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만나
열한시 월간지 257호
1.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붙잡는 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우리는 간혹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결과 때문에 실망할지도 모르며, 우리의 의지와 방법이 주변 동료들로부터 배척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풀무불이 우리 위에서 타오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순물을 걸러 내어 우리로 일곱 배나 더 순수한 정금이 되어 나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암울한 시절에도 기쁨의 노래를 주실 것이며 흑암이 우리를 에워싸는 듯이 보일 때가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구름들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캄캄한 검은 구름 저 위쪽에는 언제나 찬란한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에게 주실 빛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소망과 화평과 기쁨을 향하여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편에서 두려워해야만 하는 단 한 가지가 있는데, 우리의 시선을 계속해서 예수님께 고정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외에 어디에도 한눈을 팔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만일 전신 갑주를 벗고 사망의 잠을 자기 위한 부름을 받을 때에, 우리에게 맡겨진 것에 대하여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단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은 무한한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된 그리스도의 소유물이라는 것과 우리는 주님의 소유로 되어 있는 우리의 정신과 몸으로 그분께 영광 돌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의 상처를 위해 향유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긴급한 사태에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2. 더 좋은 약속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히 8:6)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위엄 중에 율법이 반포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하나님의 산 앞에서 두려워 떨었지만 불과 몇 주일이 못 되어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우상에게 경배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어긴 언약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보고 용서받기를 바라면서 아브라함의 언약과 희생 제물에게 계시된 구세주가 필요하다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죄악에서 구속할 구속자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새 언약의 축복을 인식할 준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옛 언약”의 조건은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으리라”(겔 20:11, 레 18:5)란 것과 같이 순종해서 사는 것인 반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신 27:26)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더 좋은 약속” 곧 죄를 용서해 주시는 약속,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조화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주실 약속 위에 세워졌습니다. 새 언약의 축복은 불의와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에 기초 되었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마음을 낮추는 자는 모두 자비와 은혜와 언약의 보증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벌 주시기를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을 조건은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같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생명 곧 영생이 있습니다. 새 언약 아래서 영생을 얻을 조건은 옛 언약에서와 같이 “완전한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범법자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그리스도는 새롭고 더 좋은 언약 중에서 그 율법을 이행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더 좋은 언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죄를 이기는 능력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선택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오랫동안 세상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유는 눈과 귀가 보고 듣는 것에만 관심과 흥미가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도성 안으로 들어가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뵐 수 있으려면 우리는 마땅히 이 땅에서 믿음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품이 우리 생각의 중심을 이루어야 함은 물론, 그러한 거룩한 주제를 묵상하고 기도하기 위한 적당한 시간을 특별히 따로 떼어 놓아야 합니다. 성화는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종교적 황홀감을 느낀다 해도 거룩한 법을 무시하는 정신 속에는 예수님께서 계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높이는 자를 높이십니다.
우리가 분노와 욕정과 질투와 미움과 이기심과 혹 다른 여러 가지 죄악에 빠져 있으면 우리는 죄의 종이 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 6:24) 라는 말씀처럼 만일 우리가 죄를 섬긴다면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육이 영을 대항하여 싸우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죄가 자신을 자극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육을 대적하시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강건함과 연합하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고전 15:57)라고 외치게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삶에 다른 모든 것들보다 신앙이 우선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영과 육과 혼이 끊임없이 영적인 대 전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강건함과 자비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승리하셨듯이 우리도 역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4.