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곳을 수보하는 자들 [신앙기사 4부]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 58:12)

 

유대인들이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의 정신적 상태도 황폐했기 때문에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재건과 부흥과 개혁의 위대한 사역이 남아 있었다. 한때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갔던 옛날 길이 보수되어야 했다. 예루살렘의 재건과 회복을 위해 온 마음과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 신실한 주님의 일꾼과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어 그 사역에 성공한 것처럼 오늘날도 전 세계적으로 회복 사역이 진행되어야 한다. 잘못 해석하고 무너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잡아야 하고 오해된 하나님의 성품을 옹호할 예수님의 증인들이 출현해 그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것이다.

 

 

기회의 사람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관리로 왕의 은총을 받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고국 예루살렘으로 향해 있었고 그의 희망과 기쁨은 예루살렘의 회복과 번영에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의 일부가 재건되었으나 복구공사는 방해를 받고 성전 봉사도 저지당하고 있었으며 성벽은 아직도 대부분 황폐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예루살렘 재건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느 1:4)였다. 슬픔 중에 그는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자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시고 백성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셔서 유다의 황폐된 곳들을 건축하게 해 주시도록 탄원했다.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 그의 믿음과 용기는 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만일 왕의 허락을 받고 재료를 구하는 일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본인이 직접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이스라엘의 국력을 회복하는 일에 착수하기로 결심했다. 기도할 때 이런 거룩한 목적이 생겼고 이 계획이 수행될 수 있도록 왕의 목전에서 은총을 얻게 해 달라고 더욱 간절히 간구했다. 이 기다림의 시간에 그의 마음을 번뇌케 하는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으며 드디어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느 2:2). 오랫동안 기다렸던 기회가 찾아왔으나 겉으로는 왕을 섬기고 있으면서 그의 동족과 예루살렘에 온 마음이 쏠렸다는 것을 듣고 왕이 분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의 응답이 왔다고 생각하고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느 2:3). 이 대답에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동정심을 느끼게 하셨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느 2:4). 이 짧은 순간에 느헤미야는 기도했다. 평상시 이 문제로 늘 하나님께 간구해 왔기 때문에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았다. 그 짧은 기도를 통해 용기를 얻은 느헤미야는 자기의 소원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하고 예루살렘을 재건할 수 있는 권위와 재료를 간구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느 2:8). 그는 기회의 사람이었다. 택한 도성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애타는 사랑 때문에 기도했고, 기도를 통해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에 자신이 친히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목적이 생겼으며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느헤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시므로 그를 개혁자로 인정하셨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의 재건과 회복에 대한 염원과 소망이 간절했던 것처럼 무너진 주님의 법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한가? 오해받고 잘못 해석된 주님의 말씀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얼마나 우리로 간절히 기도하게 하는가? 순결을 잃어버리고 타락해가는 교회를 향해 얼마나 애타는 심정을 가지고 울며 탄식하는가?

 

 

느헤미야의 대처 방법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그와 협력하라는 왕의 명령을 가지고 있었으나 권력에 의지해서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의 연합이 일손을 모으는 것만큼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백성들의 신뢰와 동정을 얻고자 노력했다. 낙담하고 분열된 동포들을 연합시키기 위해서는 열렬한 노력이 필요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과 동포들의 어려움을 듣고 그들을 위해 하늘의 은총을 간구하면서 자기가 갈 수 있도록 왕의 허락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그의 기도는 기적적으로 응답되었다고 말하며 설득하였다. 그의 간증에 백성들의 마음은 움직였고 그의 소망, 그의 활동력, 그의 열성, 그의 결심은 감화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고귀한 용기와 고상한 목적으로 고취시켰다.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느헤미야와 협력하기로 작정했다. 한 사람의 완전한 헌신과 믿음의 생애는 감화력이 되어 주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들이 한마음으로 성벽을 건축할 때 지도자인 느헤미야는 일꾼들을 지시하고 장애물을 살피며 비상시를 대비하면서 건축을 감독했다. 적절한 말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느린 사람들을 일깨우며, 부지런한 사람들을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원수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느헤미야는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도 힘의 근원을 잊지 않았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끊임없이 향했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라고 부르짖었고 그 말은 성벽 위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다.

적군들은 일꾼들을 분열시키고자 노력했고 그 건축이 실패할 것을 예언하면서 조롱했다. 원수들은 친선을 공언하면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혼란과 고통을 주고 불신을 일으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들의 음모를 대적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했다. 그 일에 내부자들이 이미 협력했고 그들은 느헤미야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뜨려 오해하게 했다. 건축에 불만을 품고 있던 유대 지도자 중에 어떤 이들은 공사에 수반된 어려움을 과장해서 말함으로 느헤미야를 낙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백성들 사이에서 내분과 낙심이 일어났으나, 모욕과 조롱과 반대와 위협은 느헤미야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16] 그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느 4:16~18). 느헤미야와 그 동료들은 고생과 힘든 봉사를 회피하지 않았다. 밤이나 낮이나 잠자는 짧은 시간 동안에라도 그들은 옷을 벗지 아니하고 병기를 놓지 않았다.

느헤미야 시대의 건축자들이 원수와 거짓 친구들에게서 받은 공공연한 반대와 낙담은 오늘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겪을 경험의 표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들의 분노에 대처해야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분열과 미지근함, 그리고 친구와 조력자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배반으로 시험을 받는다. 지지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주님의 원수들과 연합하여 큰 공격을 받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사역이 번영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까지도 적들의 비방과 위협의 소문을 듣고, 불신에 동참하거나 과장된 소문을 이곳저곳 전하면서 건축자들의 손을 약하게 할 것이다. 사탄은 그의 대리자들을 통해 놀라울 만큼 성공적으로 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느헤미야와 같이 원수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멸시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기심 없이 그분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전진해야 한다.

