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 외침을 위한 준비 [신앙기사 4부]

4부 큰소리 외침을 위한 준비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계 18:1)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의미

 

요한계시록 18장 예언을 보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서 나와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벨론에서 나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앞에서 바벨론의 정체와 현대 바벨론의 동향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바벨론은 이 시대에 정치, 경제, 종교를 통합시키는 주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나온다는 것은 우리의 직장, 학교, 사회 단체 등을 포기하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왜 우리가 바벨론에서 나와야 하는가? 그것은 바벨론 세력이 모든 사람에게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계 14:12)?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게 될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계 13:8).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바벨론을 대항하여 “힘센 음성으로 외”치는 천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계 18:1, 2)

여기에 기록된 천사는 헬라어 원어로 ἄγγελος(앙겔로스)이다. 헬라어 앙겔로스는 천사(angel), 사자(messenger)를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간이나 천사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나오는 천사(앙겔로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간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는 “큰 권세를 가졌”고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졌다. 이것은 성령님의 임재가 충만한 사람들이 출현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있을 것이 이사야 60장에도 예언되어 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1-3)
초대교회 때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있은 후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삼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마지막 때에도 반복될 것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사람들이 일어날 때 온 세상은 진리의 빛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가오는 환난을 준비하며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일들은 강요, 협박, 폭력, 비판, 분노 등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베드로의 변화와 우리의 준비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베드로는 환난에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베드로는 변화되었다. 환난에 준비되지 않았던 베드로와 그를 대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알 수 있는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건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알려주셨지만 베드로는 죽을지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가오는 환난에 준비되지 않았다. 폭도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는 검으로 그 중 한 사람의 귀를 베었다. 그런 베드로의 행동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제자들까지 위험하게 했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귀가 잘린 사람을 즉시 치료해 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붙잡히지 않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 뒤로 예수님은 잡혀가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 동산에서 저희 주님을 저버린 후에 베드로와 요한은 멀리 떨어져서 예수님을 잡아가는 폭도들의 뒤를 따라갔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한 무리가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그 때 한 여인은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다. 베드로는 놀라고 당황했으며, 화를 내며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고 곧 닭이 울었다.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주의가 집중되고 다시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번에는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아직도 그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대제사장의 종들 중 하나 곧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자의 가까운 친척 되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나”(요 18:26),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막 14:70)고 하였다. 이 말을 듣자 베드로는 버럭 성을 내었다. 베드로는 이제 그에게 질문하는 자들을 완전히 속이고 그의 위장된 신분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저주하고 욕함으로 주님을 부인하였다. 또 다시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그 소리를 듣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막 14:30)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

비열한 저주의 말이 베드로의 입술에서 발해지며 닭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그의 귀에 울리고 있을 그때에 구주께서는 재판장들로부터 얼굴을 돌려 그분의 가련한 제자를 유심히 바라보셨다. 그와 동시에 베드로의 시선도 주님께 이끌렸다. 그 부드러운 얼굴에서 그는 깊은 동정과 슬픔을 볼 수 있었을 뿐 분노의 그림자는 추호도 볼 수 없었다.

창백하고 고통에 차 있는 얼굴과 떨리는 입술과 동정과 용서의 정이 서린 그분의 모습은 화살처럼 그의 마음을 찔렀다. 양심은 일깨워졌다. 기억은 되살아났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옥에나 죽는 곳에라도 가겠다고 했던 불과 몇 시간 전의 그의 약속을 회상했다.

구주께서 다락방에서 그날 밤에 그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신이 슬퍼하던 일을 기억하였다. 베드로는 방금 예수님을 모른다고 선언하였으나, 이제 그는 매우 슬퍼하며, 주께서 그를 얼마나 잘 아시며, 자신도 알지 못하였던 거짓된 마음을 얼마나 정확하게 아셨는지를 깨달았다.

추억의 조수가 그에게 밀려들었다. 구주의 부드러운 자비, 그분의 친절과 오래 참으심, 과오를 범한 제자들을 대하시는 그분의 부드러우심과 인내…, 이 모든 일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는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눅 22:31, 32)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그는 자신의 배은망덕과 거짓과 거짓된 맹세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반성하였다. 그가 구주의 굴욕과 슬픔에 가장 무거운 짐을 더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애통하는 마음은 몹시 괴로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베드로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예수님을 부인한 일이 많이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저주하고 욕하면서 부인하는 베드로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고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시고 자신을 세 번 부인한 그가 세 번 사랑을 고백할 수 있도록 질문하심으로 베드로를 회복시키셨다. 그런 주님께서 우리도 베드로처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고 사랑으로 기다리신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을 기억하고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모든 짐과 죄를 내려놓고 주님안에서 참된 평안과 쉼을 얻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를 저주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실 수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오래 참으시고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 형제자매를 대할 때 아직 베드로와 같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도 회개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받았던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행 1:14 흠정역)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것을 기억하고 형제자매를 용서하고 사랑했다. 그렇게 그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한 마음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성령께서 함께하실 수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한 마음이 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환난에 준비되지 않은 베드로와 환난에 준비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마지막 환난의 때에도 바벨론이 이끄는 대중의 무리는 하나님을 반역하며 하나님의 편에 선 소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 때에 우리는 혼자서라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을 반역하는 대중의 뒤에 숨어 있을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에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셨기 때문에 환난의 때에 준비될 수 있으셨다.
마지막 환란의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바벨론은 모든 사람이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할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 이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형제자매들과 하나되어 기도하므로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사람들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바벨론을 대항하여 일어나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주님의 증인들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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