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8가지 질문

성경공부 시리즈 5권- 종말의 준비

제2부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8가지 질문

1. 누가 최후의 승리를 얻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아마겟돈 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아마겟돈 전쟁은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중동지방의 무력 전쟁이 될 수도 있고,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과 사탄의 백성들 간에 펼쳐지는 마지막 대쟁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이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살펴 보겠습니다.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2-16).

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누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까요? 물론,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후에 승리를 거두게 될 이스라엘의 모습을 매우 흥미 롭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여기서 성경은 최후의 승리 자인 이스라엘을 옷을 입고 다니는 자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옷을 입어야 마지막 투쟁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스 라엘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옷을 입는 것과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19장은 매우 놀랄만한 답변을 우리에게 줍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분께 영광을 돌리세 이는 어린 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아내도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 그에게 허락하사 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계 19:7,8 KJV역).

이 말씀은 마치 안개 낀 바다에 우뚝 서있는 등대처럼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 기록된 옷의 의미를 비추어 줍니다.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들이 입고 있는 옷은 정결하고 흰 세마포입니다. 그런데 이 세마포는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습니까?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8절). 아마겟돈 전쟁과 그리스도의 재강림을 맞기 위한 준비는 공히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옷=흰 세마포=성도들의 의=예수 그리스도의 의)

성경은 성도들이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같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께서 주시는 정결한 의의 옷만이 우리를 하늘 왕국의 시민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였습 니다(사 64:6). 예수께서도 성도들이 마지막 심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복(옷)을 입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 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2:11-13).

또한 세상 역사의 마지막 교회로 표상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는 복음에서도 마지막 시대에 사는 성도들은 반드시 희고 깨끗한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계 3:18).

아마겟돈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까요?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이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있는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흰 옷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 마음과 생애로 받아들 여서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에 순종하는 의로운 생애를 사는 자들은 국가와 민족과 혈통에 관계없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 비결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들에 대해서 “누구든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1) 2000년 전에 결정된 유대 민족의 운명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자들은 혈통적 유대인들이 아니라,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의 계명과 진리에 순종하는 의로운 생애를 사는 그리스도인 들이라면, 현재 중동 지방에 존재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아니란 말인가요?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심각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 유일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때로부터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던 유대 민족이 라고 믿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믿는 것처럼, 유대 민족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유일한 선택된 민족이라면,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이스라엘 역시 유대 민족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놀랍게도 유대 민족은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특권을 약 2000년 전에 이미 잃어버렸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2) 유대 민족에게 허락된 마지막 유예 기간, 70주일

구약에 나타난 유대 민족의 역사는 반역과 불순종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0 년 동안의 광야 생활과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 생활 등과 같은 고난을 통하여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처럼 살기를 고대하였지만, 그들은 불순종의 길을 떠나지 않았 습니다. 이러한 때에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마지막 유예 기간을 주시는 것이 다니엘 9장 예언입니다.

다니엘 9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선지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을 주시면서, 그들이 메시아와 그분의 복음을 거절할 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의 국가로서 가진 특권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것을 조건으로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중요한 예언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다니엘 선지자에게 전달하셨 습니다. “네(다니엘)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주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단 9:24). 이 70주일 예언은 길고 긴 바벨론 포로 생활(70년)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 번 주어진 마지막 은혜 기간입니다. 이 예언적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위하여 잘 준비해야만 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70주일이라는 암호를 풀어야만 하는데, 기간적인 예언을 해석할 때를 대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풀 수 있는 암호 해독법을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1일이 1년이니라” 에스겔 4장 6절과 민수기 14장 34절에서 설명하는 계산법입니다. 건축기사들이 1센티미터를 1미터로 계산하여 도면을 그리는 것처 럼, 하나님께서 주신 기간적 예언을 해석할 때에도 그분께서 지정하신 이 특별한 계산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1주일은 7일이므로 70주일은 490일(70주일x7일)이고, 이것은 기간적 예언의 계산 원칙에 따라 490년이 됩니다. “1일이 1년이니라”(겔 4:6, 민 14:34). 그런데 490년이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입니까? 계속되는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을 들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7주)와 육십이 이레(62주)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단 9:25). 자,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70주일 즉, 490년의 시작점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이며, 그때부터 시작해서 7주일과 62주일 즉, 69주일(69 × 7=483일, 즉 483년)이 지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인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해는 언제일 까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마지막 명령이 언제 포고되었을까요? 에스라 7장 7,13절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성의 중건령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7년에 … 조서 하노 니” 중건령이 내려졌던 아닥사스다왕 7년은 역사적으로 확립된 해입니다. 성경의 관주에 나오는 해석을 보아도, 중건령이 내려진 해는 B.C. 457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 므로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은 B.C. 457년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중건령의 조서가 그 효력을 발휘하는 B.C. 457년 가을부터 시작해서 483년(69주일)을 내려가면, 역사의 연대표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해를 만나게 되는데, 그 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셨던 해입니다.


