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절제는 위대한 원칙이다

성경공부 시리즈 7권- 영육의 건강

제3부 절제는 위대한 원칙이다

1. 절제의 유익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권고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일생을 최대의 유익을 산출할 수 있도록 활용할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유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이런 목적들을 위해 쓰일 때에만 인생은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우리의 첫째 의무는 자아 계발의 의무일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부여해 주신 모든 기능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을 행할 수 있게 되기 위해 완전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계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시간은 완전한 육체적·정 신적 건강을 확립시키고 유지시키는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 하게 됩니다. 우리는 몸의 살아있는 기계의 어떤 부분이라도 혹사하거나 남용함으로써 정신과 신체의 어느 한 기능 이라도 위축시키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남용한다면 반드시 그 결과로 우리 자신이 고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인생의 대부분의 질병의 기초가 되며 그것이 해마다 무수한 사람 들을 멸망시킵니다. 부절제란 취하게 하는 술의 사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식욕이나 정욕의 해로운 방종을 다 포함합니다.
먹고 마시고 자고 보는 일에 지나친 것 즉, 하나님의 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죄입니다.
몸과 정신의 모든 능력의 균형지고 건강한 활동은 결국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 능력들이 더 향상되고 세련되면 세련될수록 행복은 더욱 순결하고 순수해집니다. 절제의 원칙들은 다만 술(주정음료)의 사용 금지 그 이상으로 훨씬 더 전진해야 합니다. 자극성 식물과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사용하는 것은 흔히 술과 똑같이 건강에 해롭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술 취함의 씨앗을 심습니다. 참된 절제는 해로운 것은 모두 완전히 버리고 건강에 유익한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식사의 습관이 건강과 성품과 이 세상에서의 유용성과 영원한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많은 사람이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욕은 항상 도덕적·지적 능력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합니 다. 육체는 마음의 종이 되어야지 마음이 육체의 종노릇 하면 안됩니다.
부절제하고 무분별하게 먹고 일하는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알콜성이 있는 술을 마셔야만 반드시 부절제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절제하게 먹는 죄(너무 자주 먹고, 너무 많이 먹고, 너무 기름지게 먹고, 불건전한 음식을 먹는 것)는 소화 기관의 건강한 작용을 파괴하고, 두뇌를 손상시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 합리적 이며 침착하고 건전한 생각과 행동을 못하게 방해합니다.
주님께로부터 빛이 그들에게 이른 다음에는 식욕에 의하여 지배되는 대신에 원칙에 따라 먹고 마시는 사람들은 다른 일에 있어서도 원칙에 의해 인도받기를 지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일에 절제한다는 참뜻을 배워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모든 자아 방종은 삶속에서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진정한 성화와 그리스도의 뜻에 일치함의 의미를 참으로 깨달을 수 있기 전에 먼저 그들은 하나님과 협력하여 나쁜 습관과 행동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먹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에 있어서도 절제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과로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과로가 필요한 입장에 처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은 예외가 되어야지 그것이 결코 규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절제를 실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우리의 본분을 다한다면, 주님께서는 그분의 베풀어 주실 몫으로서 우리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신체 기관들을 현명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일하는 모든 일에 절제를 실천 함으로써 어떤 의사도 우리를 위해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을 우리 자신이 할 수 있습니다.

2. 빚 내서 탕진하는 자본

도처에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의 부절제가 편만합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일을 달성하려고 애써 일하므로 이제는 쉬어야겠다고 스스로 판단하면서도 계속 일하는 사람들은 결코 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빌린 자본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장래에 필요한 생명력을 앞당겨 소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무모하게 써버린 정력이 막상 꼭 필요할 때에는 그 결핍을 채울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의 체력은 탕진되었고 정신력은 쇠약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손실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들이 필요한 시기에 왔을때 그들의 체력 자원은 이미 고갈되어버린 것입니다.
건강 법칙을 범하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다소간에 고통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 중 각각 다른 시기에 필요한 신체 조직의 힘을 준비해 주셨습 니다. 만일 우리가 지속적으로 신체조직의 힘을 과도하게 사용함으로 무모하게 탕진해 버린다면 결국 우리는 패배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유용성이 감소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 자체가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규칙은 낮의 일을 밤까지 연장시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흔히 우리가 얻는 것보다 많이 잃고 맙니다. 그 이유는 정력은 고갈되고 단지 신경의 흥분 력으로 버텨내기 때문입니다. 비록 즉각적인 손상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분명히 신체 조직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의 부절제 또한 일종의 흥분제이며 그런 습관에 방종하면 마치 술주정꾼처럼 안전한 길에서 방황하며 비틀거리고 흑암 속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학생들이 오직 하나 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겠다는 결심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학생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적 능력을 학문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일에 모두 소모해서는 안 되며 영혼들을 도와서 의의 길을 찾게 하는데 있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역에 열심하기 위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능력의 새로운 활력을 보존해야 합니다.
