이어서 조카도 그 교육을 받고 교인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여 많은 걱정과 염려가 되지만, 저는 성경 말씀에 관한 지식이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아야겠다 마음을 먹고 다니던 교회 성경 공부반에 등록하였습니다. 그러나 공부하고 또 성경을 읽어도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던 중에 다니엘과 친구들 같이 고기를 먹지 말아야 머리가 맑아져 알 수 있을까 하여 고기를 먹지 않아도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딸내미 스마트폰에 다양한 공부 동영상이 있는 걸 보고 드디어 저도 모토로라 2G 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으로 교체하였습니다. 유튜브를 설치하여 ‘성경 총정리’라고 검색을 하여 영국 미국 여러 목사님 강의와 설교를 들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성경 공부를 하며 뿌듯했고 또 알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휴무 날, 평소와 같이 교회 가서 건축 후여서 이 일 저 일 할 일이 많아 관리 집사님과 온종일 일하다 저녁 먹고 집에 와 비스듬히 누워 유튜브를 보던 중에 EBS 다큐멘터리 바벨론 방송을 흥미 있게 보게 됐고 그러다 손계문 목사님의 성경의 예언들 방송을 보게 됐습니다. 비스듬히 누워서 보다가 놀라 일어났습니다.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고 너무 마른 모습에 간절하고 진실하게 호소하시는 모습과 내용이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손계문 목사님과 강병국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교회 예배에 참석해 설교 듣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강병국 목사님 무화과나무 설교를 듣고 교회 헌금을 중단하고 ‘우리의 구원은 변함이 없고 우리의 헌신과 봉사하는 신앙에 따라 하늘에서 받는 상급이 다르다.’ 이 설교를 끝으로 더 이상 예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50여 년 전에 회장님 어머니와 결혼한 목사님께서 창립한 버스회사이고, 교회는 그 두 분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코로나 전에는 매주 월요일 사내 예배에 육칠십 명이 참여하고 회장님 참여한다는 문자가 오면 백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입사 후 순서가 되지 않았지만, 교회 봉사를 위해 다들 원하는 일요일 휴무 차를 운행했습니다. 그렇기에 예배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교회에 맡은 봉사는 하고 있었고 일요일에 교회 가서 몇 시간씩 주차 봉사하고 또 여전히 쉬는 날에 관리 집사님 전화 오면 교회 아동센터나 교회 행사에 차량 봉사하였습니다.

그렇게 일 년여 정도 지나 휴무가 목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입사 후부터 회사에 다니며 교회에 같이 다니던 사람들 모임이 있었는데, 그 밴드에서 강퇴당하고 단톡방에서는 다들 나가고 저만 남았습니다. 어제까지 형님 동생 하던 사람들이 인사는 고사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던 어느 날, 어느 기사님 부인이 뇌경색이 와서 병원에 다녀야 하는데 자기 휴무가 토·일이어서 목금〮이 필요하니 저하고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 기사님은 재직 기간이 20여 년이고 지금까지 고참이 필요에 의해 요구하면 그렇게 자리 이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안 된다고 하여 결국 저 아닌 다른 목금〮 휴무인 사람과 자리를 바꿨습니다.

회장님이 장로이시고 사무직원들도 안수집사, 집사이니 이 사람들 입장에서 제가 토요 휴무로 옮기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이단자를 묵인하고 교회와 목사님을 배신자를 돕는 일로 여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안식일 쉬는 직장을 알아볼까 고민하고, 좀 더 기다려 제 차례가 돼 안식일 휴무로 옮길 때까지 참을까 고민하던 저에게 이 일은 심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 순서가 돼도 토요 휴무 차로 옮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사할까 이에 맞서 싸울까 고민하다 황 선교사님과 통화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말씀을 뒤로하고 회사와 삼백 명이 속한 노조와 싸움을 택하고 노조를 탈퇴하고 저 혼자 따로 노조 활동을 시작하여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첫날부터 준법 운행 태업을 하여 제 뒤로 일곱여덟 대 버스가 기차같이 줄지어 따라왔고 회사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 후 회사 담에 빙 둘러 현수막을 걸고 방송차로 노동가를 방송하고 부당한 것은 관계 기관에 고발하고 이렇게 하루 이틀 몇 달의 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점점 생각이 거칠어지고 말씀에서 멀어지며 기도할 수 없게 되어 갔습니다.
다니던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서부터 마음에 부담으로 있던 흘러 떠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현실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자기 의로 고난을 자청하는 자 모습 같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투쟁의 결과로, 지금까지는 퇴사로 인해 자리가 생길 때 회사나 노조에서 자기들 임의대로 친한 사람 맘에 든 사람에게 배정해 오던 관행을 없애고 원칙에 따라 공평하게 하자고 주장하여 매뉴얼을 만들었고, 회사와 노조 동의로 작년 10월부터 시행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올 1월 금토〮 휴무 차 자리가 비었고 그 매뉴얼에 의하여 금토〮 휴무 차로 옮기게 됐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처음에 많은 것이 뒤로 물러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손계문 목사님께서 우리 집 방문 때 하신 말씀에 올라가다 뒤로 물러나면 한 계단이 아니라 뒤로 굴러 바닥까지 갈 수 있다는 말씀을 저 자신을 보며 절감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일을 겪으며 생각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고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거 같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네 번째 계명이 중요하듯 나머지 계명 또한 네 번째 안식일 계명과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을 지키고 다른 계명을 가벼이 생각한다면 다른 계명에 충실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차이가 무엇일까, 오히려 그분들이 안식일 계명을 깨닫는다면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자칫 안식일 계명만을 중요시하여 지킨다는 우월감에 자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명은 지키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동기도 중요하다는 것 또한 생각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가 그릇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시여 긍휼을 베푸시어 이 선택 가운데에서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세요.”
이 기도가 수없이 드린 기도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와 형제자매님들의 염려와 기도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 안식일에 예배드릴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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