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신앙기사 3부]

제3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우리가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한 본성 안에 존재할 수 있느냐?”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한 인격 속에 있을 수 있었느냐?” “그분은 인성을 가지셨는가? 신성을 가지셨는가?”에 대한 것들이 아니다. 이 논쟁은 지난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왔고 확립해 왔다. 그것을 다시 꺼내어 새로운 학파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어떤 본질의 인성이었느냐를 논하려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가지고 계신 그 인성이 구속론적인 입장에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연구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에 대한 것이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해부하고 정의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인성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그렇다. 예수님은 인간이신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응애” 하시면서 아기로 태어나실 때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인간이셨는가? 그렇다. 예수님은 여호와이신가? 그렇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겸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어떻게 성령으로 잉태하실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고, 예수님의 신성(신적 본질)에 대해 이 세상에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 또한 한 명도 없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어떤 신학자도, 어떤 목사도 그걸 설명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신성 문제는 우리가 논할 주제가 아니며,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누가 감히 예수님의 신성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의 신적 본성을 해부하려는 시도 자체가 참람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비이며 모른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직한 답변일 것이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예수님의 인성 부분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되지 않는 한 그 문제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도 우리가 다 알 수 없다. 주님은 우리와 다른 인간이시다. 그분이 어떤 인성의 신비 속에 있었는지 우리는 명확히 다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예수님의 인성을 해부하려는 연구도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입장,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사탄의 유혹을 승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죄를 승리하는 삶을 사셨던 우리의 모본이 되시는 그 부분에서만 얘기하자는 것이다. 그분이 택하신 인간의 본성은 우리와 동일한, 죄의 결과로 타락한 육체를 가지고 오셨다. 그럼에도 죄를 짓지 않고 승리하셨던 그분의 생애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늘의 능력을 붙잡는 믿음과 기도

 

그러나 예수님께서 신성을 가지고 계셨는가? 그렇다. 신성의 광채가 드러날 때가 있었는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죄에서 승리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형상이 변형되셨다(마 17:2). 이것은 우리의 모본 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신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달랐는가? 당연히 우리와 달랐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인데 남자의 씨로 태어난 우리와 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와 다름을 자꾸 강조하여 어떻게든 우리와 다른 분으로 묘사해서 “주님은 가능하셨지만 우리는 불가능하다”는 유도를 하려고 한다면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의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다른가? 그렇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사셨을 때 인간이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나 권위를 사용해서 순종하셨거나 승리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그것조차 하나님으로서 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믿음을 활용하시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행하신 것이다. 물 위를 걸으신 것은 하나님으로서 걸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처럼 인간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신뢰하는 입장에서 걸으신 것이다. 베드로도 물 위를 걸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난 파도와 폭풍우를 향해 “잠잠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으로서 신적 권능을 행사하신 것 같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활용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권능을 버리셨고,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셨다. 거센 풍랑 가운데서도 고기잡이배에서 편히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쉬신 것은 믿음 곧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였으며 폭풍을 잔잔하게 한 그 말씀의 능력은 하늘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것이었다.
나사로를 부활시키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부활시키실 때도, 그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성의 능력으로 살리신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기도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 장면을 주석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행하신 모든 일에서 당신의 아버지와 협력하셨다. 언제나 그는 홀로 일하지 않으셨으며 이적을 행하신 것이 믿음과 기도로써 이루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시려고 매우 주의하셨다”(Desire of Age p.536).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믿음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들을 행하셨다. 그것까지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리고, 바울이 유두고를 살릴 때, 제자들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할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의지하시고 믿음으로 살리신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행한 것이다.
예수님의 인성 문제가 왜 중요한가? 주님의 인성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복음에 큰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그렇다.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예수님의 인성과 예수님이 가지신 믿음, 이것은 영원한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하나님의 비밀

 

요한계시록 10장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성도들이 누구이고, 그들이 수행해야 할 사역이 무엇이며, 그 일을 할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에 대한 계시가 있다. 사탄이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그의 추종자들을 모으는 동안(계 16:13~16) 하나님께서도 이에 맞서는 한 백성을 준비하신다(계 10:1~11:13).
계시록 10장의 중심 구절은 7 절이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계 10:7).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때는 인류 역사의 막바지에 일어나는 일이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진다.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복음을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셨다. 아모스 선지자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비밀이 … 이루리라” 일곱째 나팔을 불기 전에 하나님의 비밀이 완성될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비밀”의 헬라어 “토 무스테리온 투 데우(τὸ μυστήριον του Θεου, the mystery of the God)”는 복음과 그 선포이다(엡 3:4; 6:19; 골 4:3; 롬 16:25,26).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하신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목적 곧 구속의 경륜을 가리킨다.
“그 비밀”(τὸ μυστήριον)의 헬라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는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일을 가리키고, 둘째는 전에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드러난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복음을 소수의 몇 사람만 알고 끝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 의미인 인간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신비로움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비밀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는 미스터리(mystery)와 시크릿(secret)이 있는데, mystery는 숨겨진 비밀이라기 보다 신비로움을 뜻하며, secret은 몰래 감춘 비밀을 뜻한다. mystery의 어원이 헬라어 “무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인류 역사가 마치기 전에 하나님의 비밀의 복음이 온 인류에게 전해지고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비밀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그 비밀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골 2:2).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일까? 그 비밀을 이렇게 설명한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 이 비밀은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 곧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이다.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이 비밀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품도 우리 안에 심어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신비,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벧후 1:4) 이것이 영광스러운 소망, 즉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다.

 

 

경건의 비밀, 그리스도

 

이어서 사도 바울은 언급하기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8, 29). 이 경건의 비밀, 즉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이유는 우리를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이며, 이 일을 위해 바울 자신도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의 역사를 따라 힘써 일하고 있다고 말씀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다.
하나님의 비밀은 죄 없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니고 죄 있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죄 없는 육신, 곧 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안에 나타나시는 것은 조금도 비밀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죄의 성향을 지닌 육신에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비밀이다. 죄 된 육신의 본성을 입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않고 온 우주 앞에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드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 된 본성을 극복하고 당신의 의로우신 성품과 영광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이실 것이다.

 

 

영광의 소망, 그리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 가운데서 우리는 여기저기에 죄를 위한 틈새들을 남겨두면서 살아왔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죄짓지 않는 생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았고 선포해 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가 충만하게 선포할 수가 없는 경우라면,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 있는 육신을 쓰고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짓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우주에 증명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한 무리를 택하셔서 우리의 죄 된 본성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부정하고, 오히려 우리의 모든 죄 된 본성을 극복하고 당신의 의로우신 성품과 영광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스러운 육신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하나님의 비밀(신비), 즉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다. 일곱째 나팔을 불게 될 때 온 땅을 진리의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빛으로 환하게 할 이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의 비밀이 온전히 이루어지며 구속 사역은 끝이 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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