흔히 인간의 신체 조직을 가장 효과적으로 파괴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는 돈벌이에 몰두하고 부자가 되려는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재물을 추구하 는데만 그들의 생활을 집중시키고, 이 한 목적을 위하여 휴식과 수면과 삶의 안락들을다 희생시킵니다. 그들의 타고난 좋은 신체조직은 훼손되고, 그들의 체력을 남용한 결과로써 질병에 걸리게 되어 그들의 잘못된 일생의 장면은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고 말것입니다. 이렇게 두려운 값을 치르고 획득한 그 사람은 그의 재물 가운데서 일원이라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돈도 저택도 화려한 옷도 이젠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 다. 그의 일생의 업적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3. 신체 조직의 보존

우리가 만일 홍수 이전의 세상 사람들이 행하던 것과 똑같은 욕된 길을 걷는다고 그리스도께서 지적하신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지 않으려면 신체의 모든 기관과 모든 조직을 일체의 해로운 습관으로부터 거룩히 보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홍수 이전 사람들과 같은 부류 중에 포함되는 자들은 합법적인 일들을 고집스럽게도 지나치게 과도하게 행해 왔고, 따라서 인체에 유익하지 않은 습관들을 형성하여 방종함으로 그것들이 거슬러 싸우는 정욕이 되었기 때문에 멸망받도록 정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스스로 지상 생활의 최고 유익이 되는 기초를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제력을 파괴시키고 있으며 영원한 실재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 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 조직에 대해 고의적으로 무관심하므로 그들의 자녀들도 똑같은 방종의 길로 인도하여 천연 법칙을 범하는 데 따르는 벌로 고통을 받게 만듭니다.
우리의 먹고 마시는 습관은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는지 아니면 주님께서 강한 진리의 검으로 세상과 분리시켜 놓은 그 무리에 속하는지를 분명히 나타내 줍니다. 이들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그분의 특별한 백성들입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노동의 절제,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타락한 식욕 때문에 초래되는 폐해로부터 보호하 고, 순결과 성결을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좋은 것들을 신중히 잘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고, 또한 일상 생활에서 절제를 실천함으로 진리로 거룩하게 될 수있게 하기 위해서 건강의 빛을 주셨습니다.
절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표준을 좀더 광범위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게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4. 몸과 성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 17). 사람은 높고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이요, 최고의 걸작 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성막의 각 부분에다 주님의 율법을 기록하길 원하십니 다. 모든 신경 조직과 근육, 모든 정신적·신체적 유산들은 순결하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이 성령의 전이 되기를 계획하십니다. 정말 그렇다면 각 사람에게 지워진 책임이 얼마나 엄숙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지성과 재능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진하여 영혼과 몸을 타락시키고 있습니까? 그들의 삶은 반복되는 흥분의 연속입니다. 스마트폰, 게임이나 야구와 축구 시합, 경마가 그들의 관심을 독차지합니다. 술의 저주와 거기에 수반되는 재난으로 하나님의 성전은 더럽혀집니다. 술과 담배를 사용함으로 사람들은 높고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주어진 인생을 퇴락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고전 3:12 참조) 대표된 삶입니다. 천부적인 능력과 분별력은 육욕의 만족을 위해 남용되고 타락하였습니다.
