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수줍은 고백 [생활간증]

– 정은하

 

먼 거리를 오고 가느라 지하철 안에서 쪽잠을 자는 9살 아들을 깨워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늦은 겨울 저녁에 어린아이가 자다 일어나 걷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지요. 이제 엄마는 많이 커버린 아들을 안아줄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빠한테 나와 달라고 전화 부탁을 했습니다. 아빠가 오시면 자신을 번쩍 안고 가니 어린 아들이 아빠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화를 받을 때는 귀찮은 듯한 반응을 보이던 남편이지만 아들을 만나면 달라집니다.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로 두 팔을 활짝 벌려 아들을 번쩍 들어 올립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이제 살았네!”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내심 ‘나는 안 반가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웃으며 제 마음을 표현합니다.

“아들만 반갑고 나는 안 보이나 보죠?”

이런 장난과 여유로운 유머가 보통의 화목한 가정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랍니다. 증오 받을 사람은 저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모르니 내 죄를 깨닫지 못하여 남편을 증오하며 지옥 같은 세월들을 살아왔거든요. 남편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미칠 듯이 싫어하며 끔찍하게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 들어서 기분 좋을 장난도 치고,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또 있을까요?

남편은 쑥스러운지 멋쩍게 흘려듣는 척했지만, 뒤통수만 봐도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게 부부 아니겠어요?

집에 도착해서 식탁에 마주 앉아 남편과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이런 모습 또한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죠. 다른 평범한 부부들이 하는 것처럼 이렇게 오손도손 웃으며 대화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던 부부였는데, 진정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날 이야기의 주제는 남편 친구의 가정문제였습니다. 어려움이 생긴 친구분이 혼자 지내게 되었는데, 가끔 남편을 불러 술을 마시며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오늘도 친구가 부르는데 남편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는 가서 친구 얘기도 들어주고 위로해 주면서 함께 있어주라고 권했습니다. 단, 술만 좀 적게 먹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요. 남편은 아직 하나님을 모르기에 술을 마시거든요. 그런데 문득,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면 내 이야기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바로 물어보았습니다.

“여보, 당신은 친구들 만나면 내 이야기도 해요? 무슨 얘기를 해요?”

“그럼, 이야기하지. 내가 엄청 짜증 내는 거 아내가 다 받아줘서 미안해 죽겠다고! ”

남편이 저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거, 참 낯설면서도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보, 고마워요!’

그리고 연이어 물어보았습니다.

“여보, 내가 전에는 안 그랬잖아요. 그런데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남편의 입술로 직접 듣고 싶어서 장난스레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부끄러운 것인지, 하나님을 자신의 입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몰라!” 하며 얼른 자리를 피합니다.

“여보, 나는 그 말이 “알아, 다 알아!”로 들리네요.”

남편은 자신을 통해 오는 사단의 시험에 진리로,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승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편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부터 제 삶의 변화가 시작되었고, 참된 진리를 찾은 후 성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성령께 나를 의지하지 못하여 언제 죄를 승리한 적이 있냐는 듯 보기 좋게 넘어지는 모습도 많이 보았을 텐데, 아내에 대한 좋은 감화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고백을 하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저를 자랑할 이유도, 목적도 없는 것이 저는 아직 너무도 악하고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영광 받으셨다는 생각에, 그 이유 하나로 너무 행복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감동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진 아내는 남편의 자랑과 기쁨이지만 자기 남편을 부끄럽게 하는 아내는 그 남편의 뼈를 썩게하는 염증과 같은 존재이다.” (잠 12:3)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62호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호소]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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