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267호 매일의 만나

열한시 267호 매일의 만나

 

1. 믿음으로 얻는 구원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롬 10:1)

이스라엘 진영에서 불뱀에 물려 죽는 자들이 여기저기 생겨나자 그제야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나아와 죄를 고백하고 탄원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모세를 그들의 가장 큰 원수이며 그들의 모든 고통과 재난의 원인이라고 비난하였지만 이제 그들은 그 비난이 잘못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어려움이 닥쳐오자마자 그들은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모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산 뱀과 비슷하게 구리로 뱀을 만들어 백성 중에 높이 세워 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물린 자들이 그것을 바라보면 구원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했고 물린 자들은 누구나 다 구리뱀을 쳐다보면 살리라는 기쁜 소식이 온 진영에 전해졌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이 이미 죽었고, 모세가 장대에 구리뱀을 달아 올렸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낫는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같은 불신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원의 길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형제와 자매들은 고통 가운데서 죽어가는 친지들의 희미한 눈망울들을 구리뱀에게로 향하도록 도와주려고 몹시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힘없이 죽어가는 자들일지라도 한번 쳐다보기만 하면 완전히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구리로 만든 뱀에게는 그것을 쳐다보는 자들을 그처럼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치료하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단순한 방법으로 백성들은 그러한 고통이 그들의 죄로 인하여 이르러 왔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동안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보증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장대에 달리신 그리스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

하나님께서 구리뱀을 들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대한 교훈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불뱀 같은 치명적인 독소의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을 치유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원의 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하여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었고, 그 뱀을 바라봄으로 그들의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뱀 그 자체에 무슨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리스도의 상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어야 할 필요성이 그들의 마음에 깨우쳐졌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왔고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죄를 위한 충분한 속죄가 이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 제물들이 예표 하는 장차 오실 구속주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이 드리는 희생 제물 자체는 구리뱀처럼 아무 능력도 없고 효력도 없지만 구리뱀과 같이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크신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할 것임을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계 12:9) 자의 치명적인 독아(毒牙)에 물렸습니다. 죄로 상징된 불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살기 위해 구리뱀을 쳐다보는 것은 믿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들의 회복을 위하여 준비된 방법을 의지하여 생명을 구원했습니다. 그처럼 오늘날의 죄인들도 그리스도를 쳐다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죄인들은 속죄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용서받는 것입니다. 활력이 없고 생명이 없는 상징물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회개하는 죄인을 고칠 수 있는 능력과 효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3. 십자가를 바라봄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죄인들은 자기 스스로 구원함을 받을 수 없는 대신 구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용서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나 믿음을 행사하는 능력은 우리의 것입니다. 믿음은 영혼이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은혜와 자비를 붙잡는 손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의(義) 밖에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은혜스러운 언약의 축복 중 단 한 가지도 받을 권리를 주지 못합니다. 이 축복을 얻으려고 오랫동안 갈망하고 노력한 자들이 많으나 받지 못함은 그들이 스스로 이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무슨 일을 해보려는 생각을 품은 까닭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리고 예수님을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구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가 우리를 구원하리라고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십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로써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할 때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마치 자기 자신을 구원할 능력을 갖춘 것처럼,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일을 하기에 무력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칭의(稱義)와 우리의 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많음을 알게 될 때 낙심하거나, 우리에게 구주가 없는 것처럼 두려워하거나, 구주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실 생각이 없는 것처럼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력한 우리에게 그분께 나아와 구원함을 얻도록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초청에 응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바라보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4. 순종함으로 나타나는 믿음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불뱀에 물린 자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으나 계속하여 그들의 상처와 고통과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슬퍼만 하다가 그들의 기력이 쇠하고 그들의 눈은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인식한다면 모든 힘을 우리의 행위를 슬퍼하는 일에 소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의 상태가 무력함을 깨달아야 하는 동시에 절대 실망하지 말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를 의지하여야 합니다. “바라보고 살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분께 나오는 자는 모두 구원하시겠다는 보증을 주셨습니다. 비록 복음을 받아야 할 무수한 사람들이 그분께서 제공하신 은혜를 거절할지라도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는 한 사람도 멸망하도록 버려둔 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구속의 경륜의 신비가 그들에게 분명해질 때까지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수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효과를 체험한 사실을 알면서도 믿음으로 바라보기를 거절합니다. 많은 사람은 그들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이유와 증거를 찾아내기 위하여 철학의 미로에서 방황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증거는 거절합니다. 그들은 의의 태양이 빛을 발하는 이유를 깨달을 때까지 그 빛 가운데서 행하기를 거절합니다. 이런 노선을 고집하는 자들은 아무도 진리의 지식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주시지만 의심할 여지를 모두 제거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마음은 흑암 중에 처하게 됩니다. 만일 뱀에게 물린 자들이 쳐다보기를 동의하기 전에 멈추어 서서 의심과 의문을 일으켰더라면 그들은 멸망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쳐다보는 일이 우리의 의무이며 믿음으로 쳐다봄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5. 모두에게 공평한 하나님의 자비하심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이스라엘 백성들이 북쪽으로 전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나라에 도달하자 모세는 우호적인 메시지를 수도에 있는 아모리 왕 시혼에게 보냈으나 이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하는 회신이 왔습니다. 곧 모든 아모리 사람들의 군대가 소집되었으며 이 무서운 군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는데 이는 그들이 잘 무장하고 훈련된 군대와 싸우기에는 그 준비가 너무나 빈약했고, 전쟁의 기술에서도 그들의 원수들이 유리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은 즉시 망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을 격려하면서 전쟁을 위하여 인간의 힘으로 준비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도록 백성들에게 명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은즉 비로소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얻으라”(신 2:24)고 하셨습니다.
아모리 사람들은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여 이스라엘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멸절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계시 가운데 자기의 후손 이스라엘 자손이 이방 나라에서 4백 년 동안 나그네가 되리라는 것을 보았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창 15:16)는 약속을 주셨는데 원래 아모리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으며 큰 죄를 범하였으므로 전멸되는 것이 당연했으나 하나님께서 400년 동안이나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천지의 창조주시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란 분명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실 때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을 잘 알고 있었고 충분한 증거를 줬기 때문에 자원하여 우상숭배를 버리고 방종에서 돌아서기를 원했더라면 그들은 진리를 알 수 있었을 것이지만 아모리인들은 빛을 거절하고 그들의 우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6. 여호와의 군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행 18:10)

