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호 매일의 만나

 

1. 반역자의 자기 기만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히 3:2)

모세에게는 비천한 목자의 생활이,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이 거대한 군중의 인도자로서의 현재 위치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감히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목자의 지팡이 대신에 권세의 지팡이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두실 때까지 놓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의 동료들의 의도를 주목하시고 그분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음모자들의 기만을 피할 수 있도록 경고와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모세에 대한 미리암의 시기와 불평 때문에 그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선지자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한다고 하시고 또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민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교훈들은 아론과 미리암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라와 그의 공모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본 일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함께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사람들 중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후에 그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유혹이 처음에는 별것 아니었으나 격려를 받을 때 강해져서 마침내 그들의 마음이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불만을 선동하는 일을 감행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번영에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처음에는 저들의 불만을 상호 간에 주고받았고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적 인물들에게 속삭였습니다. 그들이 넌지시 한 말은 너무나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한 걸음씩 더 담대하게 나아가고 마침내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참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마지막 때 진리의 기치를 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무차별로 박해하고 핍박할 것입니다.

 

2. 더해가는 음모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행 7:51)

반역자들은 백성들 중에 명망이 있는 250명의 족장들을 이간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들은 힘이 있고 영향력 있는 이 지지자들로 인하여 모세와 아론의 행정 방식을 크게 개혁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질투는 시기를 일으켰고, 시기는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그처럼 큰 권위와 명예를 가진 모세의 권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마침내 그들 중 아무라도 모세와 같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기만에 빠져 그들이 차지할 지위를 모세와 아론이 횡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만자들은 이 지도자들이 사제직과 행정권을 취함으로 자신들을 여호와의 회중보다 더 높였으나, 그들의 가문은 이스라엘 중에서 다른 가문보다 우위에 있을 자격이 없으며 그들이라고 해서 백성들보다 더 거룩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음모자들이 백성들을 충동할 때, 잘못을 행하고 책망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정과 칭찬을 받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었습니다. 고라와 그의 동조자들은 그렇게 함으로 회중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백성들이 불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가 내렸다는 비난은 잘못된 것이라고 선포되었습니다. 그들은, 회중은 그들의 권리를 원한 것뿐임으로 잘못이 없고 오히려 모세가 오만한 통치자였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이 거룩한 백성들이요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백성들을 죄인으로 몰아붙였다고 말했습니다.
고라는 광야를 여행해 온 역사를 들추면서 그들이 험한 곳으로 인도되었기 때문에 불평하게 되고 불순종하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만일 모세가 다른 길로 인도했더라면 그들의 재난이 분명히 예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모든 재난의 책임이 모세에게 있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은 모세와 아론이 일을 잘못 처리한 결과라고 단정 지어 버렸습니다.

 

3. 주의 종을 대적하는 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8)

고라는 전에 있던 어떤 반역에서보다 불평분자들 사이에 단결과 조화를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 고라는 자신을 갖고 만일 모세에 의한 권력의 횡령을 제지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해방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자기에게 보여 주시고 너무 늦기 전에 행정 제도의 개혁을 일으킬 권위를 주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모세에 대한 고라의 비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참을성 있고 자기희생적 노력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고라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깊은 관심을 나타낸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라고 백성들이 믿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기 위하여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죽게 한다는 비난을 전처럼 되풀이하였습니다.
한동안 이 일은 비밀리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이 운동이 공공연히 해도 될 만큼 힘을 얻었을 때에 고라는 파벌의 두목으로 나타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수기 16:3)라고 모세를 비난하였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이 교묘하게 꾸며진 음모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그 가공할 만한 비난이 그를 향해 터져 나왔을 때에 그는 엎드려 하나님께 말없이 탄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모든 사람이 반성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다음날까지 연기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제직을 갖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각자 향로를 가지고 와서 회중이 보는 가운데 성막에서 분향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만일 그들이 감히 그렇게 위험한 간청을 한다면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맞섰습니다.

 

4. 반역자의 선동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 10:16)

모세는 고라와 그의 동료 레위 사람들을 뽑아내어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민 16:9)고 한 후에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이 고라처럼 그렇게 담대히 저항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음모에는 가담하였으나 완전히는 타락되지 않았을 것을 바라며, 자신에 대한 그들의 비난을 들어보려고 그들을 자기 앞으로 나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오지 않고 오만하게 그의 권위를 인정하기를 거절하면서 회중이 듣는 앞에서 그들은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민 16:13)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묘사한 바로 그 말을 그들의 속박 장면에 적용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편으로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 행하는 척한다고 그를 비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소경처럼 모세의 야망적인 계획에 따라 가나안을 향해 가다가 이번에는 광야 쪽을 향해 가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인자한 아버지와 참을성 있는 목자였던 그가 이제 폭군과 횡령자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들 자신들이 지은 죄의 대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그 책임을 모세에게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백성들의 동정심이 반역자들의 편으로 기울어진 것이 분명했으나 모세는 조금도 자기를 변명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엄숙한 태도로 회중 앞에서 그의 동기의 순결과 행위의 정당함에 대한 증인으로서 하나님께 호소하였으며 그분께서 그의 재판장이 되시기를 애원하였습니다.

