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기적이 모두 성령의 은사인가요?

성경공부 시리즈 3권- 성령의 역사

제2부 기적이 모두 성령의 은사인가요?

1. 서론

성경에 계시된 가장 분명한 마지막 시대의 징조 중의 하나는, 모든 영혼의 운명을 종결지을 최후의 전쟁을 위해서, 사탄의 세력이 가시적으로 출현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마지막 투쟁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는데, 이 전쟁에서 하나님과 사탄은 마지막 대 쟁투를 벌이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선악의 대 쟁투는 결국 여기서 막을 내릴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탄은 세상 전체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기만적인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 온갖 교활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 내려갔”다고 말했습니다(계 12:12). 6000 년 동안이나 준비해온 이 전쟁을 위해서, 원수는 정치적 세력과 종교적 힘을 모두 이용할 것입니다. 머리가 비상한 사탄은 사람들을 구원 받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지금까지 세워 왔습니다. 그의 최종적 목표는 사람들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인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 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은 오직 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를 “불법(법을 범함)”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요일 3:4). 바울은 좀 더 명확히 설명하기를, 죄는 십계명을 범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롬 7:7). 그렇다면, 마지막 대쟁투의 초점이 하나님의 도덕률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맞추어질 것이라는 사실 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탄은 하늘 정부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존재 입니다.
오래 전부터, 그는 하나님을 불공정한 요구를 하시는 분으로 비난함으로써 하늘의 평화를 깨뜨려 놓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율법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 시는 부당한 분으로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부터, 그는 자신의 비난의 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을 범하게 하려고 계속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탄에게 있어서 별 문젯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거대한 종교 집단들을 어떻게 자신의 불순종의 계획에 참여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최후의 기만을 위한 그의 거대한 전략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심지어 종교계까지 하늘의 권위를 대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교파에 속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범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며,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상태에 살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는 일에 있어 서는 열심을 내도록 기만해야 합니다. 사탄의 이러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탄은 신앙 문제에 있어서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받아들이던 전통적 견해를 무너뜨리고, 그에 걸맞은 다른 권위를 확립하려고 할 것입니다. 자신의 계략 안에 모든 교회와 모든 신앙과 모든 그리스도인을 다 포함시키기 위해서, 각 교파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예언 해석 법이나 생활 표준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의 시선과 생각을 연합시킬 수 있는 어떤 계략이 고안되어야 합니다. 사탄은 교파 간에 어떤 견해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전략을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연합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각 교파 단위의 분열이나 불일치를 가져올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기독교 전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도록 유도하는 놀라운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기본적 요구가 충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범하면서도 안전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진리와 오류를 시험하는 시금석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만들며, 진리의 말씀 대신에 진짜처럼 보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흥미 있는 다른 기준을 제시하며, 비록 진리라고 할지라도, 모든 그리스도인 간에 불화를 초래하는 교리나 예언 해석, 그리고 그리스도인 표준들을 무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십계명)을 불순종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요소가 사탄의 거대한 책략 속에 잘 짜 넣어져야만 합니다.


2. 기적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증표인가?

자, 이제 마지막 시대에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에 관한 영감의 기록들을 살펴보십시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대 기만자인 사탄은 자신의 속임수를 통하여서 그의 목적들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많은 사람이 그리스 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할 것에 대해서 경고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주의해 보십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내 아버지의 법을 범하는 자들 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주님께서 하신 이 경고의 말씀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성경 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자처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예언하고 병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 엄청난 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기적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그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그런 영적 은사들을 행사한 것이 아니 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에게 초자연적 능력을 주어서 그런 기적을 행하게 하였습니까? 그러한 능력이 나올 수 있는 근원은 하나님과 사탄 이외에는 없습니 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들이 불법의 창시자 사탄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예언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기만적인 기적들이 있을 것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그것들은 정말 참된 은사와 똑같이 보일 것이며, 신앙의 열성이 지극한 분위기 가운데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은사와 거짓 은사의 차이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예수 님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주여, 주여”라고 부르짖 는다고 할지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 하늘 아버지의 뜻입니까?