아모리의 영토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희망과 용기가 충천해져서 쉬지 않고 전진하여 더욱더 북쪽으로 나아가 마침내 그들의 용기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시험하기에 적합한 나라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 앞에는 “성읍이 육십이니…높은 성벽이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신 3:4, 5)한 강력하고 인구가 많은 바산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주민들은 거인의 후예로서 거대한 체구와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난폭하고 잔인하여 인근 모든 민족이 두려워하였습니다. 한편 그 나라의 왕 옥은 거인의 나라에서도 체구와 용맹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했습니다.
그러나 구름기둥은 앞으로 이동하였고 그것의 지도를 따라 히브리 대군은 거인 왕이 기다리고 있는 에드레이로 진군하였습니다. 옥은 가장 지혜롭게 전투지를 선택하였습니다. 이곳은 협소하고 가파르고 험한 오르막길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왕은 성공을 확신하고 대군을 거느리고 평지를 향해 내려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많은 사람은 자기들의 군병들보다 키가 엄청나게 큰 거인과 거인 왕의 당당한 자세와 그를 둘러싼 대군과 난공불락인 것처럼 보이는 요새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복병들이 있는 그곳을 바라보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태연자약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바산 왕에 관하여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 모든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신 3:2)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지도자 모세의 침착한 신앙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고취시켰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에 의지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거인인 왕과 그 군대는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즉시 온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죄악과 추악한 우상숭배에 빠졌던 이방인들은 그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7.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길르앗과 바산의 정복에서 많은 사람들은 약 40년 전에 가데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광야를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한 사건을 회상하였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관한 정탐꾼들의 보고가 많은 점에서 옳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도성들의 성벽은 매우 거대하고 그곳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에 비하면 히브리인들은 난쟁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므로 치명적인 과오를 범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바로 이 불신이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들을 막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처음에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준비할 때는 그 모든 사정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보다 훨씬 어려움이 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음성을 순종하면 그 땅 거민들을 몰아내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 모든 민족은 일반적으로 공포심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진로를 방해할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전진하라고 명하신 지금에 와서는 경계 태세를 갖춘 강력한 원수를 향해 진격해야 하고 그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잘 훈련된 대군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옥과 시혼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전진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의 앞길에 놓인 어려움은 한층 더 커졌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그분의 백성을 연단하시기 위해 시험하십니다. 만일 그들이 그 시험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다시 동일한 지점에 두시어 그들로 두 번째 시험을 받게 하십니다. 그때에는 그 시험이 전보다 훨씬 격렬할 것이고 그들이 시험을 견딜 때까지 이 일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반역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그분의 빛을 거두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의 증인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사 43:10)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에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들의 군대가 전투에 나아가 패배를 당하고 무수한 사람이 죽었던 사실을 회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임명하신 지도자 모세도 없이 나아갔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 기둥과 법궤도 없이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옥과 시혼과의 싸움에서는 모세가 그들과 함께 있어 희망과 믿음의 말로써 저희 마음을 굳세게 하였고, 구름 기둥에 싸인 하나님의 아들이 길을 인도하시고 거룩한 법궤가 대군과 동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이 경험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하며 우리가 그분의 요구를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옛날 그분의 백성에게 행하신 바와 같은 현저한 방법으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의무의 길을 따르고자 애쓰는 자들에게는 때때로 의심과 불신이 엄습해 올 것입니다. 때때로 그들의 전도가 거의 이겨내기 어려운 장애물로 가로막힐 때 낙담하고 절망에 빠질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의 의무를 다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공포에 몰아넣는 엄청나게 무서워 보이는 고난들이,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순종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때는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행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약속은 금은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참된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9. 모압과 미디안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시 109:17)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산을 정복한 후에 요단강으로 돌아와 즉각적으로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여리고 평원 맞은편 하구 곁에 진을 쳤습니다. 그들은 바로 모압의 변경에 있었으므로 모압인들은 침략자들이 가까이 접근한 것을 알고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모압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으나 이웃 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매우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바라보았습니다. 모압인들은 아모리인들 앞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모리인들은 히브리인들에게 정복당하여 아모리인들이 모압 사람들에게서 억지로 빼앗아간 영토가 이제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또 바산 대군은 구름기둥에 둘러싸인 신비스러운 능력 앞에 항복하여 히브리인들은 이제 거인의 성채들을 점령하였기 때문에 모압인들은 감히 히브리인에게 모험적인 공격을 가하지 못했습니다. 무력에 호소하는 일은 히브리인을 위하여 싸우시는 초자연적 능력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압인들은 바로가 했던 것처럼 마술의 능력을 빌어 하나님의 사업을 저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를 내리고자 했습니다.
모압 백성들은 국민성과 종교의 양면에 있어서 미디안인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같은 민족들의 공포심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대적하려는 그의 계획에 그들의 협력을 얻기 위하여 미디안 장로들에게 동맹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울러 메소포타미아 사람 발람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모압 땅에까지 퍼져 있어서 모압 왕은 발람을 불러 그의 도움을 얻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의 사자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발람의 예언과 요술을 얻어내기 위하여 보내졌으며 그들은 발람을 찾아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민 22:5, 6)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10. 거짓 선지자 발람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부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미 6:5)

