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과 기독교의 전쟁 [신앙기사 2부]

제2부 유대인과 기독교의 전쟁

 

 

왜 예수를 증오할까?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예수 믿는 유대인을 증오하고 죽인다. 그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에게 권력이 있다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너희를 못 박을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이교도적인 사상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한 사람은 예수 말고도 많이 있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너희는 신으로 믿고 있다.”
2천 년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사도 바울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더니,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미워할 뿐만 아니라 증오하고 있다. 그리고 AD 132년 유대 2차 전쟁부터 정통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을 향한 증오가 더욱 격심 해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바르 코크바는 메시아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로마 군대를 격파하고 승승장구하던 유대 혁명군 대장이었다. 이러한 전쟁영웅에 메시아라는 칭호를 주게 되었고, 모든 유대인은 그를 메시아로 믿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켰으니 많은 사람이 메시아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들도 그 군대에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그들을 나사렛파라고 불렀는데, 나사렛파였던 그들은 바르 코크바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기에 결국 군대를 떠났다. 전력에 누수가 생기는 이때, 때마침 로마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135년 바르 코크바는 패전을 거듭하다가 자살하게 되고, 랍비 아퀴바는 유대인들을 선동한 죄로 체포되어 처형당했으며, 이로써 유대인 전체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어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패전의 이유를 나사렛파, 즉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돌렸다. 그들의 군대 이탈이 패전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 유대인에 대한 정통 유대인의 증오심,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분노에 의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고 전 세계로 흩어져 나그네가 되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엔 기독교가 이미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핍박했던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전 세계 기독교인으로부터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으며 살게 되었다.

 

 

십자군

 

기원후 1000년 경이 되면서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이 이슬람 성지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서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성지 탈환을 위해 8차에 걸쳐 200여 년 동안 벌인 정복전쟁이 십자군 전쟁이다. 당시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뜻으로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했기 때문에 이 원정을 십자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십자군 전쟁이 생긴 이유는 서구 기독교, 즉 당시 교황청이 예루살렘을 이슬람으로부터 탈환하고, 자신의 세력과 지배를 확대하려고 벌인 전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도 예루살렘은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예루살렘! 샬롬의 도시, 평화의 도시가 어찌 이렇게 되었을까!
교황청은 십자군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면 그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천국이 보장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사람들이 종교를 맹신하게 되면 이렇게 비이성적인 주장에도 설득되어 넘어간다. 이 비루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이 있었다. 교황은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에 참여한 영주들은 넓은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있었다. 상인들은 전쟁을 통해 한몫 챙기려고 했고, 죄수들과 농민들은 약탈을 위해 참여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 양쪽 모두에서 성지로 여기는 중요한 장소였다.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얘기하고 기독교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한 곳이다. 당시 예루살렘은 셀주크 투르크족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1096년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되지만, 뺏고 뺏기는 전쟁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슬람 지도자 살라딘이 ‘지하드’, 즉 성전(聖戰)을 선언하고 1187년 되찾아온다. 십자군은 1차 원정만 빼고는 모두 실패했고 이후 이슬람에게서 예루살렘을 탈환하지 못했다.
교황, 왕, 영주들이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고 싸우면서 가는 곳마다 파괴와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은 전쟁을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한 전쟁이 십자군 전쟁이다. 마찬가지로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이나, 1967년 6일 전쟁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진 전쟁이 아니다. 현대판 십자군 전쟁이다. 비루한 목적을 가지고 비루한 엘리트들에 의해 치러진 전쟁이지 성경 예언의 성취가 아니다.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무슬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거기 살고 있는 유대인도 발견했다. 기독교인이었던 십자군들은 유대인을 향한 복수의 정신으로, 유대인을 모아 건물 안에 들여보낸 다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못을 박고 불을 질렀다. 유대인들이 불에 타 죽으며 마지막으로 본 것이 무엇이었는가? 예루살렘을 뒤덮은 십자가 깃발을 보며, 십자군들의 갑옷에 그려진 십자가를 보며 죽어갔다. 십자군은 죽어가는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찬양하며 춤을 추었다. 그때 당시 불에 타 죽은 유대인의 숫자를 약 29만 9천명으로 추산하는데, 그렇게 유대인들은 예수님 찬양 소리를 들어가며 죽어갔다.
죽음에서 살아난 유대인들은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 당했다. 침례를 준다고 머리채를 잡고 물에 집어넣었고, 물에서 나오지 못하게 발로 짓이기며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카톨릭 교도들의 예루살렘에서의 만행은 곧 디아스포라에게 전해졌다. 그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로마 군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되었다. 십자군이 예루살렘 탈환 후 예루살렘을 지키는 군대를 조직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프리메이슨의 모태가 된 템플기사단(Knight of Temple)이다.

