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278호 매일의 말씀

열한시 278호 매일의 말씀

 

1.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말 3:8)

만일 솔로몬이 계속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지혜와 부와 명예를 주시는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였더라면 그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덕행을 기록함과 동시에 또한 그의 실패에 대하여도 충실히 증거하였습니다. 가장 위대한 자리에 올라가 온갖 부에 둘러싸인 솔로몬은 아찔해져서 균형을 잃고 세상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칭찬받게 되자 마침내 자기에게 쏟아지는 아첨을 저항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신 분을 영화롭게 하도록 그에게 맡겨진 지혜가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설계되고 건축된 건물의 비길 데 없이 훌륭함에 대하여 사람들로 자기가 최고의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은 십일조와 헌물뿐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도 큰 범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성전은 온 열국에 “솔로몬의 성전”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인간 대리자는 하나님께 속한 영광을 자기 자신이 취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솔로몬이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선포한 성전이 너무나 자주 여호와의 성전이 아니라 “솔로몬의 성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늘이 내려 준 선물로 인해 얻은 영예를 자기 자신에게 돌림으로 더 큰 약점을 드러내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모든 일에 처음과 나중과 최선으로 삼을 것입니다. 야망에 불타는 어떤 동기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식힐 수 없을 것이며, 그는 견실하고 끈기 있게 하늘 아버지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충실할 때 우리의 충동은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게 되고 우리는 영적·지적 능력을 계발할 수 있게 됩니다.

 

2. 모본이신 그리스도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5)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영광이 아버지께…있”(마 6:13)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크신 의원께서는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보고” 이상히 여기는 군중들로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지 말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마 15:31)리도록 그들의 주의를 자신에게서부터 그분의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매우 조심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바로 전에 드린 놀라운 기도에서조차도 그리스도께서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5, 26)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 24).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해력을 포함하는 지성적인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근거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하며(마 22:37)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이론적 이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험적인 지식이요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함으로써 드러납니다.

 

3. 선민의 목적을 저버린 자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시 86:12)

희생의 정신을 버리고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요소들을 도입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칠 또 다른 악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세상의 빛이 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들은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영광을 비춰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나라를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 요충 지대에 두셨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나라는 남북으로는 하맛에서 애굽까지, 동서로는 지중해에서 유브라데강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 지역을 통하여 세계 무역의 많은 천연 통로가 뻗어 있어서 먼 나라의 대상(隊商)들이 끊임없이 왕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과 그의 백성들에게는 온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만왕의 왕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칠 기회가 주어졌으며 온 세상에 이 지식이 전파되어야 하였습니다. 희생 제물의 교훈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열국 앞에 높임을 받아야 하고 원하는 자는 모두 살 수 있게 하여야 했습니다. 이웃 나라의 횃불이 되도록 지정된 나라의 수반으로 임명된 솔로몬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계몽하는 큰 운동을 전개하고 지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지혜와 감화력을 사용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많은 무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했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행한 죄악에서 보호되었을 것이며 영광의 주님은 크게 높임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높은 목적을 잊어버렸습니다. 솔로몬은 끊임없이 그의 영토를 통과하거나 중요 도시에 머무르는 무리를 가르칠 기회를 이용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모든 참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 주신 선교 정신이 상업주의적 정신으로 대치되었습니다. 많은 민족과 접촉함으로 얻어지는 기회를 개인의 세력 증대에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전도사역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

솔로몬은 통상로들에 요새들을 구축함으로 정치적으로 자기의 위치를 강화하고자 모든 성읍을 견고하게 요새화되도록 재건하였습니다. 홍해 상부에 위치한 출구는 상업적으로 유리하게 발전되었으며 두로에서 온 훈련 받은 선원들이 “솔로몬의 종과 함께” 이 배들을 타고 항해하여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과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왔”(왕상 9:28, 10:11)습니다.
왕과 많은 그의 신하들의 세입(歲入)은 많이 증가하였으나 그 대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 받은 사람들의 탐욕과 근시안적 행위로 인하여 여행의 대로에 모여든 무수한 무리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추구하던 길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걸어가신 길은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셨으나 결코 그 권세를 자신의 세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세속적 위대함을 얻으려는 꿈이 인류를 위한 그분의 완전한 봉사를 훼손하지 못했습니다. 시대의 요청에 따라 주님의 봉사 사역에 들어간 자들은 주님의 방법을 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로를 여행하는 동안 발견되는 기회를 잘 이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저곳을 여행하시는 동안 짬짬이 가버나움에 들르셨습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은 그분의 “본 동네”(마 9:1)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루살렘과 애굽과 지중해로 가는 대로에 자리 잡은 가버나움은 구주의 사역 중심지가 되기에 매우 적합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오는 백성들이 이 성읍을 통과하거나 쉬려고 머물렀기 때문에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과 모든 계급의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이리하여 그분의 교훈은 다른 나라들과 많은 가정에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들에 대해 흥미가 일어나 사람들이 구주를 더 주목하게 되었고 그분의 사업은 온 세계에 소개되었습니다.