일찍이 발람은 선량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배도하고 탐욕에 빠져 있으면서도 여전히 지극히 높으신 분의 종이라고 공언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사자들이 그에게 온 용건을 말했을 때에 그는 발락의 보상을 거절하고 사신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자기의 의무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위험하게도 감히 유혹과 장난하려고 하였으며, 여호와의 권고를 듣기까지는 아무런 결정적인 대답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사자들에게 그 밤을 자기와 함께 유하도록 간청하였습니다. 발람은 자기의 저주가 이스라엘을 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편에 계시며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이 지상이나 지옥의 어떠한 반대 세력도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의 교만심은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민 22:6) 것이라는 사신들의 말에 우쭐해졌습니다. 아울러 매우 값진 뇌물과 장래의 부귀영달은 그의 탐욕을 자극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내놓은 보물들을 탐욕스럽게 받아들이고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뜻을 엄격히 순종할 것을 공언하면서도 발락의 소원을 채워 주고자 하였습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을 자니라”(민 22:12)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발람은 마지못해 사자들을 돌려보냈으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바를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득과 명예에 대한 환상이 돌연히 소실되었기 때문에 화가 난 발람은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민 22:13)고 부르짖었습니다.

 

11. 불의의 삯을 사랑한 선지자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벧후 2:15, 16)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라고 선언하신 탐욕의 죄는 한때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발람을 기회주의자로 만들었으며 이 한 가지 죄를 통하여 사탄은 그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유혹자는 사람들을 꾀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세속적 이득과 명예를 제시하면서 그들이 지나치게 양심적이므로 번영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은 엄격한 성실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혹을 받게 되며 한 번의 그릇된 발걸음은 그다음의 발걸음을 더욱 쉽게 만들고 더욱더 외람된 일을 행하게 합니다. 탐욕의 지배를 받고 권세욕에 빠지게 될 때는 가장 무서운 일들을 감행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세속적 이익을 얻기 위하여 한동안 엄격한 성실을 떠났다가 그 목적을 달성한 후에 그들이 원할 때는 다시 그들의 행로를 변경할 수 있다고 스스로 아첨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은 스스로 사탄의 올무에 빠지는 자들이며 그들은 좀처럼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됩니다.
왕은 발람이 더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해 지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발람에게 긴급하게 “청컨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민 22:16, 17)고 두 번째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발람은 두 번째 시험을 당했습니다. 발람은 사신들의 간청에 대하여 자신은 매우 양심적이며 성실하다고 공언하면서 아무리 많은 금과 은을 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행동은 하지 못한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왕의 요구에 응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미 자기에게 분명히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사자들에게 하나님께 다시 물어볼 터이니 하룻밤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처럼 설득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12.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그리스도인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 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시 81:11, 12)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어떻게든지 가려고 작정한 것을 보시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조건하에 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길을 선택한 후에 여호와의 재가를 얻으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노선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들의 의무가 그들의 기호와 일치했더라면 그것을 깨닫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무는 성경에 분명히 드러나 있거나 환경과 이성에 의하여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들이 그들의 욕망과 기호에 반대되는 까닭에 그들은 흔히 그것들을 제쳐 두고 그들의 의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표면상으로 그들은 크게 양심적이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기 위하여 오래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자신들의 욕망을 따르도록 허락하시고 그 결과를 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행치 않을 핑계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 보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겸손하고 순종하는 정신을 가지고 그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모압인들은 타락한 우상 숭배자들이었으나 저희가 받은 빛에 의하면 그들의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발람의 죄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공언했으므로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의하여 말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었습니다. 그런고로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말할 허락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메시지를 전해야 하였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13. 탐욕으로 눈먼 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행 22:9)

