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호 육아일기

육아일기: 갑자기 온 우리 집 장기 투숙객- 이명옥

열한시 월간지 257호

아기를 출산한 이후로 우리 집에는 장기 투숙객 손님이 머물고 있습니다. 바로 제가 출산한 아기입니다. 아기 손님은 저희 부부의 보살핌이 없으면 도저히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일도, 씻는 일도, 볼일 보고 해결하는 일도, 심지어 노는 것조차 혼자 못하기 때문에 항상 손님과 함께 해야만 하지요. 손님이 우리 집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우리 부부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며 이곳 저곳 여행하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마음, 매일 먹는 똑같은 음식이 지겨운 마음, 매일 걷는 산책길이 지겨운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기 손님이 우리 부부 사이에 불쑥 뛰어들어 온 그 날부터는 ‘여행’이라는 것이 안 그래도 힘들고 바쁘고 피곤한 일상을 더 쉴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저희 부부는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아기 손님이 우리 부부의 유일한 즐거움을 앗아가 버렸으니까요. 이런 저런 사정과 이유로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온 우리 마음에 유일하게 남은 위안이었건만~

여행에 대한 ‘내려놓음’이 어려웠던 우리 부부는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여행을 포기할 순 없어! 어떻게 든 될거야!” 저희의 고집은 아기 손님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울고 불고 짜증을 내게 만들었습니다. 손님 접대가 형편이 없으니 손님이 컴플레인을 걸 수 밖에요. 손님한테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드려 보았지만 아기 손님인지라 미안한 마음도 잘 전달이 안되더라구요.

그때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딸아, 왜 아기 손님 때문에 네가 가진 것을 희생한다고만 생각하니? 그러니까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아기 손님을 섬기고 보살피면서 네가 얻은 것이 얼마나 많은 지 한번 생각해 봐~. 네가 희생한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게 될 걸?”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붙잡고 은서를 통해서 내가 받은 축복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엔 잃은 것들만 떠올랐습니다. 마치 회전 연마기 속에 들어간 것처럼 내 모든 삶이 갑작스럽게 내 중심에서 아기 중심으로 바뀐 이후로는 너무 무리를 해서 온 몸의 뼈와 관절들이 다 아플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고, 느긋하고 평화롭게 말씀을 보거나 깊은 사색에 잠길 시간은 물론이고,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을 하며 컨디션을 회복할 시간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영양가 있게 챙겨 먹기도 버거워진 바쁜 일상…

하지만 그 희생은 헛된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산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매사에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내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함을 깨닫게 해주셨고… 아기에게 좋지 못한 엄마가 될까 봐, 혹은 아기를 악한 세상의 감화로부터 지켜주지 못할까 봐 지나치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내 불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아기의 생명과 안전을 온전히 하나님 손에 내어 맡겨야 함을 이삭 번제의 교훈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약해졌기 때문에 그래서 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하며, 그러한 내어 맡김을 통해서 더 약해지고 더 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한 발짝 한 발짝 거룩한 길로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찾는 마음으로 섬기고 보살필 때 나의 죄를 위해 내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과 가장 귀한 맏아들을 내어 주신 하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 어떠한 희생이고 사랑이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즐겁게 해주고 웃게 해주고 싶은 마음, 아기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 하나님이 내 속에 창조해 주신 새 마음이었음을. 그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 받은 게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더라구요. 저를 위해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고 기도해 주시는 가족들과 여러 형제 자매님들에게도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 불평해서야 되겠어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짐승같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은혜받을 만한 겸손하고 가난한 심령을 늘 유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추천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