술꾼은 한 잔의 독약을 얻으려고 자신을 팔아 버립니다. 사탄이 그의 이성과 감정과 양심까지 지배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심신의 어떤 한 기관의 건강한 활동을 약화시키는 습관을 형성할 권리가 없습 니다. 자신의 능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성령의 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혼과 정신과 몸을 타락시켜서 거룩한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약물들을 계속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담배와 술을 위하여 자신들을 망친 사람들은 그들의 지성의 진가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신체의 기능들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능력이 쇠하고 시들도록 방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더욱 향상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길 바라십니다. 모든 주어진 기능들은 향상되어야 합니다. 그중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작품이요 건물인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감독하에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창조주와 더욱 친숙해지면 질수록 자기의 생명을 더욱 더 신성하게 여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표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당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멸망 받을 짐승처럼 동물적인 만족을 위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위하여 살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이 천연 법칙을 무시한 데 대한 신체적인 벌은 질병이나, 조직의 파손이나, 심지 어는 죽음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조만간에 모든 것을 하나님과 결산해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간에 모든 행위에 대하여 기록하고 계시므로 모든 사람은 심판의 날에 자신의 행위에 따라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체 활동의 법칙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죄에는 필연코 징벌이 따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건물인 인간 집은 세밀하고 주의성 깊은 보호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신의 성품이 충만히 반영되도록 신체 활동을 주의 깊게 교육하고 계발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여해 주신 지성을 활용하길 바라십니다. 그들은 원래의 계획대로 양심을 최상의 위치에 놓아야 합니다. 심신의 능력과 감정은 최상의 능률에 도달할수 있도록 잘 계발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4, 25).
사도 바울은 여기에 고린도인들에게 익숙한 육상 경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경주에 출전하는 사람들은 힘든 예선에 통과하기 위하여 심히 고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식사는 단순했으며 사치스런 음식과 술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들의 음식은 주의 깊게 선택되었습니다. 그들의 체력이 최대한의 고역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힘차고 순발력 있는 정력과 지구력을 내게 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연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체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는 방종은 일체 금지되었습니다.
만일 계발된 양심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불신자들이 단지 시들어 버릴 월계관이나 군중들의 갈채를 받기 위하여 모든 소모성 방종을 끊어 버리고 금욕과 고된 훈련을 감수한다면, 불사 불멸과 하늘의 지존자의 인정을 받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 경주자들은 도덕성을 타락시키고, 이지력을 약화시키며, 고상한 능력을 동물적인 식욕과 정욕에 굴복시키는 건강하지 못한 자극제들과 모든 방종을 더욱더 기쁘게 끊어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 세상의 군중들이 이 생명을 건 그리스도인 싸움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들 뿐인가 요? 우주의 대왕과 천천만만 천사들이 이 경주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누가 승리를 쟁취하여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지 마음 졸이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천사들이, 극기와 자아 희생과 그리스도인 경주에 참여한 자들의 피나는 노력을 채점합니다. 이 대경기에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들이 발휘한 끈질긴 노력과 충실성에 따라 각자에게 보상이 수여될 것입니다.
세상의 경기에서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상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경기에 대하여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목표가 없는 것같이 하지 아니하고 또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하지 아니하며”(고전 9:26). 우리는 경기의 마지막에 가서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된 조건들에 완전히 순응하고 또한 잘 균형진 정신과 건전한 도덕성을 소유하기 위하여 체력과 신체의 활동력을 유지해야 할 책임감을 가진 자들에게는 이 경기가 분명할 것입 니다. 그들 전부가 상을 타고 시들지 않을 불멸의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동물적인 성향을 조장하고 도덕적 기능의 성장과 발달을 저해하는 사치스런 음식과 불건전한 자극제들을 탐닉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아들 딸들이 모든 일에 절제하기로 결심하지 않고서 그리스도인 싸움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주어진 일이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절제를 실행한다면 그들은 허공을 치는 자처럼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몸을 굴복시키고 그들의 식욕을 계발된 양심의 지배 아래 두며, 건강과 생명을 지배하는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들의 이웃에 대한 의무라고 느낀다면 그들은 육체적·정신적 활력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을 대항 하여 싸울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식욕을 극복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싸움은 거기에 참가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5. 절제와 영적능력

부절제에 빠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유혹에 굴종함으로 인간은 고상한 기능들을 동물적인 식욕과 정욕에 굴복하게 되고, 식욕과 정욕이 주권을 잡게 될 때,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되고 최고도로 계발시킬 수 있었던 모든 능력을 소유한 인간이 사탄의 지배에 굴복하고 맙니다. 사탄은 식욕의 종이 된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 다. 부절제로 인하여 어떤 사람은 자기의 정신적·육체적 능력의 절반을, 또 어떤 사람은 3분의 2를 희생시켜 원수의 노리개가 되고 맙니다.