 

5. 하나님의 심판

“불의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재앙이 아니겠느냐”(욥 31:3)

모세가 70인의 장로들을 동반하고 자기에게 나오기를 거절한 자들에게 최후의 경고를 주기 위하여 내려갔을 때에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과 합류하기 위하여 집회 장소에서 물러갔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모세를 따라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임박한 심판에 대한 불안이 그들 모두에게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그 경고를 순종하였습니다. 반역의 주모자들은 그들이 기만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당할 것을 보았으나 그들의 완고한 정신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에 도전하려는 듯이 가족들과 함께 그들의 장막 문에 서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회중이 듣는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민 16:28~30).
저들이 공포와 어떤 예감을 가지고 그 사건을 기다리고 서 있을 때에 굳은 땅이 갈라져 반역자들은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과 함께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죄에 관여된 자라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도망하였으며 구름에서 번개와 같이 불이 나와서 분향하던 250인의 족장을 태워버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최초에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으므로 음모의 주모자들과 함께 멸망 당하지 않고 그들의 종말을 보고 회개할 기회를 갖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역자들을 동정하였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운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6. 하나님의 자비하신 마음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올 멸망에서 피하라고 간청할 때에 만일 고라와 그 무리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하나님의 심판이 멈췄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완고한 반항은 그들의 운명을 확정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회중들에게도 크신 긍휼을 베푸사 반역을 지도한 자들과 그들이 인도하던 사람들을 구별하셨습니다. 속임을 당한 백성에게는 그래도 회개할 기회가 허락되었습니다. 그들이 잘못했고 모세가 옳았다는 압도적 증거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현저한 출현이 모든 불확실한 것을 제거하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온 특별하고 불가항력적인 간섭이 그들의 반역을 억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중재에 응하였더라면 그들은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멸망의 공포로 인하여 형벌에서 도망쳐 피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반역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밤에 두려운 마음으로 각각 장막으로 돌아갔으나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라와 그 무리의 아첨을 받아들여 마침내 그들 자신들은 매우 좋은 백성들인데 모세가 그들을 부당하게 취급하고 학대했다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모세가 옳았다는 것을 시인했다면, 백성들은 그들이 광야에서 죽으리라는 선고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명령에 따르기를 반가워하지 않고 모세가 그들을 속였다고 믿으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책망을 받는 대신에 칭찬받기를 원했고, 염려하고 투쟁하는 대신에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새 질서가 세워지려 한다는 희망을 맹신적으로 품고 있었습니다. 멸망 당한 사람들은 아첨하는 말로 그들에게 큰 유익을 끼쳐주고 그들을 몹시 사랑한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고라와 그 동료들은 선량한 사람임에 틀림없고 어떤 의미로 보든지 모세가 그들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7. 완악한 백성들

“여호와께서 저희를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 택하신 모세가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였도다”(시 106:23)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방편들을 멸시하고 거절하는 것보다 더 크게 그분을 모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했을 뿐 아니라 모세와 아론을 모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그들의 극악한 죄에 대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련의 밤을 회개와 자복으로 보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가장 큰 죄인들임을 보여 주는 증거들을 무시할 어떤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품고 그들의 권위에 저항하려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사탄은 그들의 판단을 왜곡하고 저들을 현혹시켜 멸망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매우 가까이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덩이에 빠진 멸망 당할 운명에 처한 죄인들의 비명을 듣고 놀라 도망하였었습니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민 16:41) 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충실하고 헌신적인 그들의 지도자들에 대하여 폭행을 가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위에 뜬 구름 속에 나타나 보이고 구름에서 한 음성이 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민 16:45)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없었기 때문에 모세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회중이 멸망하도록 버려두고 급히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 무서운 위기의 때에 자기의 보호 아래 있는 양무리에 대한 충실한 목자의 정신을 발휘하여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분노가 그분의 선택하신 백성 모두를 멸하지 않기를 간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재로 복수의 팔을 멈추시고 불순종하고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전멸하지 않으셨습니다.

 

8. 고라의 반역이 주는 의미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행 7:51)

