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9부 ㅣ 손계문 목사

인류 역사의 기록을 보면 모든 민족들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이 마치 사람의 의지나 계획, 능력, 야심, 용맹스러움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휘장이 걷혀 역사의 무대를 주관하는 배후를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참된 백성들을 통해 인내성 있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실현시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두라 평지에 세운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이 화려하고 장엄했고 그 경배의식이 지극히 인상적이어서 사람들을 위압하고 어리둥절하게 했듯이 카톨릭의 예배도 극히 인상적입니다. 그 화려한 장식과 엄숙한 의식은 사람들의 감각을 매혹하고 이성과 양심의 소리를 침묵시킵니다. 그 눈은 황홀해집니다. 어마어마한 교회당, 당당한 행렬, 황금 빛의 제단, 보석으로 꾸며진 성체 용기들, 뛰어난 그림들, 미묘한 조각들은 사람의 감정과 감성을 흔들고, 묘한 영향을 끼칩니다. 또한 거기서 울려 퍼지는 음악 역시 훌륭합니다. 깊은 음조를 내는 오르간의 풍부한 음조, 그 큰 교회당의 높은 천정과 둥근 기둥이 들어선 복도를 통하여 울려 나오는 합창이 공명될 때에 사람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숭배의 인상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 세 젊은이가 금 신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양심이나 종교문제로 취급되지 않고 왕명을 거역함으로써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고 바벨론의 국리와 일반 백성의 안녕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행동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시록 13장에 기록된 짐승의 우상에게 굴복하기를 거절한 자들, 즉 성경상 안식일을 준수하는 자들은 사회의 도덕적 구속력을 파괴하는 자로, 법률과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자로, 무정부 상태와 부패를 초래하는 자로,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자로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현대 바벨론은 고대의 소돔과 같이 도덕적으로 부패한 ‘음녀’ 같은 세상일뿐 아니라 사납고 잔인한 ‘짐승’과 같이 전체주의적 공포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바벨론화 되었고, 영적 흑암에 갇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참된 자녀들은 바벨론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교회 상태를 보며 탄식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들의 신앙 상태에 눌러 앉지 않고 더욱 분명한 빛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런 진실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벨론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이 바벨론인지 한번도 깨우침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양심을 잠재우는 설교를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한번도 회개하려고 결단해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들을 아직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오늘은 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메시지가 다니엘서에서 어떻게 강조되고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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