 

5. 우리의 씨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는 각계각층의 남녀들과 많은 민족을 접할 기회가 옛날보다 더욱 많아졌습니다. 오늘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자들은 그리스도처럼 세계 각처에서 통행하는 많은 무리와 만날 수 있는 대로변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자신을 감추신 그리스도처럼, 정신과 마음에 뿌리를 깊이 박아 영생에 이르기까지 성장할 성경의 귀중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 앞에 제시함으로 복음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통치자와 백성들 모두가 저희가 성취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고상한 목적에서 떠나갔던 세월 동안의 이스라엘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매우 엄숙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연약해서 실패한 그 점에 있어서 현대 이스라엘 곧 참 그리스도교를 회복할 하늘의 대표자들은 강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인류에게 맡겨진 사업을 마치고 최후의 심판의 날을 고하는 과업이 그들에게 맡겨진 까닭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에 널리 퍼졌던 그 같은 감화를 지금도 여전히 마주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탄의 목표는 인간의 마음에 그의 성품을 재현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 선망과 증오와 야망을 주입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다 그의 보좌를 세워놓고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할 경배를 그가 가로채고 있습니다.
모든 의의 원수의 세력들이 굳게 방비하고 있으므로 우리 앞에 있는 투쟁은 극기의 정신을 행사하고, 자신을 불신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동시에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기회를 현명하게 사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저희가 죄로 어두워진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과 같은 자기희생의 정신을 나타내고, 인간보다는 하나님을 높이고 복음의 축복이 크게 필요 되는 자들을 위하여 정답고 지칠 줄 모르는 봉사를 통해 성결의 미덕을 나타내고 연합하여 전진할 때 주의 축복이 그분의 교회에 임할 것입니다.

 

6. 솔로몬의 고백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전 2:17)

솔로몬이 통치하던 기간에 주께서는 두 번 칭찬과 권고의 기별을 가지고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기브온의 밤 계시 중에 나타나 지혜와 부와 명예를 약속하시고, 아울러 겸손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도록 훈계하시던 때와 성전 헌당식 후에 나타나 한 번 더 그에게 충성하도록 권고하시던 때였습니다. 솔로몬에게 주신 훈계는 분명했고 그 약속들은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환경과 성품과 생활면에 있어서 그 명령에 주의하고 하늘의 기대에 응하기에 가장 적합해 보이던 그에 대하여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왕상 11:9, 10)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철저하게 배도했고, 범죄로 인해 마음이 너무나 굳어졌으므로 거의 절망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얻는 기쁨에서 돌이켜 관능적 쾌락에서 만족을 찾았습니다. 이 경험에 대하여 그는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道)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전 2:8)고 고백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쓰라린 경험으로 이 세상 사물에서 최대의 행복을 찾으려는 생애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는 이교의 신들 앞에 제단을 쌓았으나 그들이 약속한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헛된가를 배웠을 뿐입니다. 비관적이고 심령을 괴롭히는 생각들이 밤낮없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더 이상 그에게는 생활의 기쁨이나 마음의 평화가 없었고 미래는 절망으로 암담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솔로몬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책망의 말씀과 엄한 형벌로써, 왕이 행위의 악함을 깨닫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그분의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고 원수들로 그 나라를 괴롭히고 약하게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7. 솔로몬의 회복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 하리라”(민 14:23)

마침내 주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통하여 깜짝 놀랄 메시지를 솔로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왕상 11:11, 12)리라.
그와 그의 집에 내린 이 형벌의 선고로 말미암아 꿈에서 깨어난 솔로몬은 양심의 깨우침을 받아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실 그대로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신적으로 가책을 받고 몸과 마음이 약해진 그는 지친 갈증을 채우기 위해, 세상의 터진 웅덩이에서 또다시 생명의 샘으로 돌이켰습니다. 마침내 그를 위하여 주어진 고통의 징벌은 그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어리석음에서 돌아설 가망이 없는 까닭에 완전히 멸망하리라는 공포심으로 번민하였으나 이제 그에게 주신 메시지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완전히 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죽음보다 더 잔인한 속박 곧 그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속박에서 그를 구원하시려고 일어서셨습니다.
솔로몬은 “높은 자보다 더 높은”(전 5:8) 하나님의 능력과 자애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하고 참회하면서, 그가 매우 멀리 떨어져 나갔던 순결과 성화의 높은 단계로 되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죄의 무서운 결과에서 도피할 가망이 전혀 없었고 그가 추구하여 왔던 자기 방종의 길에 대한 모든 기억을 마음속에서 결코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이 어리석은 행위를 따르지 않도록 열렬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행위의 잘못을 겸손히 자복하고 소리를 높여 그가 끼친 악한 감화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당하지 않도록 경고하였습니다.