고라의 반역은 사탄이 하늘에서 일으킨 반역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루시퍼가 하나님의 정부에 대하여 불평하고 하늘의 질서를 전복하려고 시도한 것은 그의 교만과 야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타락한 이후에 루시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기와 같은 시기와 불만의 정신과 지위와 명예에 대한 야망을 불어 넣는 것을 그의 목적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루시퍼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마음속에 역사하여 자기를 높이고 싶은 욕망을 일으켜 시기와 불신과 반역을 선동하는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사탄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들을 거절함으로 그들의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거절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불평을 품고 하나님을 모독하면서도 자기 자신들은 의롭고, 오히려 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사람들은 사탄으로 말미암아 행동한다고 생각할 만큼 기만 당하고 있었습니다.
고라의 멸망의 근본이 되었던 그같은 악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교만과 야망을 마음속에 품을 때에 그것들은 시기와 권력을 위한 경쟁의식이 생기면서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무의식중에 사탄의 대열로 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너무나 열심히 생각하고 계획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동정과 지지를 얻기 위하여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진리를 악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종들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고 그릇되게 나타내기 위해 지도자들이 자신들을 높이는 비열하고 이기적인 동기를 가졌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말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므로 마침내 그들은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들에 대한 백성들의 신임을 파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들 자신은 선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고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9. 고라의 정신이 교회에 끼치는 영향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랍게도 여호와의 지시와 제한에 즐겨 복종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제지를 받게 되면 침착하지 못했고 책망을 받게 되면 몹시 싫어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모세를 원망한 숨은 이유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방임되었더라면 지도자에 대한 그들의 원망은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각 시대의 교회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면 하나님의 종들은 이와 같은 정신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사탄으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에 접근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결국엔 죄를 버리기보다는 죄악에 탐닉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 단계씩 악을 향해 나아갑니다. 빛을 거절함으로 그들의 정신은 어두워지고 마음은 완고해져서, 다음 단계의 악을 취하기 쉽게 되며 보다 밝은 빛을 거절하기가 훨씬 쉬워져서 마침내 그들의 악한 습관이 굳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는 그들에게 죄처럼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해서 그들의 죄를 경고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자주 증오하게 됩니다. 그들은 개혁에 필요한 고통과 희생을 원치 않으므로 주의 종들을 적대시하고 그의 책망을 사랑이 없는 가혹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합니다. 그들은 고라와 같이 백성들에게는 잘못이 없고 모든 재난은 책망하는 자가 일으킨다고 선언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기만으로 그들의 양심을 진정시켜서 질투하는 사람들과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불화의 씨를 뿌리는 일에 연합하여 교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려는 지도자들의 손을 약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인도하도록 부르신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모든 발전은 의심을 일으켰고 그들의 모든 행위는 질투하는 사람들과 흠을 찾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잘못 전해져 왔습니다. 루터의 시대와 웨슬리의 시대와 그 외 개혁자들의 시대에도 그러했고, 오늘날에도 그러합니다.

 

10. 성령을 거역한 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고라는 이스라엘에게 전달된 모든 지시와 책망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더라면 그가 행한 노선을 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를 충분히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고라와 그 동료들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인간이나 사탄의 작용에 돌리게 되기까지 그 빛을 거절했습니다. 백성들도 그들을 속인 사람들의 멸망에서, 그들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셨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히 하나님의 심판을 사탄에게 돌리고 악한 자의 능력을 힘입어 모세와 아론이 선량하고 거룩한 사람들을 죽게 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의 운명을 확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실제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을 받지 못하도록 강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루신 일들을 유대인들이 바알세불로 말미암은 것으로 간주했을 때에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교통하시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를 사탄의 것이라고 고의로 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과 하늘 사이의 통로를 차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죄인들을 책망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그것을 거절당하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 영혼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실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마지막 방편이 끝난 범죄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고 죄는 그 자체를 치유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그 이상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버려 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후에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 27).

 

11. 하나님의 자비하심

“사십년 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결핍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사오며”(느 9:21)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다시 돌아가 본격적으로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 하에 있음을 상기해야만 했습니다. 가데스의 반역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하나님께서도 한동안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그분의 언약에 불충실했음이 밝혀진 이상 그들은 언약의 표인 할례의 의식을 행해서는 안 될 것이었습니다. 종살이하던 땅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그들의 갈망이 그들은 자유를 누릴 가치가 없음을 나타냈고 속박으로부터 구속받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된 유월절 의식은 준수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소 봉사가 계속되고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음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분의 섭리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반역자들과 불평자들에게 내린 형벌이었을 뿐 아니라 청년들로 하여금 약속된 땅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도록 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신 8:5)고 하면서,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 3)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 생활에서 그들이 남긴 유일한 기록은 여호와께 대한 반역의 실례들뿐이었습니다. 고라의 반란은 일만 사천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 밖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정신을 나타낸 단편적인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12.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한 자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레 24:15, 16)

한 번은 섞인 무리 중에 하나인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자기에게 속한 야영지를 떠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야영지에 들어가 그곳에 자기의 장막을 칠 권리를 주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그가 이 일을 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애굽인의 후손은 3대까지 이스라엘 회중에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과 한 이스라엘 사람 사이에 언쟁이 벌어져 그 문제는 결국 재판에 회부되었고 범법한 그 사람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 판결에 격분한 그는 그 재판관을 저주하고, 흥분한 나머지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였습니다. 그는 곧 모세 앞으로 불려왔습니다.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는 명령은 있었으나 이런 경우를 처리할 아무 규정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범죄였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지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모세는 여호와의 뜻이 확실하게 될 때까지 그 사람을 감금해 두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친히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그의 범죄를 목격한 증인들이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그의 범죄에 대한 고발이 진실함을 엄숙히 증언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먼저 돌을 던지고 주위에 서 있던 백성들이 뒤이어 돌을 던져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증언에 엄중함이 따르듯이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에 대한 증언이 판단이나 정죄가 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합니다.
격분을 이기지 못해 한 말에 대하여 그처럼 혹독한 형벌을 가하신 일은 하나님께 대하여 악의로 한 말들이 큰 죄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요구하는 바라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이 사람의 죄가 벌을 받지 않고 묵과되었더라면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타락하게 되어 그 결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이 마침내 희생당했을 것입니다.

