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 신앙에서 탈출하라 [신앙기사 1부]

제1부 기복 신앙에서 탈출하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1925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허시모 사건(許時模事件)’이 발생했다. 1925년에 조선에 입국한 헤이스머(Haysmer, 한국명 허시모)가 의료 선교사로 순안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자기 집 과수원에서 사과 1개를 서리하던 어린이를 붙잡으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허시모는 소년의 부모로부터 사과 값을 받아내려고 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상 여의치 않자 부모의 동의하에 양 볼에 염산으로 ‘됴덕(도적)’이라 쓰고 놓아줬다. 부모는 흉터가 금방 없어질 줄 알고 동의했으나 흉터가 사라지지 않고 아이가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촉발시키게 되었다.
일본인 검사가 1년이 지난 뒤 허시모를 입건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허시모는 병원장에서 해임됐고, 재판에 회부되어 집행유예 3개월 형을 선고받고 추방되었다. 이 사건으로 한국 기독교는 뜻하지 않은 시련과 수난을 겪게 된다.
이 사건은 당시 기독교에 비판적이었던 민족주의, 공산주의, 일제의 침략주의 등 각 진영에서 조선교회와 미국을 공격하도록 빌미를 제공했다.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행위로 규탄해 종교 교육 폐지와 반기독교 운동을 전개했고, 일본은 반미운동을 펼쳤다.
허시모 사건을 보면서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오히려 그때는 한 개인의 사건이었지만 오늘날은 전 교계적인 문제가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다수의 국민들이 기독교에 대해 혐오감을 갖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니라 기독교인 때문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물론 신실한 목회자들이 있다. 하지만 거대한 세속의 물줄기를 돌이키기에 너무 힘이 약하다. 교회가 말기 암처럼 죄악의 정신이 온몸에 전이되어서 어떤 수술과 어떤 항암제도 효과가 없고, 스스로 회복하기에는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성령께서 새롭게 해 주시지 않으면, 머리를 가르고, 배를 가르고 완전히 도려내서 새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정말 어찌할 수 없는 기막힌 상태에 있다.

 

 

기독교에 침투한 기복 신앙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무당과 교회는 잘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복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기독교인의 사고를 드러내 주고 있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가짜 신들은 자신을 믿는 믿음의 대가로 복을 약속한다. 본인을 잘 믿고 섬기면 복을 준다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구별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 차이점이 없어져 버린 것 같다. 기복 신앙은 성경의 약속이 아니라 사탄의 조롱거리이다. 욥기에서 사탄은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한다.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였다. 욥이 아무런 까닭도 없는데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걸까요? [10] 하나님께서 그와 그 집안사람들을 돌보아주시고 그 재산도 잘 지켜 주시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셔서 하는 일마다 잘되고 온 땅에 그 사람 가축 떼를 가득하게 해주셨으니까 그런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현대어, 욥 1:9,10).
한국의 기독교인은 대단한 종교적 열성을 가지고 있다. 세계 50개의 대형 교회 중에 27개가 한국에 있고, 그것도 상위 15위까지의 랭킹을 모두 한국이 차지한다. 그런데 민족성 때문인지 한국 기독교는 기복 신앙으로도 세계를 평정했다. 신을 섬기지 않으면 집안에 문제가 생기고 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봉사하고, 재물을 드리며, 현세의 복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미신적인 신앙이다.
교회에 가지 않았는데 그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람들은 금방 “아이고 교회 안 가서 하나님이 벌준 것 아니야?”라고 말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기복 신앙이 깊이 자리 잡았다. 기도원에 가보면 특별한 은사를 받으신 용한 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거나, 몸이 아픈 신자들이 “어느 기도원에 용한 분이 있대!” 하면 기도 받으러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다닌다. 몸이 아프고 집안이 어려운 이유가 귀신이 있어서 그렇다며 귀신 쫓아내는 기도를 한다. 목사님들도 어느 용한 기도원에 가서, “제가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데, 언제 문을 열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어느 때쯤이면 괜찮겠습니까? 날짜는 언제로 할까요? 하나님께 좀 물어봐 주세요” 그렇게 문의하는 목사님들이 많다고 한다. 이것이 기독교인가?

 

 

하나님을 믿는 동기

 

우리는 왜 교회에 다니고 왜 하나님을 믿는가? 심판과 형벌을 피하고, 그분께로부터 무엇을 얻어 내야 하기 때문에 잘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남편의 사업과 자녀의 출세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지, 아니면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이 너무나 크고 감사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생애를 살고자 하는 동기로 믿는지 이번 기회에 돌아보자.
사탄은 기복 신앙을 교회 안에 침투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거래를 하게 만들고 있다. 40일 특별 새벽 기도회라는 명분 아래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건강을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아들을 낳고 싶어서, 대학에 입학해야 되니까, 좋은 직장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것과 정한수 떠 놓고 하는 기도는 대상만 다를 뿐 요구하는 바가 같다.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고, 철야 기도, 새벽 기도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 잘 보여서 좋은 것을 얻어내려는 욕망으로 말미암아 교인들 속에 가득 차 있다.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노력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부유하게 되고, 믿음이 적은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해서 어렵게 산다는 식의 논리가 현대 기독교회에 편만하게 되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헌금 많이 하면, 당신의 사업과 가정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런 설교들이 대담하게 교회에서 울려 퍼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천 번제 헌금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혜택을 받기 위해서 빚을 내어 헌금을 하고, 열심히 활동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내려 애쓰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주의자들이 자살 폭탄을 독려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어떻게 유혹하는가? 코란에 자살테러를 하면 천국에서 처녀 72명의 대접을 받는다며 기만하고 있다. 실제로 천국행 여권까지 등장했다. 겉에는 “Passport to Paradise”라고 쓰여있고, 안에는 “이 여권 소지자는 천국만 갈 수 있고 지옥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 기독교에 기복 신앙을 침투시키므로 사탄은 교회를 물질로 병들게 했다. 돈 잘 벌면 하나님의 축복이요, 가난하면 뭔가 하나님께 죄 지은 것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아무리 없는 형편이라도 막대한 헌금을 교회에 투자하면 큰 복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정하신 방법으로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분이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망하고 고난받고 쓰라린 경험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얻는 우리의 행복, 이 땅에서 잘 되는 인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을 허락하신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우리가 따라감으로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결국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이요, 관심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된다는 것은, 어쩌면 사업이 완전히 망한 것이 하나님 보시기엔 잘 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만 심령이 가난해지고 순결한 동기로 하나님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망해서 영생을 얻게 된다면 얼마나 잘 된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 너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은 진리이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시련 속에 처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거나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아니다.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주신 것이 아니다. 또 반대로 어떤 사람의 부동산이 오르고, 사업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아니다. 감옥 속에서 외롭게 살다가 목이 잘린 침례 요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베드로, 수많은 순교자들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 땅의 죽음에서 구원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가장 가깝게 계셨다. 잘 믿는 자는 복을 많이 받고, 믿지 않는 자들은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이와 정반대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에게,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복 신앙이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기복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성황당 산신령에게 정성을 들이듯이,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조상신에게 복을 비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신앙에서 빠져나오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최선의 방법으로 공급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것에 대하여, 비록 그것이 고통이나 시련의 모습으로 그대를 찾아올지라도 감사하는 법을 배우자.
하나님께서는 동기가 순결한 그리스도인들 만을 하늘에 받아들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가를 바라보고 당신을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결코 하늘을 주지 않으신다. 바벨론의 중심에는 기복 신앙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져가는 바벨론 신앙에서 나오라고 주님의 백성을 부르신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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