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참 이스라엘, 참 교회 [신앙기사 4부]

제4부 이 시대 참 이스라엘, 참 교회

 

 

유대 교회의 교회관

 

세상 유일의 교회를 가졌고 당시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 성경을 가졌던 유대인들, 그 교회에 소속되어 말씀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지키며 고수하려 했던 유대인들은 왜 진리이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을까? 성경에 기록된 실패의 역사는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고전 10:11) 된 것이다.
당시 유대 교회에 소속되지 않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은 오히려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상 유일의 교회에 소속되어 있고 말씀을 완벽하게 지킨다고 믿으며 살던 유대인들은 멸망했다.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교만했고, 그 영적 교만의 중심에는 이스라엘 교회관과 율법 준수의 자랑이 있었다. 예수님과 바울은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신약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 계명의 정신, 마음의 할례, 그리스도와 같은 향기 나는 성품이었다.
그러한 초대교회를 향해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강박적으로 내세운 주장은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으로 규정하며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갈 1:8)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갈 6:15)라고 말한다. 이 얘기는 유대교회 안에 있는 것이나 유대교회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문제는 회당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유대교 밖의 신앙은 구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교회관과 종교적 열심이 그리스도 복음의 본질을 삼켜버린 결과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선고를 내리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이것이 바로 교회관의 본질이다. 진리와 본질을 빼놓고 문자적 의미에 치우친 교회관을 받아들이면 과거 유대인들이 가졌던 동일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도, 모세에게 주신 언약도 그 조건에 따라 폐기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역사로 세워진 교단과 교회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사람들이 진리를 무시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관을 고집하면 성경의 예증에 의하여 과거 유대인들의 역사가 그 교단과 교회에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다.

 

 

가시적인 교회 vs 비가시적인 교회

 

그 당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유일한 교회인 유대교회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유전을 진리의 말씀으로 깨뜨리려는 예수님을 끝까지 거절했다. 그들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진리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들은 진리를 거절했음에도 눈에 보이는 조직인 유대교회에 연결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며 복음으로 태어난 초대교회를 향해 유대교회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독특한 교회관을 강요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거절한 유대교회가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초대교회를 통해 역사하셨다.
교회를 교단, 조직, 건물로 가리키는 개념은 카톨릭을 통해 중세기에 들어왔으며, 가시적인 교회와 비가시적인 교회를 나눠서 설명하기 시작한 것도 카톨릭이다. 카톨릭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머리는 하나님이시고, 눈에 보이는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교회가 보이는 교회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한 것이라는 개념이 카톨릭의 교회관이다. 그래야 천주교 및 교황의 권위를 진리보다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카톨릭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이방 종교를 흡수한 혼합 종교이고, 정치적 후원으로 성장하였으며, 권력과 금력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한 가짜 기독교이다. 그 종교는 성경의 진리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였으며 심지어 사람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게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의 영적인 눈을 가려 카톨릭을 맹신하고 맹종하도록 만들기 위해 가시적인 교회 개념을 만들었다.
유대교회는 초대교회를 향해 가시적인 교회관을 고집했다. 천주교는 왈덴스인들이나 종교개혁 후 개신교회를 향해 가시적인 교회관을 주장했다. 그들은 진리의 본질은 외면하고 교회라는 조직 자체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호소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단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와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마지막 하나님의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여자의 남은 무리이다. 이들은 어떤 특정 교단이 아니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촉진시키는 재림운동은 교단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처럼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 이래 한순간도 끊기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성경의 진리를 따라 순수하게 시작한 수많은 교단과 교파가 이제는 성경의 진리를 거절하고 막는 단체가 되었다. 교회의 핵심 요소는 하나님의 임재와 진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이스라엘이 실패한 역사는 말세에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그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이 마지막 때를 위하여 주신 모든 진리를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그분께서 세우신 모든 기둥은 튼튼해져야 한다.
“[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5~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과거 그가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그의 민족적 자부심, 지식, 율법의 행위 등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렸다.
그리스도와 바울이 그렇게 고뇌하며 싸웠던 대상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그 당시 가시적으로는 하나님의 유일한 교회였던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항상 포도나무를 가장 고상한 식물이며 힘 있고 뛰어나며 열매를 잘 맺는 모든 것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심으신 포도나무로 대표되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원의 희망을 그들이 이스라엘과 연결된 사실에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과 연결되었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분의 약속의 상속자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참 포도나무이시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있다.
정통이라는 교단에 속해 있는지가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께 연결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은혜의 시간이 마쳐지기 전에 침례 요한은 그 당시 교회 조직과는 별개로 광야에서 사람들을 모아 진리를 전했다. 예수님도 그 당시 교회 조직의 잘못된 점을 마태복음 23장에 기록된 것처럼 적나라하게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백성이 종교지도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진리를 분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유대인들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새로운 초대교회가 시작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그 해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영혼들을 그 당시 하나님의 교회라고 생각되었던 유대인들의 교회에 보내지 않기 시작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단이나 조직을 강조하기보다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진리의 말씀에 연결돼야 한다.