 

13. 우리가 개혁해야 할 것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렘 17:27)

애굽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나온 잡족이 언제나 시험과 사고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버리고 참 하나님을 경배하노라고 공언했지만 어린 시절에 받은 교육과 훈련으로 인하여 그들의 습관과 성품은 우상숭배와 하나님께 대한 불경으로 상당히 부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자주 소요를 일으켰고 제일 먼저 불평했으며 진영에서 우상숭배적인 행동을 하고 하나님께 대한 불평을 퍼뜨렸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였을 때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오류를 버리고, 오류로 인해 잘못 길들여진 자신의 성향을 진리로 개혁하기를 거부하면 우리도 잡족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광야로 돌아온 지 얼마 후에 안식일을 범하는 사례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그 당시 사정으로 보아 특수한 범죄에 해당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여호와의 선고에 대해 반역의 정신을 가진 백성 중의 한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노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자신의 반항심을 나타내기로 결심하고 안식일에 나무를 하러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공공연히 넷째 계명을 범하는 일을 감행하는 행위였습니다. 광야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제 칠일에 불을 피우는 일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 금령은 가나안 땅에서는 연장되지 않았는데 그곳은 기후가 차서 자주 불을 피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덥게 하기 위하여 불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행위는 부주의나 무지의 결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외람되이 고의적으로 넷째 계명을 범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와 고의로 안식일을 범하는 죄는 다 같이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하는 표시였으므로 동일한 형벌 즉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14. 순종하지 못한 자들의 운명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시 78:37)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창조의 안식일을 유대인의 제도라고 거절합니다. 그러고는 만일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한다면, 그것을 범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사형의 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셋째 계명을 범한 죄도 안식일을 범한 죄와 동일한 형벌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셋째 계명도 역시 유대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제쳐 두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죽음의 형벌을 가지고 논쟁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넷째 계명과 똑같이 열 가지 계명 모두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요즘에는 그분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현세적인 형벌을 가하지 않으실지 모르나 그분의 말씀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합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백성들은 매주 만나의 기적을 통하여 거룩한 안식일의 의무를 깨우침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들을 순종으로 인도하지는 못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뚜렷한 형벌을 받을 만큼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나 넷째 계명을 준수하는 일에 있어서 크게 해이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처음 세대가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로 열거되었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그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방황하던 40년 동안 그들은 그처럼 안식일 준수를 게을리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지는 않으셨으나 그들이 약속된 땅에 정착한 후에 이방인들 중에 흩어지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데스로부터 광야로 되돌아갔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끝나자 그들은 다시 가데스로 왔습니다.
이곳에서 미리암이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노래하고 춤추던 홍해 바닷가의 기쁨의 장면으로부터 일생 동안의 방랑을 종결지은 광야의 무덤까지가 큰 희망을 품고 애굽에서 나왔던 대다수의 백성들의 운명이었습니다.

 

15. 반석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증을 풀어 준 생수는 호렙에서 반석을 쳤을 때 처음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여행하던 전 기간 동안 어디든지 필요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이적을 통하여 물이 공급되었는데, 물은 계속 호렙으로부터 흘러내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여행 중 물이 필요한 때에는 언제든지 진영 부근에 있는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말씀의 능력으로 신선한 물이 흐르게 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축복과 아울러 모든 현세의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참된 반석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모든 유랑 생활 동안에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시”(사 48:21)고, “마른 땅에 강같이 흐르게 하셨”(시 105:41)습니다.
모세가 친 반석은 그리스도의 표상이었고 이 상징을 통하여 가장 귀중하고 신령한 진리가 가르쳐졌습니다. 생명을 주는 물이 모세가 친 반석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상하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구원의 시냇물이 흐릅니다. 반석이 한 번 침을 당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히 9:28)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두 번 희생당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축복을 구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회개하는 기도로써 마음의 소망을 토로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와 같은 기도는 만군의 여호와 앞에 예수님의 상처를 가져갈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생수의 흐름으로 상징된 생명을 주는 피가 다시 흘러내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조와 선지자들도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16. 생명의 샘물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

사막에서 반석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온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경축하였습니다. 이 축제는 그리스도 당시에 가장 감명적인 의식으로 온 나라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때인 초막절에 거행되었습니다. 축제의 7일 동안 날마다 제사장들은 노래를 부르며 레위인들의 합창단과 더불어 실로암으로 나아가 그곳 샘에서 금그릇으로 물을 길었습니다. 백성들의 환희의 곡조가 터지면서 샘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자들은 모두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사장들이 길은 물은 나팔 소리와 엄숙한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성전으로 운반되었고 그 물은 번제단 위에 부어졌습니다.
구주께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향하도록 하는 데 이 상징적인 의식을 사용하셨으며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 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생수는 영혼을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고 활력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재하시는 사람은 그 속에 결코 다함이 없는 은혜와 능력의 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그분을 찾는 모든 사람의 생애를 기쁘게 하고 그들의 길을 밝게 하십니다. 마음속에 받아들여진 예수님의 사랑은 선한 일 속에서 샘처럼 솟아나 영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이 샘솟는 영혼은 자신이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그의 의로운 말과 행실 가운데서 생수가 흘러나와 주위에 있는 갈급한 자들에게 활력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실 때에 동일한 표상을 사용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그리스도께서는 두 상징을 겸하고 계시는데, 그분은 반석이시요 생수이십니다.

