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지배하는 자들 [신앙기사 3부]

3부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

 

 

혈통적 유대인

 

그렇다면 오늘날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들이 정말 유대인들일까? 현재 이스라엘에 들어간 유대인들은 혈통상 유대인이 아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유대인이 말이 되는가? 디아스포라가 된 유대인들은 여러 혈통이 섞였기 때문에 현재는 순수 유대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이 2천 년 전 자기 조상들이 살던 땅이라고 현지 원주민을 쫓아내고 차지한 것이 지금의 이스라엘이다. 사실 유전학적으로 2천 년 전 유대인과 가장 흡사한 사람은 현재 아랍인들이다. 원래 아랍인들은 야곱의 형 에서나, 이삭의 동생 이스마엘의 후손이기 때문에 한 혈통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동안 아랍인들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유대인들을 형제라 하며 대체적으로 관용을 베풀었으나 현대 이스라엘은 아랍권 나라들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다. 중세 시대 유대인들은 기독교 아래서 사는 것보다 아랍인들과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이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피를 나눈 이웃과 전쟁을 하는 이들은 진짜 유대인일까?

 

 

지배자들

 

유대인이 약자인 것처럼,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약자가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강자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엘리트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다. 유명한 유대인들을 잠깐 살펴보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Chistopher Columbus),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Michel de Nostradamus),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독일의 공산주의 사상가 칼 막스(Karl Marx), 소련 공산당의 시작 레닌(Vladimir Ilich Lenin), 국제 금융의 시조이며 비밀조직의 엘리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Sigmund Freud),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토마스 에디슨, 록펠러,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금융 투자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Dominique Strauss Kahn), 빌게이츠, 엘빈 토플러, 미국 금융은 물론 세계금융을 지배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 FRB 초대(初代) 의장인 찰스 해믈린(Charles Hamlin)을 비롯해 18년간 FRB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벤 버냉키(Ben Shalom Burnanke) 등 역대 의장의 절반 가량이 유대인이다.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 커뮤니티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크버그(Mark Zukerberg), 세계 제1의 인터넷 기업 구글(Google)의 창업자도 유대인이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계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의 독무대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 앤드류 가필드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와 데이비드 베컴도 유대인이다.
USB 플래시 드라이브, 의료계에 혁신을 일으킨 필캠(PillCam), GPS 추적장치, 내비게이션, MP3 등 모두 유대인이 만든 것이다. 혹자는 유대인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두 가지는 기독교와 공산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이 두 이념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로마 카톨릭도 기독교에 포함한다면 공산주의보다 기독교가 인류 역사 전대미문의 학살을 주도한 종교집단이다.
미국 최대 금융회사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전 재무 장관 스티브 므누신, 트럼프의 사위 쿠슈너도 유대인이고, 오바마 재임 당시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정치 참모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미 대법원 판사 9명 중 3명이 유대인이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인을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자가 넘치기 때문인데 이들 대부분은 미국 유대인이다. 미국 유대인들의 인구는 약 650만 명이고 전 세계 유대인은 크게 잡아도 170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얼마 되지 않은 숫자의 유대인이 미국과 세계를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 많은 유대 인사 중 아직 언급하지 않은 인물이 있는데, 바로 엘리트의 핵심 실세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미 국무장관이다. 헨리 키신저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 결사체로 불리는 미국의 외교평의회(CFR), 유럽과 북미지역의 엘리트 모임인 빌더버그(Bilderberg), 북미·유럽·아시아의 엘리트로 구성된 삼변회(TC·Trilateral Commission) 이 3개 기구 모두에 참여하는 인물이고 신세계질서의 큰 흐름을 주도적으로 기획·설계하는 국제 엘리트의 수장 격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12월 한국은 혹독한 IMF 사태를 겪었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외환위기는 동남아를 위시한 신흥공업국의 경제를 국제 유대 자본에 예속시키려는 국제 유대 자본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유대계 금융투자가인 소로스를 이 음모 수행의 주범으로 몰아세웠다. 때문에 그는 반유대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IMF가 내놓은 처방과는 정반대로 변동환율제(각국 통화의 가치, 즉 환율을 고정하지 않고 시장의 추세에 따라 변동하는 제도)를 고정환율제(고정시킨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제도)로 바꾸고 이를 밀고 나가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의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반대로 한국과 태국은 모두 IMF가 제시한 강압적이고 불평등한 처방을 전면 수락했고, 그 결과 IMF 사태 이후 한국의 시중은행 거의 모두가 평균 50%가 넘는 외국자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경제는 소수 금융가들의 자본에 지탱하고 있으며, 그들이 자본을 회수하면 한국 경제 붕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요 사건들의 이면에는 유대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 발 금융위기, 유가 폭등, 곡물파동, 외환시세의 변동, 국제 신용평가, 중동의 전쟁 위험, 이란 핵문제 등 오늘날 국제적 이슈들을 잘 살펴보면 유대인의 존재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홀로코스트 산업