발람은 마침내 모압에서 온 사자들이 아침에 그를 부르러 오면 그들과 함께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발람이 지체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다시 거절당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고 더 그와 의논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발락의 요구에 따라갈 구실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보상을 받기로 결심하고 항상 타고 다니던 짐승을 타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허락이 취소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가 탐하던 보상을 잃지 않으려고 조급한 마음으로 열심히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민 22:22)자 그 짐승은 발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발람은 잔인하게 그 짐승을 때려 길로 되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담들로 막힌 협소한 곳에서 다시 천사가 나타나자 이를 본 그 짐승은 천사의 무서운 자태를 피하려고 주인의 발을 담벼락에 비비어 상처를 나게 했습니다. 발람은 눈이 어두워 그의 길을 하늘 천사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그의 길을 막고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대노하여 무자비하게 나귀를 때리고 억지로 전진하게 하였습니다.
다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서 전과같이 무서운 자태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가련한 짐승은 공포에 떨면서 꼼짝 못하고 섰다가 발람을 태운 채로 엎드려졌습니다. 발람은 말할 수 없이 분노하여 지팡이로 전보다 더 잔인하게 나귀를 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나귀의 입을 여시고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민 22:28)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여행이 방해받는 것을 보고 분노한 발람은 마치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그 짐승에게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라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민 22:29)고 말하였습니다.

 

14. 영적인 지각력이 없는 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고후 4:4)

이제 발람은 눈이 열려서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빼어 들고 서 있는 하나님의 천사를 통하여 자기가 그처럼 잔인하게 대했던 가련한 동물의 덕택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주장하고 “눈을 뜬 자요”, “전능자의 이상”을 본다고 선언한 자가 탐욕과 야망에 눈이 어두워 그의 나귀도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천사를 분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눈먼 자들은 금지된 길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며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그들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고 발람처럼 그들의 멸망을 막는 자들을 보고 오히려 화를 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발람에게 여행을 계속하도록 하셨으나 그가 말할 때는 하나님의 능력에 지배를 받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하셨으며 모압인들에게 히브리인들이 그분의 보호 아래 있다는 증거를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알지 못하고 있는지, 밤낮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얼마나 알지 못하는지 깨달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영적인 지각력을 통하여 그분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역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분별할 수만 있었더라면 그들의 마음에는 그분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그분의 위엄과 능력을 생각하고 경외심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발람은 히브리인들의 희생 제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그들이 드리는 제물을 능가하는 값진 예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축복도 받고 그의 악한 계획도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우상 숭배자인 모압인들의 감정이 발람의 마음을 지배하여 그의 지혜는 어리석게 되고 그의 영적 안목은 흐려졌습니다. 그는 사탄의 능력에 복종함으로 스스로 우매함을 자청하였습니다.

 

15. 참 이스라엘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심이니라”(딛 2:14)

왕은 모압의 귀족과 방백들과 함께 제단 곁에 서 있고 그 주위에는 결과를 보고자 열망하는 군중들이 모여 서서 모두가 선지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발람이 돌아왔고 백성들은 자기들이 미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신비스러운 능력을 영원히 무력하게 할 저주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발람은 자기가 이스라엘을 저주할 목적으로 왔노라고 고백하였지만 실제 그가 한 말은 그의 마음의 감정과는 정반대되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저주로 충만했었지만, 그는 축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람이 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볼 때 그들의 번영의 증거를 보고 크게 놀랐으며, 그는 이제까지 이스라엘은 미개하고 아무 조직도 없는 민족으로 무리를 지어 배회하면서 부근의 민족들에게 혐오와 공포의 대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 모든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진영이 그 규모가 크고 완전히 정렬되었으며 모든 것이 완전한 규율과 질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는 은총과 하나님의 선민으로의 그들의 특수한 성격을 보았습니다. 실로 이스라엘은 다른 국민들과 동일한 수준에 설 것이 아니요 만민 중에 탁월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발람이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로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민 23:9)라는 이 말을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주할 땅도 없었고 또 그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성격이나 그들의 풍속이나 습관을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 후 그의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아주 현저하게 성취되었습니다. 포로 생활을 하던 모든 세월 동안 각 나라로 흩어진 이후의 각 시대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특유한 백성으로 존속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온 세상에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백성 곧 참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과객(過客)에 불과하고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16. 마음이 완악한 선지자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

발람은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역사뿐 아니라 세상 끝까지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의 증가와 번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분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특별한 은총을 보았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어둠의 골짜기로 들어갈 때 그들이 그분의 팔에 의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그는 저희가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면류관을 쓰고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으며, 새롭게 변화된 세상에서 불멸의 영광 중에서 구속받은 자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발람은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민 23:10)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또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영광의 면류관이 있고 각 사람의 얼굴에 희열이 빛나는 것을 보고 그 순결한 행복의 무궁한 생애를 연상할 때 발람은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민 23:10)라고 엄숙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만일 발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었다면 그는 이제 그가 한 말을 실행하고 모압과의 모든 관계를 끊었을 것입니다. 그는 더 하나님의 자비를 이용하지 않고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불의의 삯을 사랑하고 그것을 얻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에게 저주가 내려 마치 초목이 시들 듯이 그들이 시들 것을 확신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민 23:11)고 부르짖었습니다. 발람은 부득이해서 한 일을 자진해서 한 것같이 꾸미려고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양심적으로 존중하여 그의 권능으로 자기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공언했습니다.

