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충만하게 부어주소서!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3)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감”(感)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바로 “소명감”(召命感)과 “사명감”(使命感), “부르심”과 “보내심”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록 14장에서 세 천사를 부르신 다음에 계시록 18장에서 네 번째 천사를 부르신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온 땅을 환하게 하는 넷째 천사들이 있어야 세상 역사가 끝난다. 진리의 빛과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성품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이 천사들이 없으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수가 없다. 우리가 이 역할을 거절 해서야 되겠는가?
늦은 비 성령의 권능을 받는 넷째 천사
이 넷째 천사는 바벨론이 무너졌으니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는 경고의 나팔을 부는 사람들이다. 엄숙한 경고로 사람들을 깨우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이들은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것은 늦은 비 성령의 권능이다(계 18:1 참조). 이 늦은 비의 충만함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늦은 비의 빗방울,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성육신의 진리로 순종의 생애를 살아온 사람들이 받게 되는 소나기이다.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늦은 비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오순절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의 설교에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며 반응했듯이, 늦은 비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외칠 때, 사람들은 동요할 것이다. 이런 말씀을 도무지 들어 보지 못했던 무수한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복음을 듣고, 바벨론에서 나오는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우리를 계시록 18장의 천사로 부르셨고, 의의 복음 늦은 비의 빗방울을 전하라는 사명을 맡기셨다.
늦은 비의 빗방울의 두 가지 사명
첫째 사명: 내가 먼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여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내가 먼저 경험해야 한다. 장황한 이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와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되는 능력까지 받은 이들이 되어야 한다. 이 복음은 논리와 신학이 아니라 경험이다. 이 복음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사람들이 늦은 비의 소나기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 바로 이 복음으로 마지막 복음사역이 완성된다.
오늘날 “늦은 비의 빗방울”이 영혼들의 심령을 쪼개고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하여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역사를 교회는 인식하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한다. 오히려 “극단, 광신, 이단”으로 치부하며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소리치며 늦은 비의 빗방울을 거절하고 있다. 이 빗방울을 맞은 자들이 늦은 비의 소나기를 맞게 된다.
둘째 사명: 이 복음으로 예수의 증인을 준비시켜야 한다.
늦은 비의 빗방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게 만드는 복음이다. 우리는 1차적으로 늦은 비의 복음을 경험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불변성을 영원토록 증거하는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늦은 비의 복음을 전해서 “예수의 증인”을 준비시켜야 하는 특별하고도 엄청난 사명이 부여돼 있다.
늦은 비를 위해 기도하자!
우리는 늦은 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 시대의 기독교회에 참된 경건의 부흥은 우리의 모든 필요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가장 긴급한 것이다. 교회가 이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회에 신앙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첫째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한다. 나의 성공이나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회의 참된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열렬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어 주실 수가 없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세상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그 이상으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려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조건적이다. 그 조건을 성취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 조건이란 죄에 대한 자복, 겸비, 회개,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성화, 그리고 열렬한 기도이다. 신앙 부흥은 이러한 일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우리는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을 위하여 기도했던 것처럼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 그 당시에 그들에게 성령이 필요했다면 인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욱 필요하지 않겠는가! 늦은 비 성령의 권능이 없으면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초대 교회의 제자들이 성령의 부어주심을 위해 준비한 것은 심령 속에서 모든 더러운 것이 비워지고, 서로를 향한 용서와 죄에서 떠나는 삶이었다. 동일한 일이 더욱 크게 오늘날 이루어져야 한다.
어떻게 복음 사역을 마칠 수 있을까?
세상은 서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북한과 남한, 이슬람과 기독교, 중국과 미국,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카톨릭과 기독교, 한국과 일본,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아랍인과 유대인, 유대인과 메시아닉쥬, 정통과 이단. 분열과 상처와 다툼과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이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마지막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의 주의를 이 마지막 호소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알리야(Aliyah: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까지는 팔레스타인 바깥에 살고 있었지만 건국된 이후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로 돌아와 지금은 유대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이스라엘을 건국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통치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신정국가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있는가? 지금 이스라엘이 하는 테러와 전쟁들은 성전인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과 공산주의, 미전도 지역들에 어떻게 인류 최후의 호소를 전할 수 있을까? 짐승의 표는 민족과 혈통에 관계없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질 텐데 어떻게 그들에게 이 마지막 경고, 참 복음을 듣게 할 수 있을까? 우리 힘으로는 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약속하신 늦은 비 성령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다. 세 천사의 메시지와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인류 역사 이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성령의 부어 주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청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안일한 마음으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생명수의 샘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친히 그 생수를 받아 마셔야 한다. 늦은 비의 시기인 지금 통회하는 심령으로 은혜의 빗방울에 적셔져서 은혜의 소나기가 우리 위에 내리기를 간절하고 열렬하게 기도드리자! 우리가 참석하는 모든 예배와 모임에 우리의 영혼이 생명수에 적셔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죄로부터 정결케 되고 우리의 모임에서 성령을 구할 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무리 가운데 성령께서 임했던 것처럼,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다.
받으시는 기도
우리의 기도가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기도인지 이번 기회에 살펴보자. 마음의 소원과 간절함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 겸손과 정직한 마음으로 약속을 붙잡는 기도,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 내 뜻을 구하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기도를 어찌 응답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나 중심의 기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열광적인 기도를 하고 있으나 실제 생활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은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기도해야 한다. 뜨겁고 열정적인 방언 기도를 한다고 해도 회개와 거룩의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그 기도는 멈춰야 한다.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데 여전히 공허하고 평안이 없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요란한 모습으로 하는 기도를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합 850명과 엘리야의 대결이 있을 때(왕상 18:19), 바알의 선지자들이 현란한 음악에 맞춰 소리를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부르짖었다. 방언 기도처럼 주문을 하듯 그들의 신을 불렀고, 자해하며 열심히 기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그렇게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이들에게 엘리야는 “정오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이므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거나 쫓아가고 있거나 여행 중이거나 혹은 자고 있으니 반드시 깨워야 하리라”(왕상 18:27, 킹흠정역)라는 말로 그들의 기도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폭로하고 있다.