다윗의 말을 들어 봅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자신들이 행한 놀라운 기적들을 근거로 예수님께 구원을 호소한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주님 으로부터 “사탄의 대리자”라는 책망과 거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기만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예수 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였지만, 예수 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과 진리에는 순종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분을 아는 것은 곧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는 요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 하되”(요일 2:3,4). 사실상, 그들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곧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3.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성령을 받게 됨

이러한 사실들은, 오직 순종하는 자들만이 성령 충만해질 수 있다는 진리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자들의 생애에는 영적 은사가 나타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5,16).

이 말씀들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사랑은 순종을 낳고 순종은 성령 충만을 가져다준 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순종과 성령의 침례 사이의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성령은 믿는 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 며, 죄를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 라”(요 14:26).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모든 진리 또는 모든 것”이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첫째로 하시는 사업은 죄를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8절에 성령의 사역을 묘사해 놓으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불법(율법을 범함: 영문성경)이라.”(요일 3:4) 어떤 사람도 자신이 율법을 범한 일에 대한 성령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성령 충만의 체험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 도둑질, 간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일 등은 성령 충만한 삶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죄들입니다. 이러한 죄들을 의도적으로 행하고 있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고의적인 죄와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거리가 먼 것만큼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거역하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이르게 된다는 두려운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우리를 이끌고자 하실 때, 성령의 지도와 책망을 거절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 다. 누가는 영감의 말씀을 기록하면서 이 원칙을 잘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 5:32).

이제 우리는, 기적을 행하였던 자들을 예수님께서, 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배척해 버리셨는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능력을 요구 하였지만, 하늘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율법을 거절하는 삶을 살았으므로,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사탄이 끼어들어서, 성령께서 행하시는 기적처럼 보이는 기적을 산출해 내는 능력을 그들에게 공급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인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은, 그들의 불순종을 책망하시는 성령을 슬프시게 함으로써 결국 결정적 기만에 빠져들게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는 것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사탄의 영이 그들의 감정을 자극하였고, 이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기초로 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감정에 기초하여 계속해서 거짓된 종교적 능력을 행사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 들의 기적 행사를 성령의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현상들이 일어날 것이지만, 사실 그들은 사탄에 의해서 이용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경고하여 주셨습니다.