 

8. 진정한 회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그의 과거의 죄악들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평화를 얻자마자 그가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무관심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의 행동으로 인하여 악에 빠진 사람들을 생각하고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써서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가 밝은 빛 가운데로 들어가면 갈수록 다른 사람들의 발길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열망이 더욱더 강해집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미친 마음을 품”(전 9:3)고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다시 솔로몬은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이 백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전 8:11~13)고 선언하였습니다.
왕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후세대들을 경고하기 위한 교훈으로써 그가 허비한 세월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심은 종자의 못된 결과를 그의 백성들이 거두어들였으나 그의 일생의 사업이 전부 실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솔로몬은 말년에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전 12:9~12)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율법은 다만 외형적인 행동만을 제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범죄자이면서도 자신의 악행이 다른 인간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마음속에 들끓는 질투, 시기심, 증오심, 정욕 및 야심 등을 주시하여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죄악적인 감정은 심판의 날에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9. 솔로몬의 경고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전 11:7~10)

솔로몬의 말년의 기록들은 그가 자기 행위의 악함을 더욱 절실히 깨달을수록 하늘의 가장 좋은 선물들을 쓸모없는 것처럼 낭비했던 과오에 자기처럼 빠지지 않도록 젊은이들을 경고하는 일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솔로몬은 혈기 왕성한 시절에 하늘의 빛과 하나님의 지혜에서 떠나 여호와를 예배하는 대신에 우상숭배를 자행한 것을 슬퍼하고 치욕으로 여기며 이를 자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슬픈 경험을 통하여 그 같은 생활이 어리석은 짓임을 배운 지금 그의 열렬한 소원은 그가 겪은 쓰라린 경험을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도록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생애는 불안정한 젊은이들뿐 아니라 노인들에게도 필요한 경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선과 악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이, 그들이 저항하기에는 너무나 강하게 보이는 악한 정욕의 조류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 대하여 보고 듣게 됩니다. 더 성숙한 사람들에게서는 이 같은 불안정과 불충실보다 굳센 성품과 확고히 뿌리박은 원칙들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품이 참나무처럼 굳어 있어야 할 시기에 솔로몬은 유혹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확고함에서 넘어졌습니다. 그의 힘이 가장 강해야 할 때 그는 가장 약한 자임이 판명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례를 통해 깨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일한 안전책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큰 특권을 누린다고 해서,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진정한 그리스도인 경험을 누린 사람일지라도 사탄의 공격에서 제외된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고 유능한 솔로몬까지도 속에서 일어나는 죄 된 생각과 외부에서 오는 유혹과의 싸움에 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실패는 우리에게 사람의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그가 과거에 아무리 충실히 하나님을 섬겼다고 할지라도 결코 자신의 지혜와 성실을 안심하고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0. 구원의 대원칙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사 33:6)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품 건설을 위한 참된 기초와 모형은 항상 같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는 하나님의 율법 곧 우리 구주의 성품과 생애에 나타난 대원칙만이 안전한 기초요 확실한 안내자입니다. 이러한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신 4:6)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며 계명을 순종하라고 하시던 때와 같이 지금도 그 말씀은 사실입니다. 여기에 개인의 성실과 가정의 순결과 사회의 안녕과 국가의 안정을 위한 유일한 보호벽이 있습니다. 모든 생애의 난국과 위험과 상충하는 주장들 가운데서 한 가지 안전하고 믿을 만한 법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시 19:8)며,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15:5).
솔로몬의 배도에 대한 경고에 주의하는 사람들은 그를 넘어뜨린 그런 죄악의 최초의 접근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순종하는 일만이 인간을 배도에서 보호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큰 빛과 많은 축복을 주셨으나, 이 빛과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불순종과 배도를 막는 보장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임받는 높은 자리에 앉히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지혜로 돌아갈 때 그들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들에게 위임된 능력은 올무가 됩니다.
투쟁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지 아니하면 거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영혼의 요새를 약화할 환경을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발걸음마다 “이것이 주의 길인가?”라고 물을 필요가 있으며 항상 깨어 기도하는 것이 순결의 방벽이 됩니다.

 

11. 죄의 결과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한 죄인이 많은 선을 패궤케 하느니라”(전 9:18)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사람들은 모두 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좁은 문을 통하여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자들 중 아무라도 절망에 빠져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던 노인들이 정욕의 제단 위에 그들의 정조를 바침으로 저희의 영혼들을 더럽혔을지라도 만일 저희가 회개하고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그들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선언하신 주께서는 또한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는 초청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호 14:4)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충심으로 회개하였으나 그의 악행의 본이 끼친 손상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의 배도의 기간에도 그 나라 안에는 저희가 받은 진리에 충실하고 순결과 충성을 유지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솔로몬의 영향으로 인해 타락하였습니다. 따라서 우상숭배와 세속적 풍습이 들어옴으로 인해 시작된 악의 세력은 회개한 왕이라 할지라도 쉽게 멈추게 할 수 없었는데, 선에 대한 그의 감화력이 크게 약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도력을 완전히 신임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비록 왕은 죄를 자복하고 후세대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어리석음과 회개에 대한 기록을 모두 다 썼지만, 그의 악한 행위가 끼친 해로운 감화를 완전히 지우기를 바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배도로 담대해진 많은 사람은 오직 악만을 계속 행하였습니다. 그를 따른 많은 통치자의 타락한 행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능력을 악용함으로 이르러 오는 서글픈 감화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12. 솔로몬의 교훈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히 12:15)