 

 

기독교인들의 유대인 박해

 

반유대주의는 독일에서만 극심했던 것이 아니다. 중세부터 카톨릭 신자가 대부분이었던 유럽인들은 예수를 죽인 유대인을 증오했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면서 말한 ‘우리의 머리와 자손들의 머리에 핏값을 돌리라’는 이 맹세를 기억하고 그대로 갚아주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런 광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중세 유대인의 처지는 참으로 비참했다.
중세 시대부터 유대인들은 게토라고 불리는 특수한 구역에서만 살았는데,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게토가 철거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 때 프랑스에서는 경찰과 헌병들이 나치에 적극 가담하여 프랑스에 있는 유대인을 일제히 단속하여 나치에 넘겨주었고, 네덜란드와 폴란드에서도 유대인 처리에 협력했다. 반유대주의는 중세부터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의 공공연한 분위기였다.

 

 

증오의 역사

 

유대인에 대한 적대 감정이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306년 엘비라(Elvira) 종교회의: 기독교인들이 유대인과 어울리는 것을 금하고, 기독교인 지역에 유대인들이 장사하는 것 등을 금지.
535년 클레르몽 회의: 유대인은 공직을 맡을 수 없다.
589년 3차 톨레도 종교회의: 유대인을 이교도로 분류하고 이교도와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
692년 트룰린 회의: 기독교 의사는 유대인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
1179년 3차 라테란 종교회의: 유대인은 기독교인을 상대로 법원에 고소하거나 증언할 수 없다.
1215년 4차 라테란 종교회의: 유대인은 악마의 뿔을 상징하는 노란색 모자를 쓰고 노란 마크를 가슴에 붙이게 하였다.
1434년 바젤 회의: 유대인은 학위를 받을 수 없다.
12세기 영국에서 추방
14세기 프랑스에서 추방
15세기 스페인에서 추방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추방

