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비와 늦은 비 [신앙기사 1부]

제1부  이른 비와 늦은 비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비로 표현된 성령의 역사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3가지 마지막 경고가 세 명의 천사들에 의해 전해진 후에, 계시록 18장에 네 번째 천사가 등장한다. 네 번째 천사는 세 천사의 복음을 포함하고 있다. 세 천사로 복음 사역이 완수가 안 되기 때문에, 세 천사를 도와 그들에게 힘을 주고, 협력하기 위해 네 번째 천사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들은 계시록 18장의 천사로 소명을 받았다.
이 천사는 큰 권세를 가졌다. 이 큰 권세가 무엇인가? 성경은 기독교 역사에서 두 번의 큰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을 알려준다. 그것을 팔레스타인 농사 절기에 필요한 이른 비와 늦은 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3).
성경에서 “늦은 비, 이른 비”는 성령께서 비로 임하시는 것으로 표현된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말이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사 32:15). 위에서부터 부어져서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게 하고, 아름다운 밭은 삼림이 되게 하는 것은 비의 역할 때문인데, 위에서 부어지는 성령의 역사를 이렇게 비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가!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1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렘 5:24).
씨앗을 심는 파종기에 내리는 이른 비와 곡식을 추수하기 전에 내리는 늦은 비의 상징을 통하여 히브리 선지자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교회 위에 부어질 영적인 은혜를 예언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또한 비가 오는 것을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이어서, “[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이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의 개념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구약 선지자들의 개념은 신약시대까지 이어진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이 비의 역사는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주님의 재림과 연관되어 등장한다.

 

 

넷째 천사와 늦은 비 성령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하는 성령의 역사라고 성경이 말씀하는데 그렇다면 이른 비의 역사는 언제 있었을까? 기독교 역사에서 큰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제자가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임했다. 크신 성령의 능력이 그들에게 임했고, 그곳에서 초대교회가 태동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성령께서 임하셨다. 이것을 이른 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늦은 비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늦은 비는 이 마지막 시대 우리를 위해 준비된 성령의 역사인데, 그렇다면 늦은 비는 내렸을까? 교회를 태동시키기 위해 이른 비를 주신 것처럼, 이제는 종말에 사는 마지막 교회, 참 백성을 만들기 위해 늦은 비가 임한다. 이른 비를 통해 초대교회가 탄생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 것처럼, 늦은 비를 통해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키고,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우상의 정체를 폭로하여 세상을 깨운다. 또 담대하고 능력있게 진리를 증거하게 해 주며, 마지막 7 재앙의 환난을 통과할 수 있는 큰 힘을 부어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폭포수 같은 늦은 비는 환난의 때에 충만하게 내린다.
온 세상이 도덕적 영적으로 캄캄하고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 119:126)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계명이 유린당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늦은 비 성령을 받은 넷째 천사, 하나님의 법을 옹호하는 백성들을 통해 무엇이 참 진리인지 능력 있는 외침을 하도록 하신다.
교회의 시작과 씨앗의 발아를 위해 이른 비 성령을 부어 주신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전에 그 씨앗이 자라서 이제 추수할 수 있는 알곡이 될 수 있도록 마지막 시대에 늦은 비를 주시는데 큰 권세를 가지고 큰 능력으로 성령께서 역사하는 시대다. 넷째 천사는 늦은 비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한다.
계시록 18장의 천사는, 계시록 14장의 세 천사가 복음을 전하지만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복음 사역을 완성할 수 없으므로 셋째 천사에게 힘과 능력을 주기 위해 등장하게 된다. 즉 계시록 18장의 넷째 천사가 오지 않으면 복음 사역과 인류 역사가 끝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늦은 비를 받는 계시록 18장의 천사가 되어야 한다. 늦은 비는 인류 역사의 클라이맥스다. 최절정이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서느냐, 들러리로 왔다가 그냥 사라져버리느냐는 이 늦은 비의 여부에 결정된다. 이것이 없으면 마지막 백성으로서 설 수가 없고, 이 타락한 시대를 향한 복음 전파에 능력이 없으며, 환난을 통과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늦은 비가 필요하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 가서 온종일 복음을 전파해도 관심을 두고 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 그리스도의 피로 산 저 영혼들을 구원하고 싶은데, 우리에게는 힘과 능력이 없다. 그래서 늦은 비의 은혜가 필요하다. 늦은 비는 사람을 감동하게 하기 때문에, 한마디의 말에도 영혼의 골수와 폐부를 찔러 쪼개어 회심시키는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영혼들의 심령에 감동을 주고 이끄는 힘이 없기 때문에 오늘도 늦은 비의 역사를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이른 비의 빗방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늦은 비를 받을 수 있을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이른 비 성령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간 머물다 하늘로 승천하셨고, 그 후 제자들이 열흘간 회개와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했을 때, 드디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는 120명의 신자들에게 이른 비 성령께서 임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부활 장면부터 살펴보자.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19~22).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19세기 영감의 주석은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 그리고 그들에게 그의 평화를 나누어 주신 이 그리스도의 행동은 오순절 날에 주어질 풍성한 성령의 소낙비가 있기 전에 주신 약간의 빗방울과 같은 것이었다. … 그들은 주님의 부활에 관하여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여야 하였다. 그들은 주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은혜스러운 말씀을 되풀이하여야 하였다”(The Spirit of Prophecy, vol. 3, 243).
요한복음 20장에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신 것을 이른 비 소나기 전의 “빗방울”과 같은 것이라 했다. 이른 비의 빗방울이 무엇인지, 누가복음 24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4~49). 두려워 숨어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성경 공부를 하셨다. 성경 공부 주제가 무엇이었는가? 이 성경 공부에 제목을 붙인다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Son of God)가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우리의 구주 되심을 구약 성경에 근거해서 자세히 설명하셨다.
오순절 이른 비 성령의 역사가 내리기 전에, 풍성한 소나기가 내리기 전에 무엇을 주셨는가? 빗방울을 먼저 주셨다.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는데 그것을 “약간의 빗방울” 같은 성령이라고 했다. 그 빗방울은 “주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은혜스러운 말씀”, 누가의 표현에 의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부분에 대해서인가? 목수의 아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고 그것을 믿게 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구주 되심을 믿는 것이 더 쉬울까, 아니면 그때 당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더 쉬웠을까? 생각해보자. 그때 당시 뒷골목 깡패들이 우글거리는 나사렛 출신의 30대 초반 젊은이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고 했으니까 외모도 별로이고, 전직 목사도 아니고 목수였던 청년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메시아다. 내게로 오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얘기를 어떻게 믿고, 과연 누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할 수 있었을까?