노아의 때가 주는 의미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26)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갈수록 두려운 상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자비의 천사가 떠나가려고 날개를 접고 있으며 하나님의 율법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혼란과 당황, 빈곤과 기근, 지진과 홍수에 대한 사건을 보고 듣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불법을 범할 것이며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지배권을 장악할 때 소돔과 고모라처럼 신속히 타락하고 있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곧 사역을 끝내시고 죄를 중지시키실 것이며, 이 마지막 시대에 자행되는 죄악들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끼칠 것입니다. 인자께서 나타나실 때도 노아의 때와 같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지하시는 손길을 세상으로부터 거두고 계시므로 머지않아 사망과 파괴와 격증하는 범죄, 그리고 불쌍한 자들에 대해 자신들을 높이는 부자들에 대한 잔인하고 악한 행위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으면, 사람들은 어떤 장소나 처지에서도 안전함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 대리자들은 살상을 위한 가장 강력한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 훈련 받고 있으며, 그들의 발명 능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나 실제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이 의미하는 바를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어 일하고 그분과 협력하며 영혼의 성전에서 우상의 형태를 띤 것은 무엇이든지 다 쫓아 내버려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경고의 시간이며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깨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세상에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5.마음 속에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진 자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3,34)
하나님의 자녀들,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기 시작한 자들은 각별히 삼가야 할 두 가지 과오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그들 자신을 하나님과 함께 융화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행실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힘으로 행함으로써 거룩하여 지려고 하는 자는 전혀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한 가지는 이와 정반대 되면서도 그보다 못지않게 위험한 과오인데,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자가 되는 것이며 우리의 행하는 것은 우리의 구속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면 그것이 우리의 생애를 형성하게 되지 않을까요? 믿음은 사람을 순종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 있게 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 즉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애정을 하나님께 두는 그것이 곧 신앙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사랑으로 행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신앙의 형성으로 꼴지워진다는 의미는 거듭나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던 그 마음이 이제는 율법의 거룩한 계명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처럼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97,103,105,107) 하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6.공의의 율법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의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8)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율례를 선포하시며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신 4:6)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이 말씀은 광야를 방황하며 여행하는 동안 모든 백성들의 장막에 반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통해 주위의 나라들이 그분의 존재와 율법을 깨닫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만났고 모든 민족들이 항상 존귀하게 여기고 숭배해야 할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주위에 있는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준수하라고 가르쳤던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고귀한 원칙을 깨닫게 되었으나, 그들은 율법의 준수가 모든 나라들 중에서 특별한 축복을 받은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은 장막이 처진 곳 위로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제사장과 선임된 대리자들이 특별한 일을 하였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밤을 지내기 위한 장막 치는 일에 자기에게 할당된 일을 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다른 일을 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수행했습니다. 장막은 부분 부분을 짜 맞추어 세워졌는데 완성된 주님의 집의 정교함은 아름다움의 극치였습니다. 천막 치는 일은 백성들에게 실물 교훈이 되었으며 그들에게 주의력과 꼼꼼한 성격을 갖추게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여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으며 또한, 시내산에서 율법이 반포된 까닭과 그들이 약속의 땅에 당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또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도 가르쳤습니다.
7.누룩과 같은 이교 세력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딤후 4:3)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한 깃발 아래 신속히 정렬하고 있으며 그들의 대장들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위해 깨어 기다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다른 무리들은 하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대장의 지휘 아래서 신속히 타락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그들이 구하는 신을 의인화 하고자 노력하고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거절한 결과, 너무 미혹되어 마침내 가짜를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찬양을 인간이 받게 되므로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교회 안에 이교적 세력의 영향력이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교의 신들은 자신들의 현저한 능력을 나타낼 것이며 이와 같은 일들은 이미 우리의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기로 구별된 사람들의 악한 성품과 유혹적인 영향을 갖가지 우상들로 요한에게 나타내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 비밀을 주의 깊게 파헤칠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그분의 백성들을 택하셔서 우리가 전할 진리를 주셨습니다.