4. 오늘날의 놀라운 성취

오늘날 세상에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종교계를 불순 종의 거대한 책략으로 몰아넣기 위한 4가지 기본적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나 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드리기 전에, 저는 최근에 어떤 사람들을 그룹으로 성경 공부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성경 연구반은 6명 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3명의 사업가와 그 부인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성경의 원칙들을 탐구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 공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이례적이었습 니다. 우선, 그 세 쌍의 부부는 모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처럼 보였습니다. 함께 공부 하는 중에 가끔씩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이 체험한 사랑의 경험들을 주고받 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를 자신들의 감정적 느낌을 근거로 하여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례적인 사실은 진리가 그들 앞에 공개될 때마다 열렬한 태도로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 문제라든지 죽은 자의 상태, 또는 부정한 음식 등이 설명될 때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그 문제들의 정확성을 시인하였고, 자신들이 왜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했었을까를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성경 공부의 마지막 날, 저는 그 사람들에게 함께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하자고 권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 중 아무도 자신들이 그토록 성경을 통하여 확신하였던 진리의 말씀들을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였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우리가 할 일들을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한다면 기꺼이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이 성경에 있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기 전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안식 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셔야 합니다.”라고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성령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므로, 더 이상 성령의 뜻과 계시를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그분께서는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말씀을 하심으로써 성경과 어긋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하였 지만 허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말하였 습니다. 그것은 성경 자체가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담당하는 칼날이라는 뜻입니다. 아무도 성경을 보지 않고서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정적 느낌을 선호함으로써,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성경의 말씀을 배척하 였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타당하게 보이는 다른 시험 기준을 선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시키고 미화하는 다른 영의 말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대단히 사랑한다고 자처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보는 환상이나 계시를,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 속에 특별히 임재하시는 증거로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보다 자신들의 경험을 더욱 신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여야 된다고 수없이 공언하였지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순종하기를 계속해서 거절하였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그들에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제가 그들처럼 황홀한 기쁨이나 평화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저를 측은히 여기는 듯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21,22절에 하신 말씀과 똑같은 현상임을 느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 자신들의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은 행하지도 않으면서 “주여, 주여”라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졌다고 주장하는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들이 갖는 것과 유사한 것들이었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냄, 예언, 병 고침, 방언, 기적 등.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와서 그런 기적들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진리대로 순종하며, 생애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지만, 예수 님의 진리인 성경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어느 곳을 가든지 수많은 사람이 교파의 장벽을 초월하는 이런 움직임들에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자나 개신교 신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이러한 영의 활동에 감동되어 사로잡혀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성령이 자신들에게 임하 여서, 그들이 방언이라는 영의 언어를 말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임하여 서, 병을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내며 예언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경고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는 참된 은사와 거짓 은사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어떤 기적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가짜를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느냐 또는 불순 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이 행하는 “큰 표적과 기사”들이 너무도 기만적이기 때문에, “택하신 자”들까지도 그 기적들에 의해서 거의 압도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 24:24). 요한은, “귀신의 영”이“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그들을 모으” 는 것을 보았습니다(계 16:14). 이 귀신의 활동들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거짓 영들은 진리의 사역자임을 자처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의 옷을 입고 일할 것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에 대해서 말했 습니다.(고후 11:15)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는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 으로”라고 묘사했습니다.(살후 2:9,10)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성령의 능력을 너무도 흡사하게 가장하므로, 대부분의 세계와 교회들이 사탄의 기만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 다. 그리고 성경은 오직 사랑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만이 이러한 기만으 로부터 보호될 것이라는 예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기괴한 일들과 구경거리가 편만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병을 고쳐준다는 약속, 기적 같은 언어 능력, 방언들, 심령술 등에 매혹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지 또는 사탄에게서 오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 기적에 관해서 예언한 영감의 기록들을 주의 깊이 살펴보지 않음으로써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 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가지고 설교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와 열성에 감동되어서, 수많은 사람은 그런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이 틀림없다고 느낍 니다. 그들은 기적들을 성경으로 시험하기보다는, 아무런 저항 없이 감정의 무아경에 빠집니다.

제가 성경을 지도해준 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저는 사탄이 종교계를 자신의 진영으로 낚아채 가는데 필요 되는 4가지 기본조건들이 그들에게 잘 부합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면서도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 그들은 영을 분별하고 진리와 오류를 판단하는 최종시험 기준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할 것을 거절했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인정하신다는 확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시험 기준 (즉, 자신들의 감정)을 정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가납하심의 증거를 기적의 은사에 두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직접 확인한 놀라운 교훈과 예언의 진리들을 그들의 종교적 “경험”보다 덜 중요한 부수적인 것으로 일축해 버렸습니다. 천주교도, 침례교도, 오순절 교도, 장로교도였던 그들 모두가 “영”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성서의 가르침이나 교단의 입장을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숭배하는 사람,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 죽은 자와 대화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는 그런 영은 도대체 무슨 영입니까? 분명한 사실은, 그것은 하나님의 영(성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오직 “자기(하나님)를 순종하는 사람 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행 5:32).