 

 

열매 맺는 참 교회

 

포도나무와 연결되었다고 입으로 공언은 하나 열매를 맺지 못해 버림을 당한 유대 교회 대신 하나님께서는 열매 맺는 그리스도 교회를 세우셨다. 이 교회는 포도나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포도나무의 생명은 그의 생명이 된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음으로서 연합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통해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이 생명을 얻는다. 죄인이 그의 결점을 그리스도의 장점에, 그의 텅 빈 것을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그의 연약함을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능력에 연합시킨다. 그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진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인간은 거룩한 성품을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된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가지들에 달린 향기로운 열매를 통해 명백히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 보일 것이며 한 사람도 멸망 받지 않을 것이다.
접붙인 가지가 외형으로는 포도나무와 연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연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를 맺지도 못할 것이다. 신앙 고백으로 교회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을 수는 있으나 성품의 변화와 자라남이 없다면, 과실을 맺지 않는다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이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열두 제자 중에 한 제자는 포도나무와 끊어져 버림을 당했으며 나머지 제자들은 열매를 맺기 위해 전정하는 칼의 쓰라린 시련을 통과해야만 했다. 가지를 치는 일은 고통을 유발할 것이지만 칼을 대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아버지께서는 난폭한 손으로나 무관심한 마음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과실에 전달해야 할 수액을 소모해 버리는 지나치게 무성한 잎들은 잘라 버려야 한다. 너무 자란 것들은 잘림을 받아서 의의 태양이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농부이신 아버지는 과실이 더욱 알차고 더욱 많이 열리도록 하기 위해 해롭게 자라나는 곳을 잘라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고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거하신다.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포도나무의 생명을 받게 된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에게 부착되어 그리스도의 공급을 받으며 그리스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큰 소망, 바로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열매가 맺힐 것이다. 중단 없이 성령의 감화를 받은 자들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 생명을 끊임없이 받는 사람은 모두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할 것이다. 이 사랑은 참 포도나무와 연결된 증거이며, 예수님의 제자 된 증거이다.

 

 

교회에 사랑의 열매가 생길 때

 

교회에 이런 사랑이 나타난다면 사탄은 분노할 것이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인 것처럼 교회도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다. 복음은 반대와 위험과 손실과 고통과 투쟁을 통해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전능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리가 악과의 투쟁에서 승리할 것이므로 교회는 용기와 힘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
분명히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는 것들이 복음 전파의 길을 막을지라도 교회는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교회는 어려움을 슬퍼하는 대신에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도 실망하지 말고 범사에 소망을 가져야 한다.
교회는 악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세상이나 죽음이나 지옥이라도 정복할 수 없는 능력,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을 승리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은혜와 힘과 능력은, 진리의 말씀으로 예수님과 연합한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받게 되는 특권이다.
역경 가운데서라도 복음 전파하기를 쉬지 않는 교회, 비난과 반대와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자비와 은혜가 충만한 교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준비될 때 그리운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지금 준비되고 있다!
때가 가깝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 우리를 참 이스라엘로 부르고 계신다. 저기 팔레스타인에 있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자녀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우리가 영적 이스라엘이다. 이 영적 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마지막 때에 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악한 자는 기독교를 혼미케 하고 있다. 우리의 분명한 소명과 사명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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