특수한 세력을 통해 때와 법을 변개하고, 창조의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굳게 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자 뭉친 악한 세력을 폭로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부르셨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위험들이 우리에게 다가왔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그들이 처해 있는 위험을 경고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쯤 만이라도 깨어 있고, 계시록에 묘사된 사건들이 가까운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교회들 가운데는 개혁이 행해질 것이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 경고를 믿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위해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8.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 51:11-13).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하여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냉담하게 취급해서는 안 되며 주님께서 그들을 그분의 피의 값으로 여기신다는 것이 분명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아직 회개하지 않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인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회심을 위해 지혜롭게 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세상에 있는 죄 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을 분명히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영혼들에게 은혜를 내리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6,17). 죄인이 그 마음을 돌이켜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창조하시며 새롭게 하는 능력을 통해 시작되는 것이며 그때서야 비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되고 죄를 회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우리의 주변에 있는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열심과 지혜로 일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5-27)고 하신 것처럼 주님의 성령이 죄인들의 마음에 역사할 때, 그들의 기도와 눈물은 하나님 앞에 상달될 것입니다
9.회개의 선물을 받고자 원하는 자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 5:31)
회개는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첫 열매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크신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위해 교훈의 말씀으로 생명을 주는 그분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시며 선언하시기를 그분의 은혜를 따라 인간들은 거룩하고 순결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원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배운 사람은 가족과 이웃을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른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가 이웃을 인도할 때는 불확실한 길로 인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런 사람의 생애에 역사하셔서 그가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으로 역사함을 받은 모든 영혼이 풍성한 은혜를 받으므로 나타나는 그의 선한 행실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보고, 그는 거룩한 능력으로 지배를 받고 지탱해 살아감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스겔 34장을 읽고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그 속에는 놀라운 격려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 내어서 다시는 그들의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겔 34:10, 25)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화평의 언약의 특색은, 만일 죄인이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용서하시는 은혜를 풍성히 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자비로우신 만큼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범법자를 참고만 계심으로 그분의 율법을 손상시킬 수가 없으시기 때문에 새 언약 하에서도 완전한 순종만이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10.진실한 기도가 필요한 자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그들의 책임의 위대함을 어떤 말로 도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녀들에게 평상시에 보여준 성품에 의해서, 자녀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든지 자아를 섬기게 되든지 결정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그들의 마음이 성화되도록 하기 위해서, 또한 그들이 추구하는 길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며 그들의 자녀들을 그리스도께 바치기 위해서,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늘에 올려야 합니다. 부모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영감을 주시며 그들을 다스리는 모범적인 정신을 제공하시기 위해 그분은 수고와 자아 부인의 삶을 사셨고 급기야는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생활에서 부모들이 그리스도를 닮고자 분투할 때, 하늘의 감화가 그들의 가정의 삶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찬양과 기도의 예배로 존귀하게 되셔야 합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려지는 열렬한 기도들이 그분의 영적인 축복과 인도하심을 위해 하나님께 상달 되어야 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천사들은 찬양의 제사와 믿음의 기도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께 그 간청을 전하며 그들을 위한 그분의 공로를 간구합니다. 진실한 기도는 전능함을 부여잡고 사람들에게 승리를 제공할 것이며 순종의 정신으로 무릎을 꿇는 그리스도인은 유혹을 저항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11.놀라우신 구세주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느 9:17)
공의는 주장하기를 죄를 지은 사람은 그저 용서받을 수 없고 죽음으로써 그 형벌을 치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이 두 요구 조건을 다 충족시키셨습니다. 인간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형벌도 치렀고 용서도 베푸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앞에서 우리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겸비하게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친절하신 아버지로 신뢰해야 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자를 저버리시지 않는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버리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실수할 수 있고 성령을 슬프시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올 때 그분은 우리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실 것이며, 우리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선되는 데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습니다. 죄악적인 감정을 동경하는 것, 자만심, 자부심, 조급함, 투덜거림 등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게서 우리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것들입니다. 죄는 고백 되어야 하고 마음 가운데 은혜의 깊은 역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 많고 무력한 인간으로 볼 수 있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구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복해야 할 어떤 죄가 있다면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회개하기에 황금과 같은 시간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요일 1:9)임을 우리는 믿음으로 붙잡아야 할 때입니다. 놀라우신 구세주, 그분의 팔은 우리를 향해 언제나 펼쳐져 있습니다.
12.하나님의 계명을 높이는 자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민 15:40)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여러가지 교훈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만일 우리가 계명 준수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의의 표준을 높이 받드는 일에는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원칙에 철저하지 못한 이들은 아무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원칙이 빗나가게 내버려두면 우리의 신앙적인 체험은 갈수록 부패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 12:40)는 이 권고에 유례없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왜냐하면 고대에 우상 숭배자들에게 계속해서 내려진 경고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짝하고 어둠에 거하는 자들의 행위를 우리의 자녀들이나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흉내 내지 못하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불신자의 사회에서는 진리를 아는 이들을 조롱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탄의 기만적인 일은 어디에서나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하는 이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더라도 그분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세속의 즐거움과 유흥에 비굴하게 빠져들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주님을 잊으라는 설득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의 경솔함과 어리석음에 거룩한 분노를 느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높이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친다는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 계속해서 우리 주위에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특별한 백성이라는 것이 명백한 사실인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13.교회 안에 존재하는 편견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3~14)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사람은 인종이나 계급에 대한 편견을 초월합니다. 그의 믿음은 영원한 진실만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고 올바른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는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입니다. 진리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아주 밀접하게 연합하여 그분과 하나가 되지 않는 한 각종 편견에 관한 모든 일들을 주님의 명령에 일치하게 따르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진 자나 가난한 자, 또는 많이 배운 자나 그렇지 못한 자 할 것 없이 다 같이 개심할 필요가 있으며, 항상 두 부류의 사람들 중의 몇몇 분별없는 사람들 때문에 갈등이 일어날 때면, 성화되지 못한 성품의 특성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완고하고 고집 센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호전적인 요소들을 쉽사리 일으킵니다. 그런 경우에는 최상권을 얻고자 성화되지 못한 방법으로 자기 입장만 주장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 안에는 편견이 심해지고, 마침내 교회는 분열 될 것입니다.