5. 성령 침례의 목적

성령의 침례에 대한 가장 중대한 진리가 종종 간과되는데, 이 문제는 성령의 침례의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어떤 개인적 무아경, 감정, 내적인 신령한 행복감 등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은 약속된 성령의 부으심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 침례를 받은 결과로 그러한 느낌을 개인적으로 가질 수는 있지만, 결코 그러한 느낌이나 감정이 성령 침례를 받는 목적이 될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몇 날이 못되어”(행 1:5)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신 후, 그들에게 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약속을 통해서, 성령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증인”이란 자신이 먼저 알고 있는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메시아를 목격해온 자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무엇인가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보존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있어서 완전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 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을 강력한 증인으로 만드심으로써,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영혼들이 수확될 수 있도록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의 침례가 그들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이나 황홀함을 줄 것이라는 암시를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 다. 성령의 침례는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확신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요,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지도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약속된 성령을 기다렸으며 오순 절이 되자 드디어 성령이 퍼부어졌습니다. 그들은 어느 집에 함께 모여 있었는데,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하늘이 열리는 듯하더니 불의 혀가 번쩍이며 그들 각자에게 임했습 니다.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대로 약속된 축복이 내렸습니다. 그들이 영혼들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 하늘의 능력이 그들 위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그들이 능력을 부여받았고 또 자격을 얻었습니까? 예루살렘과 유다와 땅 끝까지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사도행전 2장 9-11절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증거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 집을 나섰을 때, 16개나 되는 다른 나라의 말을 그들이 구사했다고 말합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성경을 읽어봅시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놀란 청중은 자신들의 귀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In his own native language)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 2:6-8).

사도 바울은 참된 방언의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단순하게 묘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아경의 상태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늘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었던 실제 언어였으며, 여러 종족 사람들이 다 각기 자기들의 모국어로 전파되는 복음을 들음으로써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접촉할 필요가 있을 때, 이 방언의 은사가 계속 작용했습 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는 언어의 장벽을 깨기 위해서 그것이 필요 되었고, 또 어떤 경우는 이방인들이 유대인 중심의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는 것을 허락하는 표로서 그것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4-47절에서,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동안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 여”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에게 침례 주는 것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했던 방언을 오순절에 있었던 방언(이해할 수 있는 실제적인 언어)과 동일시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형제들에게 그 일에 대해서 보고 하기를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셨다고 말했습 니다(행11:15). 이것은 분명히 오순절에 있었던 방언의 경험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5-7절의 방언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은, 이방 종교의 영향으로 인해서 사도 들의 노력이 무산될 위험에 처해 있는 고린도의 12명의 작은 교회(7절)에 성령의 은사가 주어졌던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에 주어졌던 방언 은사가 오순절에 나타났었던 방언의 은사와 동일한 종류의 것이었음을 의심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고린도 교회에서는 커다란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방언의 은사가 오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편지서의 한 장을 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 써야 할 정도로 염려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약한 그리스 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이 사도들을 괴롭혔습니다. 고린도는 항상 개심 자를 얻기가 힘든 곳이었으며, 새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부패한 이교의 영향을 지워버 린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종종 그 교회에게 간절한 호소의 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방언 문제가 제기되어 있는 고린도전서 14장을 살펴봅시다. 이장의 성경 구절들 중의 절반 이상이 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바울은, 언어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이해시키고, 배움을 주며, 교회의 덕을 세우며, 가르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언어의 은사를 올바로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반복하여 사도 바울은, 방언(타언어)이 야만인과 믿지 않는 자들, 또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 치는 일에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청중들이 사용하지도 않으며,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국어를 말함으로써 큰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방법으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어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할 목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방언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방언을 해석하는 일도 통역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사용되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구절이, 처음 오순절에 있었던 방언의 목적 즉 복음을 증거하는 일과 전달하는 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절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6절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지식(을)… 말하지 아니하면” 7절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8절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9절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0절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절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12절 “너희도…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13절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절 “나의 마음(이해, 영문 번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절 “마음(이해, 영문 번역)으로 기도하며” 16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17절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9절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20절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22절 “방언은…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23절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6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절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절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30절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 지니라” 31절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33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34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35절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40절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방언이 어떤 무아경 상태에서 말하는 것이라는 근거를 찾기 위해서 이 장을 읽는 사람은 자신들의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을 두어 개 찾을 수 있을 것입니 다. 그러나 그러한 구절들은 14장 전체의 문맥 속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이며, 실제적인 외국어를 염두에 두고 연구해야만 이 모든 구절이 조화 있게 이해될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주장은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22절)라는 논점을 기초로 성립된 것입니다. 오순절에 사도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던 것도 언어가 다른 이방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받았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몇 가지 질문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고린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거나 예배 드리고 있는 중에 큰 소리로 방언함으로써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분명히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의 말,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특별히 축복을 받아 방언을 말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을 높이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고린도전서 14장을 근거로 할 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교회의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사람 들에게 방언을 말하게 하실까요? 아니오, 성령은 그런 목적으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린도교회의 무지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그 연약하고 미숙한 교회의 교인들은 오순절에 있었던 방언(각 나라 사람들이 자기 고향의 언어로 알아들었던 실제적인 언어) 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방언이 복음사업에 있어서 외국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기적적으로 주어지는 은사임을 잊어버리고, 외국 말이면 무엇이든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증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방언의 오용을 막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것처럼 교회에서 큰 소리로 말하면서 펄쩍펄쩍 뛰곤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어떤 사람들도 그들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점잖지 못하고 무질서한 광경 들이지요.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큰 혼란을 일으키곤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33,34,40절).