1년 = 1일 원칙

상징적인 기간을 나타내는 예언 해석에 있어서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원칙은 건전한 예언 해석법으로 오래 전부터 인정되어 왔다. 수많은 성경 학자들뿐 아니라 종교개혁자들도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상징적 예언인 1260일, 1335일, 2300일 등의 예언 해석에 1년 = 1일이라는 원칙을 적용하였다. 1년 = 1일 원칙에 대한 교회사적 증거를 살펴보면, 이 원칙이 초기 그리스도 교회 때부터 시작하여 중세 암흑기 로마 카톨릭, 종교개혁시대, 그리고 근대 기독교회에 들어와서까지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초기 기독교회 성경학자 : 터툴리안, 클레멘트, 유세비우스, 테오도렛, 데오도시우스, 안드로니쿠스

◆ 중세의 유대인 학자 : 나하웬디, 알리, 라시, 나하메니데스, 라시바즈

◆ 중세의 카톨릭 학자 : 요아킴, 아놀드, 우베르티노, 데리아, 부르테, 니콜라스 크렙

◆ 종교개혁자 : 마틴 루터, 멜란히톤, 풍크, 볼링거, 존 낙스, 존 베일, 토마스 브라이트만, 요한 웨슬리의 조력자인 플레셔르

◆ 1700년대의 성경학자 : 루터교 신학자 벵겔,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톤경

◆ 1800년대의 성경학자 : 장로교회 일반의회 의장인 죠수아 윌슨 박사, 감독교회의 주교인존 핸셔, 예일대학의 총장인 티모디 드와이트, 유니온 대학의 총장인 엘리팔리트 노트, 오하이오 대학의 총장인 조지 정킨

이와 같이 예언 해석상 1년 = 1일 원칙은 어떤 개인이나 교단의 독창적인 견해나 돌발적인 해석방법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 교파에서 소속되어 있는 다양한 성경학자들의 심도있는 성경연구의 열매로 거두어진 결론이다.


3)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신 메시아

누가복음 3장 1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침례 받은 해에 관한 매우 결정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디베료 가이사 즉위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 분봉왕으로. 역사는 가이사가 즉위한 해가 A.D. 12년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베료 가이사 즉위 15년은 A.D. 12년에 15년을 더한 해, 곧 A.D. 27년이 됩니다. A.D. 27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같은 장 21절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 때 예수님도 침례를 받으시고 …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셨으며,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심으로써, 다니엘 9장에 나오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라는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7주 : 7주×7일=49일=49년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데 소요된 기간) 62주 : 62주×7일=434일=434년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유대인들이 준비하며 기다리는 기간) 69주 : 7주+62주=69주=69×7일=483일=483년 1주 : 1주×7일=7일=7년 (그리스도의 공중봉사 기간+십자가 이후 제자들이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기간 A.D.34 : 유대인들에게 정해진 70이레(490년)의 은혜의 기간이 마쳐지면서, 스데반이 그리스도 교회의 첫순교자가 되는 사건과 함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한 해.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예언을 근거로 당신의 지상 사역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막 1:14,15, The time is fulfilled- 때가 성취되었고). 무슨 때가 찼다는 것입니까? 다니엘 9장에 예언된 69주일(483년)이라는 예언의 때가 찼던 서기 27년에, 예수님께서는 침례를 받으셨으며,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 공중전도를 시작하셨습니다.


4) 정확한 시간에 메시아를 살해한 유대 민족

그런데 70주일 중에 마지막 남은 1주일(70주일-69주일=1주일) 동안, 즉 7년 동안 에는 무슨 일이 이루어지게 될까요? 마지막 남은 1주일에 대한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 며”(단 9:26). 가브리엘 천사는 62주일 후, 즉 서기 27년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후에,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하실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1 week)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week)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27절). (여기서 이레(week)의 절반은 7년의 반이므로 3.5년 즉, 3년 반이 됨)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서기 27년 가을부터 3년 반 후인 서기 31년 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메시아의 죽음을 상징하여 드려온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은 흠 없는 어린 양을 성소의 번제단 위에서 태움으로써,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으며, 양의 죽음을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70번째 주일의 중간인 서기 31년 봄,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더 이상은 양을 잡아서 태워 죽이는 제사 제도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 하셨도다 …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5-7). 또한, “이(구약 시대의)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1,12,18). 얼마나 분명한 예언의 성취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더 이상 양을 잡아 죽이는 제사 제도가 필요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적이 성소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0,51). 성소 안에 있던 성전 휘장이 갑자기 찢어짐으로써, 모세가 제사 제도에 대해서 기록하였던 의문의 율법이 정하고 있는 제사와 예물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 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 2:14).


5) 정확한 시간에 결정된 유대 민족의 운명

유대 민족은 메시아를 거절하고 그분을 죽였지만,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 님께서는 70주일이 끝마쳐지는 순간까지 유대 민족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고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490년(70주일)을 채우기까지 반역과 불순종의 길을 고집하였습니다.

마지막 7년의 절반인 서기 31년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이제 그 나머지 절반인 3년 반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허락하신 70주일의 전체 예언이 완전히 종결됩니다. 십자가 이후에도 한동안 제자들은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3년 반 후인 서기 34년, 새 언약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향하여 경고와 호소의 설교를 하던 스데반에게 산헤드린 공회가 돌로 쳐서 죽이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스데반은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행 7:51-60), 이로써 유대 민족을 위한 70주일(490년)의 유예 기간은 완전히 끝났으며, 곧 이어서 일어난 핍박과 함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습니다(행 8:1~).