교회 사역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공조하는 세력을 규합하여 교회가 주장하는 진리나 방향 등이 오히려 교회를 넘어뜨리게 된다고 거짓 주장을 하면서 교회에 여러가지 어려움을 일으킬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들은 마지막 자비의 교훈이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균형지게 선포되지 못하게 하려고 아주 교묘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교회의 사역자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는 갈등의 원인인 여러 편견들을 제거하기 어렵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더더욱 하늘에서 주시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교인들 간에 쓸데없이 적대감을 일으키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에 방해될 일은 결코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4.개혁과 선교는 가정에서부터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오늘날 자신들과 자녀들을 하늘의 가족과 연합시키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평화로울 때에 준비가 되어야 하며 올바른 방향 위에 우리의 가정 안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문제의 근원에 유의해야 하는데, 진리가 우리의 가정에서 실천되어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유익에 눈멀어 세상 속에서 그들의 이기심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가정에 오시도록 했다면, 그들은 그들의 가정을 개혁하는데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땅의 이익을 얻기 위해 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열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는 분명히 능력으로 움직일 것이며 영적인 부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법에 조화되는 행동들을 낳으십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는 일은 친절과 인내와 사랑을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에 보여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꼴 짓는 감화에 순복하도록 준비시키며, 자녀들 또한 성화되게 하기 위해 부모들 자신을 성화하게 하십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예의 바르고 공손한 그리스도인 가정은 선하고 폭넓은 감화를 발휘합니다. 다른 가정들은 그런 가정에서 일어난 결과들을 볼 것이고 그들 편에서 사탄의 영향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는 데 그 모범들을 따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이 가정을 다스리는 곳을 자주 방문할 것입니다. 영적인 은혜의 능력은 그런 가정을 주의 깊게 보호하므로 자아는 표출되지 못합니다. 올바른 습관이 형성되고 다른 사람의 권리에 대한 주의 깊은 인식이 있게 됩니다. 오늘날 영적인 개혁과 선교는 사랑으로 역사하며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이 충만한 가정에서부터 시작 되어야 합니다.
15.올바른 신앙의 척도인 참된 믿음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에 관하여 경박하게 말한다든지 또는 가난한 심령과 살아 있는 믿음 없이 기도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다만 세상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믿음 즉 동의만으로는 결코 죄인들의 심령의 치유를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진리를 단순히 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활용하기 전에 지식만을 기대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피상적으로 믿는 것으로는 넉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유일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것, 곧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들 자신을 위한 것으로 하는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은 믿음을 한 의견 쯤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자신을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로 결합시키는 일종의 거래 관계입니다. 순수한 믿음이 생명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사람에게 승리하는 능력이 되는 활력의 증가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으며 내가 그분을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받”(요 3:16)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분께 나아갈 때는 나는 그분의 구원하는 은혜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새 언약 아래에 있는 믿음과 율법의 관계를 나타내는 중에 이르기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과연 누구를 위하심 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16.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의문의 율법은 효력을 발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문의 율법은 도덕적인 율법과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이와 같이 폐지되어야 할 율법의 직무조차도 그처럼 영광스러웠거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시고 성화로 인도하는 성령을 주실 때 그 실체는 얼마나 더 영광스러웠겠습니까? 죄와 용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 그들의 범죄와 죄악 때문에 중보자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이러한 진리들에 대하여 백성들은 거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한 지식을 대부분 상실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죄를 구성하며 무엇이 의를 구성하는지에 대하여 모든 감각을 거의 상실하였던 것입니다. 단지 그들이 바친 예물이 상징하는 약속된 메시아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는 이치를 희미하게 깨달았을 뿐이었습니다.