사탄의 술책을 간파할 수 있는 맑은 정신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그들의 육체적 식욕을 이성과 양심의 주관 아래 두어야 합니다. 도덕력과 정신의 고상한 능력들의 활발한 활동이 그리스도인 성품 완성에 필수적이며, 정신력의 강약 여부가 이 세상에서의 유용성과 최후 구원에 지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법칙에 대한 무지가 편만한 것은 애통할 일입니다.
어떤 종류의 부절제든지 그것은 우리의 신체의 법칙을 범하는 것입니다. 무지가 무서울 정도로 편만해 있습니다. 사탄이 덮어주는 빛의 가면으로 죄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 세계를 이방인들처럼 그들의 일상 습관을 관습이라는 폭군 아래 붙들어 두어 식욕이 그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할 때에 매우 기뻐합니다.
만일 학식 있는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부절제로 그들의 도덕적 능력을 마비시킨다면 그들이 향상되었다 할지라도 여러 가지 습관면에서 이교도보다 나을 것이 별로 없습니 다. 사탄은 계속적으로 사람들을 구원의 빛에서 끌어내어 자신의 신체적·정신적·도덕적 건강을 돌아보지 않고 관습과 유행을 따르도록 만듭니다. 인류의 원수 사탄은 만일 식욕과 정욕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면 신체의 건강과 이지력은 자기 만족의 제단에서 희생 되고 인간은 급속히 멸망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계발된 이지력이 우세 하여 동물적인 성향을 도덕력에 굴복시킨다면 사탄은 사람을 유혹하여 정복하려는 자기의 능력이 무력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 사람들은 암흑 시대를 논하면서 오늘날의 발전상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죄악과 범죄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런 단순성이 결여 되고 가상적인 과시만 증가한 것을 통탄스럽게 생각합니다. 거의 온갖 바람직한 것들이 유행하는 생활 풍조에 영합하기 위하여 희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권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습관, 그들의 사치, 자신들의 몸을 취급하는 방법이 모두 신체적 법칙에 위배되고 성경에 배치됩니다. 그들의 생활 방식에 있어서 스스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도덕적 나약 함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고안해 낸 묘책을 써서, 유행의 풍조를 따르려는 욕구를 충동하여 가정 생활이 모든 점에서 하나의 근심과 복잡한 짐이 되게 만들었습 니다. 사탄이 이렇게 하는 목적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 시켜 그들의 최고 관심사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이 너무나 팔려서 그들이 준수해야 할 신체의 법칙에 유의할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만일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그분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것은 무가치합니다.
인류가 당하는 모든 고통의 대부분은 자신의 그릇된 습관의 결과이며, 그들의 고의적인 무지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체에 관하여 주신 빛을 무시한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법칙에 위배되게 생활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란 불가능합니다. 정욕적인 기호에 방종하면서 마음이 하나님께 헌신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해로운 정욕에 계속 방종함으로 인한 병든 신체와 혼란된 이지력은 몸과 정신의 성화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인 품성의 성공적인 완성을 위하여 건강한 신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사용하라고 빌려 주신 선물들을 무력하게 만들거나 남용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대한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맑은 정신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때마다 사역에는 위기의 때가 임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모든 일에 있어서 절제를 실천함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 곧 우리 주님을 위해 해야할 엄숙하고도 막중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습관과 취향과 성향을 생명과 건강의 법칙에 조화되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최선의 신체적 상태를 유지하고 선악을 분간할 수 있는 깨끗한 정신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부절제는 어떤 종류이든지 감각 기관을 마비시키고 뇌신경 능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수준에 머물게 만듭니다. 고상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정신력이 저급한 정욕의 노예로 전락되고 맙니다. 만일 신체적 습관이 바르지 못하면 정신력과 도덕력도 강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체와 정신 사이에는 상호 감응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사실을 이해하고 경고의 음성을 높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지 않으면 육신의 기질이 영과 싸우게 될 것이라고 하나 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정욕적인 방종은 건강과 안녕에 대항하여 싸우며, 이 싸움은 사람의 보다 고상한 특성과 보다 저열한 특성 사이에 일어납니다. 보다 저열한 성향들이 강하고 활동적이면 영혼을 압도되고 맙니다. 사람의 가장 높고 중요한 문제들이 성화되지 못한 식욕의 방종 때문에 위태롭게 됩니다.