 

 

진리로 역사하시는 성령

 

지금보다 그때가 더 믿기 어려웠다. 지금은 여러 증거가 있고, 신약성경도 있고,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고 믿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이었다면 내세울 것 없는 그 젊은이를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니까 따라는 다녔지만 성경에 근거 된 믿음을 갖지는 못했기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제자들이 다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성경 공부하셨다.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을 요한복음 20장에는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성경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은 진리가운데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을 어떻게 받는가? 성령은 말씀을 통해 받는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성령이 임했다는 것이다. 목소리 쉬도록 부르짖었다고 성령 받는 것이 아니다. 나무 기둥 붙잡고 밤새 철야기도 해서도 아니고, 방언을 하는 것이 성령 받은 것이 아니다.
실망과 슬픔에 빠진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자신들의 운명이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다락방에 숨어있었다. 주님께서 바로 이곳에 나타나셨고 사십 일 동안 지상에 머물러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셨다. 이때 기적을 베풀고, 병자를 고쳤다는 기록이 없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그 주제가 뭐라고 했는가? 예수님께서 무엇을 설명하셨는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 이후 절망에 빠지고 낙심하여 두려워했다. 그래서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성경을 자세히 가르치셨다. 이때 제자들이 무엇을 받았다고 했는가? 이른 비 성령의 빗방울! 성경을 깨닫게 된 것을,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을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른 비의 소나기를 받기 위한 준비

 

그 결과 그들은 새롭게 함을 입었다. 말씀을 깨닫자 새로운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진리의 지식으로 변화를 받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이들의 믿음은 더할 수 없이 견고하게 되었다.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진리를 깨닫자 새로운 경험을 하고, 믿음이 견고해지고,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딤후 1:12). 그래서 드디어 자신들에게 맡겨진 진리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 진리를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는 사명을 깨달았다.
지금 이 일은 이른 비 성령의 빗방울을 받고 제자들에게 일어난 변화이다. 성경을 깨닫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제자들이 3년 반 동안 예수님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고 설교를 들었는데, 이제야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알고 믿으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자들도 3년 반 동안 예수님과 생활하면서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의 동정, 자비, 오래 참으심, 사랑, 능력에 대해서 배우고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깊이 절망했고 다 도망갔다. 30년 동안 신앙을 해도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경험을 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의 예언들”을 가르치셨고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깨우침을 갖게 하시기 위해 “이른 비 성령의 빗방울”을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비로소 지적, 영적, 경험적으로 예수님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 “이른 비 성령의 빗방울”을 통해 그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알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온전한 이해와 깨달음이 생기자 제자들은 비로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들에게 위임된 진리를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쭉 둘러보니 예수님을 저주하고, 도망가고, 두려워서 숨은 한심한 제자들뿐이다. 대 사명을 예수님께 위임받았으나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능력 없음을 보고 약속하신 성령의 필요를 간절히 느끼고 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님 우리는 안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고 비겁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포에 능력을 주는 성령의 임재, 연약한 그들을 다윗같이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는 성령의 능력, 그들을 강권하여 영혼 구원 사역에 더욱 큰 열심을 내게 만드는 성령의 소나기를 그들은 간절히 구하게 되었다. 성령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면서 그들이 어떻게 준비를 했는가? 자신의 속절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며,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며 자아가 철저히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과 열렬한 기도로 연합하여 준비의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늦은 비를 받게 되는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늦은 비도 이른 비처럼 빗방울과 소나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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