도덕적인 율법은 예표나 그림자가 된 적이 결코 없습니다. 도덕적인 율법은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존재하였으며 하나님의 보좌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 율법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에 대한 주님의 사명의 관련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분의 성품의 사본인 율법 가운데 나타나고 인간이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화할 때까지 주님의 변화하게 하시는 능력이 영혼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들이 되며 더욱더 그리스도를 닮게 되고 우리가 완전한 표준에 이를 때까지 착실하게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과 복음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17.거짓 평안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 56:12)
악한 종은 마음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생각을 비웃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그리고 행동과 말로 주님의 오심이 지체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확신을 몰아내려고 합니다. 그 결과 그의 감화력으로 사람들이 뻔뻔스럽고 부주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속된 마음으로 인하여 영적인 무감각 상태로 굳어져 버립니다. 세상의 정욕과 타락한 생각이 마음을 점령하게 되고 악한 종은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며 쾌락을 추구하면서 세상과 연합합니다. 그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비난하고 책망하면서, 동료 종들을 때립니다.
교회 안에 심어진 거짓 교사들은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의 제사장들과 교사들처럼 교회가 세속적인 번영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살전 5:3)라고 경고합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오심을 너무도 지체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더 쾌락과 거짓 평안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계 16:15)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벧후 3:4)라고 경멸하며 질문할 바로 그 때에 징조들은 성취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외치는 동안에 갑작스런 멸망이 닥치고 있습니다. 진리를 경멸하는 자들과 거절하는 자들이 뻔뻔스럽게 될 때, 모든 분야의 사업이 날마다 원칙을 무시하고 수행될 때, 학생이 성경 이외의 모든 지식을 열심히 탐구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도적같이 오실 것입니다.
18.어린아이와 같은 성품을 가진 자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4, 15).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성품이 하늘 나라 시민의 성품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성품은 바로 순결함과 겸손함 그리고 신뢰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어린아이들이 그분의 자녀가 되며 그분의 가족에 입양되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그들이 어릴지라도 어린이들은 믿음의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가장 귀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으며 감명을 지속적으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위한 신뢰와 사랑에 이끌리며 구주를 위해 살고자 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작은 선교사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경향은 변화되어, 죄를 즐거운 것이 아닌 증오스럽고 피해야 할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큰 아이들뿐 아니라 작은 아이들도 이 가르침으로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계획을 단순화하므로 교사들은 배우는 자들만큼 큰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은 잘 받아들이는 마음에 그 교훈을 새겨서 그들이 단순함으로 성경 진리의 사상을 이해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선교의 대열에 있는 이 아이들에게 한 경험을 하게 하실 것인데, 성령께서는 교사 자신들이 지니지 않은 연속된 사상들을 아이들에게 제시할 것입니다. 그리곤 마침내 적절하게 가르쳐진 아이들은 진리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생의 더럽고 부패하게 하는 영향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일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 마지막 시대에 있어서 필수적이며, 너무나도 중요해서 아이들이 이해해야 할 하나님 말씀의 진리들을 그들에게 가르칠 교사들이 더 많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19.순종의 서약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그분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은 우리의 피난처와 방패가 됩니다. 이 언약은 주께서 고대 이스라엘과 맺었을 때처럼 오늘날도 꼭 같은 효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말세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맺어야 할 서약입니다. 하나님께 용납되는 일은 오직 우리가 그 계약 조건을 이행하는 성실성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순종하여 죄악적인 행동에서 손을 금하여 공의와 의를 행하는 자에게 주어진 약속은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사 56:5)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분의 택한 백성에게 무한한 사랑을 기울이십니다. 이 백성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된 자들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따라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에 응답하여 그분의 뜻에 순종한 백성으로서 구원의 길로 이끌림 받은 무리들입니다. 그들 위에는 하나님의 자유 하는 은혜가 나타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써 저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무리 중에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었노라”고 하신 그분, 곧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생애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자유하게 하는 완전한 율법을 항상 연구할 것이며, 그리스도에 의해서 받은 은혜로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성품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되었던 모든 언약의 조건들을 응낙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요구가 제시될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준행하리이다”라고 우리의 순종을 맹세할 때, 하나님께 인침을 받고 구별함을 받을 것입니다.
