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순종의 비결 [신앙기사 3부]

제3부 참된 순종의 비결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교제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완전한 순종을 성취하려는 모든 노력은 헛된 노력이 되고 만다. 우리를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은 의식적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이다. 불완전한 순종은 언제나 불완전한 삶의 결과로 나타난다. 간혹 논증과 동기 부여를 통해 그 불완전한 삶을 격려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자연스러운 순종이 이루어지게 하는 그러한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감하게 해 줄 뿐이다. 하나님과 마음 내키는 대로 교제를 나누거나, 교제가 깨져 버린 불완전한 삶은 치료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완전한 순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참된 순종의 비결은 하나님과의 밀접하고 지속적인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순종함을 배웠다”고 한다. 예수님이 왜 순종이 필요했을까? 성경은 그분은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라고 한다. 고난은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고난은 우리 의지의 굴복을 요구한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순종하며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기의 뜻을 아버지께 의지하기를 배우기 위해 고난이 필요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하게 되시기 위하여 순종을 배우실 필요가 있었다. 예수님은 순종을 배우셨다. 그분은 죽기까지 순종하여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그분은 순종을 통하여 구원의 근원이 되셔서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을 구원하게 되셨다. 예수님이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서 순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구원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순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구원의 본질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다. 순종자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을 순종하는 우리를 구원하신다. 이 땅에서의 그분의 고난에 있어서나, 하늘에서의 그분의 영광에 있어서나, 그분이나 우리에게 있어서나, 순종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 향한 방향이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시는 동안 순종의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으로 계셨다. 하늘에서의 그분은 이 세상에 있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순종을 가르치고 계신다. 불순종이 지배하고 그 결과 사망을 가져오는 이 세상에서 순종을 회복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는 순종을 가르치시며 순종이 우리 속에서 일하게 하신다. 그분이 가르치시는 것과 그 방법을 살펴보라.
우리는 순종을 배우는 그리스도의 학교의 학생이 되기를 얼마나 원해 왔는가? 일반적으로 학교라 하면 거기에는 교사와 교과서와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순종의 학교에서는 어떤가?

 

 

1. 순종을 배우신 진정한 교사

 

그리스도는 순종함을 배우셨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다. 주된 가르침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순종의 비밀을 드러내 보이심으로 가르치신다. 참된 순종의 능력은 하나님과의 분명한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주 예수님도 그러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가르침을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 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요 12:49,50)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세상으로 가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모든 명령을 영원 전부터 모두 받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날마다 가르치며 일하시는 순간마다 사람으로서 아버지와 계속적인 교통을 가지며 사셨고,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의 지시를 받으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보자.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 아버지께서 …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요5:19,20).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요5:30).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 8: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예수님은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과의 교통과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며 보여주시는 것을 듣고 보는 일에 의존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주님은 늘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우리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그분을 통한 아버지와의 관계의 원형이요 약속으로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지속적인 교제와 지속적인 가르침 없이는 지속적인 순종의 삶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영원하시며 항상 계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받아들일 때만 비로소 모든 생각을 굴복시켜 그리스도께 강권적으로 복종케 하는 소망의 삶이 실현될 수 있다.
우리는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렘 7:23)라는 말씀을 듣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명령과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명령을 순종하라”는 표현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다만 “나를 순종하라” 또는 “내 음성을 순종하라”, “청종하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군대 지휘관이나, 학교 교사, 한 가정의 가장이 참된 순종을 얻는 방법은 규율이나 포상 또는 위협으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과 감격을 통해서 인격적인 살아있는 영향력이 순종을 일으킨다. 우리도 참된 순종의 기쁨과 능력을 주는 것은 항상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즐거움 때문이다. 말씀을 순종하는 능력을 주는 것은 바로 음성이다. 살아 있는 음성이 없는 말씀은 소용이 없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했다. 그들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 말씀해 주시기를 구했다. 그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들에게 전해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그저 명령만 생각했다.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와 친히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단지 모세와 십계명 석판만이 그들에게 말했으며, 이스라엘 전 역사는 불순종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두려워한 결과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분께 말씀을 듣기보다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훨씬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있지 않고 사람들의 말속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조차도 필요하셨던 그 능력이 없이 순종하려고 애쓰는 어리석음을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시도록 성실하게 기도하라.

