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주자들 [신앙기사 4부]

제4부 마지막 주자들

 

 

마지막 백성의 믿음

 

히브리서 11장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않으며,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히 10:37~39)을 소개한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으로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은 받지 못했다. 그들의 신실함이 입증되어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예는 얻었으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을 멀리서 바라보고 그것을 유업으로 받을 소망을 가지며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다.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40).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조상과 선조들이 있었다 할지라도 마지막 세대인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세상의 역사가 마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온전함을 이루는 믿음으로 구속의 사역을 완성시킬 사람들, 이 세상 죄의 역사를 끝내고 예수님의 재림을 촉진시키고 준비하는 예수의 증인들, 아브라함과 선조들에게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받는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마지막 주자들이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그 일을 성공시키는 분,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성경은 제시한다. 타락한 인간들을 죄의 음침한 어둠에서 불러내 복음의 영광스러운 빛 속으로 인도한 분은 그리스도이다. 이전의 죄 된 생애에서 정결케 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자격을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이다. 하늘 가는 길을 밝게 하는 분은 그리스도이다. 죽은 행실을 회개케 할 뿐 아니라 완전한 데 나아가게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다. 새 생명으로 태어나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그 의를 예수님께서 이룰 수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붙잡을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할 때 능력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서 참고 극복하도록 힘을 주신다.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할 때에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까지 인내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얻게 된다.

 

 

마지막 경주, 마지막 승리자

 

경주에 있어서 마지막 주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의 선수들이 아무리 잘 뛰었다 할지라도 마지막 선수가 실수하거나 넘어지면 모든 경기가 실패로 끝나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지구 역사를 기나긴 경주로 생각한다면 성경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마지막 주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된 허다한 믿음의 조상들은 온갖 난관과 장애물이 있었음에도 자신의 경주를 완주했다. 그들의 신실함과 인내는 그들에게 승리를 주었다. 이제 그 경주의 바통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앞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소망하던 마지막 역사의 끝이 바통을 잡고 있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이 경주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방해가 되는 것, 경주를 힘들게 하는 불필요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이 경주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승리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유일한 경쟁자이며, 유일한 요구 사항은 자아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신실함과 인내를 행사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로써 모든 “무거운 것”, 곧 악으로 기우는 모든 경향을 극복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경주할 때 자신을 방해하려고 애쓰는 악으로 치우친 성향, 얽매이기 쉬운 어떤 죄가 있다. 우리가 악한 성향을 극복하고 승리할 때, 또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지배하려고 압박한다. 그러나 그 전투의 단계마다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그러나 이 경주는 평생의 경험이기 때문에 인내와 끈기를 요구한다. 연속적인 난관과 좌절에 맞서는 끈기와 경주 끝에 있을 보상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의 생애와 인생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들이 살았던 삶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실수나 범죄의 기록이 전혀 없는 완벽한 삶이었거나, 보통 사람은 살 수 없는 어떤 이질적인 삶의 기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곧, 믿음의 조상이었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한계성과 연약성을 지녔던 사람들이었고, 실수와 좌절과 죄를 지어 쓰러진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성경에 기록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어 인내하고 참았다는 것이며,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비중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그 단련된 정금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는 증인들이 되었다. 결국, 그들을 연단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했던 그들의 단순한 믿음이, 생애의 고비마다 나타났던 고난의 연속들을 견디어 낸 인내가 그들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보다 더 뛰어난, 특별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믿음은 부족했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선물인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에는 그 어느 누구도 특별한 우선권을 가지거나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질은 동일하다.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이 가졌던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을 믿고 따르는 믿음, 우리 안에서 온전함을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여 열매 맺는 믿음이다. 이기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미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그분이 능히 이루실 것을 약속에 의지해 믿는 믿음이다(살전 5:24).
예수님께서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신 것은 믿음의 눈으로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의 결과를 보셨기 때문이다(사 53:11).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우주를 기쁨으로 내다보시면서 십자가를 참았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 얻을 수많은 의인들을 바라보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참으실 수 있었다. 장래의 기쁨이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를 참을 수 있는 힘을 준 것처럼, 인생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들 속에서 영원한 기쁨을 소망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난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아는 최상의 기쁨을 위해 이 땅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길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마지막을 미리 보시는 하나님께서 장래에 있을 신실한 무리들이 영원한 유업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며, 필요한 모든 은혜를 제공해 주시는 이때에 믿음의 증거를 얻고, 영광스러운 믿음의 후손으로서 남은 경주를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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