20.새 계명은 곧 사랑이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가난하고 상한 영혼들이 소망의 말을 들으려고 우리를 찾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한 영혼들에게 날카로운 화살과도 같은 독설을 내뱉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듣고 계실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분 안에 숨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십니다. 불친절한 말 한 마디, 가혹한 말 한 마디는 모두 하늘의 책들 속에 기록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내키지 않는다 해도 친절한 말을 하고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행동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 아들을 주실 만큼 짐을 벗겨주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행동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할 만큼 연약하고 불쌍하고 보잘것없는 영혼임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추측에 의한 믿음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구주로써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야 하고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 안에 우리 영혼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말그대로 그리스도를 대표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그분은 믿음 위에 선 자들에게 때로는 가혹한 시험과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유업을 바라는 사람들의 언행과 행위 속에서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심으로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는 가르침을 지금 우리가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21.악한 감화를 피하는 방법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사특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시 101:3, 4)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매순간마다 시험과 마주치게 됩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악한 것을 보게 되고 듣게 되고 감지할 수는 없을지라도 확실히 우리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성격을 추하게 만들고 도덕심을 잃게 하는 감화 아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악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만일 우리가 선택하기만 한다면 세상의 악한 감화를 피할 수 있는 좋은 길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시대에 이렇게도 빨리 증가하는 많은 악한 감화 즉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여러가지 불경건한 묘사들이 마치 현실적 사실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혁명이 예시되고 법률과 자제의 방벽을 깨뜨려 버리는 여러 가지 행동이 묘사된 것을 보고 읽을 때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표현된 정신을 섭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이러한 선정적 저자들이 묘사한 것보다도 할 수만 있으면 더욱 악한 범죄를 감행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 같은 감화로 말미암아 사회는 썩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나는 나에게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즉 다른 영혼들을 위하여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로막는 불경건한 행위에 나의 귀중한 순간들을 소비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나의 시간과 사상을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에 합당하게 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나는 경박하고 죄 된 사물에 관하여 나의 눈을 감겠습니다.” “나의 귀는 주님의 것이므로 나는 원수의 교묘한 기만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 아래 있지 않은 의지에 나의 의사를 굴복시키지 않겠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할 때입니다.
22.하나님과 연합하는 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성품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기에 능하신 하나님과 연합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무지는 무한한 지혜와 연합될 것이고, 우리의 연약함은 결코 흔들림 없는 거룩한 힘과 연합될 것입니다. 야곱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되어 위로부터 오는, 우리를 승리자가 되게 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성한 사랑을 나누므로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하는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전능자의 보좌를 확고하게 붙잡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는 확신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우리의 빛이 되고, 희락이 되며, 승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가져야 함을 이해할 때, 그들은 피 흘림으로 사신 그들의 특권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로써 그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할 것이고, 주님의 사역에 사용할 재능을 증가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능력을 가지고 분투할 것입니다.
이 죄악과 범죄의 시대에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것을 어떻게 구할지 배워야 합니다. 하늘의 모든 천군, 천사들이 근심어린 관심으로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위험한 지경에 있거나 궁핍한 환경에 처할 때에 우리에게 봉사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담대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와 교훈에 의해 세상 유혹과 사탄의 기만에 대해서 보호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여자의 남은 무리들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워야 합니다.
23.새로 태어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를 그분의 영적 왕국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삼으셨습니다. 그분은 침례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따라야 할 결정적인 조건이 되게 하셨습니다.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그 침례로써 그들은 세상을 포기하였고, 하늘 왕의 자녀들이요, 하늘 왕의 한 가족들임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 엄숙한 언약에 묶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맡기신 모든 재능들을 그분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넷째 계명을 순종하는 백성, 곧 하나님의 인을 갖고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들이라는 것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는 확신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생활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후 6:17, 18) 하셨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고후 7:1)는 교훈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침례를 받지만 살아 있는 채로 장례를 치루기 때문에 자아가 그대로 살아 있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교회 안에서 거듭남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경험이 되고 있으며, 이것이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24.거룩한 목표를 위한 노력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고대 경기에서는 경주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할지라도 한 사람밖에 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싸움에서의 경우는 그와 다릅니다. 조건들을 갖춘 사람은 한 사람도 경기의 끝에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렬하고 끈기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경기는 빠른 사람의 것이 아니며 싸움은 강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약한 성도도 영광의 면류관을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하여 그들의 생애를 그리스도의 뜻에 일치하는 사람들은 모두 승리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악에 대한 그의 투쟁은 생명이 지속하는 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세속적 욕망이 영적 열심을 이기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엄격히 경계해야 할 필요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전력을 다하여 타고난 성벽과 싸우기를 계속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는 그의 앞에 도달하여야 할 이상을 간직하였고 하나님의 율법을 즐겨 순종함으로 이 이상에 도달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말과 행실과 정욕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 아래 두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신자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기 원한 것은 영생을 위한 경기에서 승리하려는 성실한 목적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들 앞에 놓임을 받을 수 없는 일생의 투쟁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경건과 도덕상의 미덕을 구하며 율법대로 투쟁하도록 그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의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가 언제나 바라고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 한 가지 목표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빌 3:9)였습니다.
