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이레의(70주일=490년) 진실은? [신앙기사 3부]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세울 모든 준비는 끝났으므로, 이제 휴거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다니엘서 9장 27절에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이 나오는데, 그것은 휴거 후 예수님 재림 사이의 7년이라고 해석하면서, 그때 실제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니엘서 9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예언인데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적그리스도에게 적용해서 풀고 있다.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490년)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49년)와 육십이 이레(434년)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7년)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3년 반)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4~27).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언제 돌아가실지, 메시아를 거절한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한 연대와 사건을 알려주는 놀라운 예언이다.

 

 

칠십 이레 기한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70주일, 490년)로 기한을 정하였나니”(단 9:24).
네 백성 즉 유대인을 위해서 70이레로 기한을 정했다. 세상에 구원을 이루기 위해 유대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선택하시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선교사의 나라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불순종과 반역을 거듭함으로써 택한 백성의 사명을 이루기에 실패한 유대인들에게 70이레는(70주일)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다. 70이레가 지나면 실제적, 국가적인 이스라엘의 운명은 끝이 난다. 즉 70이레 예언 이후, 더는 혈통적/민족적/국가적으로 이스라엘의 역할은 나타나지 않는다. 선민으로서 민족적 이스라엘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마지막 시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국가적인 회심을 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고 거기서 144,000인이 나온다는 것은 성경에 근거 되지 않은 가설이다. 성경의 모든 예언을 마지막 시대 실제 이스라엘 건국과 회복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바른 가르침이 아니다.
“정하였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사크”인데 여러 번역이 있다.
① 결정하다
② 자르다(cut), 잘라내다(cut off), 할당하다, 분할하다.
윌리엄 쉐이는 단어가 역사적으로 변천되었음을 밝혔는데, BC 600 ~ AD 500년까지는 “잘라내다”로 사용했고, AD 500 이후에는 “결정하다”로 사용한 것을 알게 됐다. 그러므로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정했다”의 원어적 의미는 “잘라내다”이다. 따라서 “70이레로 기한을 잘라내었나니”라고 번역해야 맞다. 그렇다면 어디서 잘라냈는가? 기한을 잘라내려면 당연히 그 기한보다 더 큰 기한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설명은 다니엘서 8장에서부터 시작한 2300주야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70이레(490년)는 2300주야(2300년)에서 잘라낸 부분임이 분명해진다.

 

 

칠십 이레의 시작점

 

70이레는 2300주야의 앞부분이기 때문에 그 시작점이 2300주야의 시작점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그때가 언제일까?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단 9:25).
9장의 계시가 주어진 기원전 538년 당시의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이후 아직도 폐허로 남아 있었고, 다니엘은 그러한 예루살렘과 성전의 중건을 탄원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즉 예루살렘을 이전처럼 다시 회복시키라는 왕의 명령이 날 때부터 70주일 기간이 시작된다는 기산점이 설정된 것이다.
성전, 성, 왕궁, 주권도 잃었다. 다니엘서 9장 25절의 예루살렘 중건령은, 무너진 것이 모두 회복되어야 한다. 성전, 정치적 독립,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사는 주권도 회복되어야 한다. 이 중건령은 무너진 모든 것을 다 재건하는 조서이다.
고레스와 다리오 왕이 내린 조서는 성전 재건령이었고, 기원전 457년에 내린 아닥사스다 제7년의 조서는 성전, 성, 주권, 하나님의 율법 회복을 포함하는 완전한 조서가 되기 때문에 이 조서가 다니엘서 9장 25절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되며 그래서 70이레의 시작점은 BC 457년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종교개혁 이래 수많은 학자에 의해 누차 확인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다. 17세기 영국의 물리학자요 수학자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우주 시대의 기초를 놓은 뉴턴은 성경 연구에 있어서도 뛰어난 신학자였다.
그는 20개 이상의 고대 일식 기록을 조사하여 70주일과 2300주야 예언의 시작이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 7년이고 그것이 기원전 457년임을 천문학적으로 확증했으며, 고고학에 발견된 페르시아의 엘레판틴(Elephantine) 파피루스 문서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뉴턴은 다니엘서 9장의 70이레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에 경탄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다니엘서의 예언을 거절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뒤엎은 일을 하는 셈인데,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리스도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칠십 이레 (70주일, 7×70=490년)

70이레는 예언을 해석하는 방식인 “1일=1년”이라는 “연일원칙”에 근거하여 490년이다. 왜 490년인가? “이레”는 “7일”로서 “1주일”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경 예언을 해석할 때,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민 14:34; 겔 4:6), 이 경우에도 7일은 7년이 되어 7×70=490년으로 환산되는 것이 당연하다.
70이레의 시작점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제7년인 기원전 457년에 시작된다. 70이레 기간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했다. 이 존재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다.