 

세계 언론은 민중을 길들이고 있다. 노르만 핀켈슈타인이 2000년 6월에 출간한 “홀로코스트 산업: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에서 홀로코스트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고 있는 유대인 엘리트 중심의 여러 단체와 기관들을 고발했다. 그의 부모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랄프 쇤만이 지은 “잔인한 이스라엘”은 엘리트 유대인들이 오히려 나치와 협력하여 유대인 학살을 공모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3년 동안 아우슈비츠에서 수백만이 죽어가는데 아무도 몰랐을까?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엘리트 유대인들은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들이 유대인 구출에 적극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홀로코스트가 있을 때,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은 이미 세계의 실세였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홀로코스트를 통해 얻어내려고 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홀로코스트를 통해 이루어진 가장 큰 수확은 시오니즘이 촉발되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나라가 없어서 이렇게 당하는구나 우리 땅을 되찾자!” 그래서 2차 대전 후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1948년 전쟁으로 독립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동에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홀로코스트가 단순히 히틀러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악의 순환 고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아랍인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남녀노소 상관없이 팔레스타인 마을에 무차별 폭격을 퍼붓는데, 그것이 모두 법적으로 허용된다. UN과 미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2천 년 동안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을 세웠는데, 사실상 그것은 팔레스타인에 미군 기지를 세운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은 나치보다 뒤지지 않는다. 오늘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문대에 끌려간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각종 고문을 지금도 자행하고 있다. 나치에게 당한 유대인들이 아랍인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 “잔인한 이스라엘”이라는 책을 보면 마치 카톨릭이 종교재판소에서 개신교인을 고문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1967년 6월 5일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벌어진 이른바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영토를 완전히 차지하면서 이젠 마음대로 중동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부터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종교 사상으로 기독교를 혼미케 하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영원한 피해자들의 안식처’로 그리면서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모든 행위를 옹호하게 된 것이다. 한국 기독교를 비롯 세계 기독교가 성경을 오해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모든 예언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 이스라엘의 건립은 성경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 세계주의자들과 교황청의 작품임을 알아야 한다.
아무 힘도 없는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이 전쟁인가? 그것은 폭력이다. 유대인의 원통한 죽음을 잊지 말라고 끊임없이 홀로코스트와 나치의 만행을 세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데, 반면에 이스라엘이 나치처럼 팔레스타인에서 여자와 어린이들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언론은 이슬람 무장단체에 대해서만 다루지 이스라엘의 실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70년 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들의 죽음은 그렇게도 슬퍼하면서 왜 지금 이 순간에도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고 있는 살아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은 침묵하는가? 유대인들은 나치에게 당한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다. 본인들이 핍박받았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죽여도 괜찮다는 면책특권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빼앗은 다음 그들을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인 가자지구에 가둬 놓았다.
악의 순환고리를 끊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널리 가르쳐지고 있는 세대주의 예언의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신학은 갈등과 테러와 전쟁을 옹호하는 잘못된 신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성경의 예언도 아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도들의 가르침도 수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이방 민족을 향해 복음을 가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순수하게 출발했던 기독교가 변질되어 지난 2천 년 동안 예수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고문하고 핍박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그들을 조롱하는 “예수님 찬양” 소리를 들었다.
이제 유대인들의 복수가 시작됐다. 계시록 17장과 18장에 보면 교황청은 땅의 왕들과 상고들, 즉 정치세력과 경제세력의 손을 잡는다고 되어 있다. 전 세계 정치와 경제를 누가 다스리고 있는가? 결국 교황청은 엘리트 집단인 유대 세력과 손을 잡는다.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이 같다. 그것은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처단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은 교황청의 작품이다. 환란이 올 것이다. 짐승의 표가 우리에게 강요되고,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는 이슈가 마지막 시대 최대의 쟁점이 되는 날이 온다. 그 일을 통해 유대인은 지난 2천 년간 당해왔던 예수에 대한 복수를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게 된다.
그러나 환난과 전쟁에도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핍박이 극심했던 초대교회에서도, 교황청이 다스리던 중세 암흑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살아남아 오늘 우리의 손에까지 진리가 전수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최후의 대 전쟁에서도 무너진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오해된 하나님의 성품을 옹호하는 최후의 승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다.
이 세상 역사는 참 어둡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진리는 오늘도 우리 가슴에 비취고 있다. 깨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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