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신앙기사 1부]

제1부 디아스포라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AD 132년 로마에 대한 항전 등을 통해 결국 유대인들은 살던 도시, 정든 고향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전 세계로 흩어져 서글픈 나그네 인생길에 오르게 되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신앙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향을 떠난 유대인을 가리킨다. ‘디아스포라’의 시작이 로마와의 전쟁 이후부터는 아니다. 디아스포라는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가 아시리아와 바벨론에 각각 멸망당했을 때부터 발생했다. 이때 아시리아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지만 주변 나라로 피난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디아스포라는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귀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디아스포라는 대개 아시아 지역에 국한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범위는 넓어졌다. 사도행전 2장에는 흩어진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나라들이 소개가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유래

 

BC 1445년경 모세가 이집트를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생활을 거쳐 1405년에 가나안에 들어간 후 약 300년 동안 사사시대가 펼쳐졌다. 한창 사사시대였던 기원전 1250년에 그리스에서 필리스티아인 즉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을 받는데 블레셋은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강력한 적으로 구약성서에 자주 등장한다. 블레셋 사람이라는 말에서 오늘날 팔레스타인이 유래되었다. 블레셋 사람은 고대 가나안 지방의 지중해 연안 지역의 5개 도시(가자, 아스글론, 아스돗, 에글론, 갓)를 구성하고 있던 민족이다. 그들은 인어처럼 반은 물고기이고, 반은 사람 모양의 다곤 신을 믿었다. 사사기에 보면 삼손이 들릴라의 유혹으로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잡혔는데, 다곤 신전을 무너뜨려 블레셋 사람들과 같이 죽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다윗이 양치기 소년일 때 필리스티아의 거인 전사 골리앗과의 대결이 나온다. 초기에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압박하기도 했지만,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 이후에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했다.

 

 

예루살렘의 주인

 

유대인과 기독교인과 무슬림에게 성지인,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예루살렘이지만 그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치열한 피의 도시가 되었다. 예루살렘의 주인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리고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피의 전쟁을 살펴보도록 하자.

 

* 통일왕국(BC 1050년~BC 586년)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되었지만 아직은 부족국가 체제였다(BC 1050년). 그러다가 드디어 다윗이 통일왕국을 수립하고(BC 1010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한 후 솔로몬 왕이 첫 성전을 짓는다(BC 970년경). 그러나 이스라엘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나뉘게 되고(BC 931년경), 북방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BC 722년), 남방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다(BC 586년). 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점령하면서 솔로몬 성전과 예루살렘은 파괴되었고, 남방 유다의 히브리인들은 바빌로니아 왕국의 노예가 되었다. 이때 다니엘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가고 예루살렘 수난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 페르시아의 지배(BC 538년~BC 330년)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후, 유대인 포로들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 70년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허락 아래 스룹바벨이 두 번째 성전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 헬레니즘 왕국의 지배 (BC 330년~BC 63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유다는 고대 그리스의 손에 넘어왔다. 이 당시부터 팔레스타인은 유다로 불렸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가 점령한 지역은 여러 조각으로 나눠졌는데, 유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시기에 유다는 문화적, 경제적 연합을 하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되었다. 올림픽을 시작한 나라가 그리스인데 이미 기원전 2세기쯤에는 헬라 문화와 유대 문화가 융화되면서 예루살렘에 메인스타디움 스포츠 경기장이 건설되고 정치적, 종교적으로도 헬라 철학이 상당 부분 히브리 종교와 뒤섞이게 된다. 이때 바리새파, 사두개파 등의 분열이 생겨났다. 이 시기에는 고위 성직자들 간의 다툼이 내전으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마카비의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BC 332년경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건설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그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때 이주한 유대인들이 1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Josephus, Philo). 또 유대인들을 박해하여 마카비 혁명을 촉발시켰던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는 BC 170년경 유대인 2천 세대를 소아시아의 리디아, 브루기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Josephus). 또 1세기 후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은 BC 63년경 수많은 유대인 포로들을 로마로 이주시켰다.

 

* 로마 제국의 지배(BC 63년~AD 638년)와 비잔티움 천도 이전(BC 63년~AD 330년)
헬라 제국의 시대가 가고 철의 나라 로마가 세계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로마의 삼두정치를 이끌었던 카이사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중에서 폼페이우스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다가, 헤롯이 로마에 의해 분봉왕이 되었다.
그 후 제1차 유대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AD 66~73)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통곡의 벽을 제외한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되고 헤롯에 의해 완공된 두 번째 성전 전체를 파괴했다. 그 후 바르 코크바의 반란이 실패한 후(AD 132~135), 모든 유대인은 로마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고, 로마 제국은 지역명을 유다에서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바꾸었다. 유다의 명칭을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블레셋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이다.

 

*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330년~638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오늘날의 터키 이스탄불인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호의를 베풀고, 기독교는 팔레스티나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 아랍 칼리파의 지배 (638년~1516년)
그러나 야르무크 전투(636년)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격파한 정통 칼리파 아랍 세력이 예루살렘의 지배권을 갖게 된다. 이 야르무크 전투는 무함마드가 죽은 뒤 이슬람이 당시 기독교 세력이 지배하던 레반트(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지역)로 급속히 진출할 것을 예고하며 무슬림의 정복 역사상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황금 돔사원은 이때 건축된다(691년).
예루살렘이 아랍권에 넘어가자 유럽의 기독교는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1099년 제1차 십자군을 보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약 100년 가까이 통치했으나, 1187년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재탈환하였다.

 

* 오스만 제국의 지배(1516년~1920년)
오스만 제국이 예루살렘을 통치했는데 이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패전함으로써 1920년 8월 10일 세브르 조약으로 인해 현재의 터키를 제외한 중동 지역 대부분을 영국과 프랑스에 내주게 되었다.

 

* 영국의 지배(1920년~1948년)
영국이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비롯 유럽 전체에서 유대인들을 박해하였고, 이런 반유대주의는 시오니즘(Zionism: 과거의 이스라엘 땅에 유대민족의 독립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는다며 유대인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이 시기부터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민병대를 조직해서 기존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들과 분쟁을 일으켰는데, 단순한 분쟁이 아니라 팔레스타인들을 학살하며 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소요가 커지자 1947년 초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통치를 끝내겠다고 선언했고,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UN에 떠맡겼다.

 

* 이스라엘의 독립(1948년 5월 14일)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사이가 점점 악화되자 1947년 UN은 아랍과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영토를 각각 반씩 분할하도록 제안했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의 10%도 되지 않았는데 반씩 나누라는 이 결정을 아랍인들은 당연히 반대했고, 결국 UN과 미국의 후견으로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후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시리아와 레바논의 공격으로 제1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패전이 짙어 갈 때, 갑자기 UN은 휴전을 선언하고 이스라엘이 군사력을 보강할 수 있는 물자를 공급해 준 후에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군은 전투보다 더 효과적인 테러를 통해 부녀자들을 욕보이고 마을을 학살한 소식을 신문에 실어 선전 효과로 팔레스타인을 공포에 떨게 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때의 전쟁을 하나님께서 진두지휘하신 전쟁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런 전쟁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 일으키고 승리하신 전쟁이라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이 결과 7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추방당하거나 피난하여 요르단 등 인근 아랍 국가로 이주했으며, 남아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인 가자지구에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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