 

 

2. 예수님이 사용하신 유일한 교과서

 

하나님의 순종의 학교에는 나이 많은 형제나 어린아이나 모두 하나의 교과서만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도 순종을 배울 때 우리와 똑같은 교과서를 사용하셨다. 예수님이 남을 가르치거나 확신을 줄 때만 말씀을 의지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자신의 영적인 삶과 인도함을 위해서도 성경이 필요했고 그것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이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교통하셨다고 해서 성경이 필요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시초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셨다. “기록된바”는 그분이 사탄을 이기셨던 성령의 검이었다. 그분은 “성경을 이루려함이라”로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셨고, 결국 자신을 죽음에 내어 주기까지 하셨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성경 가운데서 자신에 관한 일들”을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분은 성경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길이 나타나 있음을 알고 계셨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드리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분은 계속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순종 학교에서는 성경이 유일한 교과서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성경에서 우리와 관련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행하려는 단순한 열망으로 성경을 대해야 한다. 성경이 기록된 것은 우리의 지식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실을 인도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이니라”(딤후 3:17). “사람이 … 행하려 하면 … 알리라.” 하나님의 모든 계시가 성경에 있다고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크신 목적에 대한 보충적인 역할에 불과하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작정하셨고, 그것만을 축복하시는 그 완전한 복종 상태로 인간을 회복시키려 하신다.
그리스도도 자신의 생활과 행실에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 각각 구체적인 부분 부분을 믿고 실행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셨다. 이사야에서 “주 여호와께서 …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도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이렇게 순종을 배우신 그리스도는 말씀의 신적인 해석자로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자신이 행하신 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우리가 읽고 생각하는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심고, 그 말씀을 힘 있게 살아 움직이게 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의지, 우리의 사랑, 우리의 전 존재 속에서 효과적으로 역사하도록 하는 이것은 바로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위대한 사역이다. 바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읽으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하자. 우리는 성경 공부에 더 많은 집중과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유익을 얻었다는 간증들에 대해서도 즐거워한다. 하지만 스스로 속이지는 말자. 우리가 성경 공부에서 기쁨을 얻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어떤 견해에 매료될 수도 있다. 또한 우리가 접하는 사상들이 깊은 인상을 주며, 황홀한 종교적 감정을 일깨워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를 거룩하고, 겸손하고, 사랑하고, 오래참고, 봉사하고, 고난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실제적인 효과는 매우 적을 수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말씀을 있는 그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그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의 글자들을 공부하며 거기서 기쁨을 얻지만, 글자로는 구원하는 능력이나 성화시키는 능력이 전혀 없다. 아무리 애써 노력한다고 해도 인간의 지혜와 의지는 그 능력을 주거나 지배할 수 없다. 성령님만이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모든 계명과 함께 명령하신 것을 순종하는 힘과 그것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게 하는 힘을 얻는 것은, 오직 성령님이 우리를 가르치실 때만 가능하다. 하늘로서 오신 성령과 함께 사람이나 책을 통해서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질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경우 지식과 의지, 지식과 행동, 심지어는 의지와 실행이 힘이 부족해서 가끔 서로 분리되기도 하며, 심지어 때로는 서로 상충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은 절대 그렇지 않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빛인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성령 자체와 성령님이 행하시고 제공해 주시는 것에는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이 동등하게 포함되어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에게 보여줄 때마다 언제나 그것을 가능한 것으로, 분명한 것으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신적인 삶과 선물로 보여 주신다. 또한 그것을 보여주시는 성령은 실제로 그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실 수도 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셔서 말씀을 깨닫고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하실 때만 그리스도의 순종하신 그 순종을 배울 수 있다. 성경을 펼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아버지께서도 믿음의 기도와 온유한 기다림에 대한 응답으로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 역사하도록 하실 것을 믿어라. 모든 성경 공부를 믿음으로 실행하라. 읽은 진리들이나 약속들을 믿는 것으로 그치지 말라. 이것은 우리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령을 믿어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심을 믿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사랑하게 하시며, 말씀에 굴복하게 하며, 말씀을 지키게 하실 것을 잠잠히 믿음으로 말씀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라.
그리하면 우리의 복되신 주 예수님이 성경을 “내게 관하여 기록된 것들”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도 성경을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하실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행하실 일에 대한 단순한 계시가 될 것이다.

