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기독교회에 들어온 구원에 대한 오해

성경공부 시리즈 2권- 하늘의 전쟁

제1부 기독교회에 들어온 구원에 대한 오해

1. 한 가지 조건을 전제로 주어진 특권

만일 성경 전체에 나오는 말씀을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단어를 선택하겠습니까? 죄와 구원이라는 단어야말로 성경 전체의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하는 단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순종을 전제 조건으로 놀라운 특권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순종의 생애를 사는 한, 놀라운 선물들이 그들에게 영원히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생명, 의로운 성품, 지구의 모든 생물을 지배함, 그리고 에덴동산의 아름다운 집 등이 모두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가지의 조건 하에서 이 모든 축복을 허락 하셨는데, 그것은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것입니 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탄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서 먹는 불순종, 즉 죄를 범하게 함으로써 영생과 구원을 빼앗아 갔습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유혹한 사건은 인류의 운명에 있어서 매우 치명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죄를 범한 이후부터 그리스도와 사탄, 진리와 오류, 순종과 불순종 사이의 대쟁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장마다 인류를 원래의 위치로 회복시 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물론, 여기서 죄는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2. 구원의 조건

가 끔씩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왜 율법에 대한 행함과 외부로 나타나는 행위에 대해서 염려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중심과 동기를 더욱 중요하게 보십니다!” 옳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적인 마음과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충성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으로 “순종”이라는 방편을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외부적 행위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으 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위는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거울이기 때문입니 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순종의 삶을 살게 되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십자가의 죽음과 희생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지는 감사와 사랑의 정신을 통하여 그들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법과 일치 되도록 하심으로써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리에 일치하는 생애를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도 순종에 관한 동일한 이슈가 펼쳐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인 또는 짐승의 표 중에서 어느 하나를 받게 됩니다. 시험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을 전제 조건으로 해서 각 영혼들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해서 볼 때, 마지막 시대에 구원 받는 성도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집약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시조를 에덴동산 에서 살도록 허락하셨던 조건이 인간이 하늘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구원의 조건은 시대를 통하여 언제나 불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용이 여자 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KJV 역).


3. 하늘에서 죄와 반역이 반복되지 않게 되는 이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을 만큼 영적으로 안전한 사람들 에게만 영생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있어서 아담과 하와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 불순종을 범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 께서 재림하셔서 성도들을 하늘에 데려간 후에도, 그들에게 여전히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물론, 성경은, 하늘에서는 다시는 반역이나 죄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는 6천년 동안 있었던 것과 같은 죄와 반역이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죄와 반역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거룩한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죄와 반역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늘이 안전할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도들이 불멸의 몸을 받기 이전에 세상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악몽이 구원 받아서 하늘에 올라간 성도들에 의해서 다시 재현될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늘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간증하면서, 죄와 배도의 위험천 만함을 온 우주계에 증거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체험적인 간증이 온 우주를 죄로부터 보호하게 될 것입니다.


4. 사탄의 기본 전략

사탄이 구상하는 기본 전략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더러운 것은 결코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죄를 품고 있는 자를 결코 하늘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을 하는가가 우리의 주인을 결정합니다. 바로 그 자가 우리의 주인이 됩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우리는 우리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다 면,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중단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그치는 것입 니다. 사탄의 계획은 우리로 하여금 사탄 자신을 순종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를 사탄 자신의 종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한, 우리가 무엇을 할지라도 사탄은 상관하지 않습니 다. 우리가 그리스도 교회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지라도, 우리 개인의 마음과 생활에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있다면, 사탄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종교적 의식과 활동에 생애를 바쳤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사탄의 종이 된 예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사실상, 그들도 자신들의 불순종에 대한 이유를 말할 때, 매우 종교적으로 설명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지만,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불법한 생애를 살아감으로써 영생을 잃어 버리게 되는 비극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하였지만, 하늘에 들어가기 직전인 세상 끝에 예수님께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선언을 듣게 되는 장면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왜 이런 비극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도록 만들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성경절의 바로 앞에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 두셨습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을 매우 많이 불렀지만, 그들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열심을 내어 일했지만, 그들의 열심과 행위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5장 9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 셨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그분을 열심히 경배하였던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가서야 비로소 자신 들이 잃어버림을 당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을 때 얼마나 심한 충격을 받겠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못 경배하는 것이며, 그들의 경배가 무가치하고 헛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의 경배를 받으실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옆으로 제쳐놓고, 인간이 만든 계명과 교리 즉,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가장 높은 경배 형태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합니다.


5. 불순종에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귀에 그럴 듯하게 들리는 이유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사울의 경우를 살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승인하셨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아말렉 사람들과의 전쟁을 위하여 보냈을 때, 그가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들을 완전히 파멸시키라고 명령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명령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으로 어떤 전리품도 가지고 돌아오지 말고 파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 졌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살찌고 건강한 얼마의 가축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전쟁터 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지자 사무엘을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의 불순종을 매우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 15:14,15).

사울의 그러한 대답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들릴지라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사악하고 위선적인 계획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사울의 대답 속에는 가축들을 모두 죽이지 않고 남겨서 가져온 것에 대한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울은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였습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책임을 맡은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그 이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오직 적은 불순종이 있었을 뿐인 데,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란 말일까요? 더구나 그들이 남겨 가지고 온 가축들은 그들 자신의 부의 축적을 위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질 좋은 가축들을 골라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까?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이 문제의 핵심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그러한 논리를 받아주실 수 있겠 습니까? 사무엘 선지자의 칼날같이 예리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 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 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사울의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다시 한 번 교훈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가장 높은 경배의 형태로 간주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울 왕이 불순종에 대하여 매우 종교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유를 말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분명하게 거절하셨으며, 더 이상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취급하지 않으셨습니다.


6.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는 이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것들만 골라서 순종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계명과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진리는 여러 가지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서 거절하거나 무시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사울 왕이 범한 잘못을 뒤쫓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을 깊이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 하는 그리스도인은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잘 납득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말씀에 불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은 어린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분명한 요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그러한 계명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었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력을 하나님의 지혜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주의 날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있으며, 심지어는 장사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범하고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오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기록한 명령을 감히 거역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헌금을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까! 물론,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잘못을 범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원불변의 법에 불순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경고를 다시 한 번 들어보십시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목사로서 나는 지난 수 년 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십계명을 범하도록 가르치는 설교들을 들어왔습니다. 그러한 설교자들 중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이야기 하였으며, 진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요즘, 자동차 뒤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웃어보세요!”, “당신이 예수님을 사랑한 다면, 손을 흔드세요!” 사람들은 사랑이 희생을 요구하지 않을 때에는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희생과 손해를 요구할 때에는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희생과 헌신이 따르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설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값싼 사랑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거품과 같이 있다가 사라지는 감정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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