 

17. 능력의 하나님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발락은 방대한 히브리 진영의 당당한 광경을 보고 발람이 놀라서 감히 히브리인을 저주하는 점을 치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왕은 이스라엘 대군의 일부만이 보이는 곳으로 선지자를 데리고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발람이 일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할 수 있다면 온 진영이 멸망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스가산이라고 불리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다른 시험을 하였습니다. 다시 제단 일곱을 쌓고 그 위에 첫 번째 제물과 같은 제물을 놓았습니다. 왕과 귀족들만 희생 제단 곁에 남아 있고 발람은 하나님을 만나러 물러갔습니다. 다시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기별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는 그것을 변경할 수도 없었고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근심스럽게 기다리는 무리에게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민 23:20)라고 하면서 이 계시에 압도당한 발람은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민 23:23)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대마술사는 모압인들의 갈망에 따라 사술을 쓰려고 노력하였으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한 어떤 국가나 사탄의 모든 능력을 힘입는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죄악의 노선을 따르려고 결심한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에 감동되어 그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가장 부요하고 가장 귀중한 허락을 장엄하고 감동적인 시적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온 세계는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이하신 일을 보고 경탄할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은총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을 순종하고 충성하는 자녀들을 보호하시겠다는 보증이 될 것입니다. 사탄이 악인들을 움직여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잘못 나타내고 괴롭히고 멸하려 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로 이 사건을 회상하고 용기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크게 할 것입니다.

 

18. 백향목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시 92:12)

이스라엘에 대해 발람의 계속되는 축복에 실망하고 고민에 싸인 모압 왕은 마침내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민 23:25)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마음에 미련이 남아 있어서 그는 한 번 더 시험해 보기로 하고 그들의 신 바알을 음란하게 섬기는 사당이 있는 브올산으로 발람을 인도하였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성령이 발람에게 임하여 그의 입술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흘러나왔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민 24:9).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풍부한 수확물이 덮인 비옥한 골짜기와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댄 무성한 동산과 향기로운 백단향(白檀香)과 당당한 백향목에 비유하였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동방의 모든 백성에게서 존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이 백향목류에 속하는 나무는 온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대 지방에서 열대 지역에까지 백향목류의 나무들은 더위에 잘 자라고 추위에도 잘 견디며 물가에서는 매우 무성하나 찌는 듯이 무덥고 메마른 황무지에서도 높이 솟아 있습니다. 이들은 바위산에서도 뿌리를 깊이 박고 폭풍우에 끄떡하지 않고 꿋꿋이 서 있습니다. 다른 모든 나무가 겨울이 오면 곧 말라죽지만 그들의 잎사귀는 신선하고 푸르게 살아 있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다른 모든 나무보다 그 힘과 견고함과 좀처럼 썩지 않는 점에서 우월합니다. 그리고 이 나무는 그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골 3:3)인 자들을 상징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아무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겔 31:8)라고 백향목을 높이셨기 때문에 백향목은 종종 왕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성경에는 이것을 의인을 대표하는 데 사용하고 하늘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을 어떻게 보시는지를 나타냅니다.

 

19. 이스라엘 왕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6)

발람은 이스라엘 왕이 아각보다 위대하고 강대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아각이란 그 당시에 매우 강대한 민족인 아말렉인의 왕들에게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그의 모든 원수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그 보좌는 장차 이 세상에 세워지고 그 권세는 세상 모든 나라 위에 뛰어날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고 발락은 실망과 공포와 분노로 압도되었습니다. 발락은 발람이 유리한 대답으로 최소한의 용기도 주지 못하고 모든 일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결정된 것을 보고 분개하였습니다. 그는 선지자의 타협적이요 기만적인 행위를 조롱하는 태도로 대하였습니다. 왕은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민 24:11)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발람은 돌아가기 전에 구세주와 하나님을 대적한 원수들의 최후의 멸망에 관한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예언을 하였으며 발람은 최후로 모압과 에돔, 아말렉과 가인 족속의 완전한 멸망을 예언하여 모압 왕에게 일루의 희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부귀영달의 소망과 왕의 총애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산 것을 알고 실망한 발람은 자기 스스로가 선택했던 사명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발람이 집에 도착한 후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제어하시는 능력이 그를 떠나고 이제까지 제지되어 온 그의 탐욕만이 그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발락이 약속한 보상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번영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데 달려 있고 그들을 죄에 빠뜨리지 않고는 그들을 전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모압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가 내리도록 하는 방법을 따르도록 조언함으로 발락의 환심을 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0. 발람과 가룟 유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7:5)

