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성전 건립은 하나님의 뜻인가? [신앙기사 2부]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기독교를 취하게 만든 바벨론의 포도주 중 하나가 바로 세대주의 예언 해석이다. 요즘 기독교에서 제3성전, 이스라엘 재건, 7년 대환난에 대한 이슈가 많다. 관련 영상이나 설명을 들어보면 많은 부분 성경을 오해해서 해석한 잘못된 가르침이다. 성전 재건을 꿈꾸는 단체들은 제3성전 재건 자금을 과거 고레스 대왕이 예루살렘 성전 복구에 도움을 준 것처럼,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 정통성이 없는 산헤드린 의회가 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AD 135년 유대 2차 반란으로 유대인들은 그야말로 전 세계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다가 세계를 지배하려는 세계주의자들의 계획에 의해 1948년 이스라엘이 재 건국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과 세계주의자들이 중동 지역의 판세와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기 위한 시나리오로 진행한 작품이다.

 

 

제3성전은 예언의 성취인가?

 

현재 이스라엘의 산헤드린을 중심으로 성전 건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름하여 제 3성전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모리아산에 솔로몬이 처음 건축한 제1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다. 70년 포로 생활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제2성전을 재건했고 헤롯 왕에 의해 확장 보수되었다. 그러나 이 성전도 예수님의 예언대로 로마에 의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진 지 약 2000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이 성전을 재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성전 재건이 기독교인들에게 이슈가 되는 이유는 성전 재건이 마지막 시대 성경 예언의 성취라고 믿기 때문이다.

건물 성전이 필요한가?
세대주의 예언 해석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의 휴거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7년 대환난이 시작하는데,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으로 나뉜다. 전반기에 유대인의 성전이 모리아산에 재건되는데, 실제 번제단을 만들고 은과 금으로 만든 기물과 악기들, 의복들을 준비하고 있으며 제물로 사용할 송아지까지 기르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이 성전 제도를 폐지하셨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0,51).
지진이 나서 성소 휘장이 찢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 찢을 수 없게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아래에서 위로 찢으면 사람이 찢을 수 있지만,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찢으신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직접 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성전의 제사 의식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그러므로 파괴된 건물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기독교인이 이것을 마치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있는 것인 양 흥분하고 있는가? 그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전

 

마태복음 24장 15절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씀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고 적그리스도가 모리아산 위에 선다는 예언이 아니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인용하는데, 바울이 사용한 “성전”에 대한 헬라어는 [나오스]이다. 바울이 지금 유대 성전에 적그리스도가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을까? 바울은 나오스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고전 1:2) 편지하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했다. 여기서 바울은 “나오스”라는 단어를 교회와 성도들에게 적용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편지를 쓰면서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엡 2:21)라고 했다. 바울의 모든 서신에서 이 “나오스”라는 낱말을 사용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그것을 교회에 적용했지, 결코 이스라엘 성전에 적용한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바울이 말한 성전을 모리아산 위에 세워지는 실제 성전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큰 오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에서 돌아가셨을 때 주님은 동물을 잡아서 드리는 희생 제사를 끝내셨다. 그분이 “다 이루었다”라고 외쳤을 때 그대로 성취하셨다.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지상의 모든 희생 제사는 끝난 것이다(히 10:12).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피 흘리는 제사를 다시 드린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이 시대에 전면적으로 다시 부인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유대인 성전 재건을 바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불렀겠는가? 결코 아니다. 그와 같은 성전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성경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 마지막 때 참된 예언 해석을 감춰버리고 기독교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탄의 계획이다.

바울이 사용한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성전”은 교회를 뜻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적그리스도는 외부의 어떤 독재자나, 먼 미래에 나타날 어떤 악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 안에, 즉 교회 안에 이미 있고, 이미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간교하고 기만적인 적그리스도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 부르도록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또 계시록 11장 1절에 요한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측량하라고 말한 것을 근거로 모리아산에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문맥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 절만 가지고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성경 절을 근거로 7년 대환난이 시작하면, 초반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평화조약을 체결하는데,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왔다는 생각으로 전쟁을 그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려 한다. 그러나 그때 유대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연합국이 이스라엘로 오는데 이것을 보고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성경 상 아마겟돈 전쟁은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하기 위해서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성전과 관련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 대제사장도 선출했고, 제사 도구들도 완성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장소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한다. 그것은 템플 마운트라고 불리는 성전 산인데,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이다. 현재 그 자리에는 이슬람의 황금 돔 사원이 버티고 있다.

