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선물 [신앙기사 4부]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태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있던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그러나 타락한 이후,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어떻게 전달하셨는지 아십니까?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히 1:1).

​하나님은 예언자(대언자)들을 통해서 은밀한 자기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자들에게 성령의 영감을 통해 깨닫게 하셔서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 12:6).

이렇게 대언자(선지자)들에게 성령의 영감을 통해 계시를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전하실 말씀을 기록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보존해 주셨습니다. “바빌론 왕 벨사살의 제일년에 다니엘이 자기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의 환상들을 받고 그때에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들의 요점을 말하니라”(단 7:1; 렘 51:60,61 참조)


미래의 사건들을 사람들이 이해하게 하시려고 이런 성경 기록들을 가지고 있게 하셨습니다. “곧 그의 통치 제일 년에 나 다니엘이 책들을 통하여 주의 말씀이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사 알려 주신 그 햇수를 깨닫되 곧 그분께서 예루살렘이 황폐한 가운데 칠십 년을 채우시리라는 것을 깨달으니라”(단 9:2).

하나님의 목자들은 사람들에게 순종을 권고할 때 이 선지자들의 말씀을 사용하였습니다.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슥 7:7; 대하 20:20 참조)

“각 시대마다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말이 여호와의 이름을 내세우며 말하는 예언자가 있다 해도 그의 말이 맞지도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으면 그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시키지 않은 말입니다. 그 예언자가 제멋대로 교만하게 말한 것이니 여러분은 그런 예언자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현대어, 신 18:22).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개정, 신 13:1~3).

이 성경 절에서 보다시피, 먼저 선지자의 말이 진실임이 증명되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그 예언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예언자인 체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대신 사람들로 그 계명을 범하도록 이끈다면 그가 하나님의 참 예언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지를 보고자 이러한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허용하십니다(신 13:4 참조). 그러므로 온갖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 예언자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님의 믿음”을 갖도록 인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마지막 때에 이 대언의 영에 관하여 이렇게 예언되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 바로 이 예언 성취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6,17).

그리고 이 약속을 청중들에게 전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니라”(KJV, 행 2:38,39).

이제 마땅히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러한 영적 선물로써 주님의 몸을 세워야 합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영적 선물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라”(KJV, 고전 12:1).

영적 선물을 주신 목적

 

​성령의 선물이 어떤 약속으로 나타났을까요?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 4:8). 사람들에게 성령의 선물(은사)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증한 것은 바로 그분의 부활 승천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음에게 사로잡혔던 자들 중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함께 살아난 이들도 있습니다(마 27:51-53). 이제 죽음의 사슬은 깨졌고, 사탄의 포로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이제 선물은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습니다(고전 12:4). 이렇게 성령의 선물을 주신 이유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함입니다(막 16:15). 그런데 왜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즉시 곧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진행하지 않았을까요?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9). 그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입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주님께서 교회에게 배정하신 선물인 성령의 도우심 없이 복음이 전파되도록 기획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아주 확실합니다(고전 12:28).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사역이 남아 있는 한 그 성령의 선물 또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영적 선물을 주신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영적 선물은 사탄의 포로된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사로잡아 오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을 완성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을 소유한 자들, 예수님의 증인들이 되게 하기 위해 부여하신 능력의 선물입니다.


무엇이 영적 선물인가?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고전 12:8,9).

사도 바울은 이러한 영적 선물 중 어느 것을 특별히 가치 있다고 말했을까요?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영적인)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이 예언은 교회 부흥을 위한 일반적인 종교 강연(Discourses)을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와 의무와 다가오는 사건들과 관련된 하나님의 생각을 미리 말하는 것은 성령께서 전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그 예언의 은사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으로 영감의 권위로 말하며,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경고하며, 교훈하며, 용기를 주거나 혹은 견책의 말을 하도록 하는 영적 선물이었습니다. 또한 초인간적인 능력과 감명으로 기독교의 진리들을 가르치며 강권하는 것입니다. 이 선물은 누구에게 유익하게 되도록 설계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방언(타 언어)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고전 14:22). 이렇게 유익을 끼치는 이런 선물의 경험이 교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3).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며 섬기게 하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선물들을 어디에 배치하셨습니까? 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전 12:28).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으나,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엄청난 시련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들이 성령님의 선물을 적절히 사용하기를 염원했습니다. 훗날,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시련이 가져온 결과를 이렇게 전달했습니다. “형제들이여, 내게 닥친 여러 가지 역경들이 도리어 복음을 더욱 널리 전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쉬운 말, 빌 1:12). 교회에 주어진 이러한 선물들이 얼마 동안 지속되도록 설계하셨는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9,10).