그들이 받은 은사가 성령의 능력에 의한 무아경의 발설이었다면, 바울이 그 여인들 에게 잠잠하라고 말했겠습니까? 아마 그렇다면, 바울은 성령에게 잠잠하라고 명한 죄를 범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28절에 있는 바울의 명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말하는 자가 성령의 지도를 받아 하늘의 언어를 말하고 있던 것이라면, 어떻게 그런 명령에 교인들이 순종하겠습니 까? 바울은 듣는 자들에게 덕이 되고, 그 의미를 밝히 전달해 줄 수 있는 통역자가 없다 면, 방언을 하지 말 것을 권면 했습니다.

오늘날의 방언은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방언보다 좀 더 혼란스럽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당시의 상황과 아주 흡사합니다. 실제적인 언어를 말하는 대신에 세상의 어떤 언어와도 관련이 없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공중에 가득하게 날립니다. 심지어 누가 그 소리 들을 통역해보아도 그 내용 속에 별다른 기별이 없고 의미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으로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그리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국말이나 영어로 말해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왜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한 언어와 통역을 통해서 기별과 진리를 전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도무지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또한 성경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방언의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일진대, 그 정확성에 대해서 전혀 객관적인 테스트를 하지도 않고, 전적 으로 통역자 한 사람의 성실성에만 의존하여 교인들에게 진리를 전달한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방언의 풍조가 성경의 중요한 두 가지 진리의 표준에서 빗나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성령의 침례는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들을 모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오늘날의 일반적 방언의 횡설수설하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을 지도하고 그들의 덕을 세우기 위한 방언 은사의 참 목적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입 니다.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탄은 사람들의 감정과 느낌을 파고들어서 그들을 깊이 기만하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성령과 가납하심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사람들에게도 임할 수 있다고 믿도록 유도되고 있습니다. 사탄이 환상 속에서 주는 번쩍번쩍하는 빛이 하나님의 불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진리보다는 기적에 더 높은 가치를 두도록 세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시대에 악한 영들이 모든 기독교인과 세상 사람을 완전하게 속일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 다. 마지막 시대에는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위에 두는 그리스 도인만이 사탄의 기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 그대는 성령의 은사를 구하기 전에, 성령의 9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자신의 성품과 생애 속에 충만하게 맺히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성령의 열매들이 충만하게 맺히지 않은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의 능력이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그대는 안식일 계명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십계명과 진리를 고의적으로 부인하거나 거절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하나 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부인하는 사람도 성령의 침례를 받을 수 있다면, 아무나 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그것을 받아서 이기적이거나 무례하게 사용할 만큼 성품이 변화되지 않은 자들에게도 주어진다고 생각하는가?

◎ 방언이 주어지는 목적이 무엇인가? 신앙적인 만족감인가? 아니면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전도인가?

◎ 한국인이 한국 청중들에게 설교하는데, 방언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사람이 한국말 하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는데, 통역을 두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방언을 하는 사람 자신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듣는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묘한 상황이 성경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또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가?

◎ 그대는 하나님의 기적을 간구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진리를 중요한 것으로 생각 하는가? 그대는 예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진리와 계명을 사랑하고 순종하는가? 그대 자신의 신앙적인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그대는 자신의 경험을 부인할 만큼 성경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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