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가장 많이 오해되고 있는 두 가지 성경절들

성경공부 시리즈 6권- 영원한 복음​

제2부 가장 많이 오해되고 있는 두 가지 성경절들

1.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의 의미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1-24).

1)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Being with the Lord)이라는 표현은 바울의 편지서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일관성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시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 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사도 바울은 재림의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죽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때가 되어야만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있습니다.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15-17절)

2)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울은 우리가 언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밝히 말하였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4) 여기에서도 재림의 때에야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그분의 약속을 살펴봅시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4)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진술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밝혔습니다(빌 3:10,11). 그리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시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거듭 밝힘으로써, 죽는 즉시 재림 시에 있을 부활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육신을 떠나서”라는 표현은 죽음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은 재림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부활의 날까지 무덤 속에서 무의식의 상태로 쉬고 싶다는 말을 시적 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2.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의 의미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 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18-20).

한글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을 언뜻 잘못 읽으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직후에 영으로 연옥이나 지옥 어디에 내려가셔서 노아 당시에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통당 하는 사람들의 영혼들에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연옥 같은 곳이 정말 있어서 죽은 후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두 번째 기회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이라는 말씀을 비롯하여 죽는 순간에 구원받을 기회도 끝난다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마 16:27, 롬 2:6, 겔 18:24, 계 22:12).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사상은 죽음 이후에는 일체의 의식이 없다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크게 상반됩니다. 만약 두 번째 기회를 준다면, 왜 하필이면 노아 홍수 당시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특권을 줘야 하는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3장 18,19절에 나오는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 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는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분석해 봅시다.

 

1)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이 말씀의 뜻을 자칫 오해하여, 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어 살아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 이 땅에서 지니셨던 연약한 인간의 속성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심으로써 원래 하나님으로서 지니셨던 영적인 속성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어 성경에는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잘못 번역된 말이, 영어 성경에는 “Made alive by the Spirit”(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올바로 번역된 것입 니다. 즉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다음에 나오는 성경절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 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3,4). 십자가에서 돌아가 셨다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부활하셨던 그리스도께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그분과 같이 고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일어나는데,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0,11).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비록 육체는 죽을지라도 성도들에게는 부활이 보장되며 영원한 생명이 약속됩니다. 바로 이것이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나 영으로는 살림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2)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 전파하시니라.”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이며, “옥”은 어디를 말할까요? 여기에 나오는 “옥”은 감시를 통하여 행동을 속박받는 뜻의 감옥(Phulake)을 뜻합니다. 또한 “영들”의 헬라어 원어는 앞에서 배운 바와 같이, “프뉴마”로서 “생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옥에 있는 영들”이란 옥에 갇힌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옥”은 어디를 말합 니까? 그것은 지옥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을 뜻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옥”을 어두운 세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사 42:7).

또한, 시편에서는 “옥”을 영적인 어둠을 묘사하는 표현 방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시 142:7).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옥”에 갇힌 사람들, 즉 “흑암에 앉은 백성”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듯이(마 4:15,16) 노아 홍수 당시에도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죄에 속박되어 영적인 암흑에 갇힌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경절에서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들(옥에 있는 영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입니다(벧전 3:20). 여기에 “옥에 있는 영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성경은 그들의 정체를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께서 노아 홍수 당시에 멸망해서 지옥에 간 혼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노아 홍수 당시에도 영적인 어둠 속에서 불순종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6절에 나오는 “죽은 자들에게도 (과거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씀도 과거에 죽은 자들 역시 그들이 살아 있을 당시에 성령을 통하여 복음을 들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죽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했더라면 변명의 여지가 있겠지만, 성령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듣거나 깨닫고도 “순종치 아니하”였기 때문에 준엄한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어떠한 태도를 나타내며 살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되며, 일단 죽은 다음에는 구원을 위한 기회가 더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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