바로 이것이 70주일 예언의 끝을 알리는 최후의 신호였으며, 유대 민족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는 순간이었고, 온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 교회 시대가 개막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유대인들은 한 국가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한 국가로서 선택받은 백성이 되기를 끝까지 거절하였기 때문 에, 서기 34년 이후부터 유대 민족은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자격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이방인과 같이 개인 단위로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민족과 족속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하나님의참 백성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유대인들)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유대 민족은 구약 시대에 누구도 그 자리를 넘볼 수 없는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 그들은 그 영광스러운 주인공의 자리를 영원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누가 유대 민족의 자리를 넘겨받았습니까? 이 흥미 있는 문제를 다음 기사에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예언 해석의 3대 원칙]

①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알고자 하는 예언의 상징적 표현이나 비유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를 찾아보고, 기도와 합리적 판단을 통하여 그 의미를 파악한다.

② 예언을 나타내고 있는 표현이 상징인지 또는 실제인지를 전후 문맥을 통해서 구별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상징일 경우에는 그 의미를 풀 수 있는 열쇠들을 성경 안에서 찾아보 아야 한다.

③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기간을 나타내는 예언은 하루가 일년을 상징한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1일=1년 원칙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날짜에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날짜가 어떤 특정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어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만 이러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날짜가 기록된 성경절의 앞뒤 문맥을 잘 읽어보면, 그 날짜가 상징적인 기간인지 문자 그대로의 실제적인 기간인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 해석 원칙이 올바로 적용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려면, 이미 과거에 성취된 예언이 역사 속에서 1일=1년 원칙에 따라서 정확하게 성취되었는 지를 확인하면 된다.


2.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신약 성경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은혜의 기간이 끝나면서 어떤 사람들이 새 이스라엘을 구성하면서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혀 주는 성경 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밝혀지는 진짜 이스라엘이 아마겟돈 전쟁의 주역들이요, 승리자들입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이 새로운 이스라엘의 정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누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인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 2:9,10). 여기서 사도 베드로는 고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등장하는 새 이스라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를 영접한 이방인들은 십자가의 보혈로 인준된 새로운 언약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렸습니다. 바로 그들이 진짜 영적 이스라엘 입니다! 그리하여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된 것입니다.


2) 누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된 유업을 받을 것인가?

사도 바울 역시 베드로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 인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3)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선언하였습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신약 성경 에는 하나님께서는 오직 영적 이스라엘을 받으시며, 육체적 이스라엘을 거절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4) 누가 참 유대인들인가?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 지어다”(갈 6:15,16). 여기서 바울은 신약시대의 참 유대인의 자격을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거듭난 자)로 규정하였는데, 로마서 2장에서는 참된 거듭남을 마음에 할례를 받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롬 2:28,29). 참 유대인은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마음의 할례란 무엇입니까?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은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 옛 언약은 신체의 일부를 잘라냄으로써 이루어졌지만, 새 언약은 죄된 육적 마음을 잘라냄으로써 맺어 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임으로써 새롭게 거듭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할례를 경험한 사람들이며, 그들이 참 유대인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유대인의 운명이 결정된 이후에는 혈통적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다는 말씀이 신약 성경에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잃어버렸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곧 마른지라”(마 21:19 무화과나무는 유대 국가를 상징함).

유대 국가가 마지막까지 메시아를 거절한 이후부터,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은 유대 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니라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오늘날 누가 진짜 이스라엘입니까?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이 중동 지역에만 모여 있습니까? 아닙니다. 온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머지않아 아마겟돈 전쟁이 이르러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날에는 진짜 이스라엘만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흰옷을 입은 자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 그리고 품성과 생애에 성령의 열매를 맺은 자들만이 아마겟돈 전쟁의 주역으로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중동 지방을 쳐다볼 때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회개하여 진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3. 유대 민족 전체가 개신교회로 개종하게 될까?

요즘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때에 자신도 그 대열에 참여하여 유대 민족의 승리와 영광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로 이민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그토록 엉뚱한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에 여러 번 언급된 “이스라엘”을 지금 현재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국가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여자의 남은 자손” 즉 참된 하나 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사탄의 공격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백성이 유대 민족의 지파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언젠가는 그 노선을 완전히 바꾸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킬 것이라고, 과거에 거절하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진실한 개신교 국가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디서 이러한 오해가 시작되었을까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오해가 유대인 민족 전체가 그리스도교회로 개종하게 될 것이라는 빗나간 추측을 유도하였습니다.


1) 조건적인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유대민족이 아닙니다. 한 국가와 민족으로서의 운명은 이미 2000년 전에 결정되었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 이방인들과 같이 개인 단위로 구원과 심판을 받을 뿐입니다.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되기 위해 서는 하나님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지만, 그들은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일에 실패하였습 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은 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구원을 유지하고 축복에 대한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한 조건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순종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고, 불순종하면 끊겨져 나간다.”라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 내가 …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4-7). 이와 같은 하나님의 조건을 이해하지 못할 때, 아마겟돈 전쟁을 전혀 다른 방향 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현재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국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명예에 대한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서 등에 언급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최후의 승리에 관한 예언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 후에 본국으로 귀향하는 예언을 잘못 해석하였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불순종하는 반역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군대에 포로로 잡혀서 끌려가거나 죽임을 당하는 고난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 라엘이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을 주심으로써, 그들의 소망을 고취시키셨 습니다. 과연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만에,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스 강의 하상을 통하여 바벨론 성으로 침입해 들어가는 기이한 전략을 성공시킴으로써 바벨론 제국은 몰락되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 이로써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은 과거에 이미 정확 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물론, 구약에 나오는 여러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하여 영광스럽게 묘사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을 다스리게 될 이스라엘의 명예에 대한 수많은 약속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분명한 조건 하에서만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고대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의 배도와 반역과는 상관없이 무조건적 으로 성취되어야 하며 또한, 그러한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유대 민족은 언젠가는 민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성서적인 것도 아니며 합리적인 생각도 아닙니다.