솔로몬의 생애가 가르친 많은 교훈 중에서 선이나 악에 대한 감화력보다 더 강하게 강조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활동 범위가 아무리 좁다고 할지라도 우리 역시 복이나 화의 감화를 끼치게 됩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감독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나 저주를 고합니다. 그것은 불만과 이기심의 그늘로 침울할 수도 있고 치명적 오점으로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또 생명을 주는 신앙의 힘과 용기와 희망과 달콤한 사랑의 향기로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이나 악에 대한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감화가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입니다. 잘못 인도되어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상실한 한 영혼의 손실을 누가 평가하고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한 한 번의 경솔한 행동과 부주의한 말이 다른 사람의 생애에 깊은 영향을 미쳐서 그것이 그 영혼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품에 나타난 한 가지 오점이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게 할 수 있습니다.
파종된 종자는 수확을 내고 다시 이 씨를 뿌리면 그 수확은 증가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서도 이 법칙은 들어맞습니다. 모든 행동과 모든 말은 열매를 맺게 될 종자입니다. 모든 사려 깊은 친절과 순종과 극기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재현될 것이며 그들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악의 알력의 모든 행위는 “쓴 뿌리”(히 12:15)에서 돋아나는 종자이며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럽혀질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을 못쓰게 만들고 있는지 항상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과 악을 파종하는 일의 결과는 이 세상과 영원까지 미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3. 여로보암

“솔로몬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부친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상 11:43)

르호보암은 왕위를 계승한 후에 곧 세겜에 가서 모든 지파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대하 10:1).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있었는데 그는 솔로몬의 치세 동안 “큰 용사”로 알려졌고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왕상 11:28, 31)리라는 놀라운 메시지를 전해 들었던 자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자를 통하여 그 나라가 분열되어야 할 불가피성에 관하여 여로보암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열은 “이는 저희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숭배하며…나의 법도와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왕상 11:33)한 까닭에 일어나야 한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으며 또한 그 나라가 솔로몬의 통치가 끝나기까지는 나누이지 않으리라는 가르침까지 받았습니다.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저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왕상 11:34, 35).
솔로몬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예언한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택한 후계자 곧 르호보암의 마음을 준비시키고자 갈망하였으나 그의 초기 교육을 너무나 등한히 했기 때문에 아들의 마음을 선하게 꼴 지을 수 있는 감화를 전혀 끼칠 수 없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암몬 사람인 그의 어머니로부터 우유부단한 성격의 특징을 물려받았습니다. 때때로 그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하였고 상당한 번영을 누리도록 허락되었으나 확고부동하지 못함으로 인해 마침내 어려서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던 악한 감화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들과의 결합으로 인해 빚어진 무서운 결과가 르호보암의 잘못된 생애와 그의 최후의 배도 가운데 나타났던 것입니다.

 

14. 위로부터 난 지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 3:17)

여러 지파는 그들의 전 통치자의 압제적인 정치하에서 오랫동안 쓰라린 학대를 받아 왔었습니다. 그의 배도의 기간에 솔로몬 정부의 사치가 그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천한 노역을 요구하게 하였습니다. 새 통치자의 즉위식에 나가기 전에 각 지파에서 온 지도자들은 솔로몬의 아들이 이 무거운 부담을 줄여 줄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기로 작정하고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라고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그의 정책의 개요를 말하기 전에 그의 고문들로부터 조언을 듣고자 하여 “르호보암은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대하 10:3~7)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르호보암은 자기가 청년 시절과 장년의 초기에 교제하던 젊은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을 때, 젊은이들은 그가 자기 신하들을 엄격히 다루어야 하며 처음부터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간섭할 경우에는 참지 않겠다는 것을 그들에게 분명하게 밝히도록 제의하였습니다.
최고의 권위를 행사하게 된다는 기대로 우쭐해진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젊은이들을 자기의 고문으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한 날이 이르러 그가 펴나가려는 정책에 대한 진술을 듣고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그에게 나아왔을 때 르호보암은 “포학한 말로…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왕상 12:12~14)고 대답하였습니다.

 

15. 왕국의 분열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왕상 12:24)

만일 르호보암과 그의 경험 없는 모사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더라면 행정부의 단호한 개혁을 바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겜의 회집 중에 그들에게 이르러 온 호기에 그들은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생각하기에 실패함으로 대다수의 백성에게 끼칠 수 있었던 그들의 감화를 영원히 약화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의 통치 동안에 행해진 압박을 계속할 뿐 아니라 그보다 더하겠다고 말한 그들의 결정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직접적으로 저촉되었고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동기의 진실성을 의심할 충분한 근거를 주었습니다. 권력을 행사하려는 지각 없고 잔인한 시도에서 왕과 그 택함을 입은 모사들은 지위와 권위에 대한 자만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주께서는 르호보암에게 그가 초안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각 지파 중에는 솔로몬 통치의 압정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었고 이들은 이제 다윗의 집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왕상 12:16).
르호보암의 경솔한 말로 인해 야기된 불화는 회복할 수 없는 것임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분열되어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하부 혹은 남방 유다 왕국을 이루어 르호보암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고 북방의 열 지파는 이스라엘 왕국으로 알려진 독립 정부를 구성하여 유지하게 되었는데 여로보암을 그들의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의 분열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이 일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왕상 12:15).