25.세상의 거짓 가르침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여…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죄의 유혹들을 당하게 될 때, 그들이 직면하게 될 거짓 가르침 중의 하나는 강신술(降神術)입니다. 이것은, 사람은 타락하지 아니한 신과 같은 존재이므로 “각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 판단할 것이며”, “참된 지식은 사람으로 모든 율법을 초월하게 하”고 “범한 모든 죄는 무죄한 것이니 하나님은 정죄하지 아니하시는” 까닭이라고 우리를 미혹합니다. 그리고, 가장 추악한 사람이라도 하늘에 가서 높은 대접을 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상관이 없으며 좋을대로 즐겨 살아도 하늘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욕망이야말로 최고의 율법이며 방종은 자유이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고 믿게 됩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충동이 가장 강하고 자제와 순결이 절실히 요구되는 인생의 초기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게 된다면, 젊은이들은 어떤 곳에서 그들의 덕행을 보호할 만한 교훈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은 갈수록 소돔과 같이 되어가고 있으며, 동시에 무정부주의는 일체의 율법 곧 하나님의 율법 뿐만 아니라 사람의 법까지 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희생으로 소수가 부하여지려는 거대한 연결들, 특정인들의 이익과 요구를 옹호하기 위한 하층 계급의 단결들,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것과 같은 가르침의 세계적인 유포, 이런 모든 것들은 프랑스를 진동시킨 것과 같은 투쟁으로 전세계를 어지럽게 만드는 일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향들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격변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똑바로 서려면,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율법 곧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품에서 나타내신 바 된 이 원칙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하고 안전한 이정표인 것입니다.
26.하나님의 협력자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일하도록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 우리는 우리 몫의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과 행하고 있는 것을 우리 대신 행하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크신 은혜는 우리가 행하고 있고, 행하려고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주어졌으나 결코 우리 노력의 대체물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일어나 하나님과 협력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노력하시는 실제적인 교훈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주님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과 협력한 것처럼 충실한 그리스도의 백성들과 협력하실 것입니다. 훌륭한 정신적인 자질들과 높은 수준의 도덕적 성품은 우연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성공은 그 기회들을 사용함에 달려 있습니다. 열려진 섭리들은 재빨리 식별되어야 하며 열심히 그 섭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 다니엘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의 일을 행할 힘과 능력을 구하는데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였다면 승리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에 전심전력 해야 하며, 게으른 자나 온전한 봉사를 하지 않는 어떤 사람도 흉내 내지 말아야 합니다. 자주 되풀이되는 행동은 습관을 형성하며 습관은 성품을 형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그만 의무들을 먼저 실행하여야 합니다.