 

 

전쟁의 도시 예루살렘

 

현재 예루살렘은 유대인과 무슬림, 서로에게 양보할 수 없는 성지가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그 자리에 지금은 이슬람의 거대한 황금 돔 사원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어떻게 이슬람 사원이 생기게 되었을까? 기원후 638년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685년에 사원을 완공했는데,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가 거기서 승천했다고 해서 이슬람의 성지가 되었다. 이삭을 바칠 때 제단으로 사용했다는 바위가 있는데, 이슬람에선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바치려 했다고 주장한다. 이 바위 때문에 처음엔 바위 돔 사원이라 불렸는데, 요르단 국왕이 80kg의 황금을 주었고 그 금을 녹여 도금해서 지금의 황금 돔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성전 산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에도 요르단 관할이다가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유대인의 관할이 되었다. “6일 전쟁”은 참 미스터리한 전쟁이다. 많은 기독교인은 전쟁 중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지휘하신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병 몇 명에게 아랍 부대 전체가 항복 한 일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군인 뒤에 천사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군대와는 싸울 수 있어도 천사와는 싸울 수 없다”면서 항복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한번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함락할 때, 요르단 왕궁 수비대가 방어를 잘해서 이스라엘 군인들의 피해가 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요르단 군대가 공포에 질려 전부 철수해버렸고, 이스라엘 군대는 아무 저항없이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고 한다. 또 이집트와의 전쟁에서도 이집트 군대가 모든 군수물자, 무기들을 다 놓고 그냥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아랍 군대와의 전쟁에서도 일어났는데, 아랍 군대의 증언에 의하면 전투 중에 하늘에서 큰 손이 나타나서 항복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신비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일은 사탄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 아닌가?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고 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바로 마지막 시대에 온 세상을 미혹하기 위해 사탄이 사용하는 이적과 기사의 모습이다.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현대 이스라엘이 고대 이스라엘과 같은 하나님의 선민인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는, 철저히 여호와 중심의 삶을 살았을 때였고,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을 때였다. 그렇지 않을 때는 패했고 결국 완전히 멸망해서 이방 나라에 흩어져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그들은 메시아를 거절했고 죽였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라”는 그들의 말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진다”는 말씀이 이루어져서 흩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경의 예언을 번복해서 오히려 그들을 위해 전쟁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성전을 지으면 메시아가 온다고 믿고 있으니 그렇게도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메시아요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초림하셔서 성전의 제사 제도를 폐하셨고 지금은 재림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진 국가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백성도 아닌데 “6일 전쟁”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휘하신 전쟁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혈통적,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인으로 새 시대를 여셨다. 일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대체신학”이라고 폄하하는데, 로마서의 말씀을 보자. “[28] 그러므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든가 유대인이 받는 할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누구나 참 유대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29] 참 유대인이란 그 마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표면적으로 할례를 받아 몸의 일부를 잘라 낸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완전히 변화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의 생활이 변화된 사람이야말로 비록 사람들에게는 칭찬받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됩니다”(현대어, 롬 2:28,29).
하나님의 전 지구적이고 전 우주적인 역사를 너무 좁게 해석하지 말자. 하나님은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시다. 물론 유대인도 구원하시지만 마지막 역사를 유대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대체신학이라고 폄하하는 신학의 뿌리는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전쟁”, “참 교회와 배도한 교회와의 전쟁”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하기 위해 로마 카톨릭의 제수잇(Jesuit)이 만들어 놓은 신학의 일부이다. 적그리스도인 교황에게서 눈을 돌리게 하려고 모든 예언을 이스라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분들의 열심을 존중한다. 이스라엘을 품고 기도하는 그 순수한 동기와 열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대인도 구원받아야 한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야 할 백성들이고, 여러 사람의 헌신과 열정으로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성경의 예언들을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회복에 맞춰 해석하게 되면 적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사탄의 기만술에 농락당하게 된다.

 

 

전쟁의 아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새로운 세상 역사를 만드셨다. 그런데 오늘날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모든 시선을 이스라엘로 집중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독립은 중동지역의 패권을 노린 세계주의자들의 작품이다. 제수잇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신학의 그림대로 세계 정치적 형세를 만들어가며 마치 성경 예언의 성취인 것처럼 속이지만 그것은 기만이다.
6일 전쟁의 결과가 무엇인지 아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지난 50년 동안 끊임없이 파괴와 증오가 시작되었다. 2천 년 동안 멀쩡하게 잘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침략전쟁으로 삶의 터전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은 미국과 기독교를 당연히 증오할 수밖에 없다. 테러, 점령, 끊임없는 전투, 난민! 그리고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크리스천들이 신앙의 이유로 오늘도 납치되어 살해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6일 전쟁 이후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전쟁이란 말인가?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국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정 체제로 하나님을 섬기는 국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진 전쟁이라고 생각하는가?

현재 예루살렘은 요르단의 영토를 무력으로 점령한 상태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고 영토분쟁지역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했지만, 국제법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은 대사관을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두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전 텔아비브에 있는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고 실제 행동에 옮겼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이며, 이스라엘 영토라는 것을 미국이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는 지역이다. 이런 곳에 어떻게 성전을 세울 수 있을까? 그들의 계획은 전쟁이다! 환난이 시작해서 연합국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전쟁이 날 것이며 미사일 중 하나가 황금 사원을 공격하고 그때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승리를 주고, 그래서 그 자리에 성전을 세운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그렇게 성전이 세워졌지만, 멸망의 가증한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들어가서 그것을 모독하고, 유대인들을 박해하는데, 오히려 박해의 결과로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회심해서 그리스도께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마지막 복음을 전하고, 아마겟돈 전쟁으로 종말이 오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이 시대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하는 성전은 땅의 성전이 아니라 하늘 성전이며, 하늘 성전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되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현재 예수님의 위치, 예수님의 사역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잘못된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일 때의 결과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사 30:15) 라고 호소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우리의 마음에 깊은 떨림과 감동으로 다가와 잘못된 가르침에서 돌이키고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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