 

일곱 이레, 7주일(7×7=49년간): BC 457년부터 BC 408년까지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활동하면서 예루살렘의 복구와 자치가 이루어졌다.

 

육십이 이레, 62주일(62×7=434년): BC 408년에서 434년이 지나면 몇 년이 되는가? AD 27년이 된다. 이때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했다. 무슨 뜻일까? “곧 요한이 그 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7,38). “[21]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심 세쯤 되시니라”(눅 3:21~23).

다니엘서 9장 25절에는 7주일과 62주일이 지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난다고 예언돼 있다. 70주일이 BC 457년에 시작되므로 그때로부터 7주일(49년)과 62주일(434년) 총 483년이 지나면 AD 27년에 이르는데, 이 해는 예수께서 30세가 되시면서 침례를 받으신 때이다. 이 해가 예수님의 나이처럼 서기 30년이 아니고 27년인 까닭은 AD를 제정하던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연대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4년 정도 늦은 연대를 책정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구약시대에는 왕, 선지자, 제사장이 취임할 때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을 머리에 부었다. 이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히브리어로 “마쉬아흐” “메시아(Messiah)”이고, 헬라어로 “크리스토스” “그리스도(Christ)”라고 한다. 예수님의 경우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다고 표현함으로써 예언된 대로 예수께서 30세가 되시던 AD 27년 가을 요단강에서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으신 후에 공식적인 메시아의 일을 시작하셨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예언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셨기 때문에,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때가 찼”다고 선언하셨다(막 1:15). 무슨 때가 찼다는 것인가? 그리스도는 다니엘의 예언을 아셨고, 다니엘서 9장에 예언된 70이레의 예언의 때가 찼던 AD 27년, 지금이 메시아 출현의 때라는 것을 예언의 말씀에 근거해서 선포하신 것이다.
AD 27년에서 483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BC 457년이 된다. BC 457년이 무슨 해인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로 70이레가 시작된 해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성경은 이렇게 정확한 것이다.

 

끊어 없어진다는 의미
1주일(1×7=7년)
70이레(490년) 기간 중 마지막 한 이레(일주일), 즉 7년이 남아있다.

 

 

1주일의 절반(7÷2=3년 반)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단 9:26).
기원전 457년에 시작된 70이레(490년) 기간 가운데 7주일(49년)과 62주일(434년)이 마감되는 서기 27년에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아의 일을 시작하신 이후 “끊어져 없어”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끊어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인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3년 반이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1week)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7년)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여기서 “이레(week)의 절반”은 몇 년인가? 한 이레는 7년이므로 7년의 반은 3년 반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서기 27년 가을부터 3년 반 후인 서기 31년 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이 범죄한 이후, 장차 오실 약속된 메시아의 죽음을 상징하여 드려온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을 죽임으로써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속죄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더는 양을 잡아서 죽이는 제사 제도는 필요 없게 되었다.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1,12,18). 말 그대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친히 제물이 되심으로 더는 제물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서기 31년 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성전 안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그것은 더는 성전에서 제사와 예물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 일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가?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7년의 절반인 3년 반이 지난, 서기 31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정확히 이루어졌다.
이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정확히 성취되었다. 이렇게 예언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됨과 성경의 진실성을 보고 우리의 믿음이 더욱 충만해진다. 또한 앞으로 일어날 예언에 대한 것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에 관한 이 놀라운 예언을 “7년 대환난”이라는 교리로 탈바꿈시켜서 장차 적그리스도가 행할 일로 해석하는 엄청난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전 3년 반, 후 3년 반 이런 식으로 나눠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적그리스도로 해석함으로써, 메시아를 적그리스도로 바꿔버렸다. 이것이야말로 세대주의 예언의 최대 비극이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가 일부러 사람들을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배우고 또다시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 7년 환난 교리는 적그리스도를 교황으로 지목하는 종교개혁에 반대해서 만들어 놓은 카톨릭의 소산물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는 이 신학의 뿌리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자신들이 배운 것이 옳다는 신념으로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과 회복에 그토록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칠십 이레 예언의 종결(7+62+½+½)=490년)

 

70이레가 마쳐질 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는가?
490년 예언 기간에서 마지막 7년 중, 3년 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3년 반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서기 31년 봄부터 다시 3년 반이 지난 서기 34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임으로 유대인을 위한 은혜의 기간인 70주일(490년)이 공식적으로 끝나고 드디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다.

