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회개 [신앙기사 2부]

제2부 두 종류의 회개

 

우리가 회개를 공부하는 이유는, 바른 회개를 하기 위해서다. 물론 회개는 성령의 은혜로 이뤄지는 것이지만 회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에 치우친 신앙에 빠져 잘못된 회개를 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나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짓는다”고 하면,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다면 예수님을 왜 믿느냐는 핀잔을 받을 수 있고, “짓지 않는다”고 하면 자기 자신과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될 수 있다. 오늘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짓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고, 죄를 짓는다면 어떤 회개를 해야 하는지, 성경적인 답변을 찾아보도록 하자.

 

 

두 종류의 회개

 

1부에서 회개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썩어져 가는 구습의 행실을 하며 살아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기로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 지정의(知情意)가 성령을 따라 행하며, 예수님의 새로운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는 것은 세상에서 살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경우, 또는 대충 신자로 살다가 참된 신자로 거듭나게 되는 특별한 경험이고, 자주 하게 되는 경험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서 설교를 통하여 회개하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이때의 회개는 무엇인가?
회개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상태에서 썩어져 가는 길로 걸어가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다. 과거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던 그 생활과 자기 존재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어 있는 상태임을 알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헛된 것이었는가를 깨달아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으로 돌이키는 회개가 있고, 둘째는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킨 회개를 경험한 사람이 믿음 생활을 하며 살다가 실족했을 때,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회개가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두 종류의 회개를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자기 머리와 몸까지 씻어 달라고 요구하였을 때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 13:10)고 대답하셨다. 즉 목욕하는 일과, 발 씻는 일이다.

 

 

목욕하는 회개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다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서 살기로 하나님 앞에 결심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살아있는 시체로 걸어 다니면서 썩어짐의 종노릇 하던 나의 모든 생애를 다 배설물로 여겨 내어버리고(빌 3:7,8), 사망이었던 자기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로 씻음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목욕하는 회개이다. 이처럼 목욕을 하면 그는 목욕하기 전과 목욕한 후의 사람으로 구분된다. 그리하여 목욕하기 전의 자기를 “옛사람” 목욕 후의 자기를 “새사람”이라고 말한다.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7~10).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목욕하는 회개를 경험하였다. 가룟 유다와 같이 제자로 가담하였으나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려고도 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대로 예수님을 해석하면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그들이 비록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교인이 하는 모든 의무를 잘 감당한다고 해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목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요 13:10)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참으로 목욕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

 

 

발 씻는 회개

 

목욕했고, 거듭난 자라도 발은 씻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발은 땅에 붙어 다닌다. 그래서 언제나 그 먼지를 씻어야 한다. 예수님 당시 흙길이었고, 샌들을 신었다. 그래서 포장 안 된 먼지 길을 걸으면 온 발이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발 씻는 회개는 그리스도인 즉 새사람이 된 자들이 이 죄의 세상에 살면서 죄의 먼지들이 붙은 것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의 용서하심과 씻어 주심을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 생기는 회개는 발 씻는 회개이다. 발을 계속 씻지 않으면 먼지가 묻고, 때가 끼고, 지독한 발 냄새가 나면서 마침내 목욕한 몸 전체가 더러워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다시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게 된다. 그래서 죄의 오물이 묻을 때마다 발을 씻도록 명하신 것이다. 어떤 교회는 한번 회개했으면 다시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생각하고 즉시 씻음 받고 치료받아야 한다.
발에 때가 묻었을 때 겸손히 예수님께 내밀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더럽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발을 예수님께 내놓을 때, 참 부끄럽고 죄송스럽지만, 내밀면 물과 피로 씻어 주신다.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은혜로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신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 회개는 한번 거듭나고 새사람 됐다고 해서 전혀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세상은 죄의 세상이다.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때를 묻히지 않고 살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어린양의 피에 그 발을 씻어야 한다. 이것이 발을 씻는 회개이다.

 

 

지을 수 없는 죄

 

“아니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도 날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 사실 이것은 성경이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은 중생이다. 거듭나서 새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거듭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또 죄를 지을 수도 없다는 말인가?
반면에 이런 말씀도 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8,9). 같은 요한일서에서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의 뜻은 사람은 이미 죽음의 존재, 사망이 되었기 때문에 썩을 수밖에 없는데, 그 썩는 현상이 도덕적으로 짓는 죄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에 더 이상 썩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썩지 않는 존재, 썩을 수 없는 생명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썩는 현상의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썩을 수 없는 생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마다 발을 씻는 회개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믿고 나서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원치 않는 죄를 짓고, 그 죄의 고통 때문에 때때로 낙심할 지경까지 이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범하는 죄는 무엇이며, 짓지 않는다는 죄는 무엇일까?
죄의 세상에 속해 사는 죄인은 불편이 없다. 그들의 본질은 죄와 동일하기 때문에 죄를 사랑하고 즐기며 산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죄를 짓지 않는다. 아니 이러한 죄를 지을 수가 없다. 연약하여 실수가 있을지라도, 이처럼 의도적이며 고의적이고 세상을 사랑하여 짓는 죄를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죄의 세상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하늘을 바라보지만 발은 땅을 딛고 있으며,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에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공격이 있고, 죄를 사랑하게 만드는 유혹이 있다. 세상은 회개하여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미워한다. 세상은 순결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살아가기에 절대 만만치 않다. 이 공격에 그리스도인은 끝까지 견디어야 하며 “죄와 더불어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히 12:4) 해야 한다. 그러나 피 흘리는 단계에 이르려고 할 때 더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항복하게 되고 죄의 상처를 입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죄의 세상에서 우리가 악의 세력을 능히 대적할 수 있도록 전신 갑주를 주셨다.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3~17). 이 하나님의 완전 무장은 성도들이 죄의 세상에서 안전하게 보호되도록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싸워야 한다. 그러나 전방에서 우리를 위하여 싸워 주시는 이는 예수님이시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전신 갑주로 방어하라!