 

16. 하나님의 명령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 6:4)

르호보암은 열 지파가 자기에게 충성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기 나라의 유력한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통하여 그들과 화해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이 평화의 사신은 르호보암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온 이스라엘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왕상 12:18) 놀란 르호보암왕은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왕상 12:18)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르호보암이…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저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좇아 돌아갔더라”(왕상 12:21~24).
삼 년 동안 르호보암은 그의 통치 초기에 있었던 슬픈 경험에서 유익을 얻고자 노력하였고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성공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유다 땅에 방비하는 성읍들을 건축하였”고 “이 모든 성읍을 더욱 견고케 하고 장관을 그 가운데 두고 양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저축하”였습니다. 그는 이 변방 성읍들을 “심히 강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 통치 초기에 유다의 번영 비결은 이런 조치에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우월한 지위에 처하게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최고의 통치자로 인정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북방 지파들 중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이 그들과 합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오로지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이…예루살렘에 이르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대하 11:16, 1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7. 악한 감화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신 32:15)

르호보암에게 과거의 잘못을 크게 보상하고 신임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성경은 솔로몬의 후계자가 여호와께 충실하도록 큰 감화를 끼치는 일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슬픈 기록을 남겼습니다. 천성적으로 고집이 세고 자부심이 강하며 완고하고 우상숭배의 경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가 만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더라면 그는 성품의 능력과 확고부동한 신앙을 계발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복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왕은 지위에 따르는 권세와 그가 쌓은 요새를 의지함으로 차츰차츰 그는 선천적인 약점을 드러내었고 결국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그의 영향력을 전적으로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대하 12:1).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는 이 말은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인근 민족들에게 빛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백성들이 그들의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 주위에 있는 민족들과 같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경우처럼 르호보암의 경우에도 악한 본의 감화는 많은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들의 경우에서처럼 오늘날도 악한 일에 몰두하는 자들의 악행의 영향은 다소간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것을 행하는 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홀로 살 수 없고 자신의 죄로 자기 자신만 멸망시키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각 사람의 생애는 다른 사람들의 길을 밝게 하고 활기차게 하는 빛이 되거나 절망과 파멸로 향하게 하는 어둡고 쓸쓸한 감화가 됩니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행복과 영생으로 인도하거나 아니면 슬픔과 영원한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행위로 우리 주위에 있는 이들의 악한 세력을 강화시키거나 활동하도록 자극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죄에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18. 잘못된 선택

“저희가 그 나라와 주의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한 고로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느 9:35, 36)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 통치자의 배도를 묵인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을 취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니…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대하 12:2~5).
그때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의 형벌을 멸시할 만큼 그런 배도의 지경까지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시삭의 침략으로 입은 손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한동안 스스로 겸비하며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대하 12:6)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저희가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대하 12:7, 8)고 하셨습니다.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 유다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노를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아니하셨더라”(대하 12:12).
그러나 압제의 손길이 물러가고 나라가 다시 번영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은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다시 우상숭배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들 중에는 르호보암 왕 자신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에게 내린 재난으로 겸비하기는 하였으나 이 경험을 그의 생애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치고자 노력하신 교훈을 잊어버리고 르호보암은 자기 나라에 형벌을 초래한 죄악에 다시 빠져들어 갔습니다. 왕이 “마음을 오로지 하여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함으로 악을 행하였”고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비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하 12:14, 16).

 

19. 자비로운 역사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렘 10:10).

일찍이 르호보암 통치 초기에 나라가 분열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영광은 떠나기 시작했으며 그 후에 결코 그 찬란한 영광을 다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때때로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이 왕의 보좌에 앉게 되고 이러한 군주들의 통치로 인해 유다 사람들에게 내린 축복이 인근 민족들에게까지 미침에 따라 때때로 여호와의 이름이 모든 거짓 신들 위에 높임을 받았고 여호와의 율법은 존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때때로 유력한 선지자들이 일어나 통치자들의 손을 강하게 하고 백성들을 격려해서 계속 충성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이미 싹튼 악의 종자들은 결코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때 하나님의 은총을 받던 백성들이 이방인들 중에 웃음거리가 될 만큼 깊이 타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의 습관에 젖어 버린 자들의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비스럽게도 분열된 나라가 완전히 멸망하지 않도록 그분의 능력으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목적이 사탄의 대리자들의 충동을 받은 자들의 책략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선민들의 포로와 석방을 통하여 그분의 자비스러운 계획을 나타내셨습니다.
나라의 분열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부드러운 자비가 나타난 놀라운 역사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선한 일에 열심하는 특별한 백성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순결하게 하시고자 하셨던 이들은 악한 유전과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벽 때문에 통과해야 했던 가혹한 시련 속에서 마침내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렘 10:6) 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날 진리의 교회도 그 연약한 모습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 즉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로 우뚝 설 것입니다.