2) 당대에는 유대 민족에게, 미래에는 세계적으로!

기간적인 예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1일을 1년으로 환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오는 예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만일이 원칙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무도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이 역사와 예언에 있어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심각한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이 원칙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될 아마겟돈 전쟁이 중동 지역의 국부 전쟁으로 제한되어 버리고 말았으며, 아마겟돈 전쟁의 주인공을 유대민족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성경 해석 원칙이란 무엇일까요? 예언은 1차적으로 당대에 지역적 으로 그리고 문자적으로 적용되며, 2차적으로는 미래에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영광스러운 약속이 일차적으로 고대 이스라 엘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반역의 길을 선택했으며, 그 결과 “순종”이라는 일정한 조건하에서만 성취되는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유대 민족에게 성취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유대 민족의 불충실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1차적으로 당대의 유대 민족에게 성취되지 못했을지라도, 그 약속들은 결코 무효가 되거나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약속들은 2차적으로 신약시대에 태어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을 대상으로 세계적이고 영적 으로 적용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유대 민족의 거절과 반역으로 성취되지 못한 하나님의 약속은 세계 곳곳에 있는 신약 시대의 영적 아브라함 자손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성취됩니다.

이러한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원수들을 쳐부수는 승리의 장면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곧 건축하게 될 장엄한 성전에 대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에스겔 40~48장에는 그 성전의 크기와 실제 모양이 어떠한 지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결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지자들 역시그 성전의 건축내지 재건 계획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그 중 아모스 선지자는 성전의 재건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암 9:11).

이러한 구약 성경의 예언을 근거로 해서,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어느 때에 구약 성경에 기록된 성전이 유대 땅에 실제로 건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언이 당대에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을 영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다는 예언 해석 원칙을 유의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취되지 않은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세계적으로 그리고 영적인 의미로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행 15:14-16). 여기서 바울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재건한다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의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지는 것에 적용하여 해석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부터, 즉 신약 성경에 기록된 성전은 문자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온 세상의 이방인들로 구성된 영적인 교회를 가리 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3) 빗나간 적용의 결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성취되지 않은 예언을 오늘날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국가에 적용할 때에 심각한 오해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 국가가 그들에게 주어진 70주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이 끝마쳐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메시 아를 거절함으로써, 오늘날의 유대 국가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를 막론하고 구세주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면서 그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관습에 따라 서,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구약시대부터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표현들과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해서 예언을 상징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러 므로 이러한 배경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상태 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이스라엘, 성전, 예루살렘, 시온, 이스라엘 지파 등과 같은 어휘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게 되며, 이러한 해석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진짜 이스라엘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영광과 승리를 중동지방에 있는 유대 민족에게 돌리는 엄청난 착오를 범하게 합니다. 이러한 착오가, 아마겟돈 전쟁이 발발하는 때를 전후로 해서 유대 민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면서 개신교회로 개종하게 될 것이라는 극적인 시나리오로 발전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요한계시록은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못박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그들은 희고 정결한 의의 옷을 입고 다니는 새 이스라엘이지, 2000년 전에 민족과 국가로서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된 유대 민족이 아닙니다.


4. 아마겟돈 전쟁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까?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의 시간표)

아마겟돈 전쟁이 언제쯤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사건들의 순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합니다. 마지막 사건들이 어떠한 순서로 일어날 것인가를 알면, 아마겟돈 전쟁의 전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도 예측할 수 있습니 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마지막 사건들의 순서를 살펴보겠습니다.


1) 짐승의 표 강요

마 지막 사건은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계 13:15-17). 이 말씀은 사탄과 그의 지상 대리자들에 의해서 전 세계적으로 짐승의 표가 강요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사람은 사고 파는 매매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사형 명령이 세계적으로 발표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마치 하나님과 사탄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짐승의 표가 세계적으로 강요되는 그날이 오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던지 사탄을 경배 해야 하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만 하는데, 그때에 세상은 완전히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고, 사탄에게 속한 무리는 짐승을 경배함으로써 그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은 짐승의 표를 받을 뿐아니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거절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나아가서는 그들을 죽일 것인데, 바로 이것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있는 선과 악의 마지막 대쟁투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온 세계가 둘로 나누어지는 배경에는 누구를 경배 (Worship, 예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배”라는 단어는 종교계에서만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무리뿐만 아니라, 짐승을 경배하는 무리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양쪽 다 그리스도인들이 중심 세력을 이루게 될 것인데, 한 무리는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만 형성될 것이며, 다른 무리는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종교,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연합으로 이루어 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사항은 “어떻게 이방 종교와 세상 사람들이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게 될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이 의문에 대한 힌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계 13:13,14). 바로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 이방 종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 모으는 방법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놀라운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놀라운 “기적과 이적”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대리자인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 능력을 줌으로써 온갖 기적을 행하게 하는데,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경이로운 마음을 가지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미혹할 것입니다(p.33, 34, 36 참조).


2) 은혜의 시간의 끝과 7 재앙의 시작

마지막 시대를 위한 가장 두려운 경고의 말씀이 요한계시록 14장 9, 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로 부터 완전히 거두어지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부어지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 니다. 사탄의 세력은 짐승의 우상을 세우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경배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최종적으로 거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참 백성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들을 자행함으로써, 인류의 반역과 죄악은 그 한계를 채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한 은혜와 자비의 손을 거두실 수밖에 없게 되고, 이로써 마지막 7 재앙은 시작됩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계 15:1).