6. 다니엘의 모본

우리는 절제 문제를 성경적 관점에서 고려하지 않는 한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왕궁에서의 선지자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의 역사보다 참된 절제와 이에 따르는 축복에 관하여 더 포괄적이고도 힘있는 사례는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왕과 귀족과 또 제사장들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그들 중 네사람이 바벨론 왕궁에서 봉사하도록 선발되었습니다. 이들 중의 한 사람이 다니엘이었 는데 그는 일찍부터 후년에 비범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들은 모두 다 귀족 출신이었으며 “흠이 없고 아름 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단 1:4)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청년 포로들의 탁월한 재능을 감지한 느부갓 네살왕은 그들을 자기 나라의 중요한 지위에 세우기 위하여 준비시키려고 작정하였 습니다. 동양의 풍습을 따라 그들은 궁중 생활을 위한 충분한 자격을 구비하기 위하여 갈대아 방언을 배우게 되고 3년 동안 육체적 수련과 지적 훈련을 받게 되었 습니다.
이 훈련 학교에서 청년들은 왕궁에 들어 갈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진미와 포도주를 먹도록 공급되었 습니다. 이 모든 훈련을 통하여 왕은 그들을 크게 존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교양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앞에 차려진 음식들 가운데는 모세의 율법에 부정하다고 명시되었으며 히브리인들이 먹지 말도록 금지되어 온 돼지고기와 다른 고기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제 혹독한 시험에 봉착했습니다. 그는 음식물에 관한 자기 조상들의 교훈을 고수 함으로 왕을 노하게 하여 그의 지위는 물론 그의 생명까지 희생당할 것인지, 아니면 여호와의 계명을 무시하고 왕의 호의를 계속 받아서 위대한 지적 유익과 가장 자랑스러운 세속적 기대를 얻을 것인지?
다니엘은 오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자신의 고결함을 굳게 지키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단 1:8)고 결심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장담하는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다니엘은 너무 꼼꼼 했으며 편협하고 완고하다고 단정합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는 데 대해 그처럼 단호한 저항은 모든 세속적인 유익을 희생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추론하는 사람들은 심판날에 그들이 하나님께서 명시하신 요구에서 돌아서 자기 자신들의 의견을 옳고 그름의 표준으로서 내세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중요하게 여기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신성하게 준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 중의 어떤 것은 행하기에 쉽기 때문에 받아들여 행하고, 반면 어떤 것은 그것을 준행하려면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거절하는 사람들은 의의 표준을 저하시키며 그들이 끼친 영향 때문에 다른 사람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경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 께서 말씀하시기를”이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가 지켜야할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오늘날의 청년들에게도 엄습할 수 있는 가장 혹독한 시련에 직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어린 시절에 받은 신앙적 교훈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원칙과 기호 사이를 머뭇거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흠없는 품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감히 자신의 도덕적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그에게 필수 요건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았 으며 자기 삶의 모든 일을 행할 때에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순수한 온유의 기품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는 진실하고 고상했습니다. 무엇 이든지 원칙에 관계된 것이면 고원 지대의 삼나무처럼 굽히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게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과 충돌하지 않는 일에 있어서는 어떤 일이든지 자기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순종했으나, 하나님의 요구를 매우 높게 생각했기 때문에 지상 통치자들의 요구는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의무를 회피하게 하려는 어떤 이기적인 생각에도 유혹당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품성은, 하나님의 은혜가 본성적으로 타락하고 죄로 더럽혀진 인류에게 어떠한 일을 이루실 수 있는지에 대한 뚜렷한 실례로써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의 고상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은 평범한 사람에게 격려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당당하고도 확고히 시험을 저항하며 가장 혹독한 시련 가운데서라도 온유한 품성을 가지고 정의의 편에 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그의 엄격한 절제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그럴 듯한 구실을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인정을 지상에서 가장 세력 있는 주권자의 호의보다도, 아니 생명 그 자체보다도 더 귀중히 여겼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예모 있는 행동으로 히브리 청년들을 담당한 환관장에게 환심을 사면서 그들이 왕이 먹는 고기를 먹지 않고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 환관장은 그가 이 요구에 응하게 되면 왕의 노여움을 사서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게 될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환관장도 절식하는 것은 이 청년들을 외관상으로 창백하고 병약하게 하며 또 육신적인 힘을 부족하게 할 것이며, 반대로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호사스러운 음식은 그들을 활기 있고 아름답게 하여 신체적·정신적 활력을 증진시킬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그 문제를 10일간 시험을 함으로써 결정하자고 하였습니 다. 그것은 다른 동료들이 왕의 진미를 먹는 동안 짧은 기간이지만 히브리 청년들은 단순한 음식물을 먹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요청은 마침내 허락을 받게 되었는데 다니엘은 그 시험에서 이길 것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젊었을지 라도 그는 술과 호화스러운 생활이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주는 해로운 영향을 알고 있었습니다.
