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들 [신앙기사 3부]

제3부 믿음의 조상들

 

 

믿음의 조상이 된 이유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우월성과 민족적인 선민사상 때문에 자부심을 느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들의 유전과 관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자신들 마음대로 해석했다. 그 결과 그들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의 사명을 인정하지 않았고, 구세주로 영접하기보다 유대 나라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줄 강한 정치적 메시아를 원했다. 예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무력으로 쟁취하려 했다. 그 어리석은 결과를 분쟁과 살육과 멸망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과 힘으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의해 자기들의 신념과 계획을 버리고 온전히 믿음으로 따라 산 믿음의 조상들의 역사를 보면서 그 믿음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한다.
비바람과 추위를 견뎌 낸 꿋꿋한 나무가 훌륭한 악기로 탄생한다. 땅속에 묻혀 있는 보통 석탄이 섭씨 550도 이상이라는 높은 온도와 1평방 인치 당 750톤의 압력을 받게 되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다. 세상에서 모진 시련과 어려움을 겪지만, 우리를 믿음의 용사로 꼴 지우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끝까지 그분을 신뢰하고 따라갈 때, 우리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증거하고 드러내며, 하나님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될 수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묵상해보자.

 

 

아벨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양으로 희생 제물을 드렸고, 피 흘림이 없이는 속죄가 없으며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그의 믿음을 나타냈다.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열납하셨다. 아벨은 구속의 원칙을 파악하고 믿음과 순종을 선택했으므로 죽임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드린 그의 제사를 열납하시므로 그의 믿음을 인정하셨고 의인이라는 증거 또한 얻게 되었다.
에녹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홍수를 불러올 만큼 죄악이 관영하던 세상에 에녹은 3백 년이란 긴 세월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황홀경 속에서나 이상 중에서 기도만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일상생활의 모든 일을 행하는 가운데서였다. 가정에서 사회생활에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시민으로서 그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가 편만 한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표본을 후세대의 인류를 위해 보여준 에녹 때문에 기뻐하셨고 이제는 그를 하늘에 데려가시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산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좋은 모본을 보여주셨다.

 

 

노아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비를 보지 못했던 그 시대에, 장차 닥칠 홍수를 위해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했던 노아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애썼다. 노아는 120년간 방주를 지었고, 120년간 사람들에게 경고하며 멸망을 피하는 방법을 호소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조롱뿐이었으며, 그의 탄원과 호소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노아는 방주 짓기를 중단하지 않았고 그의 신실함 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구원함을 얻었다. 노아의 믿음은 그 당시 사람들의 불신을 정죄했고, 믿음을 따라 의로운 사람이 되었으며, 순종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거했다.

 

 

아브라함을 부르심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자신이 안주하던 정착지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가벼운 시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르심에 순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들어갈 약속의 땅이 비옥한 땅인지, 기후가 좋은지 그리고 재물을 쌓을 기회가 있는 곳인지 묻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 말씀에 의지해 순종하였다. 아브라함의 의심 없는 순종은 온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현저한 믿음의 증거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에게 있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였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외부적 증거가 조금도 없었음에도 그 약속을 믿고서, 안락한 집과 익숙한 환경을 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따르려고 나아갔다.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9,10).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도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살았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발붙일 만큼의 유업도 얻지 못했으며, 막벨라 밭을 사라의 매장지로 사기전까지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죽을 때까지 보지 못했다. 그런 나그네 생활을 했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약속(창 12:2,3)을 성취하실 것을 굳게 믿었다. 아브라함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에게 보상으로 주실 영원한 하늘 유업을 얻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시험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어울리지 않는 요구였고,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으리라던 약속의 아들이었는데 하나님의 명령은 이해가 되지 않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했고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았다. 이삭은 기적의 아들이니 그에게 생명을 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생명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음을 믿었다. 보이지 않는 저편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히 11:19)하였다.
긴 세월 동안 주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온 아브라함은 믿음과 인내는 가장 어려운 지점, 곧 가장 사랑하는 것까지 하나님 앞에 바치는 곳까지 다다랐고, 그 혹독한 시험을 믿음으로 승리하였다.

 

 

시험을 이긴 아브라함의 믿음

 

그러나 아브라함은 실수가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고 낳은 이스마엘로 인해 분쟁과 분열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후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반드시 약속을 성취한다는 교훈을 배우면서 후대의 모본이 될 믿음의 조상으로 완성되어 갔다.
연약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잡아야만 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신다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이다. 이 믿음 때문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이 생겼고, 이 믿음 때문에 순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믿음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사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 11:11).
그들의 몸은 이미 늙은 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법으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이 아닌, 사라의 몸에서 친히 난 아들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불신 때문에 여호와께서 약속을 이루지 못하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사라는 엎드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였을 것이다. 드디어 그녀의 기도는 가납함을 받았고, 죽은 것 같은 태에서 잉태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만일, 그녀가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낳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기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라가 잉태할 수 없는 늙은 나이에 이르도록 기적을 연기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하시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만을 바라보도록 하셨다.
사라가 믿음을 가졌을 때 아들을 생산한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진정한 믿음은 기적을 생산한다. 그 생산은 다름이 아닌 “행함(순종)”이며, 이 행함은 믿음의 결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모세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모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애굽의 파라오가 될 왕자였다. 그러나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정해 놓은 고귀한 운명을 확신했기 때문에 현재의 명예, 지위, 권력을 거절했다.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에 대한 믿음만이 그로 하여금 애굽의 보좌를 거절하게 할 수 있었다. 모세는 자신이 애굽 왕이 되는 것이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위치에 서는 것이라고 합리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멀리서 믿음의 눈으로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될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그 후손의 강림을 바라보았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보상이 애굽의 왕위에 수반된 즉각적이고 물질적인 보상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언약과 관련한 약속들과 특권들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믿음으로 자신에게 상 주실 분을 바라보며 주신 사명을 완수해 나갔다.

 

 

라합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히 11:31).
라합은 이방인이었고, 창기였으나 당당히 믿음의 조상으로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되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 라합은 그녀의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로부터 애굽에 내려진 재앙과 홍해를 가르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기이한 이적, 만나를 내려서 먹이신 사건 등 전능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들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라합의 믿음은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0명의 정탐꾼들보다도 더 크고 강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넜고 출애굽 당시의 놀라운 구원을 경험했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실제 보고서도 하나님을 불신했고, 두려움과 불평의 정신을 백성들에게 퍼뜨렸다. 그러나 라합은 보지 못했지만 믿었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적은 지식밖에 없었지만 두 정탐꾼을 숨겨주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었다.
최악의 조건을 가진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면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가족이 될 수 있고, 함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는 귀한 신분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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