발람이 즉시 모압 땅으로 돌아가 왕 앞에 제의한 계획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유인함으로 그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을 바알과 아스다롯의 음탕한 예배에 참석시킬 수 있다면 그들의 전능하신 보호자는 그들의 원수가 되실 것이며 그들은 곧 주위에 있는 맹렬한 호전적인 민족들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왕은 쾌히 이 계책을 받아들였으며, 발람 자신은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일을 수행하는 데 조력하였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저주가 그분의 백성에게 임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최후가 가까움을 예감하고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민 23:10)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의인의 생애를 살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그의 운명은 하나님의 원수 편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발람의 운명은 가룟 유다의 운명과 비슷하였고 그 두 사람의 성격에는 서로 유사점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다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려다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발람은 참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섬기노라고 공언하였습니다. 유다도 역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고 공언하고 예수님의 추종자들과 연합하였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부귀와 세속적 명예를 얻는 디딤돌로 삼으려 하였으며 유다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음으로 자기가 믿는 바와 같이 메시아가 이 세상에 세우려고 하는 나라에서 부귀와 영달을 얻으려고 기대하였지만 그가 바라던 일의 실패가 그를 배도와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발람과 유다 두 사람 다 큰 빛을 받았고 특별한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품은 한 가지 죄악이 온 성품을 중독시켜 그들을 멸망에 빠뜨렸습니다.
이처럼 마음속에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특성이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마음속에 품은 한 작은 죄는 점점 성품을 저하시켜 그 고상한 모든 능력을 악한 욕망에 복종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21. 부패한 감화가 음행으로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민 25:1)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온 높은 고원 지대와 강 사이는 요단 동편에도 역시 폭이 여러 마일이나 되는 평야가 있었는데 그것은 강을 따라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그늘진 골짜기의 기후는 열대성이었는데 그곳에는 싯딤나무 혹은 아카시아라고 불리는 나무가 무성하여 이 평야를 “싯딤 골짜기”라 불렀습니다. 이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쳤으며 그들은 강변에 있는 아카시아 숲속에서 쾌적한 안식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매혹적인 환경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장한 대군이나 광야의 맹수보다 더 치명적인 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혜택이 매우 풍부한 이 나라는 그곳에 사는 거민들로 말미암아 더럽혀졌습니다. 주신(主神) 바알의 예배에서 가장 비열하고 간악한 장면이 날마다 공공연하게 일어났습니다. 사방에는 백성들의 비열하고 부패함을 암시하는 우상숭배와 방탕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패한 감화를 끼쳤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암시되는 비열한 생각에 익숙해지고 그들의 안일하고 나태한 생활은 저들의 생활을 문란하게 해서 자신들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쉽사리 유혹의 희생물이 될 상태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최초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인근 이방인 사이에 거의 교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미디안 여인들이 진 속으로 몰래 숨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들의 출현이 아무런 경계심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그들의 계획이 매우 조용히 진행되었으므로 모세도 그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들의 목적은 히브리인과 교제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유혹하고 이교의 의식과 습관에 흥미를 끌게 하여 그들을 우상숭배에 끌어들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동기가 우정의 두루마기 아래 교묘히 감추어져 있었으므로 그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까지 의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22. 사탄의 올무

“브올의 죄악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얻지 못하였거늘”(수 22:17)

발람의 제의에 따라 모압 왕은 그들의 신들을 높이는 대축제일을 정하고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석을 권유할 수 있도록 비밀리에 준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람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고 있었으므로 많은 백성이 그와 함께 축제에 참가하여 발람은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거의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노래와 춤과 이교 축제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여호와께 대한 충절을 포기하고, 환락과 축연에 가담하여 술을 마시며 방종할 때에 그들의 지각은 몽롱해져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사탄의 올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정욕이 그들을 완전히 지배하였으며 음탕한 행위로 말미암아 양심을 더럽힌 그들은 우상에게 머리를 숙여 절하도록 권유를 받았습니다.
오래지 않아 이 독소는 치명적인 전염병처럼 이스라엘 진영에 퍼졌고 전쟁으로 원수를 정복해야 할 이들이 이방 여인의 간계에 정복당하고 말았습니다. 통치자들과 지도자들이 범죄 하는 첫 무리에 속해 있었으며 너무나 많은 백성이 범죄 하여 거족적(擧族的)으로 배도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그 악을 감지했을 때에는 원수의 계획이 이미 큰 성공을 거두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브올산에서 음탕한 예배에 참가할 뿐 아니라 이교도의 의식이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에서도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연로한 지도자 모세는 분개하였고 하나님께서도 진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법적인 행위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발람의 모든 사술이 행할 수 없었던 일 곧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그 일을 행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신속히 내리는 형벌 즉 무서운 염병이 진중에 퍼져 수만 명이 삽시간에 죽임을 당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에게 이 배도에 가담한 두목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시고 그들이 그처럼 혹독한 처벌을 받는 것을 보게 하심으로 회중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며 저들에 대한 그분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23. 시므리와 비느하스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벧후 2:15)

