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의 정신과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경험 [신앙기사 4부]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4:9

핍박이란 과연 어떻게, 왜 생기게 되는 것일까요? 흔히들 생각지 않고 지나치기 쉬운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 믿는 사람들이, 같은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게 되는 것일까요?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믿는 자들이, 믿는 자들을 핍박하여 죽인 숫자가 일반적인 모든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의 숫자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또한 그러한 종교적인 핍박을 통하여 죽은 자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의 핍박으로 죽은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과 용서와 인내를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은 사람을 핍박하여 괴롭히거나 아니면 죽일 수가 있었을까요? 이것은 분명 그들이 성령을 거절하고 잘못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핍박은 영적인 전쟁

​우리는 인류 역사의 첫 번째 핍박의 정신이 아담의 아들인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이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 받으신 바 되고 자기의 것은 용납되지 않자 화가 나서 그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것은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거듭나지 않은 자가 거듭난 자를 핍박한 것입니다. 육적인 자가 영적인 자를 핍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를 죽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진리와 오류의 투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투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전쟁은 사람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며 양편 다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고 투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전쟁은 이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는 이 전쟁이 이미 끝났고 그 투쟁이 이 지구에 내려와서 최종적인 결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핍박은 대부분 잘못 믿는 자가 잘 믿는 자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와 교회가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던 중세 시대에는 자기들의 믿는 바와 상치되거나 반대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옥에 가두거나 사형대에 올려서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와 종교가 분리됨을 보장하는, 종교 자유의 헌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나 지역에서는 육신적인 핍박을 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말로나 고소나 따돌림을 통하여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로 핍박의 방법을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핍박의 정신이 마치 기독교회의 교리인 양 잘못 인식되고 공적인 교회의 차원에서 많은 사람을 때리고 옥에 가두며 죽이게 되기까지의 배경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교리

옛날 교부 시대의 말기에 살았던 어거스틴은 중세기 교회의 교리들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크게 공헌을 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흔히들 우리는 그를 성 어거스틴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중세기 교회에서 그렇게 미화시켜 놓은 것일 뿐 그는 성자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가 가르치고 확립한 두 가지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기독교회를 혼돈과 오류의 어려움 속에서 허덕이게 하고 있습니다.

그가 저술한 “Compell them to come in”이라는 책을 통하여 그는 그 당시 중세 교회 교인들에게 이단(?)들은 육신적으로 고통을 가해서라도 다시 불러들여 와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단들의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어거스틴은 “신국”이라는 저술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신정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논리를 가르쳤기에 그러한 논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의 사상의 영향은 온 교회를 물들게 만들었고 드디어 교회는 공식적으로 이단을 박멸하기 위하여 또한 심지어는 그 이단들의 영혼을 청결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들의 육신을 괴롭히는 잔인한 핍박의 방법들을 자행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핍박은 사탄의 정신

핍박이란 믿지 않는 자가 믿는 자들에게 가하는 괴롭힘보다는 믿는 자들이 같은 믿는 자들에게 자기들의 교리나 신앙을 달리하거나 반대하기 때문에 가하는 괴롭힘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핍박하는 분이 아닙니다. 원수일지라도 사랑하라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와 다른 것을 믿고 있다고 해서 그를 괴롭히거나 핍박하는 것은 사탄의 정신입니다. 물론 오류를 가르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케 하는 자들을 분리시키는 일이나 경고하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하는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은 많은 경우에 어두움이 빛으로 인정되어 있고 빛이 어두움으로 인정되어 있습니다. 진리가 오류로 인정되어 있고 오류들이 진리로 둔갑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큰 실리를 얻게 되는 자가 바로 사탄입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잘못된 가르침이나 비 성서적인 교리를 진리로 믿고 살고 있으면 그러한 환경은 마귀가 활동할 수 있는 최상의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진리를 믿고 수호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따돌리며 죽이게 하는 핍박을 초래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성경적으로 올바로 믿고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 것인지를 항상 질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나, 나라의 도덕을 되살리기 위한 일이나, 교회를 부흥시키고 개혁시키는 일은 국가적인 강제 법령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강제로 하늘에 데려가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마음속의 개혁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국은 마음이 거듭나게 될 때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요, 그래서 거듭난 자들만이 그 왕국의 일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국가나 교회의 강압적인 법령을 통해 사람들을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핍박을 낳게 되며, 그것은 사탄의 방법이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떤 믿는 자들이 그러한 육신적인 혈기를 사용하여 다른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오류를 진리로 알고 있는 자들이 오히려 진리를 가지고 있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이 앞으로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정말 큰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9-13). 예수님 자신도 거짓과 불법에 의하여 미움과 핍박을 받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한 정신은 사탄의 정신이었습니다. 진리 대신 인간의 가르침을 높이는 정신이었습니다.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성령의 은혜를 따라 사는 자들에게 행하는 일들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다시 실현될 핍박

