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들 [신앙기사 4부]

제4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일꾼의 비유는 베드로의 질문에 답변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 19:27). 이 말을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을 따르려고 우리는 가족, 소유, 형제자매, 직장을 다 버렸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 겁니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외형적인 모든 것은 버린 것 같지만 여전히 높고자 다투었고, 자신들의 수고에 합당한 보상을 바라며 따르고 있었다. 예수님이 좋아서 따르긴 했으나 아직 예수님께 완전히 바쳐지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도 그들의 옛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고, 자신을 높이는 정신과 서로를 비교하는 정신으로 다른 사람이 실수하면 우월감을 갖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자아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완전히 죽는 경험이 아직 없었다. 자신의 죄 됨 때문에 통곡하며 우는 경험이 없었다.
베드로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고 말씀하신 후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천국은 마치” 하시며 포도원 일꾼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포도원 비유를 마치실 때 다시 19장 30절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을 반복한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따라서 이 비유는 1차적으로 복음의 원칙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취급하시는 방법과 그들이 주님을 위해 일할 때 어떤 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할지 알려주기 위해 이 말씀을 하셨다.

 

 

1) 하나님께서 인류를 취급하시는 방법을 나타낸다

 

이 세상은 우리가 일한 분량에 따라 보수를 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로에 따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보시는 것은 우리가 한 일의 양이나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그 일을 한 정신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한 만큼 하나님도 내게 보상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삯꾼의 정신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진실한 일꾼들은 아무리 힘들지라도 그것을 고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천국의 황금문은 자기를 높이는 자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그것은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아이가 떨리는 손으로 건드릴 때 그 문은 활짝 열린다. 일꾼은 이러한 정신으로 일해야 한다.

 

 

2) 천국의 원칙

 

예수님은 “천국은 이런 곳이다”라는 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세 번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신다.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천국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거하는 곳이라고 몸소 보여주셨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침례 요한의 정신이 있을 때, 시기심과 이기심이 죽고, 으뜸이 되려는 분쟁심이 사라질 때, 감사의 정신이 마음에 가득 찰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인정받게 된다. 이러한 정신으로 일하는 일꾼들이 하늘을 소유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설명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내어 주셨다. 우리에게 충분한 사랑과 보상을 주셨다. 이것이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세상 물질과 세상 편리를 추구하며 다른 보상까지 바란다. 먼저 믿었다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버리지 못하면 나중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1시 일꾼들은 나중에 믿었지만 가장 먼저 될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충성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하고 믿는 태도는 그들을 먼저 될 자로 만들 것이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 자들, 주님을 위해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들 이것이 진정한 헌신이다.

 

 

지금은 간구할 때

 

“11시 일꾼”은 그들이 일하는 “시간”을 말한다.
“넷째 천사”는 그들의 “신분”을 말한다.
“예수의 증인”은 그들의 “사명”을 말한다.

11시 일꾼, 예수의 증인들은 완벽하고 강인한 사람이 아니라 인류 역사 6000년이 지난 시점에 태어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가장 약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자들이다. 그들은 가장 강한 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부족하고 약하다는 것을 인식함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가장 강하게 된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시는 한량없는 은혜 때문에,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이긴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들은 11시 일꾼이 되어 악과 비 진리에 맞서 싸우기에 합당한 용사가 된 자들이다. 어떤 상처와 아픔이 있었던 이들이라 할지라도 ‘승리한 자’들로 만들 수 있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하자.
우리가 자랑할 것이 많거나 일을 잘 해서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므로 연약하고 부족했던 자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 온 우주에 증거하기 위해 우리를 택하셨다. 약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온 세상에 보여 주시기 위해 우리를 택하셨다. 그러므로 자신의 약함을 보면서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시선이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는 우리 모두가 되자.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일어나서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개국 이래로 없던 환란을 위해 11시 일꾼이 지금 준비되고 있다. 그들에게 환난을 이길 담대함과 믿음, 지혜와 권능을 부어 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그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중에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슥 12:8).
늦은 비의 시기인 지금, 통회하는 심령으로 은혜의 소나기가 우리 위에 내리기를 열렬하게 기도하자. 우리가 참석하는 모든 모임과 예배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온기와 수분을 나누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자. 오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쳐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실 그릇으로 만들고 주님의 사역에 합당한 인물이 되도록 하자.
아직 은혜받는 이 때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 자신을 비우고 시기심과 질투심을 버리며, 악한 생각과 다툼을 그치고 하나님께 욕이 될 모든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의 그릇을 정결하게 하여 하늘의 이슬을 받을 준비와 늦은 비의 소나기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하자. 늦은 비는 분명히 내릴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더러움에서 정결함을 입은 영혼들에게 가득히 부어질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 성령의 침례를 받기 위해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마치면서

 

우리의 신분을 잊지 말자. 우리는 11시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는가? 절망과 한숨에 빠져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시간이었다. 하나님을 떠나 죄가운데 방황하며 더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의 시간이었다. 그런 인생이 종일 이어지고 있는 그때 주인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잘못되기로 작정이나 한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련이 올지라도 아직 하나님의 시간은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인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지 않았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쉽지 않다. 시련과 고난의 땅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삶의 많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통치하고 있었음이 보인다. 예수님을 처음 영접했을 때도 은혜가 충만했지만, 이후 나그네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신앙 여정 곳곳마다, 특별히 고난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크게 부어졌음을 보게 된다. 절망의 시간 11시에 우리 인생에 찾아오시는 주인이 계신다.
11시 일꾼은 해가 저물어가는 하루의 끝에 부름을 받았다. 이것을 하루의 단위가 아닌 인류 역사의 시간표로 보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 11시의 시대다. 유대 시간으로 12시, 오후 6시가 되면 일을 마치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1시간 후면 곧 끝날 오후 5시의 시대다.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류 역사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마쳐지게 된다. 앞으로 1시간 남았다. 1시간을 남겨두고 부름 받은 일꾼들은 은혜밖에는 내세울 게 없는 사람들이다.
세상과 다른 기준으로 은혜를 베푸신 포도원 주인의 부르심! 소망 없이 살다가 절망 속에 무너질 뻔한 인생이었는데, 장터에서 서성이던 우리를 불러 주신 은혜가 정말 감사해서 진심을 다하고, 일할 시간이 짧기 때문에 충성을 다하고, 자신들의 부족을 알기 때문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일꾼이 11시 일꾼이다. 우리가 바로 그 11시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드리는 예수의 증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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