발람으로 인한 배도 때문에 받은 하나님의 형벌의 공의로움을 깨달은 백성들은 급히 성막으로 나아가 눈물과 함께 깊이 뉘우침으로 그들의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성막 문에 나아와 하나님 앞에서 울고 있고, 염병이 아직도 사람들을 죽이고 사사들은 그 무서운 임무를 집행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귀족 중 한 사람인 시므리는 “미디안 백성의 한 종족”의 공주인 미디안 창녀를 데리고 담대하게 진영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보다 더 대담하고 완고한 악행은 결코 없었습니다. 제사장과 지도자들이 슬픔과 굴욕 중에 엎드려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면서 여호와께 그분의 백성을 아끼시고 그분이 택하신 백성을 책하지 마시기를 간청하고 있을 때 이 이스라엘의 귀인은 마치 하나님의 형벌을 부인하고 민족의 사사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회중의 목전에서 보라는 듯이 범행하였습니다. 이때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그 둘을 살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염병이 멎고 하나님의 형벌을 집행한 그 제사장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아 사제 직분이 그와 그의 가문에 영원히 보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켰”으니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 25:11~13)
싯딤에서 범한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내린 형벌은 거의 40년 전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는 선고를 받았던 거대한 무리 중에 살아남은 자를 멸하였습니다. 요단 평야에서 진을 치고 있을 동안에 하나님의 명을 따라 백성을 계수한 중에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민 26:64, 65)습니다.

 

24.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 빠뜨리려는 이유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시 9:15)

하나님께서 배도한 이스라엘에게 형벌을 내리신 것처럼 이스라엘을 유혹한 미디안 사람들도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말렉인들은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대군 뒤에 남아 있던 피로에 지친 자들을 습격했으나 오랜 후까지 형벌을 받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한 미디안인들은 더 위험한 원수였으므로 신속히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민 31:2)고 명하셨습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민 31:7, 8). 공격군의 포로가 되었던 여인들도 역시 가장 큰 범죄자요 가장 위험한 이스라엘의 원수로서 모세의 명령에 따라 사형에 처했습니다.
음모를 꾸며 하나님의 백성을 해한 자들의 말로에 관해 시편 기자는 사람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시 94:21) 할 때에 여호와께서 “저희 죄악을 저희에게 돌리시며 저희의 악을 인하여 저희를 끊으시리”(시 94:23)라고 하였습니다.
발람이 히브리인들을 저주하도록 부름을 받았을 때에 그는 그의 모든 사술로도 히브리인들에게 해를 끼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민 23:21)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유혹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을 때 그들을 보호하던 방벽이 그들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계명을 충실히 지킬 때에는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민 23:23)었기 때문에 사탄은 모든 능력과 교활한 술책으로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자라고 공언하는 자가 그 계명을 범하게 되면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고 원수들 앞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25. 유혹의 도구, 정욕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 12)

미디안의 무력이나 사술에도 정복당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 창녀들의 희생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의 역사에 가담하여 영혼을 함정에 빠뜨리고 멸망시키려고 노력하는 여인의 힘은 이와 같습니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잠 7:26). 이와 같이 셋의 자손들이 유혹을 받아 그들의 성실성을 버림으로 거룩한 자손이 부패하게 되었던 것처럼 요셉도 이와 같은 유혹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삼손도 범죄하여 자기의 힘을 빼앗기고 블레셋 족속의 수중에 빠졌습니다. 이 점에서 다윗도 넘어졌으며 세 번이나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라고 불렸던, 열왕 중에 가장 현명한 왕인 솔로몬도 정욕의 노예가 되어 동일한 매혹의 힘에 자신의 성실성을 희생하였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마음을 다룰 수 있는 요소를 수천 년 동안 악마와 같이 맹렬하게 연구하였으므로 각 사람들의 공격당하기 가장 쉬운 점들을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여러 세대를 통하여 바알브올에서 그처럼 성공을 거둔 동일한 유혹으로 이스라엘 중에 가장 강한 자들과 귀인들을 파멸시켰습니다. 각 시대를 통하여 육욕적 방종의 암초에 걸려 깨어진 품성의 잔해(殘骸)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세상 끝이 가까이 이를수록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늘 가나안의 변경에 서 있는 우리에게 사탄은 옛날처럼 우리를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사탄의 올무를 경계해야 할 사람은 무식자나 교양이 없는 자들만이 아닙니다. 사탄은 가장 높은 지위, 가장 거룩한 직분을 가진 자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영혼을 더럽히게 할 수 있다면 그는 그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세속적 우정, 매혹적인 미, 향락의 추구, 환락, 잔치 혹은 술잔으로 그는 일곱째 계명을 범하도록 유혹합니다.

