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은실
우리 집은 아이들 용돈을 중학생 때부터 조금씩 주고 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는 셋째 아이는 용돈을 받을 생각에 마음이 들떠서인지 몇 번이고 물어봅니다.
“엄마, 이제 용돈 주시는 거죠? 얼마 주실 거예요?”
“3천 원!”
“1주일에 3천 원이죠?”
“응!”
“야호, 신난다!”
옆에 있던 막내 아이가 슬며시 물어봅니다.
“음, 그럼 나는요, 엄마? 난 5학년 올라가니까 용돈이 천 원이겠네요?”
“아니, 무슨 소리야? 언니는 중학생이 되니까 주는 거지만 너는 한 학년 올라가는 것뿐이잖아?”
옆에 있던 아이들도 한마디씩 합니다.
“우리도 초등학교 때는 용돈 안 받았어. 그러니까 너도 안돼!”라고요.
그래도 막내 아이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계속 물어봅니다.
“나도 용돈 주세요, 네? 주실 거죠?”
그래서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뭘 잘했다고 용돈을 주니?”
“아이 참! 엄마, 나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잘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용돈 주세요!”
이 말을 하는 딸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던 큰아이가 막내의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합니다.
“태어난 걸로 잘 한 거면 나는 1억 원은 받아야 해!”
아이들 때문에 또 한바탕 웃었습니다.
“너희들을 어떻게 값으로 말할 수 있겠니? 그렇지, 태어난 것만으로도 정말 잘한 일이지! 정말 고마운 일이지!”
그 중요한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잘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감사하지 않으며 지낸 것 같습니다.
“너는 이것이 문제야. 그러니까 이렇게 좀 고치면 좋겠다.”
“너는 저것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고…”
여러 가지 지적사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도 스스로 계속하여 지적합니다.
‘나는 이것을 고치고 저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하는 걸까? 문제야, 문제!’
이런 채찍질을 수없이 했는데, 오늘 막내 아이의 말을 듣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OO야, 너도 내게 그렇단다. 너 자체가 내겐 기쁨이란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왠지 안심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참 많이 애쓰면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아등바등 했던 것 같습니다.
진리 안에서 참자유를 얻지 못한 채 스스로 강박을 하며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참 잘한 일이야”라고요. 휴, 안심이 됩니다.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62호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호소] 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