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우리와 하나가 되시기 위해

성경공부 시리즈 1권- 넘치는 은혜

제1부 우리와 하나가 되시기 위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또 별 의심이나 깊은 생각 없이,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대속의 죽음과 속죄의 피를 믿습니다. 그러나 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그리고 왜 우리와 같이 되셔서 인간의 삶을 몸소 체험하시며 사셨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드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쩌면 이러한 주제에 대해 전혀 가르침을 받지 못했거나, 이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 하는 것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주제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와 같이 되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되셔야만 했던 이유를 연구하는 일 속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이 연구 속에 숨어 있는 비밀과 신비를 터득한 사람만이 마지막 여자의 남은 무리가 될 수 있으며, 이 신비를 체험으로 터득한 사람만이 마지막에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책에서는 성육신의 신비를 함께 공부해 보기로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 서론

밖에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밤이었습니다. 불을 따뜻하게 지핀 벽난로 옆에서 제임스 씨가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왜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인간이 되어 오셔야만 했을까 하는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문 쪽에서 무엇이 부딪히는 소리가 자꾸 퍽퍽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가 창문에 가보니, 그 소리는 추운 바깥에서 참새들이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창문이 있는지도 모르고 돌진해오다가 창문에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너무나 세차게 돌진하기 때문에 새들은 창문에 부딪힌 후 떨어져서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 습니다. 처음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성경을 읽었으나, 너무 많은 새가 자꾸 부딪히는 바람에 그만 안타까워져서 일어습니났다. 그리고는 추운 밖으로 나가서 새들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훠이, 훠이! 새들아, 오지 마라! 저리로 날아가라! 그렇게 세게 날아오면 창문에 부딪혀 죽어. 저리 가!” 그러나 새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꾸만 날아들다가 창문에 부딪혀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눈보라가 치는 밖에 한참을 서서 새들을 쫓았습니다. 눈 위에 서 있는 그의 발은 점점 얼기 시작했고, 코는 추위에 빨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오랫동안 손을 휘저어 새들을 쫓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아, 내가 새라면, 내가 새들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으련만!…” 그때, 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는 비로소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오셨구나!”
“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리고 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되셨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첫 번째 대답은, “우리와 하나가 되시기 위해서”입니 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해주지 않으셨다 면, 아마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왜 우리와 하나가 되셔야 했을까요?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 2:11).

“자녀들은 살과 피를 함께 나누는 자들이 되는 것같이 그분도 역시 손수 동일한 것을 함께 나누는 자가 되심은, 죽으심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인 그 마귀를 멸망시키시며, 또죽음을 두려워하여 일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시려 함이니라.”(히 2:14,15 KJV역).

“이는 주님께서 진실로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음이라” (히 2:16, KJV역).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 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18).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히 5:2).

위의 성경 절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성경 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와 하나가 되셔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우실지를 아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과 한 형제가 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 고, 한 혈육에 속하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 시험을 당하여 어쩔 줄 모르는 연약한 인간 들을 도우시기 위해, 그리고 죄의 강한 유혹과 사탄과 악의 세력과 싸우며 투쟁한다는 것이 무엇임을 손수 겪으시고 이해하시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성을 입으시 다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2. 체휼하시는 분

“이는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분이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히 4:15).

히브리서 4장 15절에는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지못하시는 분이 아니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신 분, 곧 우리를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기시는 자비로우신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유혹을 당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사정을 아시며, 그 누구보다도 인간을 이해하시며 동정 하십니다. 그분은 손수 당하신 그 유혹의 힘을 아시며, 인간이 당하는 불행과 시련과 고통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동정하시며 돕기를 심히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사탄이 이 세상에 뿌려 놓은 거짓 정보(곧 하나님은 가혹하시며,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기를 좋아하시는 인색하고 무서운 하나님이라는 거짓 정보) 속에서,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참모습과 성품을 곡해하여 두려워 떠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는 인간들을 도우실 수 없으셨습니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겠지만, 연약에 싸여 죄의 세력 아래서 헤매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삶을 이해하시는 입장에서 이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곧 우리와 하나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신 분이십니다.

3. 어떻게 도울지를 아시는 분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히 5:2).

미국속담에 “남의 신발을 신어 봐야지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또한, 인디언 속담에도 “남의 신발을 신고 십 리를 가보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마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 번도 범죄해본 적이 없고, 이 세상에 살아 본 적이 없고, 죄의 세력의 무서움과 유혹을 체험하거나 견뎌보지 않은 천사들은 인간을 도울 수는 있지만,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인성을 쓰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죄악의 땅에서 사셨던 예수님 께서는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친히 인간의 삶을 몸소 체험하신 예수님 께서는, 죄의 세력이 얼마나 무섭고 강한지를, 그리고 그 죄의 유혹을 견디기 위해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고 강한 믿음으로 그것을 저지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기 위해 얼마나 자아를 철저하게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지를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지를 아십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동정하시며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4. 죄의 세력을 느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실 때에 죄의 세력을 느끼셨는가?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죄의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아버지의 뜻대로만 살기 위해 투쟁하신 모습이 성경에 나와 있는가? 그렇습니다. 성경은 인성을 쓰신 예수님께서 눈물로 사투하신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이 성경 절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왜 예수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올려야만 했을까요? 육체로 계신 예수님은 악의 세력을 느끼셨습니다.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아들을 괴롭히고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렇게 마귀 들린 사람과 악령 들린 사람이 많았던 것은, 사탄이 메시아의 사역을 방해하고 그의 세력을 세상에 펼쳐, 인간들을 죄악과 그의 권세 아래 단단히 속박시켜 붙들어 매려고 사력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탄은 교회 안에 역사 하여,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첩자를 보내어 흠을 잡아 교란시키며, 틈틈이 그분의 생명을 해하려고 하였 습니다. 그리고 특히 백성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려고 예수님을 모함하고 괴롭혔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계속적인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심한 통곡과 눈물의 간구를 매일 아버지 하나님께 올리셨습니 다. 왜 그래야 하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설령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분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만,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방법과 섭리대로만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 니다. 그분은 그의 신성을 사용하여, 그분의 메시아 되심을 부인하고 그분을 조롱하며 괴롭히는 사람들을 제압하실 수도 있었고, 또한 그분의 놀랍고 두려운 능력으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거하고 과시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시며,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시간을 능가하지 않도록 제어하셨 습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충동이나 감정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기 위해 눈물로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경험이었습니 다.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이 범죄하도록 그를 괴롭히고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탄과 죄악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우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생애를 사시기 위하여, 그리고 죄악의 세력에 빠져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심한 통곡”으로 “새벽 미명에” 간절히 기도하시는 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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