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간증] 어느 여행길에서

[생활간증] 어느 여행길에서

 

저희가 사는 도시에서 남단으로 약 100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멜버른이라는 도시가 있는데요 일 년에 최소 한두 번 정도 여행하는 것은 이제 저희에게는 거의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 되었답니다. 몇 가지 나름의 이유로 이 도시를 사랑하는 형제는 장거리 운전도 마다치 않고 매년 안 가면 큰일 나는 것으로 자리매김해놓았지요. 보통은 내륙을 통해 직선에 가깝게 연결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몇 해 전에 저희는 집에 오는 길에 상당히 돌아가지만, 태평양을 끼고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기로 했었지요.

룰루랄라 경쾌한 마음으로 제 휴대폰의 내비게이션을 켜고 출발했지요. 두어 시간을 갔을까? 연료 표시판에 아뿔싸 빨간불이 들어와 버렸어요. 군데군데 주유소들이 있는 내륙의 고속도로만 생각했던 형제는 작은 마을의 이름 모를 회사의 주유소를 한참 전에 무심코 그냥 지나쳐왔어요. 뭐 조금 가면 또 있겠지… 그러는 사이 위치추적이 안 된다는 표식과 함께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멈추고 말았네요.

전혀 주유소 같은 것은 있을 법하지도 않은 길을 따라 그냥 앞으로 나가는데 웬일인지 점점 더 한가한 곳으로 이어지더니 숲길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태평양의 해안도로는 고사하고 도대체 어딘지 종잡을 수조차 없는 키 큰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는 외진 길로 질주를 하는 것이었어요. 겨우 자동차 한 대만 갈 수 있는 이상한 숲길로 이어지는데 정말이지 가슴이 졸여왔어요. 아 어쩌지 한참 전에 불이 들어왔으니 곧 기름이 떨어질 텐데… 다혈질의 운전자는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어요.

안 돼요, 더 이상 가면 안 돼. 빨리 멈춰야 해요. 그 한적한 숲길 옆 작은 공간에 웬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어서 저희도 겨우 그 옆에 차를 세우고 어떤 도움이라도 받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차안을 살펴봤어요.

아무도 없음을 알고는 저 밑 개울 쪽을 향하여 혹시 누구 계십니까 외쳤지만, 그저 메아리만 들려올 뿐이어서 저희는 점점 패닉상태가 되어 갔어요. 인터넷은 다 끊겨서 먹통이고. 대낮인데도 으스스 정적만 흐르는 가운데 저희의 걱정 소리만 숲에 울려 퍼질 뿐이었습니다. 아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지요? 도와주세요. 혼자 속으로 하늘을 보며 되뇔 뿐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반대편에서 작은 트럭 한 대가 오는 것이었어요. 저희는 너무나 반가워 손을 흔들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냥 지나쳐버렸어요. 더 절망적인 상태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옆 차에 어떤 사람이 올라타 떠나려는 것이었어요. 다가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손짓으로 이리저리 가면 주유소가 있으니 가라는 거였어요. 그러나 만약 또 헤매다가 정말 차가 멈춰버릴 상황이 올지도 몰라 필사적으로 사정을 했지요. 전혀 길도 모르니 혹가는 방향이 비슷하다면 좀 앞에서 인도해주실 수 있느냐 하니 후유 그러겠다 하였어요. 그 낯선 운전자를 따라가면서도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라는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요. 요리조리 한참을 가서 드디어 그 남자분이 주유소에 저희를 안내해주고 떠나갔어요. 얼마나 감사하고 기쁘던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국립공원 지역으로 지도에서도 짙푸른 색깔로 표시된 산림지역이었고 외진 지역이라 도로를 잘못 들게 되면 곧바로 밀림같이 우거진 숲속으로 연결되는 곳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날 이후 태평양 연안도로를 통한 여행은 입 밖에도 내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첫째, 가던 길에서 돌이킨다는 회개의 의미를 생각할 때입니다. 만약 그때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는데도 에이 일단 시작했으니 그냥 끝까지 가보자며 멈추지 않고 계속 용감하게 앞으로 돌진했었다면 하루에 차 한 대가 지나갈까 말까 한 곳에서 어떻게 될 뻔했을까.

우리 속에 크고 작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정확하게 알람 종을 울려주시는 성령의 속삭임이 들리면 그 음침한 숲길에서 즉시 유턴하여 나와야 함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때때로 성큼 다가와 마음의 평안을 깨며 고뇌케하는 어떤 생각이 스쳐 갈 때 내 입장에만 치우쳐 애써 변명하며 스스로 정당화하려고 했던 적들이 분명히 있지요. 성령께서 다시 두번 세 번 종을 울려 주셔도 무시하면 그 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가나 심령 깊숙이 어슬렁거리며 괴롭혔던 경험들… 그래서 번개처럼 우리를 깨워 주실 때 즉시로 멈추고 무릎 꿇어 내게 없는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둘째는 기름을 채우는 것을 소홀히 했을 때 겪게 되는 재앙에 대한 것이지요. 아무리 깨끗이 세차 된 아름다운 차라도, 신화와 전설을 자랑하는 최고급 브랜드의 자동차라도 기름을 채우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에만 만족하여 주님과의 교통을 통한 매일의 기름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아마 그 자리에 멈춰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차가 되고 말테니까요. 매일 말씀의 연료를 채워 꺼지지 않는 성령의 등불을 켜고 신랑을 맞이하기를 소원합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우리의 생명을 위해 귀하신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신 주님. 우리의 신음을 들으시고 가장 선한 것으로 응답하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길 원하며 그 한적한 숲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구해준 턱수염, 구레나룻, 옅은 미소의 운전자가 혹 천사가 아니었나 가끔 생각한답니다.

 

추천 게시물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