이러한 핍박의 정신과 원리에 대하여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전에 없던 엄청난 핍박의 시대를 곧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12장 1절은 이것을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마지막 시대에는 핍박의 양상이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핍박이 될 이 짐승의 표의 핍박도,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믿는 자들이 자기들의 믿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나머지 바르게 믿는 자들을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중세기처럼, 국가와 교회가 연합해서 성경대로 올바로 잘 믿는 자들을 괴롭히고 핍박하게 되는 것이 앞으로 올 짐승의 표의 핍박입니다. 다니엘서 3장에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만든 우상을 세우고 모든 사람에게 경배하도록 만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3장에 나온 일과 같은 일이 마지막 시대에도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표 환난 때에 일어날 핍박은 다니엘 시대의 핍박의 정신과 동일할 것인데, 곧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도록 강요함으로 생기게 되는 투쟁,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여 일어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탄의 핍박의 정신이 다시 불타게 되는 역사의 반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핍박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세기의 핍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무엇이 진리이며 누가 성경대로 믿는 자들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핍박받는 하나님의 백성의 품성과 진리를 옹호하는 그들의 정신을 통해서 그 당시와 또한 후세대에 변치 않을 진리와 오류의 차이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당시 핍박의 환난들이 있었기에 후세대인 우리가 진리와 오류 사이의 투쟁을 보게 되었고 무엇이 참인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평화적인 시대에는 오류들이 조용히 들어와 판을 치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투쟁을 일으키셔서 믿는 자들에게 진리를 분별하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핍박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진리를 높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오류인지를 밝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진리를 따르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세상의 인기를 위하여 인간의 오류를 지지하든지 간에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는 시기가 이르러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중간은 없을 것입니다. 두 무리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 양에게 속한 무리와 마귀에게 속한 무리 둘만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믿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장래에 우리가 어느 편에 속하게 될 것이냐를 결정짓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진리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 가운데 속할까요? 아니면 진리를 핍박하는 자들 가운데 속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핍박받는 광야 교회와 함께 하셨고 그들을 보호하시며 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해야 하는 것

우리는 이 세상 역사의 가장 엄숙한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지상의 무수한 사람들의 운명은 바야흐로 결정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의 행복과 다른 영혼들의 구원은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으로 지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금식과 기도로써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겸비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심판의 광경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사물에 대하여 깊고, 산 경험을 얻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순간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중대한 사건들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요술에 걸려 있는 땅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파수꾼들이여, 졸지 마십시오. 원수는 몰래 가까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마음이 해이해져서 졸고 있을 때 어떤 순간이든지 덤벼들어 여러분을 사로잡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의 그들의 진정한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속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악한 일을 범하지 아니한 것을 자랑하는 한편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선하고 고상한 행위를 행치 아니한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경우일지라도 전혀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하고 그분의 은혜를 남용한 자들에 대하여 오랫동안 참으시는 사랑의 마음은 여전히 탄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4-16).

시련의 날이 이를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생애의 법칙으로 삼은 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여름에는 상록수와 다른 나무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상록수는 변함없이 남아 있지만 다른 나무들은 잎이 떨어져 그 가지가 벌거숭이가 됩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마음이 거짓된 신앙 고백자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구별이 분명히 지어질 때가 이미 절박해 있습니다. 반대가 일어나게 되면, 완고와 억압이 다시 기세를 떨치게 되면, 박해의 불길이 일어나게 되면, 반신반의의 위선적인 자들은 흔들리고 믿음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반석과 같이 굳게 설 것이며, 그들의 믿음과 소망은 번영의 때보다 더욱 강하고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증거를 묵상함으로”,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99, 104)고 기록합니다.

큰 핍박의 시기가 이제 막 저 모퉁이를 돌아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핍박받는 자입니까? 아니면 핍박하는 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성품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여, 진리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일에, 그리고 진리를 드높이고 고수하는 일에 용감한 백성이 되고,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능히 건지시고 힘주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60호 코로나와 다가오는 핍박의 시대]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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