 

17. 준비되지 못한 백성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민 20:4)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에 도착하기 직전에 그처럼 여러 해 동안 그들의 진영 곁에서 솟아 나왔던 산 시냇물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백성들이 그분의 섭리를 신뢰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조상들의 불신을 따를 것인지 시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가 주어졌습니다.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찐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으며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신 2:4~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방해를 받지 않고 에돔을 통과할 수 있으며 또한 대군의 수요에 충족한 음식과 물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고로 기적적으로 물이 솟아나는 일이 중지된 것은 광야의 유랑 생활이 끝났다는 징조로서 기뻐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들이 불신으로 눈멀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이 일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의 증거가 되었을 바로 그것이 의심과 불평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가나안을 소유하게 하시리라는 모든 희망을 포기한 자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그들이 누렸던 축복들을 극성스럽게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시기 전에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을 나타내 보여야 하였습니다. 그들이 에돔에 도달하기 전에 물이 그쳤을 때 그들은 얼마 동안 눈에 보이는 것 대신에 믿음으로 행할 기회를 가져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광포(狂暴)와 망은의 정신으로 그처럼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잊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포자기하여, 그들은 고라의 반역으로 죽은 자 중에 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8. 지도자의 분노가 주는 영향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

백성들은 또다시 모세와 아론을 대항하여 부르짖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으며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가 주어졌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라”(민 20:8). 이제 노인이 된 두 형제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반역과 고집을 참았으나 마침내 모세는 인내력을 잃었습니다. 모세는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고는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반석에게 명하는 대신에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물은 군중이 넉넉히 마실 만큼 많이 흘러나왔지만 모세는 큰 과오를 범했습니다. 모세는 분노한 감정으로 말했고, 그의 말은 하나님께서 모욕을 당하셨기 때문에 발한 거룩한 의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적 격정의 표출이었습니다. 그는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비난은 잘못이 아닌 사실이긴 했으나 그럴지라도 분노하거나 조급하게 말하지 말아야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반역을 책하실 때에 그 말은 모세 자신에게도 고통스러웠고 백성들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어서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백성들을 비난하기 위하여 스스로 분노할 때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고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인내심과 자제력이 부족했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의 과거의 행로가 하나님의 지도하에 이루어졌었는지에 대하여 의심을 갖게 되고 그들의 죄를 변명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세도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행위가 처음부터 비평과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종을 통해 보내 주신 모든 책망을 거절할 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19. 모세의 불신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마 17:20)

분노로 인해 반석을 두 번이나 친 모세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마치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행하지 않으실 것처럼 “우리가 물을 내랴”라고 물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두 형제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민 20:12)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이 끊어졌을 때에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백성들의 불평과 반역으로 흔들림을 당했습니다. 처음 세대는 불신의 연고로 광야에서 멸망당하도록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정신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지치고 낙담한 모세와 아론은 일반 백성들의 감정의 흐름을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대한 확고부동한 신앙을 나타내었더라면 백성들이 이 시험을 견딜 수 있게 할 그 같은 빛으로 백성들 앞에 그 문제를 제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행정 장관으로서 그들에게 부여된 권위를 신속하고도 과단성 있게 행사했더라면 그들은 그 불평을 진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들을 위하여 그 일을 해 주시도록 요청하기 전에 힘닿는 데까지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지도자들이 어떻게 교인들을 양육하고 교회를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의 경솔한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신 교훈의 효력을 상실시켰습니다. 그리스도를 상징한 반석은 그분께서 한 번 희생이 되셔야 한 것처럼 한 번 침을 당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는 마치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간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반석에게 명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두 번째도 반석을 침으로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표상의 의미가 상실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0. 므리바의 물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할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반석을 두 번 친 행위로 인하여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만 속한 권세를 자기들이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도자들은 이 기회에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도록 그들을 감명시키고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저들의 믿음을 굳게 해주어야 하였습니다. 그들이 분노하여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부르짖었을 때에 마치 그들은 그 능력이 인간의 약점과 정욕을 소유한 자신들에게 놓여 있는 것처럼 그들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끊임없는 불평과 반역에 지쳐서 마침내 자기를 돕고 계시는 전능하신 분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약점을 나타냄으로 인하여 그의 경력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찬양과 높임을 받으셨어야 할 때에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그처럼 격노케 만든 백성들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대표자로 선 자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견책은 지도자들에게 임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의 불평이 자기들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들이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자신들을 동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몹시 굴욕적이고 쓰라린 형벌이 즉시 선고되었는데, 그들은 반역한 이스라엘로 더불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죽어야 했습니다. 만일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경고와 견책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품고 격정적인 정신을 드러냈더라면 그들의 죄는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연한 시험에 패배했으나 즉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가납하셨으나 그들의 죄가 백성들에게 끼칠 해를 염려하시어 그 형벌을 면제해 주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21. 진정한 지도자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출 23:20, 21)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린 형벌의 선고를 숨기지 않고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실패함으로 인하여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자초했었던 형벌을 다만 한 사람의 탓으로 돌리려는 그들의 불평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중대시하시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명령하면서 또 이 선고를 면제해 주시도록 몹시 간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난이나 시련을 당하게 되면 언제나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믿지 않고 저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냈다고 모세를 비난했습니다. 그들이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모세는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너희를 구원해 내신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 16:8)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반석 앞에서 “우리가 물을 내랴”라는 조급한 말을 한 것은 백성들의 비난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불신을 굳게 하고 그들의 불평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호와께서 모세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이 그릇된 인상을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제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백성의 지도자는 모세가 아니고, 능력의 여호와시라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가 드러났습니다.
모세의 죄는 그를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신 하나님께 불명예가 되었습니다. 그 죄는 온 회중에게 알려졌으므로 그것을 가볍게 지나가게 한다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자들의 불신과 조급한 분노의 행위가 쉽게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인상을 줄 것이었습니다. 이 한 가지 죄로 인하여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범죄자는 분명하게 처벌하신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22. 부여된 빛과 특권에 따라 죄를 취급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 3:2)