 

20. 우상숭배의 목적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행 19:26)

다윗의 집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열 지파에 의하여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이전에 솔로몬의 신하였습니다. 그는 민정(民政)에 있어서나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슬기롭게 개혁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통치 아래서 그는 능란한 솜씨와 건전한 판단력의 소유자임을 보여 주었고 그가 여러 해 충실하게 봉사하는 동안에 얻은 지식은 그로 신중하게 통치할 수 있는 적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가장 큰 염려는 장차 그의 신하들의 마음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통치자에게로 쏠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열 지파가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대처럼 성전 봉사가 그대로 행해지고 있는 유다 왕국의 옛 터전을 방문하도록 허용한다면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중심을 둔 정부에 대해 그들의 충의를 새롭게 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그의 고문들과 상의한 후 대담한 수법을 써서라도 그의 통치에 대한 반란의 가능성을 줄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새로워진 나라 안에 두 개의 예배의 중심지를 벧엘과 단에 세움으로 이 일을 성취하고자 하였습니다. 열 지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대신에 이곳에 모이도록 청함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여로보암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어떤 물체 곧 눈으로 볼 수 있는 조상(彫像)을 저희 앞에 세워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게 하여 그것들을 지정한 예배의 중심지에 세운 사당 안에 안치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려는 이 같은 노력으로 여로보암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 5)는 여호와의 명백한 명령을 범하였습니다.

 

21. 거짓 예배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출 20:4)

여로보암은 열 지파를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하려는 욕망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자기 계획의 약점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저희 조상들이 수세기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중에 매우 익숙했던 우상을 하나님의 상징으로 그들 앞에 세움으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위험에 처하도록 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최근에 애굽에 거주했었는데 그것이 그로 하여금 백성들 앞에 이와 같은 이교의 조상(彫像)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배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북방 지파들이 매년 거룩한 성읍을 방문하지 못하게 하려는 단호한 의도가 그로 하여금 가장 경솔한 방법을 채택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왕상 12:28)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금 우상 앞에서 절하고 생소한 형태의 예배 의식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왕은 그의 영토 안에 사는 레위 사람들을 권고하여 벧엘과 단에 건축된 사당에서 제사장으로 봉사하게 하려 하였으나 이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할 수 없이 “보통 백성으로”(왕상 12:31)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이러한 광경에 놀란 충성스러운 많은 사람은 대다수의 레위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요구에 일치하게 예배할 수 있는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습니다.
거룩하게 제정된 제도를 이처럼 무시하는 하나님께 대한 왕의 대담한 도전은 견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도입한 방자함을 탄핵하기 위하여 유다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보내심을 입어 그의 앞에 나타나 “단을 향하여…외쳐 가로되…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왕상 13:2) 하였습니다.

 

22. 악인의 길에서 돌이키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 33:11)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 “그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왕상 13:3) 하니 이것을 본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적인 정신이 가득하여 그 메시지를 전달한 사람을 잡아 가두려고 하였습니다. 분노한 그는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성급한 행위는 즉시 견책을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향하여 펼친 손은 돌연히 힘이 없어지고 시들게 되어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었습니다. 왕은 공포에 사로잡혀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중재해 주도록 선지자에게 애원하였습니다. 왕은 탄원하기를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왕상 13:4, 6)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는 것을 무시하려고 생소한 제단의 낙성식을 엄숙히 거행하려 했던 여로보암의 노력은 헛수고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동시에 백성들로 하나님께 대한 참된 예배에서 떠나게 하려던 자기의 악한 목적을 버려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굳게 하고 자신의 택한 길을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벧엘에서 축제를 지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완전히 굳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은 성령의 감화에 민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배도를 향해 빠른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자들의 행동을 너무 늦기 전에 막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막고 그 같은 배도의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왕과 백성에게 보이시려고 그분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제단이 갈라진 것은 이스라엘에서 행하여진 가증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신다는 증표였습니다.

 

23. 은혜의 시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구원하려 하시지 멸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인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주께서는 경고와 간청으로 불순종하는 무리에게 그들의 행악을 그치고 그분께 돌아와서 살라고 부르십니다. 주께서는 그분의 택하신 사자들에게 거룩한 담력을 주셔서 듣는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회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매우 단호하게 왕을 꾸짖었으며 이 단호함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는데 다른 방법으로는 이미 시작된 그 악이 견책을 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종에게 담대함을 주셔서 듣는 사람들에게 영구적인 감명을 끼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사자들은 결코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의를 위하여 굳게 서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또한 보호하시겠다는 보증을 주신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바라시지만, 그분의 인내가 영원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람들의 죄가 그 한계선을 넘을 때 제2의 은혜의 시기는 없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시고 치료하시지 않고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그들의 동료를 압제하고 약탈하며, 지상의 법정에서 공의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것입니다. 이때 지상의 어떤 지혜나 방책으로도 하늘의 심판을 거스르고 행악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의 조물주를 신뢰하지 않고 지상의 권세를 믿을 때, 그들이 또 교만과 자만심으로 자신을 높일 때,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그들이 멸시당하게 될 것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 12).