중세에 흑사병이 한창 유행할 때는 불에 타 죽고 우물에 던져지는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왜 그랬을까? 유대인은 현대 과학이나 의학보다도 앞선 성경의 건강 원칙을 잘 이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이 이런 전염병의 주범이라고 몰리게 된 것이다.
계속되는 추방과 박해 속에 유대인이 믿을 만한 것은 오로지 돈과 자신의 능력뿐이었다. 유대인은 농토를 가질 수 없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장사나 고리대금업 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금융과 경제적 이익에 눈을 뜬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지금도 세계의 금융을 유대인이 좌우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경제적 감각은 점차 유럽 왕들과 제후들의 구미를 끌어당겼고, 유대인의 재능을 알아본 왕과 제후들은 재무를 관리하게 했으며, 유대인들은 그들의 금고를 채워주었다.
유대인은 어느 곳을 가든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영주나 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을 주고 보호를 사야 했는데, 나라 없이 떠도는 돈 많은 유대인은 손쉬운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국왕이나 영주들은 툭하면 유대인을 추방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고, 전염병이 돌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유대인이 의심을 받았다. 흉년이 들거나 재난이 생기면 배고프고 분노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연장을 들고 유대인에게 달려갔다. 그래서 유대인의 역사는 생존의 역사,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역사였다.
요나 선지자가 도주하려고 했던 다시스(Tarshish)라 불리는 스페인, AD 70년 유대멸망 전부터 스페인에는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살고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카톨릭이 국교가 되면서 6세기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이 지속되었는데,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사형에 처했다. 그러다가 1391년엔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대학살을 당하게 된다. 교황 식스투스 4세는 도미니크 수도사였던 토마스를 스페인 종교재판소장으로 임명했는데, 화형대의 연기가 끊이지 않게 한 인물로 악명을 남기고 있다. 카톨릭 사제들은 “유대인의 회당을 불사르고, 유대인들은 세례를 받게 하든지 아니면 죽게 하든지 해야 한다”라고 선동했다. 모든 시나고그(유대인 회당)는 파괴됐고, 문을 잠그고 있는 유대인들을 끄집어내어 살해하거나 강제로 세례를 받게 했다.
두려움을 느낀 많은 유대인은 기독교로 개종했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가리켜 콘베르소스(conversos), 즉 개종한 유대인들이라 불렀다. 당시 카톨릭교회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콘베르소스들에 대해서도 이들을 위장 개종자라 하여 대대적인 이단 처벌을 감행했다. 사실 스페인에서의 종교재판은 종교적인 이유보다도 유대인의 부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그들의 재산을 탐한 것이 종교재판의 숨은 동기였다는 역사의 평가가 있다. 카톨릭 신도들은 수도사들에게 부추김을 받고 피에 굶주린 욕망과 탐욕에 이끌렸다. 스페인 전 지역에서 유대 공동체들을 살해하고 약탈하는 것을 보면 종교적 열정에 따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때 스페인 종교재판에서 15년간 화형을 당한 유대인만 8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유대인들, 그러나 휴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1454년에 한 어린아이가 겁탈을 당하고 살해당했는데, 시신은 개들에 의해 찢어져 있었다. 이 사건의 범인은 틀림없이 유대인이라는 의혹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유대인들을 심문하고 고문하게 되었다. 수도사 알폰소 드 에스피나(Alfonso de Espina)는 유대인들이 어린아이의 심장을 파내고 불에 태웠다고 하면서 “믿음의 요새”(Fortalicium Fidei)라는 책을 출판하여 유대인들이 불결한 의식을 통해 기독교 어린이들을 죽이고, 우물에 독을 넣고, 기독교인들의 집을 불태우고, 성체를 더럽히고, 거룩한 형상들을 파괴하고, 또는 모든 불결한 관습들을 전파한다고 알렸다. 결국 1492년에 유대인을 완전히 추방하면서 남아있는 자들에게는 사형을 선언했다.
유대인들을 강제 개종시킬 때 그들은, “동정녀 마리아를 실제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믿고 고백할 것이며, 모든 창조물의 여왕으로 인정하라”라고 강요했다. 이러니 마리아든 예수든 그들에게는 끔찍한 이교 사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6세기 개신교가 탄생했지만, 스페인 종교재판소가 워낙 악명을 떨쳤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스페인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카톨릭만 유대인들을 핍박했는가? 루터는 1543년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Von den Juden und Ihren Luegen, 1543)”이라는 책에서, “어느 마귀가 이들을 이 시대에 여기까지 오게 했는가? 그들은 정말이지 우리나라에서 전염병 같고 페스트 같은 존재요, 완전 불행 자체이다. 그들은 마귀 그 자체”라고 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첫째, 회당과 학교를 불태울 것.
둘째, 그들의 집을 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울 것.
셋째, 모든 기도 책들과 탈무드 저작물을 압수할 것.
넷째, 랍비들을 죽음으로 위협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할 것.
다섯째, 여권과 여행특권을 유대인들에게 절대로 금할 것.
여섯째, 고리대금업을 금하게 하고, 그들의 모든 현찰과 금은 패물을 빼앗을 것.
일곱째, 눈썹에 땀이 흐르도록 일을 시킨 후에 빵을 먹게 할 것.

그러면서 유대인들에 대해 표현하기를, “쓸모없는 찌꺼기, 냄새나는 쓰레기, 유대인을 보면 악의 화신이 다닌다고 말하라. 그들은 지난 1400년 동안 피에 목마른 개였고, 모든 기독교인들의 살인자였다. 그것도 명백한 의도를 가진 살인자였다. 그들은 비밀리에 시냇물과 우물에 독을 타고,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갈기갈기 찢었다.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한다.”