이스라엘의 역사는 후세대를 교훈하고 경고하기 위하여 기록해 두어야 하였습니다. 미래에 사는 모든 자는 하나님께서 공평무사하신 통치자로서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죄를 정당화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가 얼마나 악한 것임을 깨닫는 자들은 너무도 적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 역사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 때문에 죄를 우주의 평화와 행복의 가장 치명적인 악으로 취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성실과 충성을 가지고도 그의 죄과에 대한 보응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보다 더 큰 범죄를 용서하셨으나 인도자의 죄를 인도함을 받는 자들의 죄와 똑같이 처리하실 수는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모세를 영화롭게 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셨으며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의 율법을 전달하셨습니다. 모세가 그처럼 큰 빛과 지식을 향유했다는 사실이 그의 죄를 한층 더 무겁게 하였습니다. 과거에 충실히 행한 일이 그 후의 한 번의 부정한 행위를 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여된 빛과 특권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책임도 커지고 그의 죄는 한층 더 무거우며 그 형벌 또한 엄격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면 모세가 커다란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이 가벼운 일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충실하고 영예를 받은 주님의 종의 죄를 그처럼 엄격히 처리하셨을 진대 다른 사람에게도 그 같은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정신과 형제들을 비난하는 성벽을 하나님께서는 불쾌히 여기십니다. 이런 죄악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의심을 일으키고 회의론자에게 그들의 불신을 변명할 재료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지위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의 감화력이 크면 클수록 인내와 겸손을 계발할 필요는 더욱더 큰 것입니다.

 

23. 우리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히 12:28)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 특히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하도록 유혹할 수 있을 때 사탄은 기뻐 날뛰게 됩니다. 그가 사탄이 된 것도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속에 자기를 높이는 위험에 대하여 그처럼 많은 교훈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사탄의 계책에 대하여 경계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우리의 본성적 충동이나 정신적 능력이나 마음의 경향이 아니요 오직 순간마다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작은 틈이라도 보인다면 사탄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축복과 인류에게 허락하시는 시련을 이용하여 사람을 유혹하고 영혼을 괴롭혀 멸망을 당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아무리 큰 영적 빛을 받았거나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여호와 앞에 겸손히 행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생각을 지도하시고 모든 충동을 제어해 주시도록 믿음으로 간청해야 합니다.
경건하다고 공언하는 자들은 모두 마음을 경계하고 아무리 성이 날지라도 자제력을 행사해야 할 가장 엄숙한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모세에게 부과된 짐들은 누구보다 컸지만 이 사실도 모세의 죄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한다면 결코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시험이 크다 할지라도 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영혼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크다 할지라도 범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는 행위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나 지옥의 권세라 할지라도 억지로 악을 행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 우리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넘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공격이 맹렬하고 불시에 닥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도우시는 손길을 준비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승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4.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결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찐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신 2:4, 5)

이스라엘이 진을 친 가데스는 에돔 국경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으므로 모세와 백성들은 모두 이 나라를 통과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몹시 열망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대로 에돔 왕에게 기별을 보냈습니다.(민 20:14~17 참조)
이와 같은 정중한 요청에 대해 이를 거절하는 위협적인 회답이 오게 되자 이 거절에 놀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우리가 대로로 통과하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줄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통과할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민 20:19) 하는 약속과 더불어 왕에게 두 번째 간청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였습니다. 벌써 무장을 갖춘 에돔의 군대들이 험한 길목에 배치되어 있어서 평화적으로 그 방면으로 전진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또한 히브리인들에게는 무력에 호소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긴 여행을 해야만 하였습니다.
만일 백성들이 시련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을 신뢰했더라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그들을 인도하여 에돔을 통과하게 하였을 것이며 그 땅의 거민들은 그들에 대한 공포심을 품고 적의를 나타내는 대신에 그들에게 호의를 나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속히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평과 수군거리는 일로 황금처럼 귀중한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들이 에돔 왕에게 그들의 요구를 할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 그 요구는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을 떠난 이래로 사탄은 꾸준히 그들의 길에 장애물과 시험을 던져 그들이 가나안을 유업으로 얻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불신으로 여러 번 사탄에게 문을 열어 줌으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게 하였습니다.