 

24. 하나님의 명령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 11:31)

선지자가 메시지를 전달한 후에 돌아가려고 할 때 여로보암은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왕상 13:7)고 말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다”(왕상 13:8, 9)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선지자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 다음 지체 없이 유다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길을 따라 집을 향해 가는 중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노인이 뒤따라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라 하였”(왕상 13:18)다는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거듭거듭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함께 가기를 간청함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은 설복되어 되돌아갔습니다.
참 선지자가 의무의 길에 상반되는 행동을 한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그로 자기의 잘못에 대한 형벌을 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와 그를 초청한 노인이 벧엘에 돌아와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동안 전능하신 이의 영감이 거짓 선지자에게 임하여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니)…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3:21, 22). 이 비운의 예언은 곧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왕상 13:23~26)라고 하였습니다.

 

25. 배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왕상 14:16)

불충실한 사자에게 임한 형벌은 제단에 대해 말한 예언의 진실성을 한층 더 증거 하였습니다. 만일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불순종한 후에도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허락되었다면 왕은 이 사실을 자신의 불순종을 변명하는 데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갈라진 제단과 마비된 팔과 감히 여호와의 명백한 명령을 불순종한 자에게 내린 무서운 운명에서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신속하게 나타내신 불쾌함을 분별해야 했고 이 형벌들은 그에게 행악을 고집하지 말라는 경고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회개하기는커녕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왕상 13:33)습니다.
여로보암의 통치 기간에 들어온 배도는 더욱 현저하게 되어 마침내 이스라엘 나라의 완전한 멸망을 초래하였습니다. 여러 해 전에 여로보암이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한 실로에 사는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이 죽기 전인데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열조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저희를 하수 밖으로 흩으시리니 저희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음이니라”(왕상 14:15)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분에게 돌아와 충성하도록 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시기까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연달아 일어난 통치자들이 대담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로 더욱 깊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던 길고 어두운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뒤로 물러간 그분의 백성에게 그분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이 배도의 물결을 멈추고 그분께 돌아올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라가 분열된 후의 세월 동안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했고 호세아와 아모스와 오바댜의 부드러운 호소를 나라 안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26. 주를 의지하는 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

여로보암이 죽은 때로부터 엘리야가 아합왕 앞에 나타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영적으로 쇠퇴해 갔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이상한 형태의 예배를 권장하는 자들의 지배를 받는 대다수의 백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의무를 속히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의 많은 풍습을 받아들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은 겨우 몇 개월 동안만 왕 노릇 했습니다. 그의 악한 생애는 그의 장군 바아사가 정권을 장악하려고 일으킨 모반으로 인하여 갑자기 끝났습니다. 나답은 왕위를 계승하게 될 그의 모든 친척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죄로”(왕상 15:29, 30) 인함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여로보암의 집은 망하였으나 거의 사십 년 동안 그 뒤를 이은 통치자들 곧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는 계속하여 그 같은 치명적인 행악의 길을 따랐습니다.
이스라엘이 배도하던 기간의 대부분을 유다 나라에서는 아사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아사가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상을 찍고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대하 14:2~5).
아사의 신앙은 구스 사람 세라가 그의 나라를 침입했을 때 심한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이 같은 위기를 당한 아사는 “견고한 성읍을 유다에” 건축하였으나 그것들을 의지하지 아니하였고 또 그가 주의 깊이 훈련한 “큰 용사”들도 의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왕은 그분의 이름을 인해 이스라엘을 위하여 놀라운 구원을 이루셨던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군대를 전쟁 마당에 배치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27. 하나님과의 연합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아사와 세라의 양 군대가 서로 정면으로 대치한 그 시간은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시험과 시련의 때였습니다. 모든 죄를 자복했는가? 유다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했는가? 지도자들의 심중에는 이런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적 견해로 볼 때 애굽에서 온 막대한 군사들은 그들 앞에 있는 것을 모두 휩쓸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평화로운 시절에도 오락과 향락에 빠지지 아니하고 비상시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을 위하여 군대를 훈련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의 군사가 숫자에 있어서는 원수보다 적었을지라도 그가 신뢰하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은 약하여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번영의 날에 여호와를 찾은 왕은 이제 역경의 날에도 여호와를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탄원은 그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는 탄원하기를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대하 14:11) 하였습니다.
아사의 기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가 마땅히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우리는 생애의 투쟁에서 의를 전적으로 반대하는 악의 대리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인간에게 있지 아니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충만한 믿음의 보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을 인간의 노력과 연합시키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갑옷을 입고 모든 원수를 이길 수 있습니다.

 

28. 승리를 위한 조건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단 10:19).