 

26. 세상과 벗하는 자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사탄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인도하기 전에 먼저 방탕으로 유인하였습니다. 그들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모독하고 그분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어떤 일이라도 주저 없이 행하여 그들의 부패한 마음의 욕망을 만족시킬 것입니다. 육욕의 방종은 지력을 약화시키고 영혼의 가치를 저하시키게 됩니다. 선과 순결, 진리와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 거룩한 사물에 대한 사랑 등 인간을 하늘의 세계로 연결시키는 모든 거룩한 애정과 고상한 소망은 색욕의 불에 타버립니다. 그 영혼은 캄캄하고 황폐된 황무지와 악신들의 거처와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계 18:2)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형벌을 초래한 것은 우상 숭배자들과 교제하고 그들의 축제에 참가한 까닭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지금도 그리스도의 추종자들로 경건치 않은 자들과 교제하게 하고 그들의 오락에 참가하게 함으로써 사탄은 가장 성공적으로 그들을 유혹하여 죄 가운데 빠뜨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바와 같이 풍속과 습관과 원칙에 있어서 세상과 크게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경건치 않은 자들의 정신이나 습관과 일치하지 않도록 금하신 주님의 경고는 이방인들과 동화하지 않도록 히브리인에게 주셨던 경고 못지않게 직접적이고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요일 2:15)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죄인들과 분리되어야 하며 그들을 위하여 선을 행할 기회가 올 때에만 그들과 교제하도록 선택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함과 동시에 될 수 있는 대로 시험을 피해야 합니다.

 

27. 죄에 이르는 경로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벧후 2:14)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에 빠진 것은 저희가 표면상으로 안일하고 안전한 상태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항상 그들 앞에 모시는 데 실패하였고 기도를 게을리하고 자기 자신을 믿는 정신을 품었습니다. 안일과 방종은 영혼의 성채를 경비하지 않은 채 버려두는 것이며 부패한 사상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원칙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탄의 권세에 팔아넘긴 자들은 성 안에 있던 반역자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사탄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혼을 파멸시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공공연하게 죄를 범하기 전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준비 과정이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진행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단번에 순결과 거룩함에서 부패와 타락과 범죄로 전락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이 금수와 악마처럼 타락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바라봄으로 우리는 변화를 받습니다. 불순한 생각들을 품음으로 인간은 한때 그가 미워하던 죄를 좋아하도록 그 마음을 길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범죄와 비열한 악습을 널리 퍼뜨리려고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하여 범죄에 대한 현란한 소개들을 보면서 마음이 죄에 익숙하도록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비열하고 비루한 자들이 살아온 경로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소개되어 백성들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정욕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극적인 이야기로 꾸며져 그들에게 제시됩니다. 그들이 비열한 범죄에 대하여 그처럼 많이 듣고 읽기 때문에 한때는 그와 같은 장면에 무서워 질겁을 하던 부드러운 양심이 마침내는 굳어져서 그들은 그런 일들을 아주 재미있는 듯이 오래 마음에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까지 인기를 끄는 많은 오락 중에는 사탄이 영혼들을 멸망시키는 데 이용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28. 은혜로 거룩함에 이르는 자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3~15)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애의 순결을 찾으려는 노력이 헛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 고상하고 덕 있는 품격을 건설하려는 자는 흐르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이며 맹렬한 시험의 폭풍이 불 때에 그 집은 분명히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는 다윗의 기도가 모든 영혼의 탄원이 되어야 할 것이며 하늘의 선물에 참여하게 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벧전 1:5)을 힘입어 완전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유혹을 물리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탄의 계책에 빠지지 않으려면 영혼의 통로를 잘 지켜야 합니다. 불순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들을 읽거나, 보거나, 듣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영혼의 대적이 암시하는 모든 문제에 닥치는 대로 빠져들지 않도록 마음을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말하였습니다. 이 일에는 열렬한 기도와 끊임없는 경계가 요구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향상시키고 마음속에 순결하고 거룩한 사물을 항상 생각나게 하는 거룩한 성령의 끊임없는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 11)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벧브올에서 범한 죄는 하나님의 형벌을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리게 하였으나 지금은 그와 동일한 죄라 할지라도 신속히 형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분명히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29. 모세의 후계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을 점령할 시간이 가까웠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연로한 선지자 모세는 요단강과 약속된 땅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가데스에서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선고가 철회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 간에 무슨 신이 능히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신 3:24, 25)라고 열렬히 탄원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신 3:26, 27)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였습니다. 이제 그의 큰 염려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자기처럼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관심을 가질 것인가? 모세는 충심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민 27:16, 17).
여호와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 27:18~20)고 대답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오랫동안 모세를 시중하였고 지혜와 능력과 믿음의 사람으로서 모세의 후계자로 선택되었습니다.

 

30. 모세의 마지막 설교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삼상 17:46)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된 여호수아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회중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민 27:21, 22).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모세는 그의 지위를 양도해 주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희가 애굽에서 구원받은 역사와 광야에서의 여행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아울러 그들에게 시내산에서 반포된 율법의 요점을 되풀이해서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회중 가운데는 율법을 반포할 당시의 장엄함을 이해할 만큼 오래 산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지않아 요단강을 건너가 허락의 땅을 점령하려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그분의 율법의 요구를 제시하고 번영의 조건으로서 그것을 순종하도록 명하시려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의 최후의 경고와 훈계를 되풀이하고자 백성들 앞에 설 때 그의 얼굴은 신성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는 노령으로 백발이었으나 그의 체구는 곧고 그의 얼굴은 건강하여 기력이 쇠하지 않음을 나타내었고 그의 시력은 명료하고 조금도 흐리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깊은 감동을 받고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32~35)라고 전능하신 보호자의 사랑과 자비를 묘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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