 

25. 공평하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단 4:32)

하나님의 천사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속히 행동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분의 자녀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명령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하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실 때에 사탄은 그들로 하여금 주저하고 지체하게 함으로 여호와를 불쾌하게 하도록 유혹합니다. 사탄은 투쟁의 정신이나 불평과 불신을 일으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려는 축복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민첩한 용사가 되어 하나님의 섭리가 길을 열어 주실 때에 항상 재빨리 움직일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체는 사탄에게 우리를 패배시키기 위해 일할 시간을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지시하신 편의를 에돔인들을 대적하는 데 이용하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까닭에 에돔인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고 그래서 쉽게 약탈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신 2:5)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에돔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생각하시고, 에서의 자손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분의 은혜 밖으로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을 침해받아서는 안 될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이미 죄악의 잔을 채웠으므로 그 소유를 박탈하고 그들을 완전히 멸하라고 하셨으나, 에돔인들은 아직 유예 중에 있었으므로 자비로운 대우를 받아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기뻐하시고 형벌을 내리시기 전에 동정심을 나타내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주민들을 멸하도록 요구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에돔 백성을 살려주도록 가르치셨습니다.

 

26.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하는 이유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시 90:17)

에돔과 이스라엘의 조상은 형제간이었으므로 상호 간에 형제다운 친절과 예절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을 통과하려는 일이 거절당함으로 모욕을 받았지만 그 일에 대하여 그때에든지 장래의 어느 때에라도 복수하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들은 에돔 땅의 어느 부분이라도 점령하려는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은총 받은 백성이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하신 제한에 대하여 유의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름다운 유업을 약속하신 사실로 인하여 그들은 그들만 세상에서 모든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다른 민족들을 밀어내려고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에돔인들과 더불어 나누는 모든 교제에 있어서 그들에게 불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에돔인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폭력이나 기만으로 얻으려고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오히려 에돔인과의 모든 교제에 있어서 이스라엘인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수범해야 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이런 방법으로 에돔을 통과했더라면 그들의 통과가 자신들에게뿐 아니라 그 땅의 거민에게도 축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이 일은 에돔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과 사귀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고, 야곱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을 어떻게 번영케 하셨는지를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은 이 모든 것을 막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백성들에게 물은 주셨으나 그들의 불신에 대하여서는 형벌을 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광야로 여행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했더라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을 그 기적의 샘에서 갈증을 풀어야 했던 것입니다.

 

27. 후회 없는 사역자의 삶

“너는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산에 올라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민 20:25, 26)

모세와 아론 그리고 젊은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 호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머리카락은 백이십 년의 풍상을 겪어 눈과 같이 희었습니다. 그들의 길고 다사다난한 생애는 보통 사람이 당해 보지 않은 가장 심한 시련과 또한 가장 큰 영예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타고난 위대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었고 그들의 모든 능력은 전능하신 분과 교통함으로 계발되고 향상되고 위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동포를 위한 이기심 없는 사업으로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용모는 위대한 지적 능력과 확고하고 고상한 목적과 강한 애정의 증거를 나타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여러 해 동안 서로 노고와 염려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무수한 위험을 함께 직면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현저한 은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작별해야 할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그들은 상호 간의 친교의 매 순간이 귀중하기에 매우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힘이 들었기 때문에 쉬려고 멈추었을 때에 그들은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들의 앞에는 시야가 미치는 한도 안에 그들이 방황하던 광야의 광경이 전개되었습니다. 아래 평야에는 이스라엘 대군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택함을 입은 모세와 아론은 이들을 위하여 그들의 생애의 가장 좋은 부분을 소비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그처럼 깊은 관심을 가졌었고 그처럼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에돔의 산들 너머 어딘가에 약속된 땅으로 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축복을 모세와 아론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반항적인 감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한 마디의 불평도 그들의 입술에서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왜 조상들의 유업에서 제외되었는지를 생각할 때에 그들의 얼굴에는 엄숙한 비애가 깃들었습니다.

 

28. 아론의 죽음이 주는 교훈 1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이스라엘에 대한 아론의 사역은 이제 마쳐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전 그가 83세 때에 그를 부르셔서 그분의 크고 중대한 사명을 모세와 함께 수행하게 하셨습니다. 아론은 히브리 대군이 아말렉으로 더불어 교전할 때에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손을 위로 쳐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내산에 올라갈 허락을 받아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제사장 직분을 아론의 가계에 수여하시고 또 아론에게는 대제사장의 성스러운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 무리들을 멸하시는 그분의 무서운 형벌을 나타내실 때에도 성직에 있는 아론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 재앙이 멎은 것은 아론의 중재의 결과였습니다. 그의 두 아들이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을 때에 아론은 반역하지도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상한 생애의 기록에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시내산 기슭에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매우 무서운 죄를 범했고, 다시 그는 미리암과 연합하여 모세를 시기하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세와 같이 가데스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함으로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대표자들이 되기를 의도하셨습니다. 아론은 가슴에 이스라엘의 이름들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속죄일에 온 이스라엘의 중보자로서 지성소에 피 없이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한 속죄 사업이 끝나게 될 때에 기다리는 백성에게 나아와 축복하실 것처럼 지성소에서 나와 이스라엘 회중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을 대표하는 그의 성스러운 직분이 매우 높은 성질의 직분이기에 가데스에서 범한 아론의 죄는 그처럼 큰 것이었습니다.