전쟁에 승리할 수 있는 조건과 사람의 군대를 의지하는 대신 하나님을 의지한 아사왕의 신앙은 현저하게 보상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을 아사와 유다 사람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구스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 좇는 자가 구스 사람을 쫓아 그랄까지 이르매…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대하 14:12, 13).
유다와 베냐민의 군대가 승리를 얻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신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는 상급이 있음이니라”(대하 15:1, 2, 7)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 크게 용기를 얻은 아사는 곧 유다에서 두 번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아사는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 제하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대하 15:8)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으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서 나와서 저희 중에 우거하는 자를 모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더라 아사왕 십 오년 삼 월에 저희가 예루살렘에 모이고 그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과 양 칠천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대하 15:9~12),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대하 15:15).

 

29. 의로운 자의 과오

“의인이 나를 칠찌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찌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시 141:5).

아사의 충성스러운 봉사의 긴 기록은 안타깝게도 그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데 실패함으로 생긴 과오로 인해 더럽혀졌습니다. 한 번은 이스라엘 왕이 유다 나라에 쳐들어와 예루살렘에서 오 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요새 라마를 포위하였습니다. 그때 아사는 아람 왕 벤하닷과 동맹을 맺고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아사가 어려운 때에 하나님만을 의지하기에 실패하자 선지자 하나니가 경고의 메시지를 가지고 그의 앞에 나타나 신랄한 책망을 했습니다.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한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대하 16:7~9). 그러나 자기가 범한 과오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비하게 하는 대신에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대하 16:10).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의 증거 되는 삶을 살았던 아사 왕은 그의 교만함과 자고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성경은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잠 9:8)는 교훈을 줍니다.
아사는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 16:12). 왕이 그의 치세 사십일 년에 죽으니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30. 아합 왕의 배도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 되었음이라 저가…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왕상 21:25, 26).

아사가 죽기 이 년 전부터 아합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시초부터 그의 통치는 이상하고 무서운 배도로 특징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사마리아의 창건자 오므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였으나 아합의 죄는 그보다 더 컸습니다. 아합은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왕상 16:33, 31)었습니다. 벧엘과 단에서 계속된 종교적 예배의 형태를 장려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아합은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버리고 바알 예배를 선택함으로 대담하게 백성들을 가장 추악한 우상숭배로 인도하였습니다.
아합은 “시돈 사람의 왕”이요, 바알의 대제사장인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왕상 16:31, 32)았습니다. 아합은 수도에 바알 숭배를 끌어들였을 뿐 아니라 이세벨의 지도 아래 많은 “산당”에 이교의 제단들을 세웠고 그 부근 수풀의 그늘 속에서는 제사장들과 이 음란한 형태의 우상숭배에 관련된 자들이 해로운 감화를 끼침으로 인해 마침내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도덕적 능력이 약했습니다. 그러나 단호한 성격과 적극적인 기질을 가진 우상숭배 하는 여자와의 결혼이 아합 자신과 국가에 커다란 재난을 가져왔습니다. 원칙도 없고 의를 행하는 데 대해 높은 표준도 갖지 못한 그의 성품은 쉽게 이세벨의 단호한 정신에 의해 꼴 지워갔습니다. 그의 이기적 성질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물론 선민의 수호자요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의무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31. 흑암의 시대

“유다의 죄는…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단뿔에 새겨졌거늘 그들의 자녀가…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렘 17:1, 2)

아합 통치의 감화 아래서 이스라엘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갔고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패하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있었으므로 이제는 널리 퍼지고 있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에 반대해서 감히 저희 생명을 내걸고 공공연히 서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배도의 어두운 그림자가 온 땅을 덮었으며 바알과 아스다롯의 조상은 어디서든지 볼 수 있었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예배하는 우상의 신전과 신에게 바친 숲들은 늘어만 갔습니다. 거짓 신들에게 드리는 제물들의 연기로 인해 공기는 오염되고 해와 달과 별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이교 사제들의 술 취한 부르짖음이 산과 계곡에 울려 퍼졌습니다.
또한 이세벨과 그의 불경한 사제들의 감화로 인해 백성들은 세워 놓은 우상들이 그들의 신비스러운 능력으로 땅과 불과 물과 같은 자연력을 지배하고 있는 신들이라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주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아니하고 바알과 아스다롯의 은혜로 돌리게 되면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해와 하늘의 구름과 자연의 모든 힘을 지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충실한 사자들을 통하여 배도한 왕과 온 백성에게 거듭거듭 경고를 보내셨으나 이러한 책망의 말씀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영감을 받은 사자(使者)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유일하게 하나님이 되실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였으나 헛된 일이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율법들을 높였으나 허사였습니다. 우상숭배의 호화스러운 허식과 매혹적인 의식에 사로잡힌 백성들은 왕과 조신들의 본을 따라 흥분시키고 타락시키는 음탕한 예배의 쾌락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하나님과 그분께 드리는 예배를 거절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그처럼 은혜롭게 주신 진리의 빛은 흑암이 되었고 정금은 점차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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