온 세상이 사탄의 대리자들이 일으키는 기적과 이적에 기만당하여 짐승의 우상을 경배 하지만, 하나님의 참 백성은 목숨을 걸고 짐승의 우상에 대한 경배와 짐승의 표를 거절합니 다. 이러한 거절이 하나로 연합된 사탄의 대리자들과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핍박의 정신을 불타오르게 만듭니다. 수많은 성도가 순교자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대쟁투는 선과 악의 쟁투입니다. 마지막 대쟁투는 짐승의 표를 받은 악인들과 그것을 거절한 의인들 사이의 쟁투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고, 하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이 자신들과 함께 하는데, “왜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이유로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가”라고 말하면서 의인들을 핍박하며 죽이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참 백성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과 오해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장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일곱 재앙을 악인들에게만 내리도록 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악인들은 재앙의 원인을 의인에게로 돌림으로써, 박해의 불길을 더욱 드높일 것이지만, 계속되는 재앙들을 통하여 악인들의 마음에 “왜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 저 소수의 사람에게는 재앙이 내리지 않는데, 우리 에게는 온갖 재앙이 내릴까?”라는 의혹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물론, 7재앙이 의인들에게도 불편과 어려움을 줄 것은 사실이지만, 악인들에게는 직접적으로 가해질 것입니다.

짐승의 표 강요 사건이 세계적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은 악인들에게 내리는 일곱 재앙 역시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일곱 재앙의 순서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재앙]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지금은 의인과 악인이 공히 질병과 전염병의 피해를 당하지만, 이때부터는 오직 짐승의 표를 받은 악인들에게만 재앙이 집중적으로 내립니다.

[둘째 재앙]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셋째 재앙]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넷째 재앙]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다섯째 재앙]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다섯째 재앙은 짐승의 보좌가 있는 장소를 암흑으로 둘러치는 재앙입니다. 이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세력의 정체와 그가 존재하고 있는 장소를 밝히 드러내실 것이며, 누구 때문에 일곱 재앙을 내리게 되었는지를 나타내 보이십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 서는 누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며, 어떤 무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무리인지를 온 세상 앞에 드러내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여섯째 재앙]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2-16).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주제인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아마겟돈 전쟁은 일곱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로 내리는 심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사탄의 편과 하나님의 편 사이에 벌어지는 대쟁투인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게 되는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의 편에서 전쟁을 주도하는 세력은 “세 더러운 영” 즉 “귀 신의 영”들이고, 하나님의 편에서는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들, 즉 하나님께 목숨을 다하여 충성을 바치는 진짜 이스라 엘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일곱째 재앙]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 지고 산악도 간데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 이러라.” 이러한 일곱 재앙을 통과하면서 지구는 황폐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재강림하셔서 의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3) 질문에 대한 답변

자 이제, “아마겟돈 전쟁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까?”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강요하는 무리와 그것을 거절하는 무리 사이에 마지막 대쟁투가 세계적으로 시작되고,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성도들이 핍박과 순교를 당하는 사건들이 생기게 되며, 이러한 와중에 내리는 일곱 재앙 중에서 다섯 번째 재앙이 내린 직후에 세계적으로 아마겟돈의 대쟁투가 일어납니다.

[도표]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의 시간표


5. 사탄의 군대를 지휘할 세 장군의 전략을 아는가?

사탄은 자신의 수하에서 싸우는 세 장군의 정체가 폭로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 다. 왜냐하면, 만일 이것이 폭로되면, 아마겟돈 전쟁이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핵전쟁이나 제3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세계적인 영적 대쟁투라는 진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 입니다.

사탄과 악령들의 능력과 사주를 받아서 최전방에 나서서 싸우게 될 세 장군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한다면, 우리는 모두 아마겟돈 전쟁을 위하여 세워놓은 사탄의 전략이 무엇인지도알 수 있습니다.

누가 또는 무엇이 사탄이 사용하는 세 장군일까요? 요한계시록 16장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의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2-16).


[세 장군의 이름]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 모여 있는 하나님의 군사들을 보면서 “옷”을 입고 있다고 묘사했던 것처럼, 사탄의 깃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라고 묘사하였습니다(13절). 바로 여기에 사탄이 사용하는 세 장군의 정체가 그려져 있는데, 그들은 “세 더러운 영” 즉 “마귀의 영”들이며, 그들 각자의 이름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입니다.


[세 장군의 전략]

사도 요한은 세 장군 즉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아마겟돈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어떻게 사람들을 기만하여 사탄의 편으로 끌어들인다고 했습니까?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4절).
그들의 전략은 “이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시키고, 그의 표를 강요하기 위하여 사용했었던 전략인 “이적으로 끌어 모으는 작전”은 아마겟돈 전쟁에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은 세 더러운 영들 즉, 거짓 선지자와 짐승과 용을 사용해서 온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천하 임금들” 즉 각국 정부의 권력자들 까지도 기적으로 미혹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것입니다.


[세 장군의 정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탄의 세 장군은 총과 미사일을 사용하는 군대가 아니라 종교 적인 세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 적”은 종교의 영역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세 장군의 이름 중의 하나가 “거짓 선지자”라고 표현된 것을 보아서도, “세 더러운 영”의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기독교회뿐만 아니라 뉴에이지나 강신술과 같은 이방 종교를 포함한 종교적 세력임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들이 사탄이 베푸는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하나의 연합된 세력으로 뭉치게 됩니다.