 

29. 아론의 죽음이 주는 교훈 2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의 죽은 것을 보고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였더라”(민 20:29)

모세는 커다란 슬픔을 안고 아론에게서 성의(聖衣)를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하나님의 임명을 받아 아론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가데스에서 범한 죄로 인하여 아론은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 시무할 특권을 상실하였으나 모세는 바로 가나안 접경까지 백성들을 인도할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이 보이는 곳까지 갈 것이지만 그곳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이 하나님의 종들이 가데스의 반석 앞에 있었던 시험을 불평 없이 견디었더라면 그들의 장래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순간의 유혹이나 부주의로 잃어버린 것은 일생의 노력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두 큰 지도자가 진영에서 사라짐으로 불안감을 느낀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온 어른들이 거의 다 광야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모세와 아론에게 선언된 형벌을 기억하고 그들은 모두 불길한 예감을 느꼈습니다. 호르산 꼭대기로 가는 그 신비스러운 여행의 목적을 아는 어떤 이들은 쓰라린 추억들과 양심의 가책으로 저들의 지도자들에 대해 몹시 염려하였습니다.
마침내 모세는 진영으로 돌아와 백성들에게 아론이 호르산 위에서 그의 팔에 의지하여 죽었다는 사실과 그곳에 장사 지냈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온 회중은 슬퍼하고 통곡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그처럼 자주 그를 슬프게 했지만 그들이 모두 아론을 사랑한 까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의 장사에 관하여 성경에는 “아론이 거기서 죽고 거기 장사되었”(신 10:6)다는 짤막한 기록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의 관습과는 현저히 대조되는 이 장례는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따라 거행되었습니다. 현대의 높은 지위를 누렸던 자의 장례식은 때때로 허식과 낭비를 과시하는 기회가 됩니다. 죽은 자에게 흔히들 너무나 큰 허식을 나타내고 그들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일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30. 불평 불만에 빠진 백성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잠 27:7)

아론의 죽음은 모세에게 자신의 종말이 가까움을 통절히 느끼게 했으며 그가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짧음을 알수록 하나님께서 그의 친구이심을 깨닫고 더 열렬히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호르산을 떠난 지 얼마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의 한 왕 아랏과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이 승리를 통하여 감사의 마음을 고취시키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대신에 그들은 자만스럽고 자부심이 강하게 되었습니다. 곧 그들은 불평하던 옛 습관에 빠지고 말았으며 근 40년 전에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반역한 후에 즉시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으로 진군하도록 허락을 얻지 못한 일을 그들은 지금 불만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오랫동안 체류한 것은 지체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그때에도 지금처럼 원수들을 쉽게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남쪽으로 여행을 계속할 때에 길은 멀고 어려운 것처럼 보였으며 그들은 피곤과 갈증으로 심히 고통을 받았습니다. 또다시 그들은 믿음과 인내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저희가 경험한 어두운 면에 집착함으로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데스에서 물이 그쳤을 때에 불평하지 않았더라면 에돔을 돌아가는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그들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그처럼 경하게 처벌하신 데 대해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충만했어야 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속으로 만일 하나님과 모세가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약속된 땅을 점령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운명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보다 스스로 더욱 어렵게 만들고도 그들은 모든 불행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에 대하여 반감을 품고 마침내 애굽이 노예로부터의 자유보다 더 좋게 보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하고 계시는 땅보다 더욱 좋게 보였습니다.

 

31. 불뱀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만의 정신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서까지도 결점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여행하는 동안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이적으로 보호함을 받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모든 길에서 그들은 갈증을 풀어 주는 물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떡은 배고플 때에 그들의 허기를 채워 주었고 낮에는 구름기둥의 그늘과 밤에는 불기둥 아래서 평화와 안전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고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대열 중에 약한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오랜 여행에서도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았고 옷이 해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앞길에 삼림과 사막에 있는 맹수와 독사류를 제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이 모든 사랑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계속 불평한다면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은혜스러운 보호에 감사하고 회개하고 겸손히 그분께로 돌아올 때까지 보호를 거두실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보호함을 받아 왔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들을 둘러싼 무수한 위험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광야에 불뱀이라 불리는 독사가 있었는데 이 독사에게 물리면 극렬한 염증을 일으켜 신속하게 죽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이 이스라엘을 떠났을 때에 수많은 백성들이 이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그리하여 온 진영에 공포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거의 모든 장막에 죽어가는 자와 죽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도와주거나, 아직 물리지 않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통스러운 염려와 노력으로 모두 분주하였습니다. 이제는 한 마디의 불평도 그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고통에 비교하면 전에 당한 어려움과 시련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감사보다 불만의 정신으로 팽배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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