70주일(490년) 기간은 누구를 위한 기간이라고 했는가? 유대인을 위한 기간이었다. 하지만 490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그리스도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선민 이스라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온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해가 70주일, 490년의 끝인 AD 34년인데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역사적인 해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계속 예언해 주고 있다. “62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 예루살렘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의 이 예언을 이렇게 확인해 주신다.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15,16,20). 예루살렘의 멸망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처음과 끝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니엘서에 예언한 그대로 로마장군 티투스에 의해 성취되었다.

이처럼 70이레(490년) 예언은 그리스도의 탄생, 침례와 공생애, 십자가의 죽으심,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파로 영적 이스라엘의 탄생, 예루살렘의 멸망 등 말씀 그대로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골 1:23) 됨을 알리는 역사적인 예언인 것이다.

 

 

7년 대환난의 허구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 3년 반 동안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를 박해할 어떤 독재자라고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단 한 구절도 7년이라는 기간을 세상 끝이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비밀 휴거를 가르치는 세대주의자들이 7년이라는 기간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문맥을 무시하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 놀랄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이 7년 대환난의 7년 기간의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 절은 다니엘서 9장 27절에 나오는 “한 이레”가 유일하다. 한 이레(한 주)는 묵시적, 상징적 예언을 해석할 때 적용하는 1일 1년 원칙에 의해 7년으로 해석한다. 다니엘서 9장 27절에 나오는 한 이레는 따로 떨어져 있는 기간이 아니라 다니엘서 9장 24절부터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주신 70이레(490년)에 포함된 기간이다.
그러면 7년 환난이라는 기간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들은 다니엘의 70주 예언에서 마지막 7년을 뚝 떼어서 저 멀리 미래, 세상 끝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마지막 한 이레(7년)는 말세에 그리스도인이 비밀리에 휴거 된 후에 성취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7년 환난 시나리오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어떤 성경 절이 필요했다. 그래서 69주와 70번째 주 사이에 20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집어넣었다. 즉 예언의 시간표를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

 

69주(483년)+거의 2000년에 이르는 그리스도 교회시대+1주(7년)

 

그래서 70번째 주인 마지막 7년을 “7년 대환난”이라고 이름 붙인 후, 7년 환난 전에 비밀 휴거가 있고, 7년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공개 재림하신다는 2단계의 재림설이라는 기가 막힌 상상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개신교회를 박멸하기 위해 카톨릭의 예수회에 의해 뿌려진 미래주의 신학에 개신교회가 완전히 잠식되어,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이 탄로 나는 것을 오늘날 개신교회가 막아주고 있는 해석이다. 아무리 7년 환난 교리를 그럴싸하게 이용하여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세계정세를 설명한다 해도, 결국 이 7년 환난이라는 교리 자체가 성경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없는 가설을 근거로 세상정세를 설명하려는 것은 단순한 모순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길을 영접하는 기만이 되는 것이다. 심각한 바벨론의 포도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7년 환난 교리이다. 사탄이 만들어 놓은 이 7년 환난 교리에 온 교회가 빠지도록 덫을 놓았다. 사탄은 그럴듯하게 이 예언을 성취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미혹 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성경의 예언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탄의 기만이다. 바벨론의 가르침에서 나와야 산다.

 

 

기회를 붙잡으라

 

많은 사람이 헛된 기대를 안고 있다. “혹시 만약 휴거되지 않아도, 그것으로 완전히 끝난 건 아니야. 환난 때 회개하면 되니까 아직 기회가 있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비밀 휴거는 없고, 우리는 모두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 짐승의 표 환난을 지나야 한다. 우리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시험을 받아야 한다. 온 세상이 성경의 진리를 버리고, 짐승의 권위에 굴복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과 사람이 명한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 사이에서 하나님의 인을 선택하므로 매매를 하지 못하고 범죄자 취급뿐 아니라 벌금과 투옥 그리고 사형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 후 7재앙이 내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살아서 시련을 통과한 예수님의 증인들과 부활한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인데, 이때 공개적인 휴거가 있을 것이다.

비밀스러운 휴거가 아니라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휴거 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기간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예수님의 초림 당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운동이 펼쳐졌다. 그리하여 깨어진 사람, 낮아진 사람, 부서진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생애에서 그리스도의 순결한 모습만이 보이는 거룩운동이 펼쳐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죄를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재림운동을 할 것이다. 다시 오시는 영광스러운 재림의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 더는 세속에 묶여 있는 끈과 결단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모든 일에서 단호한 결정을 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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