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줍는 아이 [부모와 자녀]

– 김수길

아이와 산책을 자주 나갑니다.

보통 한 바퀴 돌고 나면 20분~30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걸을 때마다 아이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쓰레기들’입니다.

어느 날 아이는 눈에 한 번 들어온 쓰레기를 시작으로 계속 쓰레기 개수를 세면서 땅만 보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천연계를 둘러보며 즐기기를 바라는데, 아이는 그런 엄마 마음을 알 턱이 없지요.

스무 개, 서른 개, 여든, 아흔… 보다 못한 엄마는 한 마디 해봅니다.

“초아야, 쓰레기만 보지 말고 나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지나가는 구름도 보고 풀도 관찰하면서 가면 참 좋겠는데…” 그러나 아이는 쓰레기에 생각이 꽂혔습니다.

아이는 산책 나갈 때마다 봉투를 챙겨와서 쓰레기를 줍자고 했지만, 둘 다 잊어버리고 말기를 여러 차례 했지요. 그러다 오늘 다행히도 산책 나서기 전에 생각해냈습니다. 그래서 포대자루와 집게를 챙겨서 길을 나섰습니다.

드디어 벼르던 쓰레기 줍기에 돌입했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음료수 캔이네요.

“초아야, 초아가 쓰레기 줍고 싶은 생각이 들었잖아? 그건 누가 준 생각일까?”

“하나님!”

“맞아, 우리 마음에 착한 일, 선한 일을 하고 싶은 모든 생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야. 그런데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아. 이렇게 초아가 착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 누가 기뻐할까?”

“하나님,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맞아. 엄마도 초아를 칭찬해 주고 싶네.”

“쓰레기 아줌마 어디 가세요?”

“쓰레기 주우러요.”

“어머,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상급을 주실 거예요.”

아이가 담뱃갑을 줍다가 표지에 그려진 혐오스러운 그림을 보며 한 마디 던집니다.

“담배 피우지 말라고 이런 그림 그린 건데…”

“맞아. 그런데 사람들은 알면서 왜 자꾸 담배를 피우는 걸까?”

“한 번 피우면 계속 피우고 싶잖아요.”

“그렇지. 그걸 중독이라고 하지.”

“맞아요. 중독. 그런데 담배 안에 계속 피우고 싶은 물질을 넣어 놓았대요.” 아이는 학교에서 금연교육 중에 배운 내용이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저런, 꼭 사탄 같다. 사탄도 우리를 유혹하려고 그렇게 하잖아.”

꼬마 숙녀는 참 여러 종류의 쓰레기들을 주웠습니다. 가장 많이 주은 것은 커피 캔, 음료수 캔, 담뱃갑이었어요. 캔맥주도 있었고요. 고사리 같은 아이 손으로 이런 쓰레기를 줍게 하니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차들이 지나가니 아이가 한 마디 합니다.

“지나가는 차들이 쓰레기 처리하는 거 다 보겠다.”

“그래. 다 보일 거야. 아마 앞으로는 차 타고 가다 길에 쓰레기를 휙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야”

서너 살 되었을 때도 산책하다가 이곳에서 쓰레기를 보고 한 아름 주워서 엄마를 주던 생각이 나네요. 어느덧 이렇게 자라서 엄마 도움 없이도 뛰어내리고, 건너뛰고… 매의 눈으로 구석구석 숨겨진 쓰레기도 잘 찾아내는 어린이가 되었네요.

아이 혼자 들고 올 수 없을 만큼 한 자루 가득 주웠습니다.

“어휴, 오늘 많이 버셨네요.”하며 서로 웃기도 했습니다.

“초아야,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건강하고 힘도 세야겠지?”

“네.”

가득 찬 자루를 들고 걸으며 ‘아이고 무겁다’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교훈을 던집니다.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는 엄마가 듣고 좋아할 만한 답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말씀을 먹어야 해요. 밥도 먹어야 하고요.”

“그래요. 밥만 먹으면 될까?”

“휴식도 취해야 해요.” 아이는 평소 자주 듣던 것이 있어서인지 건강 원리에 대해 제법 똑 부러지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그리고 운동도 하고, 절제도 잘 해야겠죠?”

집에 돌아와서 분리수거를 합니다.

버릴 것과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따로 담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음료수 캔 하나에서 엄청나게 심한 악취와 오물이 흘러나옵니다. 순간 구토가 나올 뻔했네요. 어찌어찌 정리를 마치고 집안에 들어왔는데, 그 악취가 따라 들어옵니다. 이런! 끼고 있던 장갑에도 냄새가 배었고, 바지에도 오물이 튀었는지 냄새가 납니다.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고,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까지 생기네요.

‘죄’가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만지기도 싫고, 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 바로 그놈의 ‘죄’가 되어야 하는데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깊이 생각해야겠습니다.

쓰레기 줍는 아이가 자라면서 죄를 그때그때 처리할 수 있는 영적인 스태미너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죄짓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봅니다.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62호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호소]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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