10일이 지나자 그 결과는 환관장이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습관을 따라 절제 있게 생활한 청년들이 식욕에 방종했던 동료들보다 신체적인 용모 뿐만 아니라 육체적 활동이나 정신적 활력에 있어서도 아주 뛰어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 다. 이 시험의 결과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왕궁의 직무를 맡기 위한 그들의 전 훈련 과정 동안 계속해서 단순한 식물을 먹을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히브리 청년들의 확고 부동함과 극기를 인정하심으로 그들을 귀히 여기셨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네 소년들로 말하건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식을 주시고 모든 학문과 지혜에서 능숙함을 주셨으며 또 다니엘은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단 1:17)게 하셨습니다. 3년의 훈련 기간이 끝날 때에 왕이 그들의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또는 무엇을 하든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라. 고전 10:31

능력과 학식을 시험한 결과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단 1:19, 20)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삶은 성화된 성품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고무적인 실례가 됩니다. 그의 삶은 특히 우리 청년들에게 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청에 철저하게 순종하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유익을 줍니다.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최고의 표준에 이르려면 하나님께 지혜와 힘을 구하고 모든 생활 습관 가운데서 엄격한 절제를 행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경험에서 우리는 식욕에 방종하려는 유혹을 물리치면 원칙이 승리하는 실례를 알게 됩니다. 그 실례는 비록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희생이 된다고 할지라도 신앙적인 원칙을 통하여 육신의 정욕에 승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이방 관리들과 타협해서 바벨론 사람들의 관습처럼 먹고 마심으로써 그러한 압제에 굴종했더 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원칙에 어긋나는 한 가지 행동으로 그들은 의에 대한 개념을 약화시키며, 악에 대한 증오심을 약하게 할수 있었습니다. 식욕의 방종으로 육체적 정력과 지력의 명철과 영적 능력을 희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잘못 발을 디디면 다른 사람들도그 영향을 받아 하늘과의 연결을 끊어서 유혹을 받아 멸망당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이 확고한 신뢰로써 하나님께 매달릴 때 성령의 예언적 능력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는 궁중 생활의 의무 가운데서 사람에게 교훈을 받는 동안 또한 미래의 시대들에 대한 신비의 기록을 읽어 알고 표상과 상징을 통하여 다가올 세대들에게 마지막 시대에 성취될 기이한 일들을 나타내도록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히브리 청년들은 참람되게 행동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 님을 굳게 의지함으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괴짜가 되기를 원치 않았으나 하나님께 욕을 돌리기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되기를 택했습니다.
이 히브리 포로들도 우리처럼 정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벨론 궁정의 사치스 럽고 유혹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그들은 굳건히 섰었습니다. 오늘날의 청년들도 자아 방종의 유혹에 싸여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대도시에서는 온갖 형태의 관능적 욕구 충족의 유혹을 받기가 쉽습니다. 다니엘처럼 자신을 더럽히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절제 습관에 따르는 보상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더욱 힘찬 육체적 정력과 증가된 인내력을 마치 은행에 예치해 놓은 것처럼 소유하고 있어서 비상사태가 일어날 때에 그것들을 인출해 쓸 수가 있습니다.
바른 신체적 습관은 정신적 탁월성을 증진시킵니다. 지적 능력과 육체적 정력과 장수는 불변의 법칙에 의존됩니다. 천연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천연의 법칙을 범한 결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개입하지는 않으십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의 맑은 정신과 확고한 목적의식과 지식을 터득하는 능력과 유혹을 저항하는 힘은 대부분 그의 식사의 단순성과 기도 생활의 결과였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운명의 건설자다”라는 속담에는 많은 귀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부모 들이 그들의 아들 딸들의 품성 형성과 교육과 훈련의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지위와 유용성이 대부분 우리 각자의 행위의 방향에 달려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 생애의 초기에 받은 바른 교육과 훈련의 유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점만이 전적으로 그들의 됨됨이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행동해야 할 시기인 자신의 장래가 스스로의 생활 노선에 좌우될 때가 그들에게 온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유년 시절에 받은 교훈대로 진실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지식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들의 위대 성이 나타난 기초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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