 

 

3. 제자로서의 마땅한 자세

 

우리는 우리 주님이 순종을 배우신 비결인 끊임없이 아버지께 의지함을 몸소 보여주심으로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심을 보았다. 또한 주님께서 성경을 자신이 행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정하셨고,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강화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로 사용하도록 가르치시는 것도 보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신자들이 순종의 학교에서 제자로서의 본분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서 효과적으로 행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깨닫게 될 것이다.
신실한 학생이라면 신뢰받는 교사를 향한 몇 가지 감정을 갖게 된다. 그것은 교사가 요구하는 만큼의 시간, 주의 집중, 완전한 복종, 완전한 신뢰이다. 예수님이 이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갖고 계신다는 것을 보고 동의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순종과 같은 순종을 얼마나 놀랍게 가르치실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해 보기를 소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그분의 인도하심에 대한 이러한 전적인 굴복이며, 그분의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행하신 것과 같은 잃어버린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기술을 가르쳐 주시기를 구하며 그리스도께 나아가자.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대가를 치르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으신다. 그 대가란 다름 아닌 자기를 전적으로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삶을 죽기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주님이 말씀하는 것이라면 모두 행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순종을 배우는 유일한 길은 자기 뜻을 그분께 맡기며, 마음을 다해서 기쁨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갈 때 절대적으로 순종하겠다는 서약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발전이 없다.
위대한 선생님의 참된 제자라면 순순히 전적인 순종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이 자기 스승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제자가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려면 자신의 지혜와 의지를 기쁜 마음으로 버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신뢰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순종을 잘 가르칠 수 있게 되시기 위해, 그 순종을 배우기 위해서 하늘에서 오셨다. 그분의 순종은 우리의 과거의 불순종의 빚을 청산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의 순종에 대한 은혜를 공급해 주시는 보물창고이시다. 그분은 우리 마음과 삶을 다스리는 신적인 능력으로 우리의 믿음을 요청하시고 받으신다. 예수님은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 우리 속에서 그분을 향한 인격적인 찬양과 애착의 능력과 그분의 신적인 사랑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의 신뢰를 일깨우신다. 또한 우리에게 그분의 학교에서 성공을 거두는 참된 비결을 전해주신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지자요 우리의 스승이시다. 교사로서의 그분의 능력과 성공을 열광적으로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이 주는 기쁨 가운데서 순종이 가능하고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참된 순종의 비결은 온종일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제자는 선생님이 원하시는 만큼 출석과 집중을 한다. 선생님은 개인적인 교제와 훈육에 시간을 얼마나 할애 할지를 결정한다. 하나님을 향한 순종은 하늘의 기술이며, 우리의 본성은 그것과 너무나도 멀다. 또한 아들 자신이 그것을 배운 행로는 너무도 느리고 길었기 때문에, 그 순종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물론 선생님의 발 앞에 앉아서 의지하며 자기희생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다려야 할 시간이, 우리 대부분이 준비해 온 기간보다 더 길지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순순히 그 시간을 드리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순종이 또다시 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순종이 우리의 권리와 삶의 호흡이 된 것이다. 주님의 지속되는 임재를 구하며 믿고 그분께 매달리자. 우리는 우리의 구주로서 순종을 몸소 배우셨고, 우리의 스승으로서 순종을 직접 배우셨으며, 우리의 스승으로서 순종을 가르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의 구원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구원을 발견하며, 순간순간 구원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순종이 실제로 어떻게 매 순간 우리의 삶이 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마음과 시간 전체를 드리는 제자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이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마치면서

 

순종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을 때는 신자의 삶이 얼마나 크게 타락하는지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길 기도하자.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의 넘어진 삶이 절대적인 순종에 완전히 굴복하는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길 구하자.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확실히 그러한 삶을 살도록 해주실 것을 믿고 구하자.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불순종함으로 그 문이 닫힌 것처럼, 둘째 아담이 순종함으로 그 문이 열렸다. 그러므로 우리도 순종하면 새롭고 산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이르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마음속에 거하실 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인이 되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순종 속에 많은 사람의 순종의 뿌리와 생명과 평안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다시 돌이켜서 전무후무한 순종의 종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연구하며 믿자. 우리가 영접하고 사랑하며 평안을 위해서 추구하시는 그분이 바로 이 그리스도가 되게 하자. 주님의 의가 우리의 소망이듯이 그분의 순종도 우리의 소망이 되게 하자. 순종하신 예수님, 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받아들여서,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믿고 있음을 신실함으로 증거하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우리 속에서 역사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그 순종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행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천국과 같은 아주 놀랍고 초자연적인 삶을 살게 하셨다. 매일 아침 경건 시간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같이 되어, 하늘의 빛과 권세가 우리의 앙망하는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이 문을 통해서 온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라.
순종이 없이는 믿음도 담대함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아는 자유함도 있을 수 없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가지신 축복을 볼 수도, 구할 수도, 얻을 수도 없다.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매일 새롭게 다져가면 위로부터 확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과의 교제를 가질 수 있다.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영적으로 깨닫게 되기 때문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순종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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