 

 

성공한 이유

 

느헤미야는 외부와 내부의 적과 이중으로 싸워야 했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명보다 사명을 더 중히 여겼다.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완공하게 도와주신다는 확신과 용기가 있었다. 그 결과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두 달이 못 되어 성읍은 성벽으로 둘렸고, 건축자들이 성벽 위를 거닐면서 원수들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길이 지배하시는 이런 증거도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있는 불만과 반역과 불신을 제어하기에는 넉넉하지 못했다. 특히 우상 숭배자들과의 잡혼은 악한 결과를 가져왔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의 잡족들처럼 그들은 항상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한 발을 세상에 걸친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가장 어렵게 할 것이다. 유대인을 해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일의 선두에 섰던 이들은 느헤미야의 말과 행동을 곡해하고 느헤미야의 계획과 움직임을 원수들에게 누설하므로 공격에 노출되게 했다. 그러나 반역자를 처벌하는 일에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봉사를 진전시켰으며 결코 자신의 노력을 감소시키지 않았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역을 전진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공격했고, 하나님의 사역의 친구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느헤미야처럼 확고부동하게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느 6:3). 그는 모든 반대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자기의 역할에 충실했다. 반대와 위협보다 그의 사명은 더 크고 강했다. 조롱과 공격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의 믿음은 훨씬 더 견고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그들을 해하려고 만들어낸 거짓과 악의를 무시하고, 위협이나 조롱이나 거짓 때문에 사역에서 돌아서는 일을 거절해야 한다. 언제나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느 4:9)해야 한다. 진리는 거짓보다 강하고 선은 악을 이길 것이다.

또한 의의 원수들에게 우정을 동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사람을 꾀어내어 의무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순결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세상과 연합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리의 사역에 반대하는 사람들과도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단호히 저항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능력을 불신하게 만드는 감화는 확고부동하게 저항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느헤미야의 굳은 헌신과 신뢰심 때문에 원수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고상한 목표에 열중하는 사람의 생애에는 악이 발붙일 곳을 거의 찾지 못한다. 끊임없이 전진하는 사람의 신앙은 약화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사방에서 선하신 목적을 성취하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큰 반대와 실망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다.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확신을 가지고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말한 느헤미야의 반응이 오늘날 우리의 반응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사역에 함께 하시니 아무도 성공을 막을 수 없는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방편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모든 위급한 때를 위해 거룩한 도우심을 준비하셨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난국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시고 우리의 소망과 확신을 굳게 하며 우리의 정신을 밝히고 우리의 마음을 순결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마련하시고 일의 통로를 여신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섭리의 표적을 바라보고 즐겨 하나님과 협력하기만 하면 그들은 성공할 것이다.

느헤미야의 성공은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의 행동이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느헤미야는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니었으나 중대한 시기를 위해 일어난 한 개혁자였고 하나님은 그를 크게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신다. 큰 목적에 감동된 그는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고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실성이 그의 노력의 특징이 되었다. 그가 악과 의를 반대하는 세력과 접할 때 매우 확고부동한 입장을 취하므로 백성들은 새로운 열성과 용기를 가지고 일하도록 깨우침을 받았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충성심과 하나님께 대한 깊은 사랑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것을 보고 그들은 그가 인도하는 대로 기쁨으로 따라갔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의무에 근면하는 것은 참된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느헤미야처럼 하나님만을 섬기려는 거룩한 목적으로 충만하다면 백성들은 연합할 것이며 희망을 품고 열심을 낼 것이다. 지도자들이 진 부담은 무거웠으나 확고부동한 신념과 겸손한 정신과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가지고 전진한다면 진리는 승리할 것이다.

 

 

이 시대의 건축자들

 

오늘날 오해되고 잘못 해석된 많은 교리가 있으나 특별히 70이레에 대한 예언을 공부했다. 70이레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잘못된 이론들을 만들었고 기독교를 혼란과 혼돈에 빠지게 했다. 교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보게 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데 중요하다. 그런데 바벨론의 취하게 하는 포도주(거짓 교리)는 사람의 분별력을 마비시켜 옳고 그른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잘못된 가르침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게 만들고 잘못된 신앙을 갖게 만들기 때문에 누군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누군가는 건축자가 되어 무너진 하나님의 법과 말씀을 바로 세워 오류와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비해야 한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사 30:21). 가장 안전한 정로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길은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진리와 의의 길에서 전반적으로 떠나는 이때, 하나님의 원칙을 회복하고자 하는 백성들은 어디 있는가?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고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는 이 시대의 건축자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끝이 가까이 이르러 올 때 주께서는 혼신의 힘을 다해 무너진 곳에 서서 그 틈을 수보하는 태도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더 결정적이고 능력 있게 오랫동안 잘못 이해되어 온 오류를 폭로하며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한다. 가장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을 때도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주장해야 한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그것을 생애의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히 적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사 8:20)리라. 오직 성경만을 거짓 가르침과 기만하는 영들의 방어책으로 삼아야 한다. 성경이 사탄의 속임수를 폭로하기 때문에 사탄은 성경을 그대로 믿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성경의 많은 가르침을 뒤틀거나 곡해시켜 놓았다. 70이레에 대한 것뿐 아니라 곳곳에 흠집이 나고 뒤틀린 하나님의 말씀과 무너진 하나님의 율법을 올바로 세울 건축자들이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교회를 위해 탄식하고 오해된 하나님의 말씀을 재건하고 회복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아 일하기를 원하는 소명과 사명을 가진 마지막 백성이 우리가 되기를 소원한다.
이 시대 느헤미야 같은 사람이 되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라는 응답을 받아 무너지고 허물어진 것을 다시 세우는 건축자들, 마지막 일꾼들이 속히 출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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