그 후 아주 대조적인 방법으로 엘리야는 기도했다. 분명하고 똑똑한 어조로 진지하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간구했다. “[36]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왕상 18:36,37).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고 나서 마치 계시록 17장에서 음녀를 따르던 이들이 속았음을 깨닫고 복수하는 장면과 동일한 일이 발생한다(계 17:16 참조).
정결한 그릇
우리는 늦은 비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영원한 복음은 지금 전파되고 있다. 깨어있는 자들, 진리를 찾는 자들,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의 심령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진리를 유튜브에서 듣고 이런 메일이 왔다.
하늘의 메시지를 인간의 언어로 전하는 손계문 목사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알게 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를 굴복시키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했던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바로 히틀러였음을… 아니 그보다 더 악한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어쩌면 한 말씀 한 말씀이 이리도 보화 같은지 한절 한절이 정말 가슴 저미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신앙하면서 들어보지 못한 말씀입니다!
제 영혼이 깨어나고 소생하는 말씀이요, 하나님을 다시 알게 되는 감격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비록 세상에서는 어려워 보일지 모르나 참 생명의 길이지요!
현재 기독교는 하나님을 너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싸구려 사랑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정말 세상이 큰일입니다. 기독교는 더 큰일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움을 더욱 느낍니다. 시대를 깨닫게 하는 말씀 감사합니다!
굉장히 담대한 말씀입니다. 기독교회가 깨어나길 기도합니다!
주님을 더욱 붙잡습니다. 제 영혼을 소생시켜 주옵소서!
이런 말씀을 듣기 위해 정말 많이 방황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정결케 하고 승리케 할 수 있다는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기독교는 값비싼 종교인데 기독교 스스로가 값싼 종교로 만든 슬픈 현실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승리의 찬송을 허락하소서!
주여!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를 재창조해 주옵소서!
마지막 백성을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길 소원합니다!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자 되길 간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다시 살게 하고, 눈을 뜨게 한 놀라운 복음입니다!
하시는 모든 사역에 주님의 인도가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명의 양식을 찾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이런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바로 나의 경험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언젠가는 내게도 놀라운 신앙부흥이 있겠지’라고 막연히 기다리며 착각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의 그릇들을 깨끗이 해서 하늘의 이슬과 소나기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그릇에 비를 내려 주시는데, 나무 그릇도 좋고, 금 그릇도 좋고, 흙으로 만든 그릇도 좋고 다 좋다. 그런데 더러운 그릇에는 내려 주실 수가 없다. 탐욕과 이기심이 가득 찬 그릇에는 내려 주실 수가 없다. 어떤 그릇이든지 상관없지만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 빈 그릇에만 늦은 비를 부어 주실 수 있다. 늦은 비의 강림은 분명히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은 온갖 더러움에서 정결케 된 영혼을 충만케 하실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 충만히 부어주소서!
오늘날 교회는 환난의 때가 이르기 전에 휴거 될 것이라는 잘못된 가르침을 믿고 있으며, 거짓 안일과 거짓 평안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믿음은 환난의 때 피난처를 찾지 못할 것이다. 환난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또 심령을 그리스도께 굴복시키지도 않으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도 않으면서,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니까, 우리 교회는 진리 교회니까, 마지막 남은 교회니까 늦은 비를 받고 환난을 통과할 수 있을 거야”라고 착각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지금은 늦은 비의 이슬과 소나기를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행동을 해야 되는 시기이다.
환난의 때, 그때에 회개하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는 늦었다. 위기의 때에는 준비된 믿음이 드러나는 시기이지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다. 지금 주님과 동행하기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하나님께 자신을 바쳐서 귀히 쓰실 그릇으로 만들고,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기심과 질투를 버리고, 악한 생각과 다툼을 그치며, 은근한 비방과 모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의의 복음으로 우리의 그릇을 순결하게 해서 하늘의 이슬에 적셔지고 늦은 비의 소나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죄와 교만과 이기심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모든 옳지 못한 말과 행동을 극복하여 승리를 얻지 못하는데 어찌 늦은 비의 능력이 충만하게 임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로 더욱더 가까이 나아가 환난의 때에, 선과 악의 대 전쟁에서 용사로 설 수 있도록 필요한 준비를 갖추는 일에 지금 열심을 내야 할 것이다.
늦은 비의 소나기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세속과 죄로부터 자신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준비한 사람들에게 이르러 온다. 이 일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늦은 비의 소나기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는 늦은 비의 빗방울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의의 복음, 이 늦은 비의 빗방울이 우리를 주님의 날에 서도록 해 줄 것이다. 늦은 비는 분명히 내릴 것이며, 모든 더러움에서 정결함을 입은 영혼들에게 가득히 채워질 것이다. 성령의 침례를 받기 위하여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엘리야의 호소는 오늘날도 울려 퍼진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교회의 현실을 보고 탄식하는 목회자, 교역자,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힘을 합쳐야 될 때이다. 혼자 꿈꾸면 영원히 꿈이지만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 회개운동, 거룩운동, 재림운동을 함께 하자! 그러면 그것은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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