이러한 영적 은사들의 부어주심이 초기 기독교회와 사도들에게만 국한되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한 “더욱 뛰어난 길”(고전 12:31)인 “자애”(Charity) 혹은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허락되었으며, “가장 좋은 선물들을 간절히 사모”(고전 12:31)하는 후세대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됩니다. 한 가지 사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오류에 대항하는 싸움을 위해서는 오늘날의 교회가 이러한 은사를 매우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심 속에 초인간적인, 영적인 관념을 보존하기 위해 이 은사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보석으로 치장할 것이 아니라 이 영적 선물로 장식해야 합니다. 이 은사를 “간절히 사모”하게 하십시오. 세상의 명예와 부귀를 탐하는 것은 버려지고, 세상적인 과시를 탐하는 일이 없어지게 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특별히 예언(대언)의 선물을 존중하도록 책망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예언하는 것을 멸시하지 말라”(살전 5:20). 이 예언의 선포는 구약에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십자가와 구속의 성취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증거하는 것, 곧 예수님의 증거를 말합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19:10).

교회가 왜 예수님의 증거를 입증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6,7). 오늘날 교회에 존재하는 은사들로 인해 예수님의 증거가 확증됩니다. 마지막 남은 교회에는 “예수의 증거”가 있다는 특징이 기술돼 있는데(계 12:17), 그것은 계시록 19장 10절에서 “대언의 영”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성령의 부어주심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개정, 눅 24:49). 또한 예수님은 그들이 곧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행 1:5). 침례 요한은 이 침례에 대하여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마 3:11). 이 침례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는 준비에 있어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그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의 부으심을 통해 어떤 설교의 결과가 뒤따랐는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7~41).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행 5:12~14).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나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제사장들의 큰 무리도 믿음에 순종하니라”(행 6:7).

이렇게 복음이 왕성히 전파되고 교회에 영혼들이 더해지자 핍박이 가해졌습니다. 핍박은 그것을 파멸시키고자 설계된 믿음을 오직 증가시키고 확고하게 하는 한 가지 경향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핍박은 복음을 전하는 설교의 확산에 오히려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 8:1~4).

사람들을 핍박하고 반대하는 것은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해주고 그들의 신조들을 퍼뜨리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주는 교훈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선지자 요엘의 예언은 성령을 부어주시는 때에 성취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 2:14~18; 욜 2:28,29 참조)

이 예언은 예언자 요엘의 책에서 성령의 부으심의 이중적 성취를 나타냈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개정, 요엘 2:23; 호 6:3 참조)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른비는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흙을 준비시키며, 늦은비는 추수를 위해 곡식을 영글게 합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에 성령의 부어주심은 복음의 씨앗을 널리 뿌리기 위해 세상을 준비시켰으며, 마지막 부어주심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이라고 말씀하신 세상의 추수를 위해 황금 곡식을 여물게 할 것입니다(마 13:37~39, 계 14:14,15).

그렇다면 마지막 늦은비 시대에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개정, 슥 10:1).

오순절에 사도들이 이른비 성령의 침례를 받기 전에,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였습니다(행 1:14). 이 시간 동안에 그들은 그들의 잘못들을 고백하고, 그들의 차이점들을 버리고, 능력을 받기 위해 그들의 이기적인 야망을 버리고 논쟁하기를 그쳤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시간이 되었을 때에 “그들은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행 2:1)었으며, 성령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마지막 부어주심을 위해 준비되려면 모든 죄와 이기적인 야망은 다시 버려져야만 하며 같은 은혜의 역사가 하나님 백성들의 마음속에 일어나야만 합니다. 늦은비 성령의 부어주심 아래 마지막 복음 사역을 마치는 일이 예언자 요한에 의해 이렇게 묘사되었습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계 18:1).

이 천사의 메시지는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종교계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유대 나라가 그분을 거절했을 때와 거의 똑같은 상태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딤후 3:1~5 참조). 오순절 때 사도 베드로는 청중들에게 호소했습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 2:40).

마지막 성령의 부어주심 아래 이러한 유사한 부르심과 호소가 있을 것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그녀)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그녀)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그녀)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계 18:4,5).

이 위대한 사역이 성령의 마지막 부어주심 아래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성취될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음성이, 음녀에게서 나와 음녀에게 내려질 재앙을 받지 말라는 경고의 큰소리를 외칠 것입니다. 신자들에 의해 표적과 기사들이 행해질 것이며 오순절의 때와 같이 하루에 수천 명이 회심하게 될 것입니다.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처럼 이 마지막 복음의 부르심에 유의하지 않는 자들은 멸망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 기아, 죽음 그리고 파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도망하라는 그분의 부르심에 유의하지 않으므로, 그들 자신을 예루살렘에 가두어 놓았다가 멸망한 유대인들에게 임한 것처럼, 일곱 재앙이 그들 위에 내리게 될 것입니다. 부르심에 유의하고, 죄와 죄인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킨 이들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3,4).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61호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라]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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