개구리가 혀로 파리와 메뚜기 같은 먹이를 잡아채어 먹는 것처럼, 이들 세 가지 종교 세력도 그들의 입으로 거짓 가르침과 이적을 행함으로써 사람들을 사탄의 먹이로 만들어 갑니다.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13절). 용은 이교의 세계와 세상에서 역사 하는 사탄의 강신 술과 거짓 계시들을 말하며, 짐승은 교황권의 세력을 말하고, 거짓 선지자는 타락한 교회 들을 의미합니다. (용의 정체에 대해서는 짐승의 표를 다룰 때에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세 장군의 기만 전술을 피하는 방법]

사탄이 조종하는 이 세 장군의 기만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벌어지는 대쟁투의 쟁점과 공격 목표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마지막 대쟁투의 핵심 쟁점(Issue)일까 요? 요한계시록 12장에는 사탄이 마지막 시대에 총력을 기울여서 싸우는 공격 목표가 나오며, 14장에는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승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사탄의 공격 목표를 살펴봅니다. “용(사탄)이 여자(교회)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사탄과 그의 세 장군은 “여자의 남은 자손”을 없애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일 것인데,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 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사탄의 공격 목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지 않고 그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 역시 사탄의 공격 목표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사도 요한의 계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 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1,12). 요한계시록 12장과 14장에 기록된 이 두 말씀은 모두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쟁투가 “하나님의 계명”을 중심 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바로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일어나는 대쟁투의 중심이며, 모든 혼돈과 기만을 벗어날 수 있는 열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논리적인 예측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거룩한 생애를 사는 자들이 될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사도 요한의 계시록으로 가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는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 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아마겟돈 전쟁의 최후 승리자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동일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 하는 흰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진짜 이스라엘이며,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로서,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들 입니다. 사탄이 “이적”을 통하여 온 세상을 기만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 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사탄과 세 더러운 영들인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기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부인하고, 좁은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지 않은 채, 각종 은사와 기적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구원에 대한 감정적 확신을 얻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세 가지 종교 세력들에 의해서 가장 쉽게 기만당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이 폐하여졌다고 가르치면서, 기적과 각종 은사만을 강조 하는 종교 세력을 조심하십시오!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죗된 삶을 살아도 구원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설교하는 종교 세력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율법주의라고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십시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하 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오해와 비난이 쏟아지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도 “그때(말세)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을 행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던 것입니 다(살후 2:9,10). 말세에 “불법한 자” 즉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모든 능력과 기적과 속임수를 행할 것이라는 바울의 경고를 간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 재림의 징조를 설명하시면서 “사 람의 미혹을 주의하라”라는 경고를 6번이나 반복하시면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마 24:24).

사탄과 악령들은 온 힘을 다하여 사람들을 기만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외면적으로볼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치 하늘의 놀라운 능력과 기적이 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인데, 온 세상 사람들과 이방 종교인들도 그들의 놀라운 기적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놀랍고도 기만적인 분위기 하에서 온 세상의 국가와 정부 권력자들까지도 미혹 당하여 세 종교 세력 즉, 사탄이 지도하는 이방 종교의 강신술 세력 (용)과 교황권 세력(짐승), 그리고 타락한 교회(거짓 선지자)의 연합된 요구에 따라서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형 명령을 내리는 일을 추진 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놀라운 기만적 분위기는 아마겟돈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대쟁투는 연합된 종교 세력과 국가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함으로 써,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소수의 무리는 온 세상의 비난과 조롱과 핍박 하에서도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으로 그들의 자리를 지키게 될 것입니다.


[정치 종교]

갈멜산에서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아마겟돈 대쟁투에서도 거짓 종교세력과 정치세력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6. 아마겟돈 전쟁은 어디에서 일어날까?

아마겟돈 전쟁을 사탄의 편에서 주도하는 세 더러운 영들이 어디로 사람들을 모은 다고 하였습니까?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6) 사도 요한은 전쟁이 일어나는 곳을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어디일까요?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한 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말한 아마겟돈(Armageddon)은 헬라어로 Har-megiddon(산-므깃도) 이며, 이것은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읍니다.

그러면 “므깃도”란 어디를 말합니까? 그것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신의 거짓 선지자들 사이에 대쟁투가 벌어졌었던 “갈멜산”의 아래에 펼쳐져 있는 조그만 평야와 계곡의 지명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 그리고 헬라어로 Har-megiddon(므깃도의 산)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갈멜산”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마겟돈 전쟁을 실제적인 중동 전쟁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갈멜산 아래에 있는 평야와 계곡에 온 세상의 군대들이 집결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 하는 전쟁을 벌인다는 말일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군대가 모여들어서 전쟁을 벌이기에는 이 갈멜산 아래에 있는 평야가 너무나 협소한 곳이기 때문입니 다. 그곳을 한번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곳에서 온 세계로부터 집결한 수많은 군대가 전쟁을 치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을 중동 지역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는 비 성서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대리자들 사이에서 벌어 지는 대쟁투를 설명하면서, 왜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인 갈멜산을 언급하고 있을까요?

