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성품의 모본 [신앙기사 4부]

제4부 참된 성품의 모본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2).

 

 

우리의 주님께서는 언제나 독선을 정죄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고상한 신앙은 그 자체가 은밀하며 겸손한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치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랑의 행동을 은밀히 행하고 과시하지 말며, 장래의 보상을 기대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높임을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경고하셨다. 만일 그들이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하여 선행을 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아무 보상도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들리게 할 목적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교훈을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들 가운데 유행되는 그런 종류의 경건을 인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분은 산상수훈에서 선행은 고상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며, 또 예배 행위는 회개와 겸비 가운데 진정한 마음으로 행해질 때 비로소 가장 고귀한 향기를 발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다. 순결한 동기는 그 행동을 거룩하게 한다.
참된 성화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반역적인 생각과 감정은 극복되고, 예수님의 음성은 전신에 미치는 새 삶으로 각성시킨다. 진실로 성화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옳고 그름의 표준으로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완고하거나 독선적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허락들의 조건에 응하지 못할까 봐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애써 지킨다.

 

 

거짓 성화의 증거, 감정적 성화

 

성화되었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가운데 역사하는 은혜에 대하여 전혀 무지하다. 시험해 보면 그들은 독선적인 바리새인들과 같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은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성과 판단을 제쳐놓고, 그들이 한때 경험하였던 감정에 기초를 두어 그들이 성화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들은 자기가 성결하다는 고집 센 주장을 역설하는 데 완강하고 괴팍하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말은 많이 하면서 그 증거가 되는 귀중한 열매는 맺지 못한다. 이렇게 성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들의 가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을 곁길로 인도하는 거짓된 감화를 끼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 가르치신다! 나는 죄 없이 살고 있다!”라고 거듭 되풀이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정신을 가진 자들과 접촉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암담하고 신비적인 어떤 것에 부닥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하신 참 모본이신 그리스도와는 전혀 같지 않은 것이다. 성경에서의 성화는 강렬한 감정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오류에 빠진다. 그들은 감정을 기준으로 삼는다. 행복감을 느끼거나 감정이 고조될 때 그들은 성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행복감 혹은 우울감은 사람이 성화되었다거나 성화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즉각적인 성화란 있을 수 없다. 참된 성화란 생명이 유지되는 한 계속되는 매일매일의 과업이다. 매일의 유혹과 대항하여 싸우며 자신의 죄된 성향을 극복하고, 또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구하는 자들은 성결하다고 하는 자만스러운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에 대해 주리고 목말라하고 있다. 죄는 그들에게 몹시 죄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형제들처럼 진리를 주장하는, 자칭 성화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 사이에 구별을 두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점은 있다. 고귀한 경험을 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임에서 떠나게 하며, 그 참석한 사람들에게 냉랭한 감화를 끼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죄 없는 삶을 산다면 그들이 참석함으로 그 모임에는 거룩한 천사들이 모이게 될 것이고, 그들이 하는 말은 참으로 “은쟁반에 아로새긴 금사과”(잠 25:11)와 같이 될 것이다.

 

 

참된 성화의 열매

 

여름에 아름다운 초록색 외투를 입은 숲속의 나무들을 멀리서 바라볼 때에 우리는 상록수와 낙엽수를 쉽게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울이 와서 낙엽수들의 아름다운 잎들을 떨어 버리며 그의 차가운 포옹으로 그들을 에워쌀 때는 상록수들이 쉽사리 분별된다. 이것은 겸손히 행하며 자아를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손에 떨며 매달리는 모든 사람들의 경우도 이러한 것이다. 자기를 신뢰하며 자신의 성품의 완전함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시련의 폭풍을 만나면 그들의 위선된 의의 옷을 잃어버리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참된 의인들은 역경에나 순조로울 때에나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다.
자기부정, 자기희생, 자선, 친절, 사랑, 인내, 불굴의 정신 그리고 그리스도인적 신뢰는 하나님과 참으로 연결된 자들에게 매일 열리는 열매이다. 그들의 행위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들 자신은 날마다 악과 싸워서 시험과 불의에서 귀한 승리를 얻고 있다. 그들은 엄숙한 서약을 새롭게 하고 간절한 기도와 끊임없는 경계로 얻어진 힘을 통하여 그 서약을 지킨다. 감정적인 자는 이 조용한 일꾼들의 투쟁을 식별하지 못하지만, 마음의 은밀한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겸손과 온유함에 미치는 모든 노력을 주목하시고 그것들을 인정하신다. 성품이 지닌 순금과 같은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기 위하여는 시험의 시기가 필요하다. 교회에 환란과 고난이 임하게 되면 그리스도를 진실로 따르는 사람들의 꿋꿋한 열성과 따뜻한 애정은 더욱 계발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들은 완전하다는 허망하고 유혹하는 이론으로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보고 슬픔에 잠기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을 깨우쳐서 바른길로 인도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과 같은 내적 단장은 결여되어 있으면서도, 외적인 아름다움과 만족을 추구하여 왔다. 시험의 때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이 오랫동안 안전하다고 생각해 왔던 희망이 근거 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새로운 위치에 처하게 되고 여러 가지 환경에 부닥치게 되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같이 보이던 사람들이 페인트나 니스 칠을 한 썩은 목재에 불과했었음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매일매일 그들의 영혼을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님께 집중시키는 일을 중요하게 느끼는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련의 폭풍우 가운데서도 요동치 않고 서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하였느니라”(딤후 2:19).
자기들의 선행에 주의를 끌려고 애를 쓰며, 끊임없이 자기들의 죄 없는 상태를 이야기하면서 신앙적인 업적이 눈에 띄도록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생업에 열중할 수 있고, 혈관에 건강한 혈액이 흐르고 있으며, 매일매일 유쾌한 기분으로 자기 직장에 나가는 건강한 사람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 몸이 건강하다는 사실에 대해 주의를 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생활에 있어서 건강과 정력은 당연한 상태로서 자기가 그렇게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참으로 의로운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의 선함과 경건을 의식하지 못한다. 신앙적 원칙이 그의 삶과 행동의 동기가 되며, 그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장미 덤불이 장미꽃을 피게 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의 성품이 하나님과 동료들에 대한 사랑으로 아주 철저하게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한다. 그의 감화를 받는 모든 사람은 그의 그리스도인적 생활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인식하게 되지만, 그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그의 감화가 그의 습관과 성향에 일치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빛을 간구하고 그 빛 가운데 걷기를 좋아한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졌으나 이를 자랑하지도 아니하고 또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가까이 따라가는 겸손하고 겸비한 자들을 보시고 미소를 띠신다. 천사들은 그들에게 매혹되어 그들의 길에 오래 머무르기를 좋아한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의 선행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기를 즐기는 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거들떠볼 가치가 없다고 하여 지나쳐 버릴지 모르지만, 하늘 천사들은 그들을 사랑스럽게 굽어보며 불기둥처럼 그들 주위를 두른다.