27.율법과 복음의 관계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5)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율법을 대신할 은혜를 가져왔다고 믿게 하는 것은 사탄의 궤변이자 대표적인 기만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십계명을 조금이라도 변개하거나, 무효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놀라운 은혜는 구주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세우시고 아울러 율법을 지킬 능력을 주십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라도 하나님의 도덕적인 통치와 은혜는 분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둘은 모든 면에 있어서 서로 밀접합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그 표준을 낮춘 구약성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범사에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시험 당하는 자를 구할 방법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생애는 우리의 모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원하여 순종하심같이 인간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고, 또 불순종해서 율법을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이십니다. 타락한 삶으로 자기 영혼 속에 계신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혀 온자는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인간은 복음에 제시된 계획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그 인간의 생애는 새로운 원칙으로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어린 양의 보혈로 성품의 두루마리를 씻고 죄를 멀리 해야 합니다. 복음사역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교훈을 지킬 수 있는 위치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그분께서 율법에 순종하심 같이 순종하는 자에게만 입혀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지 않으면 여호와의 율법을 높이는 일이 불가능한데, 여호와의 율법은 나무요, 복음은 나무에 핀 향기로운 꽃이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28.십자가의 빛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
우리의 성품을 판단하는 표준으로서의 율법은 죄를 탐지하는 탐지기로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기까지 자신을 복종시키신 그리스도의 아름답고도 명백한 사랑에 의해 끊임없이 주님께 이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때문에 가장 고상한 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진지한 목적을 붙잡고 하나님의 능력 위에 산 믿음을 세울 때 승리자가 되며 그의 평화와 기쁨은 위대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분 앞에서 계속 영혼을 낮추는 것보다 더 잘 가납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성령으로써 마음을 감동케 하신다는 명백한 증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능적인 결함과 싸워서 승리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기적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기적보다 더 위대한 기적입니다.
우리의 내적 성품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꼴 지어질 때,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강건함의 원천으로 높이고, 입혀 주신 의로써 인간의 범죄를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율법에서 벗어나거나 율법의 위엄을 떨어뜨리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올바른 빛이 율법을 비추고 영광되게 하는 그곳에 율법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나온 빛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율법은 위대한 구원의 계획 안에서 완전하고 충만한 것이지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구주로부터 나오는 빛으로 제공될 때에만 그렇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만 식별될 수 있습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의(義)가 되신다는 열렬한 믿음과 소망과 기쁨을 가진 자들의 마음속에 불을 붙이게 됩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지키는 이들만을 위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29.하나님의 계명을 높이는 자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 3:3)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위한 경고의 메시지에 대하여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거의 무력해진 하나님의 계명은 이 시대의 시험하는 진리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모든 시금석들은 현대 진리를 구성하는 위대하고 중요한 복음들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떠나게 할 것입니다. 극단으로 치우쳐 마음이 좁은 사람들, 진리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때 비판적으로 날카롭고, 매우 완고한 사람들을 우리 가운데 불러들이는 것은 사탄의 계획입니다. 그들은 더욱 중요한 율법의 문제들, 곧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와 사랑은 등한히 하면서도, 매사에 까다롭게 될 것이고, 엄한 의무들을 강요하고자 할 것이며,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게 할 것입니다. 몇몇 안 되는 이런 사람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무리가 편협하고 광신적인 사람들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험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특별한 일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지켜야 합니다. 제 마음대로 판단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나 전하고, 자신의 교훈이나 행위에 대해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사역이 맡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거만하고 완고한 정신이 일단 우리의 중심을 지배하게 되면, 행동은 일치하지 않고, 정신은 통일되지 않으며, 교회가 분열되고, 사역은 건전한 성장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같이 제자들도 하나가 될 것을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고자 하는 가장 약한 경향도 막도록 애써야 하며, 형제들 사이에서 연합과 사랑의 정신을 지키고자 애써야 합니다.
30.우리 모두 선교사역자가 되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 9:1, 2).
주님께서는 그분의 마지막 남은 교회를 위해 선교 사역에 착수하도록 그분의 일꾼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교인들은 이 시대에 있어 진리의 온전한 증거를 아직 받지 못한 그들의 이웃과 가정에 복음 사역을 행해야 합니다. 이 일의 시작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면밀하게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역에 모든 능력을 사용하게 하는데 있어서 최대의 열심을 내게 될 때, 성실하고 이타적인 우리의 노력에는 귀중한 결과가 따라올 것입니다. 일꾼들은 위대한 교사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빛을 나누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날 그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는 영적인 손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진리를 좀더 조직적이고 담대하고 지혜롭게 외쳐야 합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단비로 촉촉하게 젖게 될 것이며, 우리가 각자 맡게 될 복음 전도자로서의 역할은 놀라운 가능성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첫 전도 여행에 떠나게 하면서 주신 가르침은 비록 오늘날과는 많은 환경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그 정신과 열심은 오늘날의 선교 사역과 조화 되어야 합니다. 어떤 모임이든지 기쁨의 찬양과 겸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그리고 진리의 단순한 전파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할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확신할 때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그 어떤 수고라도 기꺼이 감당할 것입니다. 모든 교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한 선교 사역의 시작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