사도 요한은 구약 시대에 갈멜산에서 있었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 신의 거짓 선지자들 사이에 있었던 투쟁을 통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묘사하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갈멜 산에서 있었던 투쟁과 아마겟돈 전쟁에서의 대쟁투의 비교표를 살펴보면,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실체를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대결하는두 세력]

◇ 갈멜산에서의 대쟁투
하나님 편 : 선지자 엘리야
사탄의 편 : 바알 신의 거짓 선지 자들과 타락한 이스라엘 전체

◇ 아마겟돈 전쟁
하나님 편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남은 자손” 인 하나님의 백성
사탄의 편 : 더러운 세 영으로 상징된 세 가지 종교 세력의 연합체와 이들에 의해서 기만 당한 세상 전체


[전쟁의 양상]

◇ 갈멜산에서의 대쟁투
우상숭배로 배도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갈멜산으로 집결시켜서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드러냈음

◇ 아마겟돈 전쟁
땅의 왕들과 백성들이 아마겟돈으로 집결 하는 데. 이 때 참 진리가 드러나게 됨


[투쟁의 결과]

◇ 갈멜산에서의 대쟁투
바알신의 거짓 선지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음. 사탄의 대리자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됨

◇ 아마겟돈 전쟁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 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은 못에 던지우고”(계 19:20)


요한은 구약 시대에 있었던 갈멜산에서의 투쟁을 통하여 세상 끝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을 상징적으로 조명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정치 세력인 아합왕권과 종교 세력인 바알신의 거짓 선지자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참 백성인 엘리야를 향하여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던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갈멜산에서 있었던 것처럼, 사탄의 거짓 종교 세력과 그들에 의해서 미혹 당한 세상 정권들이 연합하여 마지막 시대의 엘리야인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핍박과 박해의 불길을 치솟게 하는 클라이맥스가 아마겟돈 전쟁입니 다. 이 마지막 투쟁의 결과, 갈멜산 위에서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의 기만이 폭로되어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아마겟돈 전쟁에서도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기만의 정체가 폭로 되고, 산채로 유황불 못에 들어가게 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어디서 일어날까요? 이 전쟁은 중동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 나는 하나님의 참 백성에 대한 핍박의 불길인 동시에,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마지막 영적 대쟁투입니다.


7.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다는 의미를 아는가?

이제,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계 16:12).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글자 그대로 유브 라데 강물이 실제적으로 마르면서 동쪽으로부터 오는 엄청난 군사력에 의해서 이스라엘 국가가 마지막 순간에 기적적으로 구원받는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이것은 어떤 다른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1) 실제가 아니라 상징

유 브라데 강이 마르는 사건을 실제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이유는, 유브라데 강은 그것이 말라야만 현대식 장비를 갖추고 있는 군대가 도하 작전을 펼칠 수 있을 만큼 넓고 깊은 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물이 아무리 많이 불어나 있을 때라도 요즘처럼 현대화된 군대에게는 전혀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가장 도하하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볼 수 있는 시리아 지역의 강폭은 불과 1마일 미만에 불과합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낡은 장비를 가지고 있던 연합군도 악천후 속에서 폭이 100마일이 넘는 영국 해협을 도하하는데 성공하였던 사실을 돌이켜 보면, 오늘날의 초현대식 군대가 유브라데 강이 기적적으로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도하 작전을 실시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유브라데 강이 마르는 사건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재강림하시기 직전에 사탄의 대리자들에 의해서 핍박당하면서 쫓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는 기적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까요?

사도 요한은 구약 성경으로부터 두 가지 사건을 빌려와서 아마겟돈 전쟁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하나는 앞에서 설명하였던 갈멜산에서의 사건이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 강을 기이한 방법으로 말림으로써 바벨론을 멸망시켰던 사건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 강물을 말리게 된 사건의 배경과 모습을 살펴봄 으로써 아마겟돈 전쟁에서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는 사건의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고대 유브라데 강물이 말랐던 사건

먼저, 이 사건의 시대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계속적으로 불순종의 길을 걷자,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잡혀가서 종살이하는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페르 샤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하던 해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거의 70년이 되던 때였습니다. 고레스 왕은 그 당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바벨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특별한 전략을 생각해 내어야만 하였습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고레스 왕은 비밀리에 유브라데 강물을 옆으로 빼어 돌림으로써, 강물의 수위를 크게 낮추는 데 성공하였고, 이로 인하여 유브라데 강물이 관통하여 흐르던 성 밑 수문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달밤에 고레스 왕의 군대는 유브라데 강의 하상을 도보로 걸어서 바벨론 성안으로 침입하여 들어가 는데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이 이 땅에 태어나기 150년 전에 이미 “고레스”란 이름을 정확하게 지목하시면서 위에서 언급한 고레스 왕의 전략을 미리 예언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7,28).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 강물을 말리는 전략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할 것과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이 중건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을 아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예언적 안목입니까!

