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노래 [신앙간증]

– 무명의 신자

암이 걸려서 시골에 내려가 텃밭을 일구며 그동안 먹던 인스턴트와 고기 위주의 식사를 버리고 자연식 식사를 하며 소식을 하고 일정한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살아가면서 건강이 회복되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손계문 목사님이 어느 설교에서 말씀하셨듯 이런 분들도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다면 다시 건강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의 지난날의 삶은 어리석게도 저들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는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지만 이내 생활에 파묻혀 교회만 다녔지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과 생각들로 나를 가득 채워 버렸습니다. 이전의 생활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일요일에 교회를 가고, 간절함 없이 성경을 읽고, 거듭난 마음 없이 기도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쁨은 사라졌고 구원받았다는 착각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많은 염려와 근심이 나를 찔렀고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 원망이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자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든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집 나간 탕자와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께 문을 열어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실에서 다른 예수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런 어리석고 병든 상태에서 건짐 받고 진리를 발견하여 좁은 길을 가게 되었는데요. 그래도 이전에 잘못 꼴 지워진 행동과 사고방식은 시련이 아니고서는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잘못되고 비뚤어진 내 모습이 그런 시련을 불러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녀 문제’였습니다. 한 아이를 극복했으니 다른 아이는 저절로 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각 개인이 고유하듯이 그들을 이해하는 나의 이해와 태도도 모양이 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관계없지는 않은 것이 첫 번째 성공하고 나니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구할 때에 하나님은 굽이굽이 인도하시며 승리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편에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해 주신다는 것! 바로 그것을 첫째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배웠습니다.


둘째 아이는 더 힘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이의 모든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고 도대체 왜 저럴까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많은 순간 포기하고 싶었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다 때려치우고 아이를 죽이고 나도 죽어 버리자.’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복음을 몰랐다면 실제로 그렇게 했거나 조금 더 크면 아이를 다시는 안 보고 남남으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주위에서 그런 부모들을 보거나 뉴스에서 이와 유사한 보도를 볼 때면 남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배운 복음으로는 이런 상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복음을 알고 나서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나는 이 문제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이 해 주신다” 오로지 이 믿음 하나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11시 교회에 와서 깨달은 모든 복음을 가장 많이 전하여 준 대상이 바로 둘째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으로 완전히 변화되지 못하고 계속 이런 모습으로 아이를 대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될지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 모습으로는 나도 멸망이고 저 아이도 죽는다.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를 하든, 내 몸을 모두를 위해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해도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내 모든 선한 일들이 헛될 뿐이다’ 이런 양심의 자각이 나를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바뀌었다 싶다가도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내 모습에 실망하여 주님 앞에서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믿음에서 나오는 베짱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자빠지고 넘어질 때도 ‘주님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넘어졌지만 주님이 반드시 이 문제 또한 극복하도록 인도하실 걸 믿습니다’라고 기도드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와의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내면에 깊이 뿌리가 박혀 있었던 죄의 문제였습니다. 한 삽 떠서 버리고 더 깊이 파보면 또 있고, 그렇게 또 버리기를 성령님이 알려 주시는 대로 계속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겪은 주님은 아픔의 근원, 죄의 근원을 고치시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몸의 병을 고침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병의 원인도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개혁하여야 고쳐지는 병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 순종하다 보니 근본적인 병의 치유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아이 문제도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많은 부분 깨닫고 고쳐 나가던 중 우연히 어떤 분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우리 아이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하나님께 치유받은 과정을 상세히 듣고서 우리 아이를 매우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이 문제의 많은 부분이 나의 잘못된 대처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피상적으로 알았던 것을 이제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뚜렷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해되니까 저절로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나의 태도가 달라지니 아이도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저와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가끔 무디어져서 그냥 그렇게 살게 될 때면 어김없이 아이가 금방 강퍅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면 ‘아차!’ 한답니다. 저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배려와 간섭하심과 사랑이 놀랍지 않나요? 그러나 저의 하나님이 모든 이에게도 동일한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단지 그것을 깨달았느냐 아직 깨닫지 못했느냐 그 차이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주님께 감사와 찬양 외에 돌려 드릴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멘^^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62호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호소]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추천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