 

 

홀로코스트

 

루터는 종교를 떠나서 독일의 사상가로 영향을 주는 인물이기에 루터의 글과 사상은 후대에까지 전달되어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을 시작한 날을 바로 루터의 생일로 잡았다. 히틀러는 그의 책 “나의 투쟁”에서 루터를 “위대한 전사, 위대한 개혁자 … 마틴 루터는 나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되었다”라고 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당시 율리우스 슈트라이허는 “나는 마틴 루터가 하지 않은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나에게 행하라고 한 대로 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히틀러에 의해 가스실에서 학살당할 때 유대인들은 교황청에 아이들의 생명이라도 살려 달라고 편지를 보냈지만 응답받지 못했고 결국은 아이들만 150만 명이 죽었다.
유대인들은 십자군, 종교재판, 교황, 마리아, 히틀러, 루터, 심지어 예수님까지 다 하나의 기독교로 이해하고 있다. 2천 년 동안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왔으므로 그들은 카톨릭과 기독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증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반격, 유대인들의 기독교 박해

 

현재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정통파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숨어서 예배를 드린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테러를 당하고 예배 장소가 불에 타기도 한다. 찬송과 기도 소리가 밖에 나갈까 봐 망을 보면서 두려워하며 예배를 드린다. 마치 2천 년 전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요 20:19)라는 표현대로, 그렇게 숨어 예배를 드린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다. 자녀가 예수를 믿는다고 알려지면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고, 주부들은 마트에서 물건을 살 수가 없다.

유대인들이 현상수배범처럼 포스터를 만들어서 “유대교를 안 믿고 이방 종교를 믿는 민족의 배신자다. 이 땅에서 쫓아내야 한다”라고 곳곳마다 뿌리고 있다. 옷을 살 수도 없고,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도 진료를 해주지 않고, 약국에서 약을 살 수도 없다.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면, 정통 유대인들이 떼로 몰려와 난동을 피우기 때문에, 산에서 숨어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한번은 유대 명절인 부림절에 그리스도인 유대인 집 앞에 선물상자를 두고 갔는데, 소년이 그걸 풀자 폭탄이 터졌다.
밤중에 유대 기독교인 집에 정통파 유대인들이 들이닥쳤다. 열세 살 된 아들과 아버지를 납치해서 2시간 동안 어둠 속을 향해 달렸다. 차가 멈춘 곳은 이스라엘의 국경. 이스라엘 모든 국경은 철조망으로 돼 있는데, 그 철조망은 고압전류가 흐른다. 그 앞에 차가 멈추고 둘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아이를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향해 걸어가라고 했고, 아버지를 끌어내려 자갈밭에 무릎을 꿇게 했다. 아버지를 에워싸고 협박을 한다. “네가 예수를 믿고 유대교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네 아들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너의 잘못을 인정하고 당신이 믿는 예수는 없었던 사람이고, 네가 믿은 신앙은 가짜라고 고백한다면 아들을 살려주겠다. 어떻게 하겠느냐?”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아버지가 울면서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뭔가 홀렸습니다. 신약성경은 모두 가짜입니다. 다시는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던 아들이 멈춰 섰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캄캄한 밤중에 아들이 소리친다. “아버지 지난 세월 동안 읽어 주셨던 신약성경은 모두 가짜였나요? 예수님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었나요? 저는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 이 순간 거짓말을 하고 계십니다. 차라리 저를 버리시더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곳도 아닌 이스라엘에서 예수를 믿는 이유로 핍박당하는 많은 유대 기독교인들이 고통 당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중세 시대가 아니고, 현재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칼에 찔리고, 돌에 맞고, 불에 타고, 폭탄 테러를 당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던 유대인. 사도 바울을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시비 걸고 피곤하게 했던 유대인. 오늘도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을 그렇게 따라다니며 그때보다 더 심각하게 핍박하는 유대인.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광란과 살인, 그 아픈 역사가 사도 시대와 중세 시대로 끝이 아니라 오늘도 진행되고 있으며, 곧 우리에게도 이르러 올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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