사도 요한은 바로 이러한 고레스 왕의 전략을 인용하면서,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고 기록하였던 것입니다(계 16:12). 유브라데 강은 바벨론 성을 관통하면서 흐름으로써, 고대 바벨론을 유지시키는 젖줄이었습니다.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다는 것은 곧 바벨론의 생명줄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영적으로 아마겟돈 전쟁에 적용시키면, 구약 시대에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 강물을 빼돌림으로써 바벨론성을 함락시켰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의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하나님께서 사탄의 세 장군(용, 짐승, 거짓 선지자)으로 등장하는 세 가지 종교 세력인 영적 바벨론을 지지, 후원하던 젖줄을 마르게 하심으로써 사탄의 세 장군을 몰락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세 장군인 영적 바벨론을 지지하던 세력이 어떻게 마르게 될까요? 요한계시록 17장에 그 힌트가 나옵니다.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5). 그렇습니다! 유브라데 강의 “물”은 백성들, 즉 많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유브라데 강이 마른다는 뜻은 온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세 장군(용, 짐승, 거짓 선지자)에게 보내던 지지와 후원을 중지함으로써, 그 세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유브라데 강이 바벨론을 유지시키는 주요 자원이지만, 후에는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원인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유브라데 강의 “물”(백성, 사람들) 은 영적 바벨론의 세력을 파멸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3) 유브라데 강물이 갑자기 마르는 이유

그런데 왜 온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대리자들에게 보내던 지지와 후원을 갑자기 중지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곱 재앙을 악인들에게만 내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재앙인 아마겟돈 전쟁의 전후에 나오는 다섯째 재앙과 일곱째 재앙,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요한계시록 17장에 차례로 나오는 장면들은 유브라데 강물이 갑자기 마르는 이유와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다섯째 재앙: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 며”(계 16:10).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보좌”가 있는 장소를 암흑으로 둘러치심으로써, 사탄의 세장군 중의 하나인 짐승의 정체와 그가 존재하고 있는 장소를 밝히 드러내실 것이며, 누구 때문에 일곱 재앙이 내리게 되었는지를 나타내 보이기 시작하십니다. 또한, 이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누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며, 어떤 무리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무리인지를 온 세상 앞에 드러내기 시작하심으로써, 사탄의 대리자들의 기만적인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일곱째 재앙: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계 16:19).

여기서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의 세 장군 역할을 했었던 세 더러운 영인 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연합 세력이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등장합니다. 일곱 번째 재앙에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괴롭히던 바벨론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큰 성 바벨 론이 세 갈래로 갈라”진다는 뜻은 사탄의 연합 세력인 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세 종교적 연합 세력이 세 갈래로 분열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에 종교 세력뿐만 아니라, 이들을 후원하던 각국의 정치적 세력들도 붕괴됩니다.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계 16:19).

악인들은 재앙의 원인을 의인에게로 돌림으로써, 박해의 불길을 드높이지만, 계속 되는 재앙들을 통하여 악인들의 마음에 “왜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 저 소수의 사람에게는 재앙이 내리지 않는데, 우리에게는 온갖 재앙이 내릴까?”라는 의혹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자신들이 핍박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에 나타나는 거룩한 증거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사탄에게 기만당했음을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일곱 재앙의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사탄의 세 장군에게 보내던 세상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은 완전히 중단됩니다.

요한계시록 17장 : 요한계시록 17장에는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는 장면이 좀 더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바벨론이 음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 그(여자)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계 17:1,2,5,15,16).

요한계시록 17장 후반부에는,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세 장군(용, 짐승, 거짓 선지자) 에게 보내던 지지와 후원을 완전히 중단할 뿐 아니라, 그들을 향하여 참혹한 복수를 가하는 두려운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영적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가는 과정 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됩니다.


8.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정체를 아는가?

이제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제일 마지막 장면을 살펴볼 준비를 갖추었습니 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 강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계 16:12). 하나님의 백성을 위기의 순간에 극적으로 구원해 내기 위하여 동쪽 방향에서 나타나는 동방의 왕들은 누구일까요?

아마겟돈 전쟁을 설명하는 요한계시록 16장 본문에서 직접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 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4,15).
이 말씀에는 사탄의 세 장군인 “세 더러운 영”들이 이적을 통하여 온 천하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장면이 나오면서,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재강림하시는 모습이 나타나고, 이어서 재강림 때에 승리하며 살아남게 될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져 있습 니다. 그렇습니다! 동방(동쪽)에서 오는 왕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타나는 방향을 동쪽 으로 표현합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 리라”(마 24:27).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이 나니”(겔 43: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돋는 데(동쪽)로부터 올라와서”(계 7:2).

그러면 왜 예수님의 재강림을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라는 복수로 표현하였을까요?
왜냐하면 그 때에는 천천만만 천사들을 대동하고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동방의 왕들”이 오는 모습이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오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 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 그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4,16).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에는 예수님께서 천천만만 천사들의 대군과 함께 재강림하 시면서 아마겟돈 전쟁의 전범들을 체포하여 심판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 말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 불리우더라”(계 19:20,21).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의 구원자

구약 시대의 고레스 왕의 이야기를 아마겟돈 전쟁에서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는 사건에 영적으로 적용하였다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기의 순간에 극적으로 구원하는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구약 시대에 고대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압제에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동방에서 온 고레스는 영적 이스 라엘을 영적 바벨론에서 구출하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을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하나 님께서 고레스 왕을 소개하는 표현들을 살펴보면, 마지막 시대에 아마겟돈 전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 내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 누구인지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 나의 목자라 …?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 …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케 하며”(사 41:2, 44:28, 45:1).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한 고레스 왕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4가지 표현 즉,

① 동쪽 방향에서 나타나시고,
② 목자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으며,
③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④ 모든 악인의 세상을 굴복시키실 분이 누구입니까?
오직 한 분밖에 없는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 시대에 사탄의 대리자들에게 쫓기고 핍박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그리스 도의 재림이야말로 유일한 소망입니다. 애굽의 바로왕 군대에게 쫓기던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홍해를 가르셨던 예수님께서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하늘을 가르시면서 나타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셔서 하늘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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