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호 생활간증

생활간증: 탈출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 - 김미영

열한시 월간지 258호

더 정확하게는 주방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고파서 억지로 짬을 내어 pc 앞에 앉았습니다. 24년 전쯤 헤어진 남편과 재회한지 10개월, 살림을 합쳐서 이사 온 지 이제 3주가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함께 살면 당연히 좌충우돌 쉽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라 이삿날을 잡아놓고부터는 매우 커다란 두려움과 공포가 저를 짓눌렀습니다. 함께 살기 전부터 매주 한 번씩 왕래하는 중에도 사사건건 지적하고 비꼬는 말투를 접할 때마다 괜히 콜을 했나 싶을 정도로 불안감이 증폭되었습니다. 저보다 열배 백배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제 기준ㅎㅎ)이라는 것이 그 옛날엔 매력적이었지만, 지금은 두 사람의 행복에 걸림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평생직장을 다니며 살림을 전적으로 해보지 않았기에 서툰 점이 많은데, 남편은 그 부분을 이해해 주지 못했습니다. 이삿날이 다가올수록 전 얼음이 되어갔습니다. ‘난 아직 연약한데,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아냐, 주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신다 하였지.’ 스스로 위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아마도 이사 직전 두 달 간이 내 신앙생활 중 기도를 가장 많이 한때인 것 같습니다.

드디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한 이. 삿. 날! 정말 기분이 묘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대로 차질 없이 한 지붕 밑으로 두 사람은 옮기어졌고 아름다운(?)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살게 되니 남편은 당연히 지적하는 부분이 더 많아졌습니다. 욱하고 올라오는 일이 수시로 생겼고 어떨 때에는 침이 바싹바싹 말랐습니다. ‘하, 남자가 잔소리도 참 많이 한다!’ (상상초월) 채소 써는 것, 청소하는 법, 과일 깎는 것, 저 편한대로 자유롭게 하던 것들이 남편 눈에는 모두 거슬리나 봅니다. 밥도 잡곡밥을 꼭 먹어야 하고 진밥이 좋다고 하니 잡곡과 진밥이 싫다고 하는 아이들과 친정 엄니를 위해 두 가지로 밥을 짓게 되었습니다. ㅠㅠ

딱 한 사람이 늘어난 것뿐인데,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아진 걸까요? 제가 요령이 없는 걸까요? 이사 첫날부터 오늘까지 주방과 온 집안을 종횡무진 다니느라 도무지 단 30분이라도 침대에 등 붙일 시간이 없습니다. 그동안 직장 생활하는 딸 대신 살림을 돌봐주시던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손녀 두 명까지… (한 때 두 때 반 때를 부려 먹었네요ㅠㅠ)

말씀 볼 시간은 새벽 여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한 시간 정도뿐, 예전엔 성경 외에 카페 글도 거의 빠짐없이 읽고 댓글도 꼬박꼬박 달고 성도들이 카스에 올리는 영감의 글도 꼼꼼히 읽곤 했는데, 안 그래도 말씀 무지렁이가 이러다 뒤로 물러나게 될까, 성장도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온종일 살림에 매여 있는 것이 육신적으로 고되고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주님께 지혜를 구하며 살림을 살고 있는 이 상황이 신나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때론 찬양도 흥얼거리며 저만이 누리는 은혜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씀 보는 시간이 줄어드니 이제는 살림도 조금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지적질 같았던 말들이 살림을 살다 보니 다 맞는 말일뿐 아니라 쾌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호, 신기하네? 그렇게 하는 것이 맞네, 맞아.’ (속으로만 인정 ㅋㅋ) 하지만 앞으로는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당신 정말 대단하다.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라고 직접 표현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더욱 교만해져서 그것이 나를 공격하게 될까 봐 칭찬의 말을 아꼈는데, 이젠 인정해 줘야겠어요.

이사 전부터 그 까다로움에 대항하기 위하여 요리 채널을 부단히 탐독하여서인지 칭찬이라는 것을 거의 하지 않는 남편이 지금은 종종 “음, 맛있는데? 잘하네?”라고 가끔 말해줍니다. 그래서인지 주눅 들었던 마음들이 많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비로우시고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남편을 오랜 세월 동안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훈련시키시어 젊은 시절의 그 무섭고 두려웠던 악행들은 이제 전혀 하지 않더라고요.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참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그 어마 무시했던 사람이 저렇게 달라졌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같으면 살기가 도는 눈에 이를 앙다물고 이빨을 부드득부드득 갈며 타고나게 큰 목소리로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에요.

얼마 전에 작은딸이 “아빠랑 엄마가 손잡고 걸어가는 거 보면 기쁘면서도 동시에 화가 나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의 우울증은 다 아빠 때문이라고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의 상태를 호소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그 즉시 딸을 토닥이고 사과를 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그냥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제가 딸을 다독이고 단도리 하였습니다. 그리고 취침 직전에 남편에게 서운해서 한 소리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은 “조용히 하고 자자!”였습니다. 그리고 쿨… Zzzz…. 와, 이건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자는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순한 양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정말 기이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아멘입니다!

제가 먼저 빛 받은 자로서 남편을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해 주어야 하는데, 저도 아직은 자주 넘어지는 작은 자입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전 11:3 )라고 하였음을 명심하여 잘 섬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나 같은 것을 만나주신 주님을 생각하면 금세 눈물이 왈칵 쏟아져 어떨 땐 혼자 꺼이꺼이 울면서 기도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험 앞에선 왜 그리도 작아지며 고집을 꺾지 못하는지 참으로 이상하고도 안타깝기가 한량없습니다. 매일매일 저의 연약함을 주님께 아뢰고 이길 힘을 구합니다. 이 고집 센 양들을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늘도 하늘 성소에서 중보하시며 믿지 않는 가족 구성원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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