 

 

왜 그리스도께서는 거절당하셨나?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빛이셨으나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의 길에 빛을 비추시면서 자비를 베푸셨지만, 주님과 섞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할 데 없는 덕행, 자기부정, 자기희생 그리고 자선의 행위를 보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유대인들은 그런 생활을 칭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앙을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그들의 경건의 표준에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정신면에서나 성품면에서 신앙적이 아니라고 결정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은 허식과 공중 앞에서 기도하는 것과 효과를 노려서 자선을 행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들의 선행을 크게 자랑하였다. 그들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이해해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이와 직접적으로 대조적이었다. 그분은 이득이나 명예를 구하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위대한 축복을 받았던 자들의 열성을 제지할 수는 없었지만, 할 수 있는 대로 은밀한 방법으로 자신의 놀라운 치료를 행하셨다. 겸비한 행동과 겸손한 태도가 그분 생애의 특징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용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예수님께서 걸으실 때에 거드름 피우며 걷지 않으시고 점잔 빼지 않는 태도를 지으셨기 때문이었다.

 

 

마치면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되던 그 해에 이 히브리 청년들의 성실성을 시험함으로써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 앞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권능과 신의를 증거하는 일이 있었다. 하나님을 위하여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하며 비겁한 자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여기에 주셨는가. 위협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의무를 저버리려 하지 않을 자들에게 얼마나 격려가 될 것인가! 이들의 성실하고 견고한 성품은 그들이 높은 영예를 주장하려고 생각지 않을지라도 성화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된다.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선행은 생명책에 기록된 것들이 알려지고, 심판장이 임석하여 책들을 펴게 될 때에야 비로소 평가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며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아주 친밀히 연합하며 하나님의 뜻에 그토록 일치하는 생애를 삶으로 찬란히 비치는 빛이 되고, 몸과 혼과 영이 온전히 성화될 사람들이 지금 우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있는 곳에 수백 명 있어야 할 것이다. 빛의 자손과 암흑의 자손 사이에는 투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그들의 노력을 약화시키는 무감각 상태를 물리치고, 그들에게 부과된 중대한 책임에 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세상의 구속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들의 말과 그들이 하는 사역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시대에서와같이 이 땅의 역사가 마쳐지는 이 시기에서도 주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확고부동하게 서는 사람들을 위해 강력하게 역사하실 것이다. 극렬한 풀무불 가운데서 히브리 위인들과 동행하신 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있는 곳에는 어느 곳이든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그분의 영원한 임재는 위로가 되며 지지가 될 것이다. 개국 이래로 없던 환란의 시기에도 주님께서 택하신 이들은 요동함 없이 설 수 있을 것이다. 사탄이 모든 악한 무리들과 합세하더라도 하나님의 성도 중 가장 약한 사람이라도 멸망시킬 수는 없다. 탁월한 힘을 가진 천사들이 그들을 보호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신뢰해온 사람들을 최대한 구원하실 수 있도록 “신들의 신”으로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간절히 바란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서는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세상 사람들이 기꺼이 즐기는 쾌락과 방종을 부인하도록 요구받으므로 자신의 생애가 침울하고 울적한 것이 될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산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주님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생활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참된 성품을 닮기 원하는 자들은 거룩한 성품의 동참자가 되고,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였기 때문에 그들 안에 영생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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