 

사탄의 공격과 죄의 침략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 가족을 통해서도 공격하고, 교회, 직장, 운전 중에도, 모든 매체, 모든 기회를 통해 사탄은 불화살을 쉴 새 없이 쏘아 댄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로 사탄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미처 우리가 방패로 막지 못한 곳에 화살이 꽂히면 아픔을 느낀다. 고통스러운 절규가 있다. 이런 절규와 고통이 없다면, 그 사람은 목욕하는 회개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다. 참된 회개 자체는 정서적으로 죄를 가증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싫어하게 되는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로 목욕한 사람, 참된 회개를 한 사람은 화살에 맞으면 즉시 고통과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염치없지만, 주님께 가지고 가서 울면서 “주님 저를 치료해 주세요! 용서해주세요!”라고 간구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다”는 것과 “발 씻는 회개”라는 말의 뜻이다.
그런데 완전주의자들은 우리는 전신 갑주를 입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떠한 화살도 맞지 않고 언제나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평안 속에서 날마다 승리만 하며 산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화살을 맞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계속 승리해야 하는 것 맞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여러 전투에서 고지를 빼앗기는 경험도 있을 수 있고, 아군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최선의 방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적군이 침입할 수 없게 보초를 잘 서고, 싸움에서 사용할 칼이 녹슬지 않게 단련시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와 교회와 이웃을 향한 봉사와 사랑의 행위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오관(五官)의 통로를 잘 지켜야 한다. 이 오관을 통해 죄 된 본성이 더욱 강해지고 커지게 만드는 것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파수꾼 되어 주셔서 지켜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셨을 때 역청으로 방주 안팎에 칠하도록 명하셨다(창 6:14). 방주에 결코 물이 새어들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홍수의 물은 관영한 죄의 물결을 상징한다. 죄 때문에 홍수가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죄는 홍수와 같고 회개한 참된 그리스도인은 방주와 같다. 그들은 죄의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빠지지는 않고 사는 것이다.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세상에 있을 동안 그리스도인을 죄에 침몰시키려고 한다. 그리스도인이 이 공격에 상처를 입었으면 그때는 즉시 발 씻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상처는 곪고 부패케 하여 결국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침투하는 모든 경로, 모든 통로, 모든 틈을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막아 지켜야 한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7). 그래도 침략당하면 그 고통을 속히 예수님께 나아가 치료해야 한다. 주님은 길르앗의 의사이시니 언제나 그 상처를 치료하시며 힘주신다(렘 8:22).
이것은 반복적으로 죄짓고 용서받고, 죄짓고 용서받고 그렇게 죄에 끌려다니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세상에 속해서, 죄를 사랑해서 짓는 그런 죄는 지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이 발을 계속 씻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죄가 그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나 우리가 잠깐 침략당하여 상처를 입었어도 즉시 예수님께로 달려가 치료받아야 한다. 치료하는 일을 잊지 않는 한 여전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로운 피조물이요, 주님이 보시기에 의인인 것이다. 의인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자가 아니라,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잠 24:16)는 자이다.
2부에서는 목욕하는 회개와 발 씻는 회개, 두 종류의 회개에 대해서 성경의 진리로 은혜를 나눴다. 여러분은 목욕하는 회개를 했는가? 과거에 살아오던 죄 된 삶을 청산하고, 썩어져 가는 구습을 내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듭남의 경험을 갖게 되었는가? 그래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주님과 마음을 합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가?
그리고 이렇게 믿음 생활하며 살아가다가 그만 연약하고, 부족하여 죄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는가? 또 끊임없이 쏘아 대는 사탄의 불화살에 그만 어느 한 곳을 맞고 상처를 입었는가? 그렇다면 즉시 주님께 나아가 슬퍼하며 발을 씻고 치료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와 함께 싸우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사탄의 능력과 권세를 능히 이기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그 주님을 방패 삼아 전진할 때, 우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 생